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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19)화 (11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19화

“어르신!”

“으, 이……?”

“저, 시내에 나온 김에 들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고기…… 먹고 싶은겨?”

“아뇨. 고기 말고, 휴대폰을 좀 사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자 진효섭은 손을 휴대폰 모양으로 만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노인도 이해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곤 별말 없이 다시 경운기를 운전해 나갔다.

정말 알아들었는지, 노인은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줬다. 혹시라도 알아볼까 싶어 옷으로 얼굴을 슬쩍 가렸지만, 휴대폰을 파는 사람은 노안이었기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진효섭은 망설임 없이 최신 폰이라 적혀 있는 휴대폰을 골라 계산했다. 물론 진짜 최신 폰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개통하지 않은 휴대폰을 산 진효섭은 노인에게 여러 물건을 사 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을 잊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노인을 뒤에 태우고 진효섭이 경운기를 운전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워낙 느려서 도착할 때쯤에는 해가 져 있었다.

노인은 피곤했는지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효섭도 곧장 방으로 들어가 오늘 산 휴대폰을 켰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와이파이 기계도 샀던 터라 개통이 되지 않아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집이 더 구석진 곳에 위치했는지, 와이파이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아……. 어쩌지.”

기껏 사 온 휴대폰이 인터넷도 전화도 쓸 수 없어 시계 겸 손전등이 되어 버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진효섭은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혼자가 되면 아까 들었던 그 정보를 다시 검색하기 위해 잽싸게 돌아왔건만.

“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번 시내를 다녀오고 나니 거리가 얼마나 먼지 체감된 탓에 다시 홀로 다녀오겠다 쉬이 나설 수가 없었다. 사람이 많이 거주하지 않는다지만 이 정도로 살지 않았나. 아무래도 이곳이 아닌 전 역에서 내렸거나,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야. 오히려 이게 잘된 걸지도.”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에 있었기에 그 누구도 진효섭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시내를 오가는데, 그 누구도 진효섭을 보고 놀란 기색이 없었다. 쌀가게 주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노아피가 진효섭을 찾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다행은 다행이었는데……. 안도하고 나니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했다.

“왜 날 찾는 거지?”

진효섭은 얇은 이불에 철퍼덕 누웠다. 창문으로 유난히 밝은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생각을 이어 갔다.

‘[에스퍼의 소중한 것을 훔쳐서 달아났다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작은 보석이었다. 진효섭은 그날 이후로 계속 들고 다니게 된 보석을 꺼내 들어 달빛에 비췄다. 밤에 보니 보석이 자체 발광하듯 일렁거렸다. 어떻게 봐도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이것 때문인가…….”

안단테의 말에 의하면 이게 아노의 유품이었다. 하지만 훔쳤다니. 진효섭은 억울했다. 그가 직접 준 것이 아닌가. 물론 실수로 들고 온 거긴 하지만 그래도 받은 것인데.

그러나 아무리 억울해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안단테가 이렇게까지 해서 보석을 찾는 걸 보니, 진효섭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길드의 가이드에게 주는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괜찮아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싫을지도.

여하간, 진효섭의 실수였다. 그날 제대로 확인하고 두고 왔어야 했는데.

“하아…….”

차오르는 한숨을 뱉어내며 진효섭이 보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단 지금은 이 보석을 어떻게 전해 줄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어떻게 돌려줄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진효섭은 안단테에게 제 위치를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다. 위치를 알린다고 해서 그가 찾아올 거라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이유가 궁금해서 올 수도 있고, 유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들고 떠났냐고 따지러 올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잡은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의 달콤한 미소와 품을 느끼면 분명 바보처럼 마음이 또 기울 테니까. 진효섭은 그러한 애정과 따스함에 약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날 찾는 거라면?’

이 보석 때문이 아니라 떠난 진효섭을 찾는 거라면. 그 가정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대감일까, 불안일까, 아니면 미안함? 어쩌면 모든 게 뒤섞인 오묘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고작 이름 하나 들었을 뿐인데 평온했던 생활이 순식간에 안단테로 다시금 뒤덮였다.

“……역시,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

진효섭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껐다. 어차피 쓰지도 못할 물건. 여기 있으면 그래도 문제는 없을 거다. 특히 미국을 뒤집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좀 더 안심됐다.

눈을 꼭 감은 진효섭은 이 보석을 어떻게 남몰래 안단테에게 전할지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 * *

진효섭은 손에 묻은 흙을 털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까?”

“오오……. 그려.”

환한 노인의 표정에 진효섭은 삽을 옆에 두고 땅에 묻어 둔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큰 것을 노인은 대체 어떻게 땅에 묻었던 걸까. 거동도 그리 편하지 않은 분이. 그래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노인이 이걸 꺼내려 들었다가는 자칫 허리를 다쳐서 오도 가도 못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게 뭡니까?”

“그거, 김장이여.”

“김장이요?”

노인은 드물게 단번에 제대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랴. 어여 열어 봐.”

“예.”

커다란 뚜껑을 열어 보자 안에 빨간 김치가 있었다.

“아, 직접 담그신 겁니까.”

“으, 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진효섭은 파헤친 곳의 흙을 한데 모았다. 나중에 또 필요할 수도 있기에 그대로 두고 꺼내 든 항아리는 옆으로 치웠다.

김치를 꺼내서 통에 담고 나니 벌써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일을 대략 끝낸 진효섭은 뻐근한 허리를 폈다. 더 할 일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니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돌멩이가 보였다. 매끈하고 동그랗게 생긴 검은 돌이었는데, 항아리의 위에 올려져 있던 것이었다.

“저, 어르신. 이건 뭡니까?”

노인은 진효섭이 가리킨 것을 보고는 끌끌 웃었다.

“고것은 누름돌이여…….”

“누름돌? 중요한 물건입니까?”

“고럼, 고럼……. 그렇게 무겁고 탄탄한 것은 없어…….”

처음 들어 보는 물건에 요리조리 돌을 둘러보던 진효섭이 물었다.

“이제 어디에다 둘까요? 그대로 둘까요?”

“으음……. 아녀…….”

노인은 두리번거리다가 마루 끝을 가리켰다. 바닥이 언제나 들떠 있어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던 곳이었다.

곧장 뜻을 알아차린 진효섭이 커다란 돌을 번쩍 들어 올렸다.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그러나 마루에 내려놓자, 삐걱거리던 바닥이 수평으로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

“이거…… 되게 좋네요.”

순수한 감탄에 노인이 끌끌 웃었다.

“그려. 그렇지. 그것은, 신기한 물건이여…….”

“그렇습니까? 어쩐지, 이름부터도 신기합니다.”

누름돌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것이지만 유명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보다 어르신. 혹시 다음에는 시내로 언제 나갑니까?”

“으이……?”

“시내! 또 언제 가실 요량이십니까!”

“아아…… 시내……. 으음…….”

연신 끙끙대며 고개를 기울이던 노인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그러고는 기억해 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넉 달 뒤것는디……?”

“너, 넉 달이나 말입니까?”

표정에 조금 난감함이 서렸다. 물건을 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넉 달은 너무 늦다. 고민하던 진효섭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어르신, 저 혼자라도 잠깐 시내에 나갔다 와도 됩니까?”

“시내를 가것다고……?”

“예. 잠깐 부쳐야 할 물건이 좀 있어서요. 여기서는 전파가 통하지 않아서, 연락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째…… 그리 좋아 뵈지 않는디…….”

“예?”

노인이 작게 가래 낀 웃음소리를 흘렸다. 흐리멍덩한 눈이 김치 통을 향했다.

“끌끌…… 김치가 쉬어 버릴겨……. 막 만든 것이, 젤로 맛있는디……. ”

“아. 빨리 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젓갈이 많이 든, 김치는 말여…… 빨리 삭아 빠지는겨……. 그러니, 묻어 둬야 하는 것이지……. 여기가 딱이여.”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노인은 처음부터 계속 그랬기에 진효섭은 깊게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김치 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노인이 경운기를 슬쩍 가리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써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진효섭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열 시. 여섯 시부터 일어나 움직인 터라 생각보다 시간이 괜찮았다. 편도에만 무려 일곱 시간가량이 걸린다는 걸 알지만,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빨리 해결해 복잡한 걸 털어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진효섭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어제 몰아 봤던 거대한 경운기를 끌고, 다시 시내로 향했다. 큰길을 타고 쭉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지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경운기는 마음 못지않게 시끄러웠으나 덕분에 조급함을 가라앉히기에는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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