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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15)화 (11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15화

-아, 귀찮게 왜 이래요. 연락이 안 되면 조금 기다려요. 연락에 집착하는 남자는 인기 없거든요?

“당장 가 봐.”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시키는…….

“가.”

안단테의 말이 점점 짧아지고 단호해지자 플랫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에이씨. 뭔 연락이 안 된다고 나한테 가 보래? 애처가 납셨네.

“바로 갔다가 연락해.”

뚝, 안단테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분명 플랫이 투덜대며 욕하겠지만 상관없었다. 그것보다 진효섭의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가 이렇게 연락하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휴대폰을 자주 보지도 않으면서 그는 언제나 전화를 빨리 받았고, 답장도 꼬박꼬박 잘했었다.

그렇기에 안단테는 지금 상황이 초조했다. 정말 많이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듦과 동시에 이상한 불안이 감돌았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늦어.”

끊은 지 2분도 되지 않아 뱉은 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좋았던 기분이 내려앉았다. 안단테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폰만 빤히 내려다봤다. 갑자기 시간이 늘어난 듯 1초가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길고 긴 8분이 지나고, 휴대폰 화면에 플랫의 이름이 떴다. 안단테는 벨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아, 씨. 깜짝이야. 무전기인 줄 알았네.

“효섭이 어때. 자고 있어? 쓰러진 건 아니고?”

-뭔 소리예요. 단장님 집에 진효섭 없는데. 그냥 깨끗해요.

“없다고?”

안단테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일어나서 집으로 갔나?”

-뭐, 진효섭 연락이 오랫동안 안 됐나 봐요? 되게 심각하네.

“어. 좀…….”

안단테는 시간을 확인했다. 현 시간, 한국으로 치면 오후 일곱 시였다.

“플랫, 지금 바로 진효섭 집으로 가서 확인해. 뭔가 느낌이 이상해.”

-예.

안단테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는지 플랫은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화를 끄지 않고 기다렸다.

휴대폰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플랫이 능력까지 사용하며 진효섭의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평소와 다른 속도로 뛰었다. 이상하게도 초조함이 치밀어 올랐으나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안단테는 정신을 다잡았다. 허공을 노려보는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 너머의 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금세 도착한 듯 플랫이 안단테에게 물었다.

-도착이요. 도어록 비밀번호 뭐예요?

“7415963.”

삐리릭.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안단테가 마른침을 삼킨 순간, 플랫의 당황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넘어왔다.

-어…….

단순한 침음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진효섭은 자신의 집에도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어제 그렇게 해 댔으니 몸도 불편할 게 분명한데. 아니, 진효섭이라면 금방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워낙 튼튼하니까. 그렇다면 왜 연락은 받지 않는 거지? 왜 전화를 꺼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였다.

-다, 단장.

플랫이 드물게 말을 더듬었다.

-저…… 지금 발견했는데, 진효섭 집에…… 그러니까, 탁자 위에…… 그…….

“뭔데. 등신처럼 말 더듬지 말고 제대로 말해.”

-……사직서가 놓여 있네요.

안단테의 눈이 커졌다. 순간 들은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직서? 사직서가 있다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왜? 전에 썼던 걸 버리지 않고 둔 걸까? 실수? 멍하니 생각을 잇다 보니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콰직. 휴대폰이 비틀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뚫고 플랫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박혔다.

-옆에 꺼진 휴대폰도 있어요. 아무래도…… 떠난 것 같은데요.

그것을 끝으로 휴대폰이 파삭 부서지며 유명을 달리했다. 안단테는 숨도 쉬지 않고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바라봤다.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떠나? 진효섭이?’

어째서? 어제 그렇게나 뜨거웠는데 왜 떠난단 말인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그의 밑에서 좋다고 울며 ‘형, 형……’ 하고 매달렸던 게 어제다. 그런데 떠났다고? 사직서에 휴대폰까지 남겨 두고?

안단테의 눈에서 황금빛이 넘실거렸다. 흥분이 아닌 다른 의미로 눈 색이 변한 건 오랜만이었다. 꽉 다문 입이 비틀리며 열리더니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진효섭이 안단테를 두고 떠났을 리가 없다. 분명 다른 일이 있는 것이다. 협박당했다든가, 억지로 끌려갔다든가. 혹은 누군가가 이간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협박이나 이간질이 분명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거야. 그게 아니면 떠날 이유가 없잖아.”

안단테는 곧장 몸을 돌렸다. 한국으로 향하는 게이트로 가는 그의 표정은 형용할 수 없이 굳어 있었다.

* * *

“잠시 승차권 좀 확인하겠습니다.”

기차표를 확인하며 지나가는 열차 승무원을 흘끗거린 진효섭은 다시금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차 중에서는 제일 천천히 달리는 것이었는데도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 속도감이 느껴졌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떠나는 길. 그저 잠깐 벗어나 있고 싶었다. 진효섭이 있는 동네에는 안단테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집도 마찬가지였다. 안단테를 잊어야 한다 여기고 나니, 그가 제 생활에 생각보다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였던 칫솔도, 컵도, 수저도 모두 두 개가 됐다. 이불에 누워도, 식사를 해도 안단테가 떠올랐다. 집 안에 있으면 계속해서 괴롭기만 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떠나자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과연 안단테가 언제 부재를 눈치챌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사직서를 발견할 터. 이렇게 그만두는 게 예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받아들여 줬으면 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래도 다른 가이드가 많을 테니 형은 문제없을 거야.’

“……배고프다.”

마음이 공허해서 그런지 속이 허했다.

그러나 진효섭은 이내 생각을 부정했다. 그냥 먹은 게 없어서 그런 거라고, 단순한 신체적 반응일 거라고. 어젯밤부터 그렇게 움직였는데, 지금까지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허한 건 당연했다.

진효섭은 품에 꼭 안은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챙겨 온 음식들을 바라봤다. 반쯤 멍하니 챙긴 탓에 몰랐는데 온통 과자와 초콜릿뿐이었다.

개중 식사 대용이 될 수 있어 보이는 묵직하고 달콤한 밀크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곧장 은박지를 조심스럽게 까서 입에 넣었다.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깨 먹으니 입안에 달콤함이 퍼졌다. 우울하고 슬펐던 감정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이래서 다들 초콜릿을 먹는 걸까. 그렇다면 세상은 초콜릿이 팔리는 만큼이나 척박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떡하지.’

초콜릿을 씹으며 생각해 봤지만 특별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은데, 막상 멈춰 서니 어디로 향하고자 했던 건지 까먹어 버렸다.

이제껏 누군가에 의해서 등 떠밀리듯이 살아와서일까.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미래를 타인에게 맡긴다면 이보다 나으려나. 진효섭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피곤이 몰려왔다. 허리는 저릿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머리는 몽롱했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한숨 잠을 청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진효섭은 먹던 초콜릿을 다시 은박지에 싸서 네모난 포장지에 원래대로 돌려놨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손끝에 보석이 만져졌다.

“아……. 이걸 가지고 와 버렸네.”

주머니에서 꺼내 든 건 황색의 보석이었다. 가이드여서일까. 엄지손톱만 한 보석에선 안단테가 말했던 특별한 능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손안에서 이리저리 돌려 볼수록 안에서 일렁이던 주황빛이 황금색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다시금 기분이 저조해졌다. 안단테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이것을 선물이라고 준 걸까. 전 연인의 흔적을 현 애인에게 넘기다니. 도저히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스퍼를 이해하는 게 원래 이다지도 어려운 걸까. 아니면 안단테가 어려운 사람인 걸까. 가이드로 발현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이능력자로 산다는 건 아직도 어렵기만 했다.

“모르겠다.”

그에 대한 것은 그만 생각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니까. 그 안에 안단테의 생각은 쓸모없었다.

진효섭은 손에 쥔 보석을 먹던 초콜릿과 함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허전한 두 손을 허벅지 밑으로 푹 집어넣었다.

머리를 창문에 대고 있으니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초콜릿을 먹을 때만 해도 졸렸는데 고새 각성 효과라도 도는지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러나 진효섭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윽고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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