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13화
게걸스럽다. 그 말이 가진 감각을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안단테는 살아생전 이렇게나 뒷골이 땅기는 상대를 만나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 게걸스럽게 발라 먹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무리 말해도 타인은 모를 것이다.
안단테는 배부른 표정으로 진효섭의 젖은 눈가를 쓸었다. 얼마나 울면서 자지러지는지, 내일이 되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게 왜 그렇게 울고 그럴까.
여러 번 몸을 섞었는데도 처음인 양 온몸에 고조감이 돌았다. 흥분해서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강제로 성욕이 끌어 올려져서 펑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바닥에 닿는 살갗은 투박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겉은 단단한데, 안은 말랑했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을 진효섭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놀람의 연속이었다. 가이딩도 가이딩이지만, 몸의 상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아파서 울었을 것을 진효섭은 좋아서 울었다. 보고서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고 건드리며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투박하지만 예쁜 소리를 내는 악기와 같이 만지면 만지는 대로, 그으면 긋는 대로 원하는 만큼 소리를 내는 진효섭. 우습게 이름을 지은 노아피라는 길드와 잘 어울렸다.
이런 상대가 오롯이 제 옆에 있다는 게 그렇게나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만족감이 차올랐다.
‘형, 형……. 흣, 혀엉…….’
안겨 오는 진효섭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속 더 해 달라고 애달프게 부르는 목소리라든가. 그밖에 없다는 듯 매달려 오는 몸짓이라든가. 모든 것이 안단테에게 푹 빠졌다는 걸 드러냈다.
“귀엽긴.”
안단테는 뿌듯하게 웃으며 진효섭의 뺨을 쿡쿡 찔렀다. 여전히 말랑말랑한 뺨이었다. 그러나 던전에 들어가기 전과는 달리 홀쭉했다. 찌푸려진 미간은 괴로운 꿈이라도 꾸는 듯 골이 깊었다.
이 작은 머리통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온몸에 제 흔적을 달고 잠든 진효섭을 보고 있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안단테는 작게 신음을 내며 몸을 뒤척이는 그의 입술에 홀린 듯 시선을 빼앗겼다. 끝이 터져서 오물거리는 모습이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뭐…… 괜찮겠지.”
유진과 얽혔을 때의 오해도 그렇고, 정말 큰 문제라면 진효섭이 직접 물어보리라. 안단테는 별문제 없을 거라 치부하고 진효섭의 머릿밑에 팔을 넣어 그를 껴안았다. 품 안에 진효섭을 가득 채우니 마음도 뿌듯하게 차올랐다.
눈앞의 행복에 절어서 생각하기를 거부하다니. 과거의 안단테가 알았다면 혀를 끌끌 찼을 만한 일이었다.
본래 그는 찝찝한 것을 앞두고 괜찮을 거라며 안일하게 넘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답이 없는 것을 고민하기에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연인에게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에 머리가 둔해지고,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몸 상태는 최상이고, 코를 찌르는 단내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쪽, 안단테가 퉁퉁 부은 진효섭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러곤 두 팔로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껴안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나한테 말해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그게 뭐든 못 해 줄 것은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게 무엇이든 모두 손안에 쥐여 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내 곁에 있어요.”
그저 수줍게 웃으며, 얼굴을 붉히고, 다디단 꿀 내를 풍기면서 품 안에 있기만 하면 된다.
“끄응…….”
답답한지 품 안에서 진효섭의 괴로운 신음이 들려왔다. 그것조차 만족스러워서 안단테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를 더 꽉 껴안았다. 그의 향만큼이나 살도 달고, 기분도 달고, 모든 게 달아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향을 자제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넘실거렸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를 꼽으라면, 가히 지금을 꼽을 수 있을 만큼 기분 좋았다.
* * *
눈을 뜨니 낯설게 느껴지는 천장이 보였다. 처음은 아니지만, 마냥 익숙해질 수 없는 곳이었다. 멍하니 몸을 일으키자 이불에 쓸린 가슴이 아팠다.
“읏…….”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가슴 주위가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점점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진효섭은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슥 비볐다.
“형은…….”
잔뜩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안단테의 집이었음에도 그는 보이질 않았다. 진효섭이 일어났는데도 다가오는 발소리가 없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나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진효섭은 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해 일어났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붙이는 순간, 허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대로 무너져 내릴 뻔한 몸을 다잡자 동시에 꼬리뼈부터 척추가 징- 울렸다. 처음 안단테와 관계를 맺었을 때와 똑같았다.
당시, 정신을 잃은 그는 진효섭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몰아쳤었다. 하지만 어제는 정신을 잃지도 않았는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섭섭하지는 않다. 안단테는 거칠게 해 달라는 진효섭의 요구에 응했을 뿐이니까.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해 달라고 울었다. 그래야만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히도 황금색으로 눈을 물들인 안단테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진효섭은 무너지려는 몸을 이끌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자기야. 나는 갑작스레 일이 생겨서 새벽에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아침까지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침은 준비해 뒀으니까, 먹고 내 집에서 푹 쉬고 있어요. 알았죠?♡]
어울리지 않는 하트를 빤히 보던 진효섭은 답장을 보내지 않고 그대로 휴대폰 화면을 껐다.
“……다행이네.”
어차피 만나서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를 앞에 두면 마음이 약해질 테니까. 또 멍청하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휩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간접적으로 전하는 게 나을 것이다.
진효섭은 비척비척 욕실로 향했다. 닦아 주기라도 했는지 몸이 축축하진 않았지만 묘한 이물감이 불편했다. 뭐든 씻어 없애고 싶었다.
달칵, 욕실에 들어서 고개를 돌려 보니 거울에 상체가 비쳐 보였다. 슬쩍 내려다봤을 때는 몰랐는데 몰골이 영 아니었다. 울긋불긋한 전신에 눈은 개구리처럼 퉁퉁 부어서, 못난이도 이런 못난이가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인데도 형이 그렇게 흥분할 수 있었던 건 향 때문이려나.’
씁쓸함이 감돌며 기분이 바닥 끝까지 내려앉았다. 마음이 이렇게나 무거운 이유는 못난 얼굴 때문도, 무거운 몸 때문도 아니었다. 어젯밤과 다를 바 없는 충만한 힘 탓이었다.
“……얼른 씻자.”
샤워기를 틀자 곧바로 따스한 물이 나왔다. 그러나 진효섭은 일부러 찬물을 틀어 오랫동안 맞았다. 찬기가 머릿속 어젯밤의 열기를 앗아 가 주기를 바라며.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 올릴 수 없다면, 더 밑으로 묻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멍하니 물을 맞고 있으니 자꾸만 잊고 싶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반가워요! 난 김서연이에요.’
‘반갑습니다. 진효섭입니다.’
‘오……. 오웬의 가이드가 누군가 했더니, 그쪽이었구나? 후후, 앞으로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마침 다른 사람들도 안 왔고, 가이드끼리니까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뭘 말입니까?’
서연이 진효섭의 옆에 앉아서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도 없는데도 그녀는 누가 들을세라 속살거리듯 물었다.
‘오웬 말이에요. 가이딩할 때 거친 타입인가요? 음…… 난 거친 건 싫어하거든요. 미리 알아 놔야 대비를 할 수 있고, 마음 준비도 해 두니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진효섭은 떨리는 눈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을 해 줘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 진짜 가이딩이 일인 것처럼, 선임이 후임에게 하듯 느낀 바를 공유해 주는 게 똑똑한 대답일까.
복잡한 진효섭과는 달리 서연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거기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진효섭은 언젠가 유진이 말해 주어 가이딩에 대한 가이드들의 인식을 알고 있다. 가이드라면 이것도 ‘당연’에 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진효섭에게는 모든 게 어려웠다. 진효섭이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 못 하자 서연은 조금 당황했다.
‘어……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요? 보통 같은 길드면 이런 거 물어보고 하니까 말했던 건데……. 아! 설마, 본디지 파트너라던가? 아니면 사귀는 사이……?’
‘…….’
‘앗, 그런 거라면 미안해요. 내 실수예요.’
몰랐던 일인지 그녀는 난감해하며 뺨을 긁적였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서연을 두고 우울해할 수만은 없었기에 진효섭은 애써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듣지 않았다면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실례했어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됐는데.’
‘괜찮습니다.’
‘으음,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도, 그, 가이딩을 하긴 했는데 끝까지 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해해 줄 거죠?’
서연이 조심스레 진효섭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긴 손이 보드라워서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