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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12)화 (112/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12화

“네? 그게 무슨-”

“김서연 S급 가이드. 한국 출생. 높은 가이딩 능력으로 10대 때부터 최상위 길드에 들어갈 인재라고 칭송되었음. 그러나 막상 스무 살이 되자 번번이 길드 면접에서 떨어짐.”

“…….”

“그 이유는 가이딩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라죠? 여차할 때는 무리해서라도 가이딩을 이어 가야 하는 상위층 길드에는 맞지 않을 테니까. 흠, 그렇다면 눈을 낮추고 더 낮은 길드에 들어가야 할 텐데…….”

안단테의 시선이 다 안다는 듯 서연을 헤집었다.

“집안의 기대와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겠네. 그래서 스물일곱 살이나 됐는데 길드에 한 번도 정착해 보지 못하고 헬퍼로만 일하는, 아쉬운 인재죠.”

서연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하나같이 너무 정확한 정보였다.

“그런 그쪽이 우리 가이드가 되겠다고 하는데, 몇 년이 아니라 두 달 만이라도 상관없다는 조건을 걸었잖아요. 게다가 바로 이어진 행동을 보면 이유야 뻔하죠.”

실제로 그녀는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노아피의 가이드가 됐다는 말을 여기저기 퍼뜨렸다. 화제의 중심이 된 그녀는 부작용이 크다는 단점이 아닌, 능력의 대단함에 초점이 맞춰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오웬의 가이딩이 다소 위험하고 S급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소문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서연이 오웬의 가이드가 됐으니, 그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즉 오웬의 가이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이드라는 타이틀은 그녀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려 주는 용도였다.

“……다 알고 있었어요?”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다 알아차리지 않았을까요?”

안단테는 당연하다는 듯 빙그레 웃었지만, 사실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녀의 상황은 이것저것 얽혀 복잡했고, 그중 속내를 정확히 집어내는 건 가깝지 않은 타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니까, 섭섭해하는 척은 하지 말고. 이곳으로 가서 필요한 실험에만 힘써 줘요. 내 이름이나 노아피의 이름을 팔아서 그쪽 명성을 뽐내는 건 얼마든지 눈감아 줄 테니까.”

“말을 얄밉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내가 다정한 건, 내 자기 한정이거든.”

서연은 떫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픽 웃고 말았다.

“그건 그렇네. 자기 가이드한테만 다정하면 됐죠. 다른 가이드에게는 다정해서 뭐 하겠어.”

“알아주니 다행이고.”

“하지만 오해받는 건 싫어서 한마디 할게요. 오웬은 지금 내가 진효섭 가이드한테 해코지라도 한 것처럼 구는데, 난 그런 적 없어요. 그럴 생각도 없고.”

“알아요.”

안단테의 무심한 대답에 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다고요? 근데 왜 이렇게 경계해요. 같은 가이드한테.”

“가이드나 에스퍼나 뭔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뜻이에요?”

“에스퍼면 더 짜증 났겠지만, 가이드라고 짜증이 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뜻.”

안단테가 창문을 통해 사무실 안쪽을 흘끔 바라봤다.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한쪽을 뚫어지게 보며 중얼거렸다.

“누구든 내 거에 손대는 건 싫어서요.”

“……예?”

“됐으니까 다음부터 진효섭 앞에 나타나지 마요. 아, 그리고 나는 길드원이 명령 어기는 걸 싫어한다는 걸 참고하고.”

이로써 할 말은 끝났다는 듯 안단테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그녀를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만 두고 보자면 분명 안단테가 서연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상대를 간절히 바라는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서연으로서는 특별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안단테가 말했듯이 그녀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가 아니었으니까. 명성은 안단테와 함께 있지 않아도 충분했다.

서연은 안단테가 떠난 자리를 보며 묘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왠지, 집착 같은 발언이네.”

문득 어수룩해 보이는 진효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작 한 시간 남짓 같이 있었을 뿐인데, 능구렁이 같은 안단테에게 한입에 먹힐 것 같단 생각이 들자 안쓰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해 줄 일은 없지만.

한편, 사무실에 들어선 안단테는 곧장 진효섭을 찾았다. 진효섭은 꽃다발을 옆에 덩그러니 놔둔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꽃은 별로 안 좋아하나.’

안단테는 다음부터 그에게 꽃다발 선물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다가갔다.

“자기야, 저녁 장소는 찾아봤어요?”

진효섭이 휴대폰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긴, 요즘 광고가 많아서 어디가 괜찮은지 찾기 어렵긴 해요. 그럼 내가 아는 곳 갈래요? 근처에 좋은 식당이 있는데.”

“괜찮습니다. 별로 안 가고 싶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단호한 거절에 안단테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분명 지금 진효섭은 어딘가 이상했다. 어둡게 가라앉아서 체념한 듯한…….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조급함이 자리 잡는 것 같은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어둡고 덤덤한 표정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안단테는 한 가지 더 준비해 온 것을 꺼내 들었다.

“아, 맞다. 자기야. 내가 오늘 자기 선물 가져왔어요. 세공하느라 오늘 아침이 돼서야 찾을 수 있었지 뭐야.”

안단테가 품에서 꺼낸 상자를 진효섭의 손에 쥐여 줬다.

“한번 열어 봐요.”

“…….”

상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진효섭이 느리게 분홍색 끈을 풀고 포장지를 뜯었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고급스러운 벨벳 상자가 드러났다. 그 안에는 어두운 황색 보석이 존재했다.

“그냥 보석이 아니에요. 이거 이번 SS급 던전의 괴물 몸에서 나온 거거든.”

“예? 괴물 몸에서요……?”

꽃다발이나 새로운 선물이라고 해도 반응 없던 진효섭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안단테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던전에 있는 물건은 죄다 한국에 넘겼는데, 이것만큼은 들고 왔어요. 딱히 재화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마지막 유품 같은 느낌이라서요.”

진효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습니까.”

“하하. 자기가 왜 어두워져요.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제 많이 지난 일이고, 우리도 할 만큼 했으니까 미련은 없어요.”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보석을 들어 올렸다. 보석 안에서는 주황색의 불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던전 속 핵처럼.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가져왔는데…… 여기에 생각보다 신기한 능력이 있더라고요.”

“어떤 겁니까?”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위험을 느꼈을 때 자동으로 보호해 주는 능력이요.”

진효섭의 눈이 커졌다. 보호하는 능력이라면, 아노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 그렇다면 그…… 아노 가이드의 능력이 여기 담겨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물론 아노의 힘과 괴물이 융합하면서 생긴 돌이라 아노의 힘을 완벽하게 담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죠.”

당황한 듯 진효섭의 속눈썹이 분주했다.

“그런…… 그런 걸 어떻게 제가 가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돼요. 그냥 몸을 지킬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런 거 없어도 잘 지키니까 필요 없는데, 자기는 아니잖아. 솔직히, 내 자기가 너무 예뻐서 매일 걱정되거든요.”

안단테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진효섭은 표정을 펴지 못한 채 그가 내미는 보석을 받아 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정말 받을 수 없습니다.”

“괜찮대도.”

거절이 반복되자 안단테는 진효섭의 손에 있는 벨벳 상자를 가져가 보석을 넣었다. 그러곤 냅다 진효섭의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목걸이가 편할지, 귀걸이나 팔찌가 편할지 생각해 봐요. 그러라고 최소한의 세공만 해 둔 상태니까요.”

“…….”

진효섭은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상한 반응에 안단테는 찜찜해졌다.

‘뭐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속내를 읽을 수 없어 답답함과 동시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치켜들었다. 어제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착각이겠거니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기실 안단테가 국가안보국에 들어갔을 때 마주했던 진효섭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를 보자마자 풀린 입꼬리와 서서히 긴장이 놓인 건지 촉촉해진 눈가, 그리고 발그스름히 물든 얼굴까지. 그 모습이 머릿속에 오래 자리 잡았다. 잠깐 사이에 이상해질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역시 아노의 문제인가. 안단테가 아노에 대해서 넌지시 떠볼까, 생각했을 때였다.

“형.”

“네?”

생각을 끊는 진효섭의 목소리에 안단테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유난히 덤덤한 표정으로 상체를 가까이 기대 왔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달콤한 향이 코로 스며듦과 동시에 작게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오늘 형 집에 가고 싶습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생각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분해됐다. 멍해진 안단테의 손을 진효섭이 조심스레 잡았다. 손가락이 마디마디에 얽히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하고 싶어요, 형.”

안단테의 눈이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뒷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삼킨 진효섭은 씁쓸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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