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11화
“……그 여자가 왜 있어?”
“그쪽에서 먼저 나한테 연락 와서 물어보던데요? 사무실이 어디냐고.”
“그래서 곧이곧대로 가르쳐 준 거야?”
“그렇죠?”
“멍청한 새끼.”
“머, 멍청…….”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안단테의 표정이 굳었다. LEOM의 길드 가이드가 되고 싶은 여자와 자존감이 낮아서 말 하나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는 진효섭. 진효섭은 그 S급 가이드라는 여자 앞에서 덩칫값도 못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좋은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됐다. 빨리 가자.”
“흠흠, 네.”
뭔지는 몰라도 잘못한 건가 싶어 작게 헛기침을 한 플랫이 그를 뒤따르려고 한 순간이었다. 안단테가 뒤돌아 사무실 문을 가리켰다.
“플랫, 넌 사무실로 다시 가서 냉장고 들고 와.”
“예? 왜요? 우리 냉장고 새로 샀잖아요. 중고는 왜 또 가져가요.”
“갑자기 그게 쓰고 싶어졌어.”
“……갑자기요?”
“응.”
“와, 진짜 이상한 성격이네.”
“어쩌겠어. 인간 말종인 새끼는 전부 다 이상한 게 당연한데.”
“……그걸 들었어요?”
“빨리 들고 오기나 해.”
플랫이 짜증스럽게 뭐라 소리쳤으나 안단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이럴 때마다 일이 터지곤 했었기에 안단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감이 별로라 그런지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 여자……. 효섭이한테 개소리 한마디라도 지껄였어 봐.’
안단테의 눈이 살벌해졌다. 그 누구라도 진효섭과 그의 사이를 벌릴 이유를 만든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절대로.
* * *
노아피의 새로운 사무실은 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작은 호수가 있는 정원은 여덟 명 정도가 바비큐 파티를 하기 딱 좋은 크기였고, 1층 한쪽 끝에는 커다란 부엌이 있었기에 시간이 나면 얼마든지 요리해 먹을 수 있었다. 2층에서는 잠을 잘 수 있었고.
게다가 사무실은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조용한 데다 출퇴근 길도 예뻤다. 심지어 안단테가 만들어 둔 순간 이동 게이트가 여럿 있었기에 어디든 편히 이동이 가능했다.
하나같이 모두 진효섭이 좋아했으면, 하고 안단테가 고심해 건축한 것이다. 평화로운 하루하루. 그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하지만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에 안단테는 조금 짜증이 났다.
‘괜히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했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같이 행동할 것을. 안단테는 그를 위해 조성한 새로운 사무실에 꽃다발을 두었다. 두근두근하며 즐거워할 진효섭을 떠올리며 일부러 벌인 일이었는데, 쓸모없는 짓이 돼 버렸다. 다른 가이드와 함께 있을 그는 분명 시무룩하니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벌컥, 안단테가 짜증스럽게 대문을 열어젖혔다. 화려한 정원을 지나치는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효섭아.”
안단테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진효섭을 찾았다. 예전 길드 사무실은 곧장 진효섭이 보였는데, 새로운 곳은 넓어서인지 그게 불가능했다. 애써 지은 곳인데 괜한 짓을 한 듯했다. 뭔가가 어긋난 것 같다고 생각이 드니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소파에 얌전히 앉은 진효섭을 보자마자 부정적인 감정들은 씻은 듯 사라졌다.
“효-”
“진짜요? 아하하하!”
“이, 이상합니까?”
“아니. 이상한 게 아니라 귀여워서 그렇지. 아하하하.”
그를 부르려던 안단테는 멈칫했다. 예상과 달리 두 사람 사이가 좋아 보였다. 난감한 표정의 진효섭은 시무룩해 있지 않았고, 서연 역시 해코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려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일 텐데, 어째서인지 안단테의 기분은 아까보다 더 불쾌해졌다.
그때, 서연이 진효섭보다 먼저 안단테를 발견해 인사를 건넸다.
“어? 오웬이네. 좋은 아침이에요.”
“형.”
진효섭의 시선도 함께 따라오자 안단테는 불쾌함을 죽이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자기야.”
안단테가 곧장 진효섭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서연은 의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단테는 서연의 반응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진효섭만을 바라봤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도착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와 나란히 앉은 서연을 흘끔 본 안단테가 심드렁하게 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새로운 가이드랑 친해졌나 봐요.”
“예. 좋은 분입니다. 굉장히 다정하시고, 쾌활하시고, 멋지시고…….”
진효섭은 하나둘 손꼽으며 그녀의 좋은 점을 짚어 나갔다. 서연은 기분 좋은 얼굴로 싱글싱글 웃었다. 반면, 안단테의 표정은 별로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되게 마음에 들었나 보네.”
“좋으신 분이니까요.”
“후후, 나도 진효섭 씨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앞으로 잘해 봐요. 이 길드에 가이드는 둘뿐이잖아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서연이 진효섭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진효섭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으려는 순간, 그의 앞에 있던 안단테가 덥석 손을 빼앗듯이 잡아챘다.
“같은 가이드끼리 손잡을 필요가 어디 있어요. 어차피 같이 일하는 것도 아닐 텐데.”
“예?”
“서연 가이드는 앞으로 다른 쪽으로 출근하게 될 거예요.”
“응? 무슨 말이에요?”
두 사람 다 처음 듣는 얘기에 눈을 깜빡였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안단테도 지금 정했으니까.
“그건 차차 설명하도록 하고…….”
안단테의 시선이 소파에 올려진 꽃다발로 향했다. 붉은 장미로 오밀조밀 꾸며진 꽃다발은 진효섭이 아닌, 서연 옆에 놓여 있었다. 안단테가 그것을 빤히 보고 있자 서연은 빙긋 웃으며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
“아, 이거 잘 받았어요. 첫인상이 워낙 싸늘해서 오웬은 이런 걸 신경 쓸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의외네요?”
“아, 내 첫인상이 싸늘했었나요? 그렇다면 사람 보는 눈이 있네요.”
안단테가 서연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채 갔다.
“미안하지만, 이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 거.”
“아…….”
선물을 빼앗긴 서연보다도 받은 진효섭이 더 당황했다. 원래부터 진효섭의 것이었는데, 마치 그녀의 것을 빼앗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 저, 그게…….”
“에이, 뭐야. 역시 그랬잖아. 진효섭 가이드, 내가 말했잖아요. 나한테 주는 게 아니라니까. 누가 가이드를 새로 들였다고 빨간 장미를 줘요.”
“그, 그렇습니까. 착각해서 죄송합니다.”
진효섭이 난감해하며 꽃다발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서연에게 미안한지 눈치를 보는 그에게서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안단테의 생각과는 달랐다. 원래라면 꽃다발을 받고 장미 다발과 똑같은 색으로 볼을 물들여야 했다. 발간 얼굴로 자신이 준 장미꽃에 코를 묻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 달은 밥을 먹지 않아도 뿌듯할 것만 같았는데. 역시 이게 다 저 가이드가 여기 있는 탓 같았다.
‘그냥 가이드를 들이지 말 걸 그랬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는데, 어쩐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싸한 감이 계속 들어 안단테는 한숨을 삼키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서연 씨는 잠깐 나랑 볼까요. 새로운 사무실이랑 일 관련해서 얘기 좀 나누죠.”
“네. 좋아요.”
“그리고 진효섭 씨는…….”
안단테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저번처럼 길거리 음식 먹고 싶다고 하지 말고요.”
“아…….”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진효섭의 머리를 가벼이 쓰다듬은 안단테가 서연을 향해 가볍게 턱짓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탁, 문을 닫자마자 안단테는 거침없이 정원 쪽을 향해 걸어 나가다 서연을 사각지대로 끌어당겼다.
“서연 가이드. 진효섭한테 가이딩 증폭기에 관해서 얘기했어요?”
“아뇨. 이미 계약서에서 약속했던 얘기잖아요. 실험에 대한 건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뭐, 같은 가이드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의외지만요.”
서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같은 가이드인데 왜 말 안 해요? 굳이 숨길 필요가 있나?”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내 자기가 거짓말을 못 해서 혹시 몰라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안단테는 심드렁하니 중얼거리며 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 그쪽으로 정보가 샐까 봐? 하긴. 표정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기는 했지.”
“됐으니까, 그쪽은 앞으로 일 있을 때 이쪽으로 와요.”
서연은 뚱한 표정으로 안단테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그곳에 적힌 사무실은 외곽 쪽 허름한 지역에 있었다. 좋은 위치가 아니니 사무실의 상태 또한 별로일 터.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같은 길드에 들여 주겠다고 해 놓고서.”
“들여 준다고 했지, 대우해 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안단테가 가식적인 미소를 띠었다.
“난 처음부터 말했어요. 우리한테는 이미 가이드가 있어서 다른 가이드는 필요 없다고. 그런데도 조건까지 걸며 입단하겠다 말한 건 그쪽 아닌가? 그렇다면 차별도 생각했어야죠. 똑같은 대우를 받을 거라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생각 아닌지?”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에 서연이 안단테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럼 그 가이드가 연인이라는 것도 확실하게 말하던가요.”
“말했다면 뭐가 달라져요? 어차피 그쪽이 바라던 건 지금 얻어 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