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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10)화 (11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10화

온기 없는 사무실을 둘러보던 플랫은 대충 필요한 물건 몇 개만 상자에 담아 어깨에 짊어졌다.

“이것들만 가지고 가면 될 것 같은데요? 나머지는 사무실에 새 걸로 다 채워 뒀고.”

“그래.”

안단테는 플랫이 챙긴 물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함께 따라온 체르니는 문 앞에 쌓인 선물 상자들을 툭툭 건드리며 혀를 찼다.

“여기까지 선물 상자가 있는 거 보니까 정말 유명해지긴 했나 보네. 미국에만 박혀 있을 때는 실감 못 했는데.”

“하아……. 말도 마라.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입구에 상자가 하도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했으니까.”

“아, 플랫 너도? 사실 나도.”

체르니는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닌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너는 웃음이 나오냐? 귀찮아 죽겠는데.”

“뭐가 귀찮아. 유명해지는 만큼 따라오는 것들도 있는데.”

“그딴 게 어딨어? 이제 어딜 가나 알아봐서 귀찮을 일만 남았는데. 난 예전이 훨씬 좋았어. 다니기도 편하고.”

“지금은 왜 편하게 못 다녀?”

“그걸 말이라고 묻냐? 당연히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조심해야 할 게 많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막살지는 못할 거 아냐. 뭘 하든 짜증 나게 걸고넘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왜 그렇게 눈치를 봐야 하냐고.”

체르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해지는 거랑 막살지 못하는 건 상관없잖아. 똑같아. 하고 싶으면 하고, 가지고 싶은 건 가지면 그만이지.”

“이 새끼 완전 뒷세계 마인드네? 거기서 물들었나…… 아니지. 넌 원래 그런 새끼였어. 변함없이 쓰레기 같은 놈.”

플랫이 혀를 끌끌 차 댔다.

“야, 네 말을 들었다가는 노아피가 어둠의 길드에 물들어서 정식 길드가 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생길 것 같으니까 제발 입조심해라.”

“웃기고 있네.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정식 길드가 될 거거든?”

노아피가 정식 길드가 되느냐 마느냐. 그 얘기는 사실상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을 문제였다. 세계는 어떻게 됐든 노아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정식 길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아피는 다시 어둠의 길드로서 뒷세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럼, 일은 더 골치 아프게 변한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상위급 에스퍼 여섯과 단장인 SS급 에스퍼 오웬. 어둠의 길드로 두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강한 인물들이다.

결국 상황을 질질 끌면서 토론하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괜스레 취하는 보여 주기용이라는 뜻이다.

“단장, 그런데 우리 정식 길드로 발탁되면 길드 순위 싸움 할 거예요?”

“나는 찬성.”

체르니가 잽싸게 손을 들어 올렸다. 능력 사용을 좋아하는 체르니에게는 던전이 즐거운 유희와도 같았기에 순위 싸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대답이 없었다.

“단장?”

“…….”

“단장!”

플랫이 재차 안단테를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깊은 생각에 빠져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약 오른 플랫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 인간 말종 같은 놈.”

“뭐라고?”

안단테가 언제 생각에 빠져 있었냐는 듯 플랫을 흘끔 바라봤다.

“……길드 순위 싸움 할 거냐고 물었잖아요. 아니, 근데 무슨 생각을 하느라 부르는 것도 못 들어요?”

“아. 좀 이상한 게 있어서.”

“이상한 거? 그게 뭔데요.”

“진효섭.”

“진효섭?”

“효섭 형이 뭐가 이상한데요?”

가만있던 체르니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안단테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진효섭,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뭐가요?”

두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단테가 말하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안단테의 표정은 모호했다.

‘자기. 그만 울어요. 이러다가 내일 눈도 못 뜨겠다.’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울어.’

‘그냥, 무사히, 돌아온 게…… 기뻐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는 우울함이 깃들어 있었다. 좋고 기뻐서 우는 거라기에는 무언가가 달랐다.

“유난히 많이 울었어. 게다가 내가 늦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으음, 그랬나?”

플랫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체르니는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랬던 것 같아요. 형이 말없이 있기는 했지.”

어제 상황을 설명하는 내내 그가 했던 말이라고는 ‘예’, ‘아니요’가 다일 정도로 말이 없었다.

LEOM의 재건과 미국과의 설전 때문에 오래 걸렸다는 설명이나 앞으로 이 이상의 위험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확신. 새 가이드는 잠깐 들인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았지만 접촉뿐이었다는 변명. 그 모든 것을 차분하게 전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이딩 증폭기에 대한 걸 뺀 탓에 모든 설명이 다소 두리뭉실했다. 안단테는 혹시라도 진효섭이 설명할 수 없는 맹점을 파고든다면, 지금은 말하지 못하는 이유까지도 준비해 놨었다.

그러나 준비해 둔 대답은 쓸 일이 없었다. 진효섭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궁금할 게 많을 텐데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물어봐도 소용없다는 듯한 씁쓸한 표정. 가르쳐 주지 않을 걸 아는 건지, 체념 어린 표정이기도 했다. 안단테의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였다.

그때, 체르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국가안보국에서 혹사시킨 거 아니에요? 듣자 하니 하루에 A급 에스퍼 여섯 명을 접촉 가이딩했다던데.”

아무리 진효섭이 S급 가이드라고는 하나, A급 여섯 명이면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이 빠지기는 할 테지. 그러나 안단테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아니. 몸이 피곤한 느낌이랑은 조금 달라.”

“뭐가 다른데요?”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분명 이상했다. 그런데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안단테가 한층 가라앉은 눈빛으로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려는 순간, 플랫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갑자기 이상해진 거라면…… 어색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왜, 미국에서는 우리 유명했잖아요. 단장은 거의 신격화였고. 미국에서 살았던 진효섭이라면 복잡할 수밖에 없겠지.”

“아, 그렇네. 오랜만에 플랫이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

C급 에스퍼인 줄 알았던 애인이 알고 보니 SS급 에스퍼 오웬이니 당혹스러운 건 당연했다. 그러나 안단테는 찜찜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갉작이는 감각이 기분 나빴다.

“음…… 설마하니, 아노가 내 동생인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에이. 미국 출생이면 무조건 알겠죠. C.C랑 전에 열렸던 SS급 던전도 잘 알던데, 그거라고 모르겠어요?”

“역시 그렇지?”

오웬과 아노가 형제라는 사실은 미국 이능력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그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입을 다물 뿐.

같은 길드의 가이드와 에스퍼. 심지어 오웬의 옆자리에는 언제나 아노가 있었다. 길드원들이야 그들의 형제애가 돈독하단 사실을 알지만, 사람들은 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만 운영하던 잡지사에서 오웬과 아노를 금단의 관계라며 써 내려 대놓고 자극적인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이후, 안단테와 아노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이상해졌다. 뒤에서 무엇을 숙덕대는지 뻔히 보이는 시선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연하게도 안단테는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잡지사를 없애 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형제 관계라는 사실 자체를 아예 묻어 버리고자 했다. 그 사실이 떠도는 이상, 이런 일은 계속 생길 테니까.

물론 대다수가 아는 이야기를 묻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통해.

‘뒤에서 지껄인다고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 말기를 바라.’

입으로만 하는 협박이 아니었다. 어떻게 한 건지 그는 쉬쉬하며 말을 이어 가는 사람들까지 죄 잡아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SS급 던전이 생겼고, 두 사람의 죽음으로 그 일은 완벽하게 묻혔다.

워낙 큰 사건이라 당시 미국에 있었던 이능력자라면 안단테와 아노의 관계를 모를 리가 없다. 진효섭이 유난히 C.C나 SS급 던전을 잘 꿰고 있는 걸 보면, 그때 근방에서 활동했던 가이드라는 뜻이다. 그러니 미국을 한바탕 휩쓴 그 소문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 대체 뭘까…….”

“참 내. 이상한 걸로 머리 굴리고 있네. 그냥 피곤한 거겠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넌 좋겠네.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데요? 단장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지. 내 효섭이가 섭섭해하는 건 싫으니까.”

느끼한 말에 플랫은 속이 매스껍다는 표정으로 토하는 시늉을 했다.

“웩.”

“됐고. 이제 슬슬 돌아가자. 지금 새로 지은 사무실에 누구 있어?”

“아마 진효섭밖에 없을걸요? 다른 놈들은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해서 바쁘잖아요.”

안단테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그때 플랫이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다. 아마도 한 명 더 있을 거예요. 왜, 이번에 새로 들어온 가이드요.”

우뚝, 안단테의 걸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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