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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09)화 (10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09화

“형…….”

옅은 스모크 향이 코끝에서 흩어졌다. 진효섭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품 안이 너무나도 편안했다. 독을 중화해 주는 약이라도 먹은 걸까. 평온한 몸 상태로 단단히 끌어안아 주는 그 안락한 품에 진효섭은 절규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삼킨 눈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빨리 돌아오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생각보다 정리할 게 많아져서.”

“…….”

진효섭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망 어린 얼굴이 보일세라 품 안에 푹 파묻힌 탓에 안단테의 어깨에 어리광 부리듯 비비적거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안단테는 즐거운 듯 나지막히 웃었다. 그 만족스러운 울림이 피부로 전해졌다.

“그래도 앞으로는 떨어져 있을 일 없을 거예요. 아니다, 또 있으면 이제 내가 곤란해. 진짜 보고 싶어 미칠 뻔했거든요.”

달콤한 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들떠 있었다. 그때, 체르니가 그의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왜 재회의 인사를 둘이서만 해요? 누가 보면 여기 두 사람만 있는 줄 알겠네.”

“뜨겁디뜨거운 연애 중이시잖냐.”

지나가는 플랫의 대답에 체르니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 진짜. 길드 내 연애 금지를 법으로 정해야 해. 우리 가이드한테 찌이인한 키스를 못 하는 것도 서글픈데 재회까지 연인끼리만 하고. 다른 에스퍼들 복장 터지겠네.”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 너만 그래. 머리가 아래에 달린 너만.”

“왜 자기소개를 하고 지랄이야. 그건 너잖아.”

“너 정도는 아니거든.”

“지랄 마. 나야말로 너 정도는 아니야.”

뒤이어 함께 들어온 쌍둥이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대놓고 소곤댔다.

“쟤들, 또 싸운다.”

“맞아. 또 싸운다.”

“가만히 보면 둘이 되게 잘 맞는 것 같아.”

“그러게. 다투는 것도 마음이 맞아야 한대.”

“이러다가 사귀는 거 아냐?”

“헉. 이러다가 사귈 수도.”

쌍둥이는 머리를 맞대며 플랫과 체르니를 흘끗거렸다.

“근데 에스퍼끼리 사귀는 경우도 있어?”

“마음 맞으면 그렇겠지. 물론 나는 본 적 없어.”

“맞아. 사실 나도 본 적 없어. 가이딩이 아니니까…… 남자끼리면 게이라고 부르나?”

“응. 아마 그럴 거야. 아니면 남녀 안 가렸으니 바이인 거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플랫이 버럭 소리쳤다.

“야! 무슨 소름 끼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기분 더럽게 누구랑 누굴 엮어? 내가 저놈이랑 가당키나 하냐?”

“그래. 맞는 말이지. 플랫 같은 놈한테는 내가 아깝잖아. 게다가 내가 아무리 듬직한 스타일을 좋아한다지만, 저건 좀…….”

체르니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플랫의 엉덩이를 흘끔 바라봤다. 플랫은 기겁하며 엉덩이를 가렸다.

“뭐, 뭐, 이 미친. 어딜 훑는 거야, 새끼야.”

“음. 역시 맛없어 보여.”

떫은 채소라도 먹은 듯 체르니가 혀를 내밀고 퉤퉤 침 뱉는 시늉을 하자 플랫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이 미친놈이…… 내가 왜 깔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도 안 되는 가정부터 버려.”

“그럼 누가 깔려?”

“당연히 너지.”

체르니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대번에 그의 눈이 사나워졌다.

“이게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네? 대체 누가 날 깔아. 그딴 새끼 세상에 없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새꺄.”

두 사람 사이로 묘한 살기가 감돌았다. 영역 싸움에 한창인 짐승 두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만…… 싸워…….”

뒤늦게 들어온 신디가 작게 중얼거렸다. 일렁이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지, 그는 스파크가 튀는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고 주섬주섬 약과 하나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

“내가 약과…… 줄게……. 맛있는 건데… 둘이서, 나눠 먹어……. 사랑이…… 아, 아니…… 우정이 싹틀… 거야…….”

바스락바스락 약과를 까자 달콤한 향이 났다. 그에 신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 근데, 나도… 조금 먹어도 되나……? 으음……. 너희는 반만……. 아니, 3분의 1만…… 아니다… 4분의 1…….”

늘어지는 말에 플랫과 체르니의 숨이 더 거칠어졌다. 살기 또한 더 커졌는데, 약과를 손에 든 신디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때,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코다가 신디를 데리고 사무실 안쪽 소파로 걸어갔다.

“……그거 너 혼자 먹어.”

왜 그러냐는 듯 눈을 끔뻑이던 신디는 코다의 말에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으응. 고마워…… 코다…….”

허무하고 우스운 상황에 살기로 달아올랐던 상황이 푹 식었다. 플랫은 꺼내 들었던 단도를 집어넣었고, 체르니 역시 번뜩였던 눈을 가라앉혔다.

“하. 화를 내는 내가 등신이지.”

“……역시 하나같이 안 맞는 놈들투성이라니까.”

이윽고 둘도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안쪽 소파로 걸어 들어갔다. 모두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세간의 평가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그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장에서 돌아온 영웅이든, 바닥 중의 바닥이라는 C급 길드이든, 그들은 진효섭이 아는 노아피였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노아피는 C급일 때도 언제나 당당했고, 행동에 꾸밈이 없었다. 아까의 짧은 대화만으로 지금도 그러하단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변함없는 건 안단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야. 우리도 가서 앉아요.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

“자기?”

안단테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품 안의 연인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안단테의 품에 얼굴을 묻은 진효섭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문득 안단테는 어깨가 축축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의 눈이 절로 커졌다.

“설마, 지금 울어요?”

“…….”

진효섭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인지하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귀는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작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렸다.

안단테는 드물게 당황하며 진효섭을 떼어 냈다. 우느라 발그스름해진 얼굴이 보이자 그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 홀린 듯 멍하니 진효섭을 바라보던 안단테가 입술을 달싹였다.

“……왜 울어요?”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진효섭은 눈물을 삼키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품이…… 너무 편안해서, 인 것 같습, 니다.”

엉망으로 뭉그러지는 발음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의 에스퍼들이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했다. 안단테가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영상에서 봤던 아노를 향한 미소와 무척이나 유사했다. 다정하면서도 달콤한, 부드러운 미소였다.

“지금 너무 좋아서 우는 거예요? 아하하, 자기도 참. 내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나 보네.”

안단테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더 꽉 껴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의 힘이었는데, 진효섭은 그게 오히려 기꺼웠다. 손이 멋대로 움직여 그의 등허리 쪽 옷을 움켜쥐었다. 틈 하나 없이 바짝 붙어 있는데도 온기가 느껴지기는커녕 마음이 시렸다.

“형, 형…….”

“응. 효섭아. 나도 너무 좋아.”

평소보다 훨씬 들뜬 목소리. 벅차오르는 감정이 오롯이 담긴 목소리였다. 진효섭이 이제껏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그토록 원하던 SS급 던전을 탈환하고 아노를 구해 냈으니까.

“아, 눈꼴시어.”

“이건 나도 동감하는 바요.”

“우우.”

“우우.”

“……부러워…….”

“…….”

길드원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품 안의 진효섭을 놓아주지 않았다. 놀림조차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쿵쿵, 심장 소리가 귀에 울렸다.

진효섭은 안단테를 꽉 잡고 계속해 눈물이 나는 눈가를 단단한 어깨에 눌렀다. 여전히 안단테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고, 노아피는 화기애애했다. 그중 진효섭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아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진효섭이 이 순간 얼마나 허무하고 처참한지를 아는 이도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었지만, 그렇기에 깨달았다. 혼자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쌓아 온 게 진효섭뿐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너져내린 것들에 그만 상처를 입는 것이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형은 상대가 누구든 가이딩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었던 건데.’

아노가 아니면 누구라도 그 앞에서 동등하고, 그건 진효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건 진효섭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안단테에게 진효섭이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아닌, 없으면 조금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가장 편리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못한다. 안단테의 주위에는 그를 대체할 존재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으므로.

‘형은 내가 사라지더라도 지금처럼, 아니, 이제까지 그래 왔듯 평화로이 살아가겠지.’

비로소 진효섭은 현실을 자각했다. 사랑에 빠져 외면했던 진실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진효섭은 이용 가치를 다했고, 안단테는 그와의 연인 놀이를 이어 가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더 이상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그의 몸이 그것을 증명했다.

편하기만 하던 단복이 답답해졌다. 목을 감싸는 옷깃이 숨을 틀어막는 듯했다.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걸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끝이구나…….’

이제 그들에게 받은 옷을 벗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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