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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03)화 (10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03화

심드렁하게 턱을 괸 유진이 이어 말했다.

“그 얼굴에 그 능력. 타고난 제왕 기질이잖아요. 안단테도 그런데, 그 밑에 놈들도 들어 보니까 어마어마한 능력자래요. 하나같이 해창이급이라고. 그런 놈들이 남 눈치를 뭐 그렇게 봤겠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했겠지. 다들 10대 때부터 칭송받으면서 1위 길드로 자리 잡았다는데.”

능력 있는 어린아이. 그것만큼 무서운 건 없을 것이다.

“여러 일 때문에 철은 들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가이드를 가질 수 있는 놈들이고, 그런 자리에 있었잖아요. 그리고 음…… 일이 이렇게 돼서 말하는 거지만…….”

유진이 진효섭을 흘끔 바라봤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도 안단테가 탐났어요. 잘생겼고, 하루 놀고 나면 뒤탈도 없을 것 같고, 질척이지도 않잖아요. 거기다가 대단한 뒷세계 S급 에스퍼라고 하니까 나한테 딱 맞다 싶었죠. 그랬는데…….”

어휴, 유진은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오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어째서입니까?”

“몰라서 묻는 거예요, 아니면 알면서도 확인받고 싶은 거예요?”

유진이 드물게 진지하게 말했다.

“오웬은 10년 전에도 독이 빠르게 쌓이는 특이체질이라고 말 많았어요. A급 밑으로는 가이딩을 시도했다가 심장 과부하로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고 했고. 그래서 그를 가이딩할 수 있는 건 S급뿐인데…… 문제는 그 S급도 완벽하게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

“잘 생각해 봐요. 오웬의 인기는 비정상적일 만큼 올라갔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S급 가이드들이 그에게 눈독 들이고 있어요. 내가 만약 그 사람의 S급 가이드가 된다? 아, 그거야 좋죠. 근데 과연 SS급 에스퍼가 S급 가이드 한 명으로 만족할까요?”

유진은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안단테가 한 명의 가이드로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몸이 빠르게 안 좋아지는 만큼 다른 가이드에게도 가야 할 거예요. 여러 가이드를 거느릴 수밖에 없는 놈의 애인이라니. 본디지 파트너도 싫을 것 같네요.”

거짓은 아닌지 유진이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이드 중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유진은 그중에서도 가벼운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신해창이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몰래 받았다고 해서 욕할 생각도 없다. 유진 역시 그리 깨끗하게 살지만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제 에스퍼가 대놓고 다른 가이드를 전전해도 상관없다는 건 아니었다. 질투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다. 가이딩이 완벽하지 않아 다른 가이드를 만나고 다닌다는, 정당한 의미 부여가 되는 상황을 어떤 가이드가 좋아할까.

하지만 그런 유진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가이드는 오웬에게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다. 이유는 뚜렷했다. 생방송으로 송출된 영상 때문이다.

“모두 안단테가 아노를 그리는 모습만 보고 자신도 제2의 아노가 될 거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쪽도 알 거 아니에요. 안단테가 얼마나 가벼운 놈인지.”

“……아뇨. 형은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진효섭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큼은 단호하게 부정할 수 있었다. 안단테는 가벼워 보이는 행동이나 말과 달리 깊은 관계를 맺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성욕이 오르는 날에도 기분이 더럽다고 표현했다. 처음, 진효섭과의 깊은 가이딩도 별로 바라지 않는 듯했고.

그러니까 안단테는 가볍지 않다.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티끌만큼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외려 어이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허, 완전 콩깍지가 씌었네? 미안하지만, 내가 그쪽보다 안단테를 오래 알았어요. 그놈은 가벼운 놈이에요.”

유진은 재차 강조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그게 바로 안단테라는 사실을.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만, 진효섭은 내심 그가 바람 같다고는 생각했다.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누구도 얽매지 않는 사람. 만인의 연인. 그 말이 그렇게나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효섭은 끝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형은 여러 가이드를 만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유진은 진효섭의 부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휴, 완전히 홀려서는……. 됐어요. 사랑에 빠진 사람한테 뭘 말해 봤자 쇠귀에 경 읽기지. 그냥 알아만 둬요. 지금 노아피의 가이드 자리는 그쪽한테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거.”

지금 안단테의 옆은 질투와 부러움이 공존하는 자리다. 아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부러움이 되겠지만, 진효섭이라면 질투로 변질될 게 분명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멍청하게 노아피를 기다리는 진효섭을 보며 유진은 한숨을 삼켰다.

실제로 처음 진효섭을 봤을 때, 유진은 그를 얕잡아 봤다. 그때는 C급 길드의 가이드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S급임을 알고서도 여전했다. 진효섭은 쉽사리 자리를 뺏길 것 같은 어수룩한 사람이었으므로.

하지만 어수룩하다고 해서 진효섭을 탓할 수는 없었다. 성정이란 고친다고 쉽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난 가 볼게요.”

유진은 더 말을 잇기도 뭐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뭔가 떠올라 재차 진효섭을 보며 강조했다.

“아,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내가 했던 말을 질투로 오해하지는 말아요. 그런 거 아니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고.”

그걸 안다면 지금 진실도 좀 알아차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저 멍청이.’

진효섭은 그 어떤 말에도 쉽사리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그 사람밖에 없을 것 같고,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처음 겪었기에 세상에 많은 인연이 있다는 걸 모른다. 그래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그 간절함은 자존감이 낮을수록 크게 다가오리라. 그런 그에게 옆에서 아무리 말해 봤자 소용이 있을 리가 없다.

‘뭐, 데고 나면 알게 되겠지.’

진효섭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답지 않게 오지랖을 부렸지만 들어 먹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진짜 가요.”

“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뭐예요?”

답답함에 유진이 조금 퉁명스레 고개를 돌렸다.

“여기 오신 이유가…… 그것뿐이십니까? 처음 들어오실 때, 뭔가 할 말이 있으셨던 것 같았는데…….”

“아, 맞다 참.”

유진은 다른 것에 열을 올리느라 깜빡한 정보를 떠올렸다.

“내 정신 좀 봐. 그쪽한테 전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건데 다른 얘기만 실컷 해 버렸네. 정보예요. 노아피를 미국에서 발견했대요.”

“저, 정말입니까?”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에 진효섭의 눈이 커졌다. 유진은 제 휴대폰을 흘끔 바라보며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 LEOM 길드와 비밀리에 무슨 거래를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모습을 드러낸 걸 보니까 한국에 오는 것도 조만간일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다행, 이네요…….”

“너무 좋아하진 말고요. 아직 언제 돌아오는지도 모르니까.”

“예.”

냉큼 긍정했으나 고개를 끄덕이는 진효섭의 얼굴에 서린 기쁨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노아피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게 뻔히 보였다. 누가 봐도 안단테에게 푹 빠진 사람이어서 유진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진효섭과 사귀면서도 전 가이드를 구하기 위해 SS급 던전에 뛰어든 에스퍼 따위, 필요 없다고 차 버리면 되는데 왜 저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죽상으로 기다리고 있는 건지. 정말 멍청할 정도의 순애보였다.

* * *

“야, 체르니. 하는 일 없으면 나 좀 돕지?”

“너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없어 보여? 3일 동안 던전을 전전하다가 겨우 나와서 잠깐 앉아 있는 거 안 보이냐고.”

“뭐야. 던전 내부 정리를 아직도 하고 있냐? 내 참, 보스도 처치했는데 왜 이렇게 늦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

플랫의 말에 체르니가 미간을 구겼다.

“아, 피곤한데 짜증 나게 시비 거네 진짜.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지 확인해 볼래?”

예민해진 터라 체르니의 말투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플랫은 지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역시 밤낮으로 미국과의 설전에 예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삐걱거리는 낡은 문을 열고 쌍둥이가 들어왔다.

“저희 왔어요.”

“왔어요.”

곧장 안쪽으로 향한 쌍둥이는 여전히 어두침침한 내부를 보며 혀를 찼다. 아무리 임시로 잡은 미국의 뒷세계 거처라지만 너무 더럽고 허름했다.

“돈이 있어도 못 쓰는 건 죄야.”

“있기 뭐가 있어. 단장님이 보물들을 죄다 국가안보국에 넘겼는데.”

리디안이 돌연 제 가슴팍을 쥐었다.

“나는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그건 그렇지…….”

쌍둥이가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것들로 이제 평생 놀고먹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차였는데. 아무리 아노를 위해서 던전에 들어간 거라지만 그들에게는 적자만 남은 싸움이 되어 버렸다.

“단장님은 왜 그걸 다 넘긴다고 했는지 모르겠어. 얻은 건 명예밖에 없잖아.”

“맞아. 명예는 어차피 쓸모없어지잖아. 이름만 바꾸면 없던 게 되어 버리는걸. 역시 돈이 최고야.”

“맞아. 돈이 최고야.”

두 사람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이 안단테에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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