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99화
얇은 실은 강철보다도 강인하게 괴물의 사지를 묶어 세 개뿐인 팔다리는 각기 봉인됐다. 괴물은 거미줄에 걸린 짐승처럼 몸부림을 치고 울부짖었다.
곧바로 쌍둥이의 총알 수십 개가 괴물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얇은 실은 목을 끊을 듯이 조였고, 실을 타고 흘러간 얼음이 발목을 얼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어지는 공격.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들어왔는지 알게 해 주는 모습들이었다.
[“끝이다.”]
코다가 눈을 빛내며 주먹을 괴물의 미간을 향해 내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괴물의 이마에 눈알이 생겼다. 선명한 금안이 도르르 주위를 구르더니 코다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움찔한 코다가 위험을 감지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끼야아아아악!!]
그것이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사방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코다의 손을 그대로 짓씹었다.
[“큭…….”]
옆에서 플랫이 그것의 눈알에 칼을 찔러 넣었다.
[끼야아아아악!]
또다시 괴물에게서 비명이 터졌다. 벌어진 입 틈으로 코다가 뒤늦게 손을 거뒀지만, 이미 손목 하나가 너덜너덜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손목이 끊겼을 것이다.
[“X같네.”]
플랫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검을 뻗었다. 괴물이 결박당해 있을 때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조금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안단테가 뭐라 하려고 했지만, 행동은 말보다 빨랐다.
푹!
플랫이 정면에서 검을 지르려고 하는 순간, 체르니에게 뽑혀 나갔던 팔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괴물은 그 팔이 플랫의 복부를 관통하도록 쑤셔 넣었다.
[“컥…….”]
마치 이물을 털어 내듯 괴물이 팔을 휘젓자 플랫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아니, 저 멍청한 새끼. 정면에서 덤비는 게 지 일이 아닐 텐데.”]
체르니는 혀를 차며 몸을 날렸다. 아까는 없었던 뿔이 이마에 불룩 솟아났다. 기이한 문양에 온몸이 덮인 체르니가 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괴물이 체르니를 막으며 달라붙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체르니가 인간치고는 으스스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까. 둘이 가까이에 붙어 있으니 어느 쪽이 괴물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체르니가 손에 힘을 주어 그것의 목덜미를 쥐어뜯으려고 할 때였다. 괴물의 날카로운 꼬리가 체르니를 휘어 감았다. 콰드득, 체르니의 몸에 구멍이 뚫리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괴물의 뼈가 폭발하며 신디와 쌍둥이를 향해 날아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그들이 한발 늦게 몸을 움직였다. 살짝 스쳤는지 하나같이 팔이나 다리를 부여잡았다.
[킥… 킥… 킥킥……!]
그것이 꼴좋다는 듯이 웃어 댔다.
[“하, 저 개새…….”
“아무리 들어도 처웃는 게 재수가 없네.”]
체르니와 플랫이 짜증스럽게 입가의 피를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괴물 새끼.”]
한 대 맞고 나자 인격이 바뀌며 정신을 차렸는지 신디 역시 욕설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서는 얼음송곳이 뱅글뱅글 돌았다. 심각한 상처에도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제일 호탕하게 웃는 건 안단테였다.
[“아하하, 그래……. 이 정도로 잡히면 곤란하지. 어떻게 기다렸는데.”]
안단테가 연신 웃어 대며 손에 쥔 실을 놓았다. 이미 절반이 끊긴 실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길게 즐겨 보자. 내가 10년 동안 너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왔거든. 그 값은 해 줘야 할 거 아냐.”]
실이 사라진 그의 손에는 금빛에 휘어 감긴 커다란 대검이 나타났다.
[끼기기기야아이이익!]
돌연 괴물이 하체를 핏빛색으로 물들이며 비명을 지르고 몸을 폈다. 바야흐로 두 번째 전투가 재개됐다.
화면 속에선 아까보다 한층 더 격렬해진 전투가 이어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웠다. 어떻게 싸우는 건지, 상황이 불리한 건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저 그들이 엄청나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
신해창의 능력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았던 진효섭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싸움이 일어난 지 벌써 4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두 사람 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화면에서 시선 한 번 떼지 않았다.
전투는 그 정도로 치열했고, 심장이 조여들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어마어마하게 강한 괴물을 두고 노아피는 평범하지 않은 능력들을 발휘했다. 이렇게 대단한 S급들이 한 길드에 모여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독특하고 강한 능력의 향연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튀는 사람이 있었으니. 가면을 쓴 사람, 안단테였다.
다른 이들은 벌써 가면 따위 깨져서 벗어 던진 채였는데, 안단테는 끝까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심지어 아직 금 하나 가지 않아 자꾸만 안단테가 괴물보다 우위라 생각됐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이 두근거림은 분명한 흥분이었다. 피투성이로 독특한 모양의 검을 휘두르는 안단테는 주변 S급 에스퍼를 압도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안단테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선이 갔다.
엄청나다. 에스퍼의 능력을 잘 모르는 진효섭도 그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안단테는 다른 에스퍼와 다르다. 전장에 선 그는 절대적인 강자였다. 하늘을 가득 채운 디버프와 대검을 다루는 능력, 손끝에서 나오는 일렁임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도 엄연히 디버프와는 다른 신체 능력이다. 분명 능력이 두 가지 이상으로 보였다.
“……능력이 두 개?”
유진이 옆에서 목소리를 달달 떨었다. 그 역시 안단테만을 보고 있었다. 본래 에스퍼의 능력은 한 명에게 하나만 발현된다. 그러나 세상에 두 개의 능력을 가진 에스퍼가 나타났던 적이 있다.
‘아, 그렇구나.’
진효섭은 뒤늦게 눈치챘다. SS급 던전을 다녀온 적이 있고,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진 에스퍼. 그 존재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아마 유진도 똑같은 사람을 떠올렸으리라. 진효섭은 차마 머릿속에 떠오른 그 이름을 뱉지 못하고 화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화면 안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균형이 점차 한쪽으로 기울었다. 안타깝게도 진효섭이 바라지 않는 방향이었다.
[“하, 더럽게 강하네.”]
플랫은 반쯤 찢어진 제 다리를 부여잡고 숨을 골랐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장점이었는데, 다리를 다친 탓에 거동이 쉽지 않아 보였다.
플랫뿐만이 아니었다. 체르니 역시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숨을 몰아쉬었다. 기나긴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였기에 체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에스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쌍둥이는 연기를 풀풀 내는 총기 탓에 지원사격이 불가능했고, 신디도 힘의 한계가 왔는지 숨이 가빴다.
코다만이 끝까지 남아 안단테와 함께 괴물을 공격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코다는 무리하고 있었다. 화면을 통해서도 보일 정도로 코다의 눈동자가 스산한 금빛으로 빛났다. 폭주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힘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코다는 겁 없이 힘을 더 끌어 올렸다. 손끝에서 서슬 퍼런 기운이 넘실거렸다. 오른쪽 손목에 찬 쇠사슬은 차륵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야, 코다 너…….”
“문제없어.”]
코다는 짧게 말하며 또다시 괴물과 교전했다. 힘이 불안정하게 새어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해졌지만, 그의 눈동자는 한층 더 밝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오른팔에는 시퍼런 실핏줄이 올라왔다.
[“저 미친 새끼…….”
“쯧.”]
플랫과 체르니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코다를 말릴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어느새 코다에게 다가간 안단테가 그대로 팔을 잡아채 만류했으므로.
[“이거 안 되겠네.”
“단장님!”
“가서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
“전 아직-!”
“거슬리니까 비키라고.”
“…….”]
코다가 이를 꽉 물었다. 그사이 괴물이 다가왔지만 안단테는 들고 있던 대검을 날려 시간을 벌었다. 쿠당탕- 괴물이 검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얼른.”]
안단테의 재촉에 코다는 결국 분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로써 S급들이 모두 뒤로 빠졌다. 남은 건 안단테 혼자였다. 일곱 명이 함께 달려들었을 때도 잡지 못했던 괴물을 혼자서 마주하는데도 안단테는 긴장이 없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키… 익….]
괴물이 안단테가 날린 검을 두 동강 내며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것을 본 안단테가 조금도 아쉽지 않은 표정으로 과장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너 그게 얼마짜리인지나 알고 부숴 먹는 거야? 네 몸을 가져다가 팔아야 겨우 얻는 거라고.”
킥…….
“음. 그래도 목숨으로 갚아 준다면 상관없지만.”]
안단테는 제 무기가 부러졌는데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탓, 괴물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송곳처럼 뾰족한 손톱이 안단테의 목을 노렸다. 안단테는 그것을 몸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 피하고 밑으로 미끄러졌다.
뒤로 돌아간 그가 괴물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고, 괴물은 꼬리로 안단테의 등을 노렸다. 안단테는 손을 뻗다 말고 다시 옆으로 물러났다. 한 치도 쉬지 않는 공방이 펼쳐졌다. 엄청난 긴장감에 모두가 절로 숨을 멈췄다.
안단테는 놀랍게도 몸이 더 가벼워 보였다. 다 같이 싸우는 것보다 혼자가 훨씬 더 편해 보였다.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자유로웠다.
어느새 내리던 눈은 비가 되었다.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물이 튀었다. 안단테의 머리카락은 축 가라앉아 어둑한 잿빛이 됐다.
아슬아슬하게 평행선을 그리던 공방의 균형이 차츰차츰 무너졌다. 다행히 아까와는 반대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