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98화
영상석을 들고 있던 안단테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대로 영상석을 대충 벽면에 걸었다. 그러곤 코다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언가 속삭이는 게 보였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흥분한 코다는 다소 침착한 듯했지만, 아주 조금일 뿐이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쇠사슬은 여전히 위험한 기운과 함께 차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슬슬, 이제 움직이는 것 같은데?”
“맞아, 이제 시작하는 것 같은데?”]
쌍둥이의 말을 시작으로 앞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낮은 숨을 내뱉었던 부분에서 긴 꼬리가 움직였다. 그 순간, 안쪽까지 불빛이 마저 켜지며 드디어 뜨거운 숨을 뱉어 내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SS급 던전의 보스급 괴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작은 몸집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검은 일렁임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그것은 팔 두 개, 다리 두 개로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란 꼬리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했다. 머리 절반부터 몸을 휘어 감는 갑각류의 그것은 괴물이라고 보기에 적합했다.
중앙의 핵 위, 괴물은 그곳에 가만히 서 꼬리를 흔들며 그들을 내려다봤다. 어쩐지 즐거운 모양새였다.
[“……X발.”]
그때 괴물에게로 누군가 튀어 나갔다. 거친 욕설로 인해 플랫일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뛰쳐나간 이는 코다였다.
[“저 미친 새끼가 진짜.”]
플랫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함께 앞으로 뛰쳐나갔다. 긴 검은 어느새 짧은 단검 두 개로 바뀌어 있었다. 언젠가 안단테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검이었다.
전투는 급작스럽게 시작됐다. 코다가 그대로 주먹을 괴물에게 내질렀다.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화면 밖에서도 느껴졌다.
내지른 주먹에도 괴물은 움직이지 않고 꼬리만 흔들거렸다. 그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알게 됐다.
후드득- 그 주위로 수천만 개의 벌레들이 쏟아졌다. 벌레들은 엄청난 속도로 코다와 그 뒤를 따라온 플랫을 감쌌다. 엄청난 숫자에 두 사람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코다의 주먹은 괴물에게 닿지 못했다.
[“쯧쯧, 완전히 머리에 열이 올랐네. 분명 처음에는 먼저 돌진하지 말라고 했는데.”]
체르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안단테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해해 줘. 어쩔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잠자코 있던 안단테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너른 등이 어쩐지 듬직했다.
[“다들 고개 숙여.”]
안단테가 가볍게 손끝을 움직였다. 마치 피아노라도 치듯이 매끄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안단테의 앞에 몽실몽실한 구름이 생겨났다.
딱! 가볍게 손가락 두 개를 튕기듯 부딪치자, 그것에서부터 불이 뿜어 나왔다. 순식간에 일대가 불로 일렁거렸다. 그 자리의 모두가 숯불구이가 된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불이 차츰 가라앉고 드러난 내부는 멀쩡했다. 일곱 명은 하나둘 숙였던 몸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엄청난 숫자의 벌레는 불타 없어진 채였다.
[“음, 깔끔하네. 벌레는 불로 지져 줘야지.”
“저 보스 놈은 미동도 없는데요?”
“이 정도로 해결하면 내가 섭섭하지. 아마 슬슬 다음이 나올 거야. 아, 말하기가 무섭게.”]
양옆에서 두둑두둑, 소리를 내며 작은 문들이 열리고 그 사이로 해골 얼굴을 한 인간 형상의 괴물들이 좀비처럼 비척비척 나타났다.
안단테가 반듯하게 웃으며 다시금 손끝을 움직였다. 이번엔 그 앞에 있던 몽글몽글한 구름이 천장을 채우더니 아주 옅은 비를 주룩주룩 내렸다. 그 탓인지 좀비 같던 놈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다들 머리 좀 식혀. 특히 코다.”
“…….”]
코다는 말없이 좀비 같은 놈들에게 몸을 던졌다.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됐다. 모두가 하나같이 싸우고 있는데, 안단테만큼은 뒤에 빠져 가만히 있었다.
길드장이 없음에도 길드원은 무난하게 괴물들을 없애 갔다. 좀비 다음에는 날개가 달려 날 수 있는 또 다른 괴물, 그 뒤에 진흙이 뭉친 듯한 또 다른 괴물이 잇따라 나타났다. 죄다 위험하게 생긴 놈들이었으나 노아피가 움직일 때마다 괴물들은 바닥을 뒹굴었다.
코다는 울분을 토하듯 주먹을 내질렀고, 플랫은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괴물을 베어 나갔다.
체르니는 낄낄 웃어 대며 괴물을 맨손으로 찢었고, 쌍둥이는 놀라운 명중력으로 총을 이용해 괴물들의 머리만 노렸다.
거기다 신디는 겉을 맴돌며 바닥에 무언가를 박아 넣었는데, 괴물이 달려들면 톱니바퀴 같은 것이 그들을 썰어 냈다.
모두 같은 길드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넋을 잃고 보게 만드는, 출중한 능력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개인플레이에 능했고, 미리 말이라도 나눈 것처럼 자기 영역의 괴물을 깔끔하게 없애 댔다.
한편, 뒤에서는 물과 바람 등 자연재해라 칭할 법한 현상을 수월히 만들어 내는 안단테의 디버프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 완벽한 모습에 어쩌면 던전을 성공적으로 탈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 보였다.
순식간에 여섯 종류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제 눈앞에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최종 보스가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그것은 가볍게 허공을 떠서 중앙에 내려앉았다. 작은 몸집이었지만 중앙에 내려앉은 그것은 아까 봤던 괴물들과 뭔가 달랐다.
위험하다. 화면 너머로 보는 진효섭조차 확 느낄 수 있는 섬찟한 분위기였다. 여전히 흔들거리는 강철 같은 꼬리를 보고 있으려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킥…….]
그것이 인간을 비웃듯이 입술을 끌어 올렸다. 반면, 괴물을 바라보는 노아피는 침묵했다. 아까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고 웃던 모두가 살벌한 표정으로 무기를 고쳐 잡았다. 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그때 안단테가 제일 뒤에서 나직하게 말했다.
[“정신 차려. 환각제야.”]
거친 분위기가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안단테의 말에 길드원들이 코끝을 훔쳤다.
[“썅,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망할.”]
이내 그들은 짜증스럽게 몸을 털어 냈다. 물론 그것만으로 환각제를 떨쳐 낼 수는 없었다. 딱! 안단테가 두 손가락을 다시금 부딪혀 소리 내자 구름에서 하얀 눈이 내렸다.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갈 거야. 쌍둥이는 저격, 신디는 보조.”
“확인.”
“확인.”
“확… 인….”]
쌍둥이는 김이 풀풀 나는 권총을 버리고 신식 저격용 총을 양쪽 끝에 설치했다. 신디는 멀리서 바닥을 짚었다. 언제 미리 준비해 둔 건지 바닥에서 빛이 났다.
[“코다는 주의를 끌어. 플랫은 틈을 지켜보다가 공격하고, 체르니는 나를 돕는 걸로.”
“확인했습니다.”
“확인.”
“확인요.”]
일제히 깔끔하게 대답하며 몸을 낮췄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서 안단테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중앙으로 향했다.
[“이야, 오랜만이네.”]
바닥에 내려앉은 괴물과 안단테가 일직선으로 마주 보고 섰다.
[“이번에는 살살 좀 부탁할게. 내가 어떻게든 널 죽일 생각이라서.”
키… 킥….]
그것은 웃어 대며 꼬리를 치켜들었다. 자연스레 상체가 낮아졌다.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후- 그와 동시에 안단테가 낮게 숨을 뱉었다. 차분히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편 안단테의 손끝에서 은빛 실이 길게 뻗었다. 그리고…… 안단테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더니 괴물 앞으로 바짝 다가가 있었다.
긴 은빛 실이 순식간에 괴물 목을 감았다.
그러나 괴물은 실이 목을 조이기 직전에 놀랍게도 빠른 몸놀림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어디로 움직일지 알고 있었다는 듯 코다가 그곳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뻗었다. 처음에는 닿지 못했던 주먹이 드디어 괴물의 어깨를 강타했다.
콰과광―!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큼 커다란 소리가 났지만, 괴물의 강인한 어깨에는 금도 가지 않았다. 코다가 작게 혀를 찼다.
[“이러면 내 먹이지?”]
그새 소리 소문 없이 뒤로 다가간 플랫이 씩 웃으며 긴 검으로 괴물을 그었다. 괴물의 등이 반으로 쭉 갈린다 싶더니 빠르게 붙었다.
탕탕! 탕탕탕! 양쪽에서 검은 불과 같은 총알이 쏘아져 나왔다. 괴물이 총을 피해 한쪽 벽면에 붙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디가 제힘으로 괴물의 발바닥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곤 곧장 얼음송곳을 반대편에서부터 쏘아 괴물의 팔다리를 벽에 붙였다.
괴물이 잠깐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코다가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차르륵! 쇠사슬 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지고, 엄청난 힘과 함께 주먹이 괴물의 명치에 정확히 박혔다.
콰광―! 아까보다 한층 더 커다란 소리가 나며 괴물을 중심으로 뒷면의 벽이 쩌저적 갈라졌다.
[끼에에에엑!]
킥킥 웃어 대던 그것이 처음으로 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코다는 눈을 빛내며 이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괴물은 같은 방법에 두 번 당하지 않았다. 괴물은 순식간에 신디의 힘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벗어나 기다란 꼬리를 칼처럼 날카롭게 했다. 그리고 코다를 향해 꼬리를 내둘렀는데, 그 틈을 타 체르니가 허공에 뛰어올라 괴물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잡았다.”]
강인한 손아귀가 그대로 괴물의 어깻죽지를 잡아 뜯었다. 투둑, 팔 하나가 바닥에 뒹굴었다.
[끄에게게겍겍!]
동시에 안단테가 긴 실로 그를 꽁꽁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