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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96)화 (9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96화

“진효섭 씨가 만약 안 사귄다고 했으면, 그놈이 매달렸을 것 같나요?”

아니. 진효섭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게 더 옳았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매달리는 안단테라니. 그것보다는 사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그럼 어쩔 수 없다면서 쉽사리 물러나는 모습이 더 잘 상상되었다.

“걔, 진효섭 씨한테 아무 마음 없어요. 있다고 해도 그냥 편리한 가이드 수준에 그치죠.”

유진은 정말 안타깝다는 듯 진효섭의 손을 그러쥐었다.

“진효섭 씨 정말 착해 보이는데 괜히 그런 나쁜 남자한테 걸려서 마음고생할까 봐 걱정스러워서 그래요. 내가 에스퍼 많이 봐서 아는데, 걔는 누구를 사귀고 할 사람 아니에요. 그냥 하루 이틀 가지고 노는 것만 좋아하지.”

진효섭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차차 단단하게 굳어 갔다. 진효섭은 묵묵히 생각을 관철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가 좋아하니까요.”

“아, 정말 답답하네. 그놈이 돌아오면 한 번 먹고 바로 버릴 거라니까요? 버려질 바에야 먼저 버리는 게 낫잖아요.”

“전 그렇게 못 합니다.”

유진은 아무리 흔들어 대도 꼿꼿한 진효섭에 몰래 표정을 구겼다.

“나중에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져도 난 몰라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이……! 하아, 아냐. 됐어요. 그때 가서 울고불고해도 그쪽 선택이지.”

숨은 목적을 다 달성하지 못해 유진은 뾰로통하게 고개를 돌렸다. 쉽게 넘어올 것같이 생겨서는 대쪽 같아 조금 짜증도 났다.

한편, 진효섭은 다시금 TV에 시선을 주었다. 유진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했다. 안단테가 나쁜 남자라는 점은 진효섭 역시 공감하므로.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그저 얼른 그가 무사히 돌아 나오기를 바랐다. 힘든 그를 보듬어 주고 싶을 뿐, 그 외에 다른 마음은 없었다.

* * *

D+3. 어느새 시간은 이틀을 지나 사흘째로 향했다. 분명 이틀만 기다리라고 했던 안단테였건만.

3일째가 되는 날 아침, 진효섭은 한숨도 자지 못해 벌건 눈을 비볐다. 마음속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심지어 옆에 있는 유진의 빈정거림은 그 불안을 더 키우기만 했다.

“어휴, 그러고 보니 안단테는 이렇게 어려운 던전을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는데도 연인을 만들었네요? 걱정돼 죽으라는 건가?”

“…….”

“정말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놈이에요. 진짜 사랑한다면 사귀고 싶어도 갔다 와서 고백했을 게 분명할 텐데.”

유진은 휴대폰에 사진 하나를 띄워 진효섭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 사람 어때요? 내가 아는 에스퍼인데,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요. S급에다가 다정하고, 잘생겼고, 키도 커요.”

“신해창 에스퍼에게는 연락이 없습니까?”

조금도 관심 없어 보이는 진효섭의 반응에 유진이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없어요. 너무 바빠서 연락도 안 되는걸요.”

“그렇습니까.”

“피곤하면 좀 자두든가.”

“괜찮습니다.”

진효섭은 더 어두워진 안색으로 반듯이 앉아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여전히 변함이 없는 던전 게이트였다. 신해창 에스퍼라도 있으면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그 역시 바쁜지 사무실을 도통 들르지 않았다.

가슴속 불안이 잠재워지질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석이 있으니까 실패했다면 바로 알 수 있다. 지금은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까 괜찮은 게 분명하다. 안단테는 이틀을 말했지만, 생각보다 던전이 더 까다로워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리라. 진효섭은 두 손을 꽉 잡고 애써 좋은 방향으로 생각 회로를 돌렸다.

“어?”

그때, 엎드린 채 휴대폰을 보던 유진이 상체를 일으켰다.

“연락이 왔어요. 노아피가 이제야 막바지에 들어갔나 본데요? 교전 중이래요.”

“저, 정말입니까? 상태는…… 상태는 괜찮습니까?”

“그것까지는 몰라요. 저도 어느 정도 진전됐느냐고만 물어봤고, 이 대답도 하루에 걸쳐서 받은 거라서.”

지금 물어봤자 돌아올 대답은 모든 게 다 끝나고 난 뒤일 게 분명했다. 이제 드디어 기다림의 끝이 보였다.

“조만간 결과가 나오겠네요. 그들이 죽을지, 아니면 살아서 걸어 나올지.”

유진 역시 다소 진지한 표정을 했다. 진효섭은 이보다 더 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끝이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났다. 오기를 바라는 건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진효섭이 손을 잘게 떨자 유진이 혀를 찼다.

“대체 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노아피는 10년 전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왔던 에스퍼들이라던데. 설마 진효섭 가이드는 모르고 있었어요?”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걱정해요? 그들도 가능성이 있으니까 들어간 거잖아요. 보니까 능력 있는 S급 같은데.”

“그래도 SS급 던전은 무서운 곳이지 않습니까.”

“그럼 실패하고 나오겠죠. 한 번 나왔으니까 두 번 나오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

유진은 유난스레 걱정하는 진효섭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효섭은 오히려 그런 유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둘은 서로를 빤히 마주 봤다.

“유진 가이드는 한 번도 에스퍼에게 문제가 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까?”

“문제? 무슨 문제요?”

“던전에 들어가서 나오질 못했다거나 폭주했던 문제 말입니다.”

“아아. 뭘 묻나 했더니. S급이 멍청이도 아니고. 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 한계를 모르는 에스퍼가 아닌 이상에야 폭주할 만큼 능력을 쓰는 멍청이가 어디 있어요? 그런 거 흔치 않다고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국가안보국에 있는 S급 정도면 그럴 일은 더욱이 없어요. 게다가 던전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했다는 건 죽었다는 건데, SS급 던전 때가 아니라면 그런 일 잘 없지 않나요?”

유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나같이 C급이나 B급 얘기지, S급 정도 되면 자기 보호 수단은 들고 있어요. S급 가이드인 내게 급박한 상황이랄 게 뭐가 있겠어요?”

맞는 말이다. 국가안보국의 S급 에스퍼는 모두가 뛰어나다. 몇 없는 S급은 그만큼 대우를 받고, 나라는 던전이 가져올 수익보다 S급 에스퍼의 목숨을 우선순위로 둔다. 그러니 진효섭이 말했던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유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근데…… 그렇게 묻는 걸 보니 진효섭 가이드는 그런 위험한 일이 많았나 봐요?”

“저는…….”

진효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같은 S급임에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르게 생활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아니지. 유진이 평범하고, 자신이 이상한 것이다. 어느 S급 가이드가 자신처럼 살아올 수 있었을까. 무지하고 멍청해서 당하고만 살았다는 걸 그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많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전부…… 죽었으니까요.”

“죽어? 전부 죽었다고요?”

“예. 다 죽었습니다.”

흥미롭게 듣던 유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제가 가이딩해 준 에스퍼가 또 죽을까 봐. 또 던전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을까 봐…….”

진효섭이 더없이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TV 속 게이트를 바라봤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으나 마냥 처음은 아닌 던전이다. 자신은 간접적으로 SS급 던전을 체감한 적이 있으니까.

과거, 진효섭은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처음 S급 가이드로 발현을 했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수도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 당시 혼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진효섭은 수도원에서 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영어도 어수룩한 동양인을 아이들이 무시하고 괴롭힌 까닭이다.

그때, 수도원의 뒤를 봐준다는 길드장이 찾아왔었다.

‘너 S급 가이드라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수녀님한테 들었지. 우리가 이 수도원을 후원하는 길드거든. 길드가 뭔지는 알고 있지?’

‘네에……. 에스퍼랑 가이드가 있는 곳이요.’

‘잘 아네. 듣자 하니 너 애들한테 동양인이라고 따돌림당하는 것 같던데, 여기서 이렇게 열여덟 살까지 살 바에야 차라리 우리 길드로 갈래?’

‘정말요?’

‘응. 물론 우리 길드로 오기 위해서는 지금 네 이름을 버려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뭐, 별거 아니야.’

‘좋아요! 갈래요!’

배척받던 아이가 거절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때 열네 살이었던 진효섭 또래 아이들의 관심사는 모두 가이드와 에스퍼였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영웅과도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 영웅 같은 에스퍼가 길드에 들어오길 제안한 것이다.

진효섭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는 게 무슨 뜻인지, 길드의 가이드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들이 어떤 길드인지도 모른 채 수락했다. 에스퍼는 영웅이었고 길드는 꿈의 장소였으며 수도원은 지옥 같은 곳이었으므로.

그것이 모두 착각이었다는 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알게 됐다. 그들이 나쁘게 대했던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운이 지독스럽게 나빴던 탓이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수도원에서 힘든 생활을 지속하다 가이드로 발현한 것도, 하필 그 수도원이 길드와 몰래 유착해서 가이드나 에스퍼를 빼돌리는 곳이었던 것도, 모두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제 운이 지독스레 나빠서였다.

길드에 들어가고 나서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SS급 던전이 나타난 것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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