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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95)화 (9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95화

유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며칠 전만 해도 안단테를 후회하게 만들어서 제게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는 것을 보려고 했는데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단테는 쉽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쉽게 눈치채니 자신이 갑작스레 다가가면 분명 의도를 알아챌 게 뻔했다.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내가 다가갈 수 없다면 그쪽에서 다가오게 하면 되지.”

마침 한국에서 자신만큼 뛰어난 S급 가이드는 없다. 그가 던전을 다녀온다면 분명 가이딩이 필요할 터. 그 틈을 노린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계획엔 딱 한 명 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진효섭. 자신이 모르는 S급 가이드.

신해창의 반응을 보아하니 능력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자신보다는 덜하겠지만, 어쨌든 자신만이 유일한 가이드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거슬리는 존재였다.

“방해꾼을 없애야겠어.”

유진은 진효섭이 있는 사무실 쪽을 흘끔 바라봤다. 다행히 진효섭은 나쁘지 않은 외양이지만, 자신에게 비할 바는 못 되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게다가 애교도 없어 보였지. 유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흐음. 불가능하지는 않겠는데?”

자신감이 샘솟았다. 어디 가서 외모로 기죽어 본 적은 없다. 진효섭 같은 가이드랑 할 바에 당연히 예쁜 쪽인 자신이 더 좋을 것이다.

‘보니까 안단테와 탄탄한 사이도 아닌 것 같고.’

그들이 없는 동안 진효섭의 속을 긁어놓는다면 자리를 뺏는 것도 어렵지는 않으리라.

어차피 밑져야 본전. 두 사람을 갈라놓고 자신이 안단테를 가질 수 있으면 좋은 거고, 만약 안 된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신해창이 제 곁에 있고, 어느 정도 두 사람 사이를 어렵게 만들어 둘 테니까. 안단테에게 빚을 갚는 격이 되지 않겠나.

유진은 결심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진효섭이 있을 방으로 향했다. 얄미운 미소가 입꼬리에 걸렸다.

* * *

진효섭은 멍하니 TV를 봤다. 여섯 시간째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도 좀처럼 긴장이 가시질 않았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계속 바뀌어 가는데 반면, 입을 벌리고 위험하게 일렁이는 게이트는 변함이 없는 탓이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리고 유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진효섭 가이드, 뭐 하고 있어요?”

“TV를 보고 있습니다.”

“뭐야. 아직도 저걸 보고 있어요?”

유진은 변함없는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는 진효섭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지루하지도 않아요?”

“아니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루하다니. 그럴 틈이 없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화장실도 못 가고 시선을 고정하던 차였다. 특별히 몸에 문제만 없다면 이 상태로 이틀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휴, 너무 그렇게 긴장하고 있을 필요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SS급 던전인데 며칠은 걸리겠죠. 제가 들은 바로는 아직 초입이라니까 긴장 좀 풀어요.”

“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심심할 텐데…… 우리 가이드끼리니까 속을 터놓고 얘기나 할래요?”

“얘기 말입니까?”

“네. 얘기.”

유진은 진효섭 옆으로 총총 다가와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부드럽고 하얀 뺨이 봉긋 솟아 있었다. 잠깐 사이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유진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뭐든 상관없어요. 세상살이 얘기라든가 아니면 연애 얘기라든가. 아, 아니면 안단테에 관해서 얘기나 할래요?”

“형, 아니, 길드장님 얘기 말입니까?”

“네. 마침 우리 접점이 안단테밖에 없는데, 그쪽이 안단테를 좋아한다고도 했으니까 이야깃거리로 딱 맞겠네요.”

진효섭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유진이 눈을 반짝였다.

“내가 양성소에 있었을 때 안단테가 어땠는지나 얘기해 줄까요? 좋아하니까 어릴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할 거 아니에요.”

어린 시절이라는 말에 진효섭의 귀가 쫑긋했다. 호기심이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안단테라니. 전에도 궁금했었는데, 차마 물어볼 수가 없어서 속으로 삼켰었다. 흥미가 인 기색을 눈치챈 유진이 좀 더 진효섭에게 붙어 앉았다.

“어때요. 듣고 싶어요?”

“예……. 궁금합니다.”

“그럼 궁금한 거 물어봐요. 뭐든 대답해 줄게요.”

궁금한 거. 궁금한 거. 진효섭은 멍하니 중얼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형은 지금과 똑같은 느낌입니까?”

“느낌이요? 으음, 어렵네. 다르다고 하면 다르고 똑같다고 하면 똑같아요.”

유진이 턱을 괴며 그때를 되새기듯 말했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가. 키는 여전했는데 얼굴은 좀 더 예뻤거든요? 근데 천사같이 생긴 거랑은 다르게 성격이 엄청 사나웠어요.”

“사나웠습니까?”

“네. 엄청 날카로웠어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근데 뭐 때문인지 어느 날부터 싱글싱글 웃고 다니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도 묘하게 벽을 치는 거나 서늘한 느낌은 여전했지만요.”

“아……. 지금이랑 비슷하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처음에는 차갑기만 하더니, 나중에는 지금이랑 비슷해졌어요. 물론 지금보다는 그때가 더 제멋대로인 느낌이긴 하지만요.”

우습게도 조금 상상이 갔다. 안단테는 더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제멋대로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틀에 갇혀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어울리지 않았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울립니다.”

“흐음,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예?”

“아니, 표정이 좋아서.”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것도 포함해서, 그…… 좋은 것 같습니다.”

진효섭이 쑥스러워하며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모습인지라 유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같은 가이드라서 걱정에 하는 말이지만, 안단테는 솔직히 별로 좋은 타입은 아니에요. 양성소에 있었을 때 걔한테 덴 가이드가 많았는데 하나같이 다 울었거든요.”

“예? 어째서 울었습니까?”

“가이드를 싫어하는 건지 뭔지는 몰라도, 좀 날카로웠거든요. 호감으로 다가가는 건데도 발정한 냄새 풍기지 말라느니, 취향이 묶여서 가이딩하는 거냐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댔어요. 정말 무례했다니까요.”

유진은 말을 잇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런데 이상하게 나한테는 잘해 주긴 했어요. 본디지 파트너여서라고 생각하기에는 파트너가 되기 전부터 저한테만 유했었죠.”

“…….”

“다른 사람들은 다 쳐 내면서 내가 밥 먹자고 하면 같이 먹고. 어디 가자고 하면 다 따라 주고. 그 당시에는 안단테가 날 좋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는 환한 표정으로 진효섭의 가슴을 쿡쿡 찌를 말들만 골라 했다.

“안단테는 내가 S급이라서 잘해 주는 것뿐이었어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인즉, 안단테가 진효섭에게 잘해 주는 것도 S급 가이드이기 때문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는 뜻이다. 그를 아꼈듯 신해창에게 진효섭의 안위를 부탁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진효섭 씨라고 다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나쁜 남자한테 빠지지 말고, 잘해 준다고 오해하지도 마요. 진효섭 가이드 같은 타입은 안단테랑 어울리지 않으니까.”

“……어울리지 않습니까?”

“네. 그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진효섭 씨랑 안단테는 정반대잖아요.”

역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진효섭은 괜스레 시무룩해졌다. 안단테와 유진은 그렇게나 잘 어울렸는데. 정작 연인인 자신이랑은 안 어울린다는 말이 좀 서글펐다.

“맞다. 제가 괜찮은 에스퍼 많이 알고 있는데, 소개해 줄까요? 진효섭 씨한테 딱 맞는 잘생기고 성실한 에스퍼가 마침 있거든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생각이나 해 봐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같은 S급이에요.”

“저는 이미 형이랑 사귀고 있습니다. 연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소개받을 수는 없습니다.”

“에이, 본디지 파트너끼리 사귀는 거면 적당히 몸 맞아서 이름만 갖다 붙이는 거잖아요. 진효섭 가이드는 걔를 좋아해도, 걔는 사귄다는 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걸요?”

“그래도 사귀는 거잖습니까. 다른 사람을 소개받을 수는 없습니다.”

거듭된 거절에 유진의 표정이 부루퉁해졌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재빨리 표정을 정리한 유진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좋은 사람이 있는데 아쉽네. 근데 사귀자고 한 건, 진효섭 가이드 쪽이에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 어물쩍 사귀게 됐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대답에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에이, 뭐야. 그럼 진짜 본디지 파트너라서 어물쩍 사귀게 된 거잖아. 딱 보니까 알겠네. 그쪽, 안단테랑 가이딩 잘 맞았죠?”

“예? 그걸 어떻게…….”

“그러니까 안단테랑 사귀게 되었겠죠.”

“무슨…… 뜻입니까?”

“걔 체질이 그러니까 가이딩 맞는 사람이 적거든요. 한번 해 보고 어느 정도 맞으면 그냥 사귀자고 하는 놈이에요. 나한테도 그랬는걸.”

진효섭의 눈이 커지는 걸 지켜보며 유진은 빙그레 웃었다.

“S급이고, 어느 정도 가이딩이 맞으니까 옆에 두고 쓰려고 관계에 이름을 붙여 놓는 것뿐이에요. 저한테도 사귀자고 말했는데 생각해 보겠다고 튕겼거든요.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거리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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