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93화
“진효섭 가이드는 횡재했네요. C급 길드에 들어갔더니 졸지에 S급 일곱 명이랑 인연을 맺었잖아요.”
“그게 횡재입니까?”
“그렇죠. 아무리 비합법적인 길드라지만 자잘한 놈들도 아니고 뒷세계를 주름잡는 길드장을 뒀는데. 어둠의 길드에 새로 생긴 길드장. 그에 대한 건 저도 들어 봤을 정도로 한창 유명했어요. 대단한 인재라고.”
그 말에 진효섭의 표정은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저는 횡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바라고 들어갔던 거니까. 그러나 유진 은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 그건 손안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요.”
“혹시 유진 가이드는 제가 부럽습니까?”
“뭐라고요?”
유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부릅뜬 채 두 손을 불끈 쥐고 있었다. 무언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진효섭은 유진의 날 선 반응에 당황했다. 어쩐지 조금 부럽다는 어투로 들려 별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다. 전혀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유진 가이드는 더 대단하신 분이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으므로.
그러나 유진은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진효섭이 채 말을 덧붙이기도 전, 쏘아붙였다.
“지금 날 놀리는 건가요?”
“예?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진효섭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오해를 풀고 싶은데 말재주가 없었다. 당황하니까 말이 더 잘 안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 고작 C급 길드에 들어갈 수준의 가이드가 국가안보국 S급 가이드에게 으스대는 건가요?”
“으, 으스대다뇨. 그런 것 아닙니다. 저는 그저 유진 가이드가 더 대단하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밑바닥 C급 길드의 하급 가이드보다 제가 대단한 건 당연한 거고.”
“예? 아, 예에…….”
진효섭이 난감해하며 뺨을 긁적였다. 어쩐지 유진은 자신이 S급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등급은 직접 말하지 않으면 같은 가이드끼리는 알 수가 없고, 자신이 소개한 적도 없었으니 하급이라고 오해할 법했다.
“어이가 없네. 주위에 대단한 S급들 좀 있다고 그쪽이 뭐라도 된다 착각하지 말아요.”
유진이 사납게 노려보며 이어 말했다.
“진효섭 가이드. 앞으로 그 S급들이 그쪽을 다시 봐줄 것 같죠.”
“…….”
“착각하지 마요. 인연을 맺는 것과 이어 가는 건 천지 차이니까. S급 일곱 명을 하급 가이드가 어떻게 감당하려고요? 그 S급들은 절대 그쪽을 다시 안 찾을 거예요. 미모라도 뛰어났으면 몰라도, 그쪽은 그것도 안 되잖아요?”
처음의 천사 같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빈정거리는 말투만큼이나 표정도 표독스러웠다.
그러나 그조차도 예뻤다. 쥐뿔도 없는 게 예민하면 그냥 민폐라고 하지만, 능력이 있는 예술가가 예민하면 모두가 이해하지 않는가. 그 말처럼 유진은 아름다웠고, 단점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 그것이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형의 취향이 유진 가이드 같은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확실히 예쁘고 낭창한 스타일이다.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어쩐지 어깨가 밑으로 처졌다. 진효섭이 대답도 없이 다른 생각에 빠지자 유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내 말 듣고 있어요?”
“예?”
“그쪽은 어차피 C급인 척할 때나 잠깐 쓰려고 들인 임시 가이드에 불과하다고요.”
“아……. 예.”
“진짜 알아들은 거 맞아요? 그쪽은 그냥 이용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라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알고 있어?”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레 상처받을 것도 없다. 모든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심지어 안단테와 처음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 직접 들었다. 물론 안단테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기실 진효섭은 그날을 잊지 못했다. 사실 잊으라고 하는 쪽이 더 어려웠다. 그렇게나 격한 쾌감과 고조감은 난생처음 겪어 봤으니까. 꿀이 흐른다며 놀리던 안단테의 목소리도 선명했다. 그러니 필요해서 곁에 두었다는 말 역시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노아피는 처음부터 진실을 모두 말해 주지 않았다. 간을 보듯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었다. 길드원 사이에는 신뢰가 존재했지만, 자신은 그 신뢰에서 언제나 제외됐다. 결국 쓰임이 다하면 그대로 등을 돌릴 거라는 뜻과도 같았다.
“이용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란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저 이용할 가치가 있는 가이드다. 지금은 진실을 여럿 들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어쩌면 원하는 걸 얻고 나면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럼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겠지.
유진은 덤덤한 진효섭의 대답에 헛웃음을 지었다.
“허. 그걸 아는데도 거기 있었다고요? 미쳤나 봐. 그렇게 S급이 좋았어요? 아니면 안단테가 마음에 들었나? 하긴 걔 거기가 크긴 하지.”
“……그런 이유 아닙니다.”
“그럼요? 이용당하고 바로 버려질 걸 알면서도 거기 있는 이유가 뭔데요?”
처음에는 그저 서글펐다. 솔직히 당장에라도 길드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제가 떠나면 그들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위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갑자기 빠지면 새 가이드를 어디서, 어떻게 들일까. 급하게 구하면 잘해 봐야 B급일 텐데, S급 일곱 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게다가 안단테는 더 독특한 경우였다. 진효섭이 없다면 가이딩을 받지 않고 들어갈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갈 수 없었다. 안단테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SS급 던전이라는 위험성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설사 이용당하고 버려지더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유진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졌다.
“사귄다는 건 들었지만……. 설마, 본디지 파트너라서 사귀게 된 게 아니라, 진짜 좋아하는 거예요?”
“…….”
“그건 진짜 안 될 일인데.”
심각하다는 투에 진효섭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어째서입니까?”
“보면 몰라요? 안단테는 보기에만 좋고 몸에는 안 좋은 음식이잖아요. 자기는 한정판 인스턴트니 뭐니 했는데…… 어쨌든 인스턴트예요. 좋지 않다고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도 그냥 포기해요.”
진효섭은 손톱을 문질렀다. 말처럼 쉽다면 이렇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신하는데, 그쪽 반드시 버려져요. S급은 결국 같은 등급을 원하게 되어 있어요. 에스퍼가 얼마나 등급 높은 가이드에게 환장하는지 진효섭 가이드가 안다면 절대 옆에 있을 수 없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유진의 말을 끊어 낸 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언제 온 건지 신해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해창 에스퍼.”
“뭐야. 언제 왔어?”
“방금.”
신해창은 피곤한지 가볍게 미간을 짚으며 진효섭과 유진이 마주한 옆,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아까 그 말은 뭐야?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진효섭 가이드가 버려질 일은 없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라면 알 거 아냐. S급은 A급 가이드한테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
“그렇지.”
“그렇다면 진효섭 가이드는 버려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지 않다. 진효섭 가이드는 S급이니까.”
“뭐?”
유진은 정말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이 세차게 흔들리는 채였다. 진효섭이 S급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듯했다. 반면 신해창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넌지시 진효섭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효섭 가이드?”
“……알고 계셨습니까?”
“다른 가이드와 만나지도 않는데, 오늘 그놈들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진효섭 가이드의 힘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S급 일곱 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가이드라면 B급이나 A급일 리는 없고, 상당히 능력 있는 S급이라는 뜻이겠군요.”
“아…….”
진효섭은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확신이 아니라 추측이었나.
“설마 떠보신 거였습니까?”
“거의 확신이었습니다.”
확신이라지만 신해창은 떠본 게 확실했다. 그리고 자신은 멍청하게도 그에게 확답을 줬다.
“신기하군요. 제가 모르는 S급 가이드라니. 그것도 꽤 좋은 능력을 가진…….”
신해창의 시선이 조금 묘해졌다. 그것이 어쩐지 부담스러워 진효섭은 눈을 내리깔았다. 신해창과 진효섭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고, 유진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진효섭은 세 명이 있는 이 공간이 이상하게 숨 막혔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것보다 신해창 에스퍼, 왜 저를 여기로 부르셨습니까?”
신해창은 대답 대신 TV 속 게이트 입구를 흘끔 보다가 다시 제 휴대폰을 바라봤다.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를 이곳에 두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형…… 아니, 길드장님이 말입니까?”
“예. 현재 노아피는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전투를 이어 가면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혹시 얼굴이 드러나 그들에게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생긴다면, 몇몇은 이곳에 남은 노아피 가이드에게 호기심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것을 걱정해서 한 부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탁보다는 거래에 가까웠지만, 신해창은 자세한 내막은 덧붙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많이 사랑받는가 봅니다. 진효섭 가이드.”
진효섭이 얼굴을 붉혔다. 낯간지러운 말에 가슴속이 간질간질했다.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돼서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도 계산 없이 그들을 걱정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안단테는 자신을 이렇게나 아껴 주고 있다. 설사 시작은 이용을 위해서였다지만 이제는 다를지도 모른다. 저번에는 질투도 해 주지 않았나.
그러니까 갔다 오더라도……. 그래. 갔다 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자신은 여전히 안단테의 옆에 있을 것이고, 안단테 역시 제 옆에 있어 줄 것이다. 진효섭은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