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91화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저는 그저…….”
진효섭이 입술을 달싹이다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다른 길드원도 모두 좋은 상태로 던전에 들어간다면, 덜 위험할 테니까…….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잖습니까…….”
거듭되는 추궁에 시무룩해진 진효섭이 중얼거렸다.
“게다가 형이 말했던 것처럼 가이딩은 가이딩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아니. 그때 했던 말은 취소예요.”
안단테가 진효섭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눈 깜짝할 새 그는 진효섭을 벽에 두고 양팔 사이에 가뒀다.
“취지는 고맙지만, 우리 조건을 바꾸죠. 앞으로 노아피 길드원이라고 해도 가이딩은 딱 손잡기까지만 하는 걸로요.”
일렁이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약간의 분노와 흥분을 담은 눈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났다.
“무슨 이유가 됐든, 다른 사람한테 그 이상 허락하지 말아요. 몰랐는데 내가 질투심이 많은 것 같거든요.”
“아…….”
질투. 아까까지 위축되어 있던 진효섭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불안으로 쿵쿵 뛰던 심장은 이제 다른 의미로 뛰기 시작했다. 안단테가 질투를 한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에스퍼에게. 입꼬리가 자꾸만 씰룩거렸다.
“뭐야. 왜 이렇게 좋아해요?”
“그, 그거야…… 질투를 해 주신다니까…….”
“당연하잖아요. 연인인데.”
안단테가 투덜대며 진효섭의 턱을 잡아 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얼굴을 숙여 진효섭의 입술을 빼앗았다. 신디와 닿았던 곳을 소독하듯이 오랫동안 입술을 핥고 입안을 헤집었다.
한동안 입을 떼지 않은 채 진득하게 입술을 씹어 대던 안단테가 돌연 진효섭을 불렀다.
“효섭아.”
“예, 예에…….”
목덜미까지 붉어져서 헐떡이며 간신히 대답하는데도 안단테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효섭을 주시했다.
“아무거나 집어 먹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배탈 나면 어쩌려고.”
“예, 예?”
“내가 주는 것 말고는 뭣도 입에 넣지 말라고요. 사람 돌아 버릴 것 같으니까.”
귀여운 질투라고 보기에는 다소 진지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빼앗긴 진효섭은 그것조차 기꺼워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마음이 서로 이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벅차올랐다.
“예. 알겠습니다.”
“착하다.”
그제야 안단테의 표정이 풀렸다. 진효섭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단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도닥여 주는 게 좋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좋았다. 그가 너무나도 좋아서, 그래서, 진효섭은 지금의 행복함에 몸을 맡겼다. 평생 이렇게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Day-1.
[속보입니다. 현재, 해안에는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습니다. 파도 위에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10년 전, SS급 게이트가 생겼을 때와 똑같은 전조 증상입니다. 하지만 ‘SSS’는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갑론을박을 이어 가고 있는데요. 당장 내일 오후 세 시에 열릴 SS급 던전에 모든 세계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밖은 당장 생길 SS급 던전으로 소란스러운데, 그가 있는 곳은 반대로 고요했다. 자그마한 소음도 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태풍 전야임을 알기에 불안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진효섭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니 뒤에서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왔다.
“뭘 이런 걸 보고 있어요.”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아 가 TV 전원을 끄자 실내는 더 조용해졌다.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준비할 게 뭐가 있어요. 몸만 들어가면 되는걸.”
“그래도 여러모로 할 게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싸울지 회의를 한다든가…….”
“우리 길드원은 하나같이 개인플레이에 익숙해요. 괜히 서로한테 맞춰 싸우려고 하면 더 곤란해지죠.”
진효섭 옆에 걸터앉은 안단테가 그의 손에 방금 내린 커피를 쥐여 줬다.
“차라리 각자 시간을 보내는 게 나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사무실에 모이지 않고, 멘탈 관리를 하라고 놔두는 거고.”
“그럼 제가 형한테 방해가 되는 것 아닙니까?”
“무슨 그런 말씀을.”
쪽, 안단테는 진효섭의 눈썹 위에 입을 맞췄다. 갓 내린 커피 향이 묻어나는 입맞춤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있으니까 침착해지고 좋은걸요. 만약 자기가 없었으면 흥분해서 잠도 자지 못했을 거예요.”
“……두렵진 않으십니까?”
“두려워? 내가 왜 두려워해요. 지금만을 기다려 왔는데. 오히려 저는 무척이나 기뻐요. 드디어 원하는 걸 얻었으니까.”
안단테가 평온한 표정으로 뜨거운 커피를 작게 한입 들이켰다. 두려움을 숨기고 괜찮은 척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약간의 흥분, 그리고 즐거움. 그게 다였다. 어떻게 봐도 내일 SS급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진효섭은 그런 안단테의 나른한 태도에도 표정을 펴지 못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응? 왜 무서워해요. 자기에게 해가 갈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무서워하지 말아요.”
“그게 아니라…….”
커피 컵을 꽉 쥔 손끝이 잘게 떨렸다.
“형이 들어가는 게 무섭습니다.”
혹시라도 돌아오지 못할까 봐. 혹시라도 시체가 되어 돌아올까 봐.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없이 무서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가 죽을 것 같아요?”
“…….”
진효섭이 대답을 잇지 못했다. 안단테는 조금 난감해하며 뺨을 긁적였다.
“으음, 확실히 무서운 곳이긴 하죠.”
누구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는 SS급 던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껏 내가 빠져나오지 못했던 던전은 없었거든요. 심지어 내 가이드가 이렇게 완벽하게 가이딩해 줬잖아요. 이 몸 상태로는 죽으라고 사주해도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진효섭의 머리를 헤집었다. 며칠 사이 격이 없어진 손길이었다.
“정말…… 정말로,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까?”
“물론이죠.”
“정말입니까? 정말로…….”
진효섭의 흔들리는 눈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네. 정말로. 무사히 돌아올게요.”
안단테가 진효섭을 도닥였다.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되물어도, 그는 계속 똑같은 대답을 돌려줬다. 괜찮다. 돌아올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 자신은 무사할 것이다. 진효섭은 그 다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일을 10년 동안 준비했어요. 절대 실패할 리 없고, 위험할 일도 없을 거예요. 맹세할게요.”
떨리는 진효섭의 손을 안단테가 잡아 들었다. 쥐고 있던 커피 컵은 어느새 테이블에 놓인 채였다.
“딱 이틀만 기다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틀.”
“…….”
“그 안에 무조건 돌아올 테니까.”
서로의 약지가 얽혔다. 아이들이나 할 법한 약속에 심장의 불안이 차츰 가라앉았다.
“잘 기다리고 있으면 상을 줄게요.”
진효섭은 안단테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마음이 아까보다 훨씬 더 편안해졌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누군가는 다가오지 않기를, 누군가는 기다렸던 D-day를 가리켰다.
겨울이 다가오기 직전의 가을. 해안에는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바다 위를 자리 잡았다. 일반인들은 대피한 지 이미 오래였다. 헬기 몇 대가 주위를 떠다녔고, C급과 D급 에스퍼들은 생방송을 촬영하듯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던전이 열리기 세 시간 전. 세간의 관심이 한국에서 열릴 SS급 던전으로 쏠렸다. 생방송 뉴스에는 SS급 게이트가 열릴 해안에 자리 잡은 S급 에스퍼들이 비쳤다. 얼굴만 봐도 누군지 다 아는 유명인투성이였다.
사실 그들은 오늘 아침까지도 논쟁을 계속했었다. ‘게이트를 봉인해야 한다’와 ‘아니. 어둠의 길드가 먼저 들어가 주겠다고 하는데, 그런 기회를 겁쟁이처럼 꼬리 말고 도망칠 수는 없다’.
의견은 두 파벌로 나뉘어 격렬하게 충돌했다. 좀체 견해차가 좁히지 않자, ‘SSS’ 중 유독 목소리가 큰 두 에스퍼가 벌떡 일어나 싸우듯 대화를 나눴다.
‘그놈들 말을 어떻게 믿지?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이야.’
‘우리 국가 역시 어둠의 길드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속는다고 해도 허락해야 한다.’
‘어둠의 길드 따위가 SS급 던전을 탈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입구에서 죄다 죽어 나자빠질 거다. 핵이 있는 던전까지도 가지 못해. 그렇다면 결국은 소용없어질 것이다. 피해만 커질 뿐이야.’
‘피해를 걱정하지 말고, 그것이 세상에 가져올 이득을 생각해라.’
‘어떻게 피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지? 게다가 그놈들을 통해 안을 확인한들, 지금 SS급 던전에 투입할 에스퍼가 존재하기라도 하나?’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고작 궁금증 정도로 피해를 확산시킬 수 없다!’
‘이 겁쟁이 같은 새끼가……!’
‘뭐라고? 이 멍청한 새끼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자 신해창이 제재했다.
‘진정하고 토론을 계속하겠습니다. 게이트를 봉인해야 한다는 나라는 여전히 변함없습니까?’
‘…….’
‘들어가야 한다는 나라도 변함이 없습니까.’
‘…….’
의견은 정확히 5:5로 나뉘었다. 영상석이 진짜임을 알게 됐음에도 10년 전의 피해를 잊지 못해 걱정하는 나라가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