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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89)화 (8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89화

안단테는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물끄러미 진효섭을 올려다봤다. 무엇을 할지 궁금한 것 같기도 했고, 두고 보겠다는 것 같기도 했다. 진효섭은 괜스레 부끄러워 그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가려진 손바닥 밑으로 안단테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몰랐는데, 꽤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네요.”

“……움직이지 마십시오.”

“응. 그럴게요.”

깜빡깜빡, 손바닥에 속눈썹이 스쳤다. 그는 이 상황이 꽤 재밌는지 연신 장난을 쳐 댔다.

진효섭은 안단테가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며 마른침을 삼킨 후 그를 내려다봤다. 제 손에 눈이 가려진 채 얌전히 누워 있는 안단테는 여전히 매력적이라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새삼스레 자신이 그의 얼굴 또한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약속하십시오.”

“알았다니까요. 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재차 확인하는 건지.”

안단테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뭘 하긴 할 거죠?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 취향이에요?”

듣기 좋은 진효섭의 목소리 대신 달칵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응? 자기야.”

“…….”

“진효섭 씨. 대답 좀 해 봐요.”

계속되는 침묵에 안단테가 연신 진효섭을 불렀다.

“예쁜아. 뽀뽀야? 효댕아? 응?”

“제, 제발 그 입 좀 잠깐 다물고 계십시오.”

안단테가 아랫입술을 삐죽였다. 오랜 키스를 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진효섭과는 달리 입술이 멀쩡했다. 진효섭은 어쩐지 그가 조금 얄미웠다.

“너무해. 난 눈을 가리고 있으니까 무서워서 말한 것뿐인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제 거짓말도 안 통하네. 하아, 재미 없…….”

말이 뚝 끊겼다. 안단테는 입을 다물다 못해 몸을 경직시켰다. 손바닥 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속눈썹 역시 움직임을 잃은 채였다.

“잠깐. 진효섭 씨, 지금 뭐 하는-”

“이제…… 재미없지, 않으실 겁니다.”

얼굴의 반이 가려져 있는데도 안단테가 당황한 게 티 나 진효섭은 새삼 아쉬웠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라니. 살면서 얼마 보지 못할 장면일 게 분명한데.

“너 지금…….”

안단테가 곧장 진효섭의 손목을 잡아챘다. 금방이라도 손을 치울 것 같았다.

“우, 움직이시면 안 된다고……!”

“이 상황에서 그걸 지킬 등신이 어디 있어.”

눈을 가린 손은 쉽게 내려갔다. 안단테는 여전히 손목을 잡은 채 가만히 진효섭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진효섭의 얼굴에서 목선, 가슴을 지나 복근 아래로 향했다.

“……하.”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덤덤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변했다. 덩달아 진효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효섭아.”

“…….”

“효섭아.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가, 이딩합니다.”

“가이딩? 이렇게 어중간하게?”

진효섭이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질끈 베어 물었다.

“그,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가 이런 짓을 하는데 어떻게 안 움직이고 배겨.”

“됐으니까…… 가만히 있으십시오. 제가, 가이딩해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 너 진짜…….”

진효섭은 안단테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이번 역시 안단테는 진효섭의 손을 떼 내지 않았다. 그저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손아귀에 힘을 줬다.

틀어잡힌 건 손목인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생리적인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가이딩, 해 드리겠습니다. 매일, 하아…… 매일…….”

진효섭은 안단테의 배 위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후, 이것, 밖에 없으니까요.”

“…….”

“마침, 하…… 전 상성이 잘 맞습니다. 두려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느리게 말을 이어 가며 진효섭은 안단테를 내려다봤다. 형용할 수 없는 눈빛이 시선을 마주쳐 왔다. 그는 약속한 대로 가이딩이 끝날 때까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손바닥으로 막아 둔 입술이 작게 움직였지만, 무어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효섭은 몸에서 술렁이는 힘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양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효율이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몸에 흡수되는 양은 거대했다. 부디 그가 편안해지기를. 그것만을 생각하며 진효섭은 가이딩에 집중했다.

한편 안단테는 몽롱한 표정으로 씨근덕거렸다.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가이딩과 달콤한 향. 그것에 이성이 뚝 끊어졌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서슴없이 역가이딩으로 진효섭의 힘을 빼앗았다. 가이딩뿐만 아니라 뭐든 전부 앗아 갈 것처럼, 이성 따위는 꿀 발라 먹은 놈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진효섭은 쓰러지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처음으로 제한이 없는 가이딩을 제정신으로 행했다. 이상한 감각. 지독하던 갈증이 서서히 가시고, 혈관을 갉아 먹던 고통이 사라진다.

텅 빈 가슴속이 젖다 못해 가득 차 찰랑거렸다. 진효섭의 힘인지, 아니면 감정의 파도인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안단테는 달콤한 꿀 냄새에 감싸였다. 그것은 처음 느끼는 충만감이었다.

* * *

Day-2. 사무실은 고요했다. 다만, 평소와 같은 고요함은 아니었다. 묘한 긴장감이 팽팽했다.

길드원들은 제각각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평소와 달랐다. 언제나 심심하다며 찡얼거리거나 진효섭에게 붙어 있던 체르니는 드물게 입을 꾹 다물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그에게선 전에 없던 진중함이 보였다.

반면, 언제나 평온한 표정으로 책을 보던 코다는 다소 흥분한 기색이 선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바닥만 두 시간 내내 쳐다보는 그의 주위에는 간헐적으로 살기가 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휴대폰을 바라보던 쌍둥이는 웬일인지 빈손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이 없었다.

신디는 저번에 화를 내고 나간 그 상태에서 변함없어 보였다. 나른한 눈은 어디 가고, 날카로운 기색으로 발을 꼰 채 까딱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진효섭에게 가이딩을 받는 플랫도 평소와는 달랐다. 언제나 체르니처럼 표정이 다양하고 장난기도 많던 플랫은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무표정에 꼿꼿한 자세가 반듯해 보이기만 했다.

유일하게 평소와 같은 건 안단테뿐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던전을 누구보다 기대하는 게 안단테라는 사실은 굳이 묻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효섭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묵묵히 제 할 일만을 했다.

어젯밤에 안단테와의 가이딩을 끝내고, 아침이 오자마자 쌍둥이와 플랫의 가이딩을 이어 갔다. 코다와 체르니는 이제껏 힘을 조금도 쓰지 않고 아껴 뒀기에 들어가기 전날 받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들 모두를 가이딩하기에는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힘이 아슬아슬했을 테니까.

“끝났습니다.”

남은 힘을 가늠해 보며 진효섭은 플랫과 잡은 손을 떼 냈다. 플랫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리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어울리지 않게 조용했다.

진효섭은 그런 플랫을 가만 보다가 자리를 옮겨 오늘 가이딩해야 할 마지막 에스퍼에게로 다가갔다.

“신디 에스퍼. 가이딩해 드리겠습니다.”

“됐어.”

신디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절했다.

“혹시 저번 일로 마음이 상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진효섭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길드장과 연애한다고 눈앞에 힘든 에스퍼를 두고 가이딩을 어중간하게 하니 열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죄송합니다.”

진심을 담은 진효섭의 사과에도 신디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사과할 필요 없어. 그런다고 가이딩을 받을 마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가이딩은 필요합니다. 곧 던전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신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효섭과 마주한 그는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벽 같았다.

“하지만 네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됐다고 말하는 거야.”

“예? 그게 무슨…….”

“이딴 거를 잔뜩 달고 와서는.”

진효섭의 옷깃 사이로 손가락을 넣은 신디가 옆으로 젖혔다. 차마 숨기지 못한 검붉은 자국들이 드러났다. 진효섭은 당황해하며 손바닥으로 그 자국들을 가렸다.

“이건 어제 가이딩으로-”

“그러니까. 어젯밤에 단장이랑 가이딩했다고 사방팔방에 티 내며 나와서, 지금 쌍둥이에 플랫까지 가이딩한 거 아냐?”

신디가 입술을 비틀었다.

“접촉 가이딩만 하겠다 뭐다 해서 효율도 안 좋을 텐데. 네게 남는 힘이 뭐가 있겠어. 고작 해 봤자 하다가 끊기고 내일 마저 해 주겠다고 하겠지.”

“…….”

진효섭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신디가 신랄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필요 없어. 난 알아서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 받을 테니까 신경 꺼.”

“……그러다가 정체가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C급이나 B급을 헐 때까지 굴려 먹으면 돼. 하급 가이드는 S급이랑 많이 안 해 봐서 잘 모르니까.”

“C급이나 B급보다는 제 가이딩이 더 나을 겁니다.”

“그러니까, 네게 그럴 힘이 어디 있냐고 묻잖아.”

“있습니다.”

“내가 멍청이인 줄 아나. 지금 남은 힘이 간당간당한다는 것 정도는 안 봐도 알아. 서로 손잡고 하는 쎄쎄쎄는 다른 새끼들이랑 해.”

신디가 대놓고 진효섭을 차갑게 비웃으며 그대로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진효섭의 말이 그의 발걸음을 막았다.

“단순 접촉이 아니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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