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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88)화 (8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88화

“응? 커피요?”

“……예.”

진효섭의 귀가 벌겋게 물들었다. 고작 커피 내려 주는 데 이렇게 부끄러워할 리는 없고. 이윽고 안단테의 눈이 커졌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지금 유혹하는 거예요?”

귀 끝의 홍조가 뺨을 타고 번졌다. 긍정을 뜻하는 변화에 안단테가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와…… 이거 의외라고 해야 하나. 자기가 먼저 유혹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솔직히 나는 자기가 그날 이후 나랑 깊은 관계를 맺는 건 피하는 줄 알아서…….”

안단테가 말끝을 흐리며 한참 침묵했다. 그럼에도 진효섭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여전히 제 무릎만을 봤다. 먼저 유혹한 사람이라기에는 딱딱한 반응이었다.

“정말 유혹 맞는 거죠?”

상체를 확 기울인 안단테가 조수석 쪽 창문을 짚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커피는 다음 날 아침에 마시고 가라는 뜻이잖아. 그렇죠?”

“…….”

“응? 아니에요?”

안단테는 끈질기게 물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굳이 들으려고 하다니. 진효섭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최면을 걸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안단테가 더 가까이 있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진효섭은 눈 딱 감고 안단테에게 입술을 들이밀었다. 들이댄 입술은 안단테의 입술 위를 빗나가 입꼬리와 뺨 사이에 안착했다.

그저 가이딩이라 생각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것이, 유혹이라고 이름을 바꾸니 더없이 어려웠다. 햇볕이 쨍쨍한 아침이라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유혹, 맞습니다.”

“하하…….”

안단테가 어이없다는 듯 제 뺨을 손끝으로 쓸었다. 그는 어쩐지 이상한 표정이었다. 그보다 더한 것도 아무렇지 않게 주워섬기면서, 이런 행동에는 면역력이 없다는 듯이 굴었다.

“대단히 유혹적이네.”

얼핏 들으면 빈정거림 같았지만,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안단테는 이후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진효섭을 조수석에서 끌어 내리고 집까지 올라가는 내내 두 사람은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맞잡은 손에서는 가을과 어울리지 않는 열기가 피어났다.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과 미약하게 피어나는 서로의 향이 분위기를 과열시켰다.

안단테는 집 문을 열고서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진효섭이 들어가자 등 뒤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잡아먹을 듯이 굴던 전과는 달리 안단테는 진효섭을 빤히 보기만 했다. 시선은 지독한 갈급증을 느끼고 있는 듯 메말라 있었는데, 정작 닿은 것은 손바닥뿐이었다.

“자기야.”

“……예.”

“먼저 입 맞춰 줘요. 원래 한국에서는 유혹하는 사람이 먼저 입을 맞추는 법이거든요.”

그런 법이 정해져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진효섭은 말없이 먼저 다가갔다.

벌써 갈 데까지 간 연인이었음에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아마 한쪽은 첫날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고, 한쪽은 아직 보이지 않은 꿀 탓이리라.

진효섭은 천천히 입을 맞췄다.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러운 접촉이었다. 코끝에서 나오는 숨이 솜털을 건드렸다. 짧은 뽀뽀를 끝내고 진효섭이 입술을 떼자 안단테가 눈을 똑바로 뜬 채로 말했다.

“플라토닉 딱지를 뗀 커플이라고 하기엔 너무 건전한 접촉이네요.”

이번에는 안단테 쪽에서 진효섭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었다.

“천천히 해 봐요. 먼저 내 입안에 혀를 넣어서 얽고, 빨고, 핥으면 돼.”

진효섭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말 변태 같은 말이었지만 싫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다시금 입맞춤이 이어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한층 깊었고 또 부드러웠다.

혀를 섞은 횟수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데, 가슴은 여전히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분명 가이딩으로도 한다는 키스다. 그런데도 그와 하는 건 조금도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진효섭은 눈을 감고 그가 주는 감각을 오롯이 느꼈다. 느린 만큼 진득하고 긴 입맞춤에 집중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벌린 입술이 조금 부어오른 것 같다고 느낄 정도가 됐는데도 입맞춤은 계속 이어졌다.

안단테는 쉽사리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핥고, 빨고, 물었다. 처음 젖병을 물어 본 아이처럼 열중했다. 닳아 없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고 잔뜩 맛보는 그의 행동에, 진효섭은 커피 핑계를 대며 그를 집에 들였던 이유를 잊을 것 같았다.

진효섭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며 힘을 끌어 올렸다. 닿은 점막으로 힘을 흘려보내는 순간, 부드럽던 키스에 균열이 갔다.

순간적으로 안단테가 치아를 세워 오랫동안 타액에 눅눅해진 진효섭의 입술 한 부분이 살짝 찢어졌다. 타액 속에 비릿함이 섞였다. 안단테는 뒤늦게 입술을 떼 냈다.

“자기야.”

입술에 묻은 피를 핥는 안단테는 날것 그대로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마음대로 가이딩을 하고 그래. 흥분해서 입술을 찢어 버렸잖아.”

“자연스럽게, 하아…… 나온 겁니다.”

“어울리지 않게 거짓말은.”

안단테는 진효섭의 입술에 다시금 맺힌 핏방울을 혀로 감아 쭉 빨아들였다. 입술이 따끔했다. 얼마나 눅눅한지, 한 번 더 빨아들이면 원상 복구되지 않고 녹아내릴 것 같단 착각이 일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요? 내가 너무 흥분해서 또 들어가지도 않고 여기서 이랬네.”

빙그레 웃은 안단테가 겨우 몸을 물리고 진효섭을 안으로 이끌었다. 누가 집의 주인인지 모를 만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고작 몇 번 만으로 안단테는 진효섭의 집에 완벽하게 익숙해졌다.

“……형.”

“왜 그렇게 불러요. 나 설레게.”

“가이딩 이어서 해 드리겠습니다.”

진효섭이 안단테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들었다. 주위에서는 달콤한 꿀 냄새가 풀풀 풍겼다. 안단테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집에 오라는 말을 할 때는 눈도 못 마주치더니……. 가이딩해 주겠다며 유혹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

“싫습니까?”

“아니. 너무 좋아서 문제예요. 참기가 힘들잖아. 나 지금 몸 상태가 별로 안 좋거든요.”

안단테의 눈동자에 옅은 황금빛이 미약하게 일렁였다. 진효섭의 손을 마주 잡은 그의 손등 위로는 핏줄이 올라와 있었다.

그와 몇 번 가이딩을 해 보고 나니 이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본능적인 역가이딩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저번에도 이렇게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몸 상태가 나쁘든 나쁘지 않든 그는 가이딩을 할 때면 매번 무언가를 억눌렀다. 진효섭은 그것이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져서 안단테의 손을 마주 잡고 확고한 어조로 속삭였다.

“역가이딩을 참지 마십시오. 저한테만큼은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기엔 아까 말했듯이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상관없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역가이딩을 한계까지 뽑는다고 해도 제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진효섭이 조심스레 힘을 흘려보냈다. 엄청난 속도로 힘이 빠져나갔다. 그가 말했던 대로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다는 의미다. 저번 가이딩이 끝나고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나 몸이 나빠진 건지.

“형.”

“네.”

안단테는 순종적인 에스퍼처럼 대답했다. 번들거리는 눈은 금방이라도 진효섭을 발라 먹을 듯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순박한 체하며 눈을 깜빡였다. 진효섭은 그런 그의 눈빛을 애써 뒤로한 채 덤덤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3일간, 매일같이 가이딩을 받으십시오.”

“……괜찮겠어요?”

목이 마른 사람처럼 안단테는 연신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내일부터 다른 길드원도 가이딩해 줘야 할 텐데.”

“충분합니다.”

“하하. 단언해 줘서 고맙긴 한데,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안단테는 갈증으로 뒤범벅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나는 그냥 마지막 날에 키스로 조금 해 줘도 충분해요. 자랑은 아니지만 이런 적 한두 번 아니라서 익숙하거든요. S급 던전도 매번 가이딩 없이 드나들었기도 하고.”

빙그레 웃은 그가 진효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달로 휘어진 눈매에 눈동자가 가렸다. 그러자 섬뜩하던 표정이 조금은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손등에는 여전히 시퍼런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괜찮다는 말에도 그는 긴장을 풀지 않는다. 진효섭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가이딩을 받는 데 확신이 없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안단테는 여전히 역가이딩을 하면 진효섭이 위험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진효섭과의 첫날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전 정말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혹시라도-”

“아니요. 형은 모르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와 자신의 깊은 가이딩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용했는지. 안다면 그가 두려움을 느낄 리가 없을 테니까.

진효섭은 안단테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무어라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 진효섭은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그를 눕혔다. 쿵 소리와 함께 안단테가 바닥에 누웠고, 진효섭이 그 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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