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87화
안단테는 대답 없이 그저 신해창을 보며 웃기만 했다. 그렇게 침묵을 유지한 채 밖으로 나가려 하자 신해창이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던전에 다시 들어가서 얻는 모든 걸 우리에게 주면, 그쪽이 얻는 건 뭐가 있습니까?”
신해창이 보기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왜 다시 들어가는 걸까. 명예 회복? 아니, 그러기엔 지금까지의 그의 행보가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 없고, 자신들끼리 들어가겠다 선언하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테니까.
거듭된 질문에도 안단테는 여전히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대답해 주지 않는 건가.’
복잡한 마음에 신해창이 한숨을 쉬었을 때였다. 문이 닫히기 직전, 스치듯 작게 중얼거리는 대답이 들려왔다.
“우린 얻으려고 가는 게 아니야. 되찾으려고 가는 거지.”
* * *
헉, 헉. 다급한 숨소리가 흩어졌다. 사무실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은 진효섭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진효섭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야. 우리 돌아왔어요.]’
기다리고 기다렸던 안단테의 문자였다. 진효섭은 그것을 보자마자 사무실로 뛰었다. 그리고 쾅,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형!”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진효섭과는 달리 안단테와 길드원은 평온하기만 했다. 장장 8일 만이었다. 증발한 것처럼 연락 한 통 없이 잠적하던 노아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무실에 느긋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잠을 자는 신디. 휴대폰을 보며 게임하는 쌍둥이. 책을 보는 코다. 각각 늘어져서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는 플랫과 체르니까지. 평소와 같은 그 모습들에 진효섭은 멍해졌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자기. 오랜만에 보니까 더 반갑네요.”
“저,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 반갑…… 아, 그런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뉴스는 보셨습니까? SS급 던전이 열렸다고-”
“진정해요. 손님이 가면 차차 말해 줄 테니까.”
진효섭은 뒤늦게 안단테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줬다. 익숙한 풍경에 낯선 인물이었다.
“시, 신해창 에스퍼?”
“좋은 아침입니다, 진효섭 가이드. 일요일에도 출근하시다니 수고가 많으십니다.”
“예? 아, 예. 감사합…… 아니, 그게 아니라 신해창 에스퍼가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볼일이 있어서 얘기를 좀 나누고 있었습니다.”
“볼일이라면…….”
진효섭이 신해창과 안단테를 번갈아 봤다. 신해창이 노아피 사무실에 있을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설마 또 제게 이상한 제안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까? 전 분명 돕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거라면 이제 괜찮습니다.”
“……예?”
“말씀드린다는 게 늦어졌습니다만 그 제안은 이미 무효가 됐습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무효라니.
“저번에 안단테가 넘긴 그 증거자료와 함께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현상 수배범은 그 두 놈으로 확정됐고, 사건은 해결됐습니다.”
“…….”
“전에 했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해창이 소파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 숙여 사과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굴었던 이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진효섭은 따라가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안단테는 놀라는 기색 없이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다른 길드원 역시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럼 이야기도 끝났으니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다.”
“그렇게 해.”
“던전에 들어가는 시각은 3일 뒤, 오후 세 시. 던전이 나타난 해안 부근이다. 그때까지 죽은 듯이 대기하도록.”
“예에, 예에.”
안단테의 얄미운 대답에도 신해창은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지나치기 전, 시선이 진효섭에게 닿더니 멈췄다. 그에 따라 발걸음도 잠깐 느려졌다. 그러나 끝내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그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섰다.
안단테는 비로소 진효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기. 잘 지내고 있었어요? 일주일 남짓 되었는데 그사이에 살이 빠진 것 같네.”
혀를 끌끌 차며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을 이끌고 소파에 앉혔다. 손목이나 뺨을 만지작거리는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까워라. 더 빠질 살이 어디 있다고.”
“……들어가시는 겁니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안단테는 깔끔하게 대답했다.
“네.”
“3일 뒤입니까.”
“네.”
재차 돌아온 대답에 진효섭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뉴스에서 떠드는 어둠의 길드 소속이라 추정하는 인물이 안단테라는 것은 말투로 벌써 알아차렸으니까.
이미 그에게서 들었던 일이기도 했으니 놀랍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3일 후 열릴 SS급 던전에 노아피가 들어간다는 사실. 그 사실에 온 신경이 쏠렸다.
“신해창 에스퍼도 다 알고 있습니까? SS급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 말입니다.”
“정확하게 설명은 하지 않았어요. 단지, 우리가 SS급 던전에 들어가는 대신 거래를 좀 했죠. 그래서 이제 우리를 쫓지 않기로 했어요.”
“……그랬습니까.”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것도 뒤늦게 이해됐다.
‘정말이구나. 진짜 들어가는 거야.’
그들이 원하던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긴장이 몸을 잠식했다.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는 그 던전. 과연 그들은 나올 수 있을까.
진효섭의 표정이 한없이 가라앉자 안단테가 부드럽게 껴안았다.
“걱정하지 마요.”
커다란 손이 아이를 진정시키듯 부드럽게 등을 쓸었다. 침착한 심장 소리가 귀에 닿으니 덩달아 불안했던 마음이 차차 안정됐다.
진효섭은 안단테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지금 상대를 도닥이고 안정시켜야 하는 사람은 진효섭인데, 막상 상황이 닥쳐오니 정반대가 되었다. 진효섭은 그에게 제 불안을 옮기지 않기 위해 애써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보다 일요일인데 이렇게 나와서 어떡해요. 바쁜 일은 없었어요?”
“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같이 가죠. 내가 데려다줄게요.”
안단테는 소파에서 일어나 진효섭의 손을 이끌었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나 고대하던 SS급 던전을 3일 앞두고 있는데, 조금의 긴장도 흥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태풍 전 고요함과 같은 미적지근한 공기 같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금방 집 앞에 도착했다. 원래도 그리 멀지 않았지만 차를 타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빨리 도착했다.
“벌써 다 왔네.”
안단테가 빙그레 웃으며 진효섭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밀폐된 차 안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체취가 느껴졌다. 진효섭만 맡을 수 있는 향이 아닌, 상쾌한 스킨 냄새였다.
“이렇게 달려올 줄 알았다면 내가 데리러 갈 걸 그랬나 봐요. 아니면 내일 연락하는 게 나았으려나. 괜히 휴일을 버리게 했네.”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연락을 주시길 기다렸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서…… 계속 걱정했으니까요.”
“그랬어요? 미안해요. 연락할 상황이 되지 못했었거든요.”
“아닙니다. 바쁘셨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쪽, 가벼운 입맞춤이 진효섭의 이마 위에 닿았다 떨어졌다.
“얼른 들어가 봐요. 급하게 나오느라 정신도 없었을 텐데.”
진효섭은 대답 없이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무언가 아직 전할 말이 남은 듯 연신 입술을 달싹이며.
“저기, 형.”
“왜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결심을 끝냈는지 진효섭이 제 무릎을 빤히 쳐다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사실…… 집에 컵을 하나 더 샀습니다.”
“다행이다. 저번에 커피를 내렸는데 컵이 하나밖에 없어 밥그릇에 마셨잖아요.”
안단테가 소리 내서 하하 웃었다.
기실 진효섭 집에는 여분의 물건이라는 게 없었다. 컵 하나, 밥그릇 하나, 수저 하나, 모든 게 하나뿐인지라 꽤 재밌는 상황이 많이 생겼었다. 그에 진효섭은 난감해했지만 안단테는 지금처럼 소리 내서 웃었다. 흔치 않은 상황에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이제 안 그래도 되겠네요. 다음에 내가 커피 사 갈게요.”
“커피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죠.”
진효섭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침 커피를 사 뒀습니다. 500G에 2만 원이나 하는 유명한 집 커피인데…… 저번에 마셔 보니 되게 맛있었습니다.”
“그랬어요?”
안단테가 피식 웃곤 진효섭의 머리카락 끝을 건드리며 장난쳤다.
“맛있는 커피 마셔서 좋았겠네, 우리 자기.”
고작 2만원밖에 하지 않는 커피가 맛있었다며 자랑하는 게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안단테가 저 귀여운 귓불을 어떻게 한번 깨물어 볼까, 하고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되게 맛있었는데.”
진효섭이 안단테를 흘끔거렸다. 더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같아 보였다. 안단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맛있었는데?”
“…….”
불그스름한 입술은 한참을 달싹거렸다. 어려운 이야기인지 진효섭의 미간에 자리한 주름이 깊었다. 진지한 이야기인가 싶어 안단테가 흐트러진 몸을 바로 하려는 찰나였다.
“……커피, 드시고 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