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86화
“넌 정체가 뭐지.”
“알면서 뭘 물어. 내가 직접 얘기해 줬잖아.”
안단테는 품에서 영상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퀵으로 배송받은 영상석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로써 기계음의 목소리가 안단테라는 걸 확인했다. 사실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정체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물이었다. 해봤자 뒷세계에서 이름 날리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뒷세계를 통솔하는 놈이었을 줄이야.”
어둠의 길드는 길드라 불리지만 독특한 특성 탓에 길드장이 없었다. 마치 뒷세계 조직처럼 다섯 명의 S급 범죄자가 각기 세력을 펼쳤다. 같은 어둠의 길드지만, 관련된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서로 어둠의 길드 소속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런 독특한 세계였다.
그러다 9년 전쯤, 갑자기 나타난 놈이 뒷세계를 한입에 삼켰다. 그 소식은 뒷세계에서 암암리에 돌았고, 어둠의 길드에도 길드장이 생겼다고들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를 만난 사람보다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기에 단순 소문으로 그치고 말았다. 신해창 역시 뒷세계에 귀를 두고 있던 차여서 소문은 들었지만, 거짓 소문으로 치부했었다.
“아무래도 그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어.”
“하하, 그래? 기대에 미치게 돼서 다행이야.”
안단테는 영상석을 손안에서 굴렸다.
“그럼, 내가 벌인 일도 충분히 기대에 미쳤을까?”
“그래. 이제 남은 일은 널 잡아다가 처넣는 것뿐이다.”
“음? 날 잡아서 뭐 하려고?”
“우리 국가안보국 위상을 끌어 올릴 수 있겠지.”
뒷세계를 휘어잡았다는 길드장. 그를 잡는다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이다. 어쩌면 16위인 한국이 금방 10위 안에 들게 될지도 모른다.
‘나라나 길드, 모두 많은 이익을 얻을 테지.’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은 어려운 만큼 혜택이 많은 일이었다. 자연스레 신해창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지금 상황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자신 있었다.
그때 안단테가 피식 웃었다. 마치 신해창의 마음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듯.
“역시 너는 욕심이 많은 놈이야.”
안단테가 손에 쥔 영상석을 탁자에 툭 놓으며 그제야 일어났다.
“해창아.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네가 참 좋아. 감이 좋고, 똑똑하잖아. 굳이 설명해 줄 필요도 없고. 조금 소스를 주면 이렇게 금방 찾아오고.”
역시 마음에 든다며 안단테가 싱긋 웃었다.
“너랑은 별로 싸우고 싶지 않네.”
“그건 불가능하다. 네 정체가 결국 뒷세계와 관련된 이상, 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널 잡을 테니까.”
“네가 날 잡아서 원하는 건 명성이야? 그에 따른 부? 아니면 길드 랭킹?”
“…….”
안단테가 신해창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절묘한 거리로 인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가려져 주위가 한층 어두워졌다.
“뭘 원해?”
“그건 왜 묻는 거지?”
“어느 쪽이든 원하는 걸로 내가 품에 안겨 주려고 그러지.”
안단테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역광이라 그런지 웃고 있는데도 섬뜩했다.
“너, 나랑 거래 하나 해 보지 않을래?”
“……거래라고?”
“그래. 거래.”
안단테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신해창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에 땀이 뱄다. 그 누구를 앞둬도 긴장하지 않던 그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뒷세계 길드장이라지만, 전투도 없이 압도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신해창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S급 에스퍼다. 그런 그를 압도하는 사람이라면 손에 꼽을 텐데…….
“너 대체-”
“너희 길드에 조 단위 자산을 가져다줄게.”
“…….”
“내가 이번에 SS급 던전에 들어간다면, 던전 가장 깊숙이 있는 핵과 그 근처에 있는 보석까지 전부 끌어올 예정이야. 그렇게 끌어온 모든 걸 그대로 너희 길드에 바쳐 줄 거고.”
정체를 물으려던 신해창이 입을 다물었다.
“자금력도 곧 그 길드의 순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강한 길드가 결국 그만큼의 자본을 얻게 되니까. 이번 일로 너희 길드는 어마어마한 자본력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한 발짝 더 가까워졌으나 신해창은 가만히 서 안단테를 응시했다.
“내가 가져올 부는 너희 길드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드로 만들어 줄 테고, 너는 그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하지 않아. 아마 내가 가져올 부를 이용한다면…….”
안단테가 손바닥을 펼쳤다.
“적어도 다섯 손가락. 그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네. 고작 16위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이지 않아? 솔직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해서 우리를 잡겠어. 지금 우리한테 신경 쓸 시간이나 있어?”
“…….”
“게다가 내가 영상석을 들고 안에 들어가 주겠다고까지 말해 둔 상태잖아. 네가 날 잡아들이면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길게 고민하지 말고 여기서 내 제안을 받아들여, 해창아.”
안단테는 즐거운 표정으로 킥킥 웃어 댔다.
“아무것도 못 얻고 닭 쫓는 개가 되지는 말아야지.”
“감히 나를 협박하는 건가?”
“그럴 리가. 나는 제안하는 것뿐이야.”
어깨를 으쓱하는 게, 한없이 느긋한 모습이었다. 신해창이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사실 셈에 빠른 신해창이었기에 안단테가 하는 말은 진작 알아들었다. 확실히 안단테의 말은 그럴싸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던전을 클리어한다면’의 전제를 달고 있다. 살아 나오는 것조차 성공할 가능성이 1%도 되지 않는 곳에서 보석을 가져오겠다니.
신해창이 대놓고 안단테를 비웃었다.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뒷세계를 먹었다고 기세등등해서는.
“미친놈이었군. 네가 던전에 들어간다면 다시 나올 수 없다. 그곳은 그런 곳이니까.”
“왜 그렇게 확신해?”
“너야말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군. SS급과 약 스무 개의 길드가 모여서 들어가도 불가능했던 던전이었다. 그런데 너랑 이 길드원. 고작 일곱 명이서 어떻게 살아 나온다는 거지? 불가능하다.”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야.”
안단테가 혀를 끌끌 찼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걸,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굴어? 너는 지금 내 제안에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 텐데.”
“뭐라고?”
“해창아.”
순식간에 바투 다가선 안단테가 그대로 신해창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세지 않은 힘이었으나 신해창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도, 안단테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미처 쳐내지 못해서였다.
“너한테 거부권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어. 똑똑한 놈이 왜 그걸 몰라.”
“…….”
“넌 지금 날 던전으로 들여보낼 수밖에 없어.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가 이미 상황을 만들어 놨잖아. 그런데 굳이 네게 거래를 제안하는 이유는 하나야.”
안단테의 눈이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내 정체를 밝히지 않고 싶어서.”
“……네 정체?”
“앞으로 내 뒤를 캐고 다닐 놈이 많이 나올 거야. 그때 한국말을 썼으니까 한국 길드 중에 알아보겠지.”
피식 웃은 안단테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그놈들에게서 내 정보를 숨겨 줬으면 해. 너는 모르겠지만 그날 자리에 있었던 몇몇 에스퍼는 내 얼굴을 알 수도 있거든.”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내 정체가 드러나면 분명히 같이 가고 싶다는 놈들이 생길 거 아냐. 능력 없는 놈들을 달고 가면 더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저번에 가 보고 알아차렸던 터라, 그건 좀 곤란해서.”
“……저번?”
스무고개를 하듯 복잡한 말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저번에 가 봤다니. 네가 어떻게 SS급 던전에 들어갔다는…….”
신해창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인드맵을 그리듯 이어진 정보 끝에 한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신해창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표정이 굳는 걸 막지 못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번 던전에서 분명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때, 안단테가 그의 추측에 쐐기를 박아 줬다.
“아, 그러고 보니 너 내 팬이라며?”
“……!”
“하하. 그래서 내 디버프 능력이 네 우상과 비슷하다고 내게 관심을 보였잖아. 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쁘지 않은 인연이지 않아?”
신해창은 숨을 멈춘 채 낡은 콘크리트 바닥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이제껏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갑자기 나타난 능력자들. 어둠의 길드에 길드장이 나타난 시기. 그리고 안단테가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 안단테를 포함한 일곱 명의 길드원. 노아피.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그럼, 내 팬이 앞으로 날 응원하길 바라면서.”
안단테가 딱딱히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신해창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거래는 성립된 걸로 알고 있을게.”
그러곤 신해창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주위에 있던 길드원도 잇따라 걸음을 옮겼다.
신해창은 뒤늦게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나온 거지? 아니……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말투가 대번 달라졌다. 그 변화에 안단테가 피식 웃었다.
“기업 비밀.”
“…….”
“머릿속이 정리되면 다시 찾아와. 길게 얘기 나눠 보게.”
“기다려 주십시오.”
신해창이 재차 안단테를 잡았다.
“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겁니까? 공략법이라도 찾은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