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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82)화 (82/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82화

“불만? 대체 누가 불만을 토로하는데요?”

“모두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어쨌든 길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나라에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야 하는데, 그걸 다 같이 하지 않고 자꾸 저만 빠지게 된다면…… 분명 불만이 튀어나올 겁니다.”

“하하. 이제껏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귀여워라.”

안단테는 진효섭을 안고 옆으로 데굴 굴렀다. 진효섭은 자연스레 안단테의 위에 누워 있게 됐다.

“자기는 길드의 존속이 뭐라고 생각해요?”

“던전의 탈환과 던전으로 인한 문제를 처리하는 겁니다.”

“정말 대외적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진 이유네요.”

“……그럼 아닙니까?”

“아뇨. 맞는 말이에요. 그거야말로 길드의 존재 의의죠. 던전의 탈환과 던전으로 인한 문제 처리. 그리고 혹시 모를 전쟁을 지휘할 인물들. 그렇지만 사실 길드를 처음 만들게 된 이유는 조금 달라요.”

안단테는 조곤조곤 설명하며 조금 부은 진효섭의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에스퍼는 하나같이 제멋대로죠. 충동적인데다가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자칫하면 가이딩을 받지 못해서 폭주할 위험까지 있어요. 그런 위험한 놈이 하나둘도 아니고 여럿인데, 윗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놈들을 통제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럼 에스퍼 통제를 위해 길드를 만들었다는 겁니까?”

“정답. 마침 그럴싸한 이유도 있잖아요. 게이트의 생성.”

4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입구라고 불리는 게이트. 그것은 발전에 여러 영향을 끼쳤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그냥 놔둘 경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일. 또는 오랜 가뭄. 1년 내내 지속되는 겨울. 간헐적인 폭발. 피해 종류는 다양했다.

“에스퍼들에게 던전을 탈환한다는 임무를 주고 길드라는 이름으로 묶음으로써 여러 문제가 해결되죠. 제멋대로인 놈들은 합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던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에스퍼 입장에서도 길드에 있으면 사회적 위치가 나쁘지 않고 지원금도 나오니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던 거예요.”

“아…….”

“하지만 워낙 오래되다 보니 지금은 길드도 회사 같은 느낌이 돼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활동을 안 하거나 나태하게 지내면 나라에서 길드 자격을 박탈하고 지원도 해 주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안단테는 피식 웃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우리를 봐요. 아무것도 안 하지만 던전에 들어가라고 귀찮게만 굴지, 길드를 없애진 않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결국 나라 입장에서는 우리가 시야 아래에서 길드로 있어 주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위험한 놈이 길드 해체돼서 정처 없이 떠돌다가 폭주라도 하면 어디 손해겠어요?”

“하지만…… 그래서 국가안보국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길드를 관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국가안보국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타국 에스퍼와 신경전 벌이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고작 길드가 제멋대로 산다고 해서 손을 댈 정신은 없을걸요?”

“그렇군요…….”

“자. 그렇다면 길드가 뭘 하든 결국 길드장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뜻이죠.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출근을 하든, 놀러 가든. 모두 길드장 마음이에요.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맞지 않으면 길드원은 나가면 그만이고. 이제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죠?”

“눈치 볼 필요 없다는 겁니까?”

“우리 자기는 똑똑하기도 하지.”

안단테가 실실 웃으며 진효섭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우리 길드원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어디서 뭘 하든 신경 안 써요. 나오고 싶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면 되고. 놀고 싶으면 놀면 그만이에요. 한없이 자유로운 길드에서 대체 누가 태클을 걸겠어요.”

“그럼 다들 열심히 사무실에 나오는 이유는 뭡니까? 형 말에 따르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거잖습니까.”

“그거야 이제 슬슬 때가 됐으니까요. 가이딩도 받고,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얻고 싶기도 하고, 할 일도 없으니까 다들 거기서 시간을 죽이는 거예요. 집에 혼자 있어 봤자 복잡하기만 하거든.”

“때라면…… 저번에 말했던 그 SS급 던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진효섭은 마른침을 삼켰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때가 다가왔다고 하니 두려웠다.

“……상황은 얼마나 진전됐습니까?”

“어제 쌍둥이가 며칠 뒤에 본격적으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했으니까 아마 곧이겠죠.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당장 내일. 그 말에 진효섭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 그럼 이렇게 있어도 되는 겁니까? 주, 준비라든가…….”

“준비는 이미 해 뒀어요. 게다가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단계가 있어서 당장 내일 나타난다고 해도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그렇습니까.”

“네. 하지만 아무래도 게이트가 나타나면 바쁘기는 하겠네요. 그러니까 그 전에 느긋하게 보내는 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안단테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진효섭은 카운트다운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어쩌면 그 기대하던 SS급 던전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안단테가 죽는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져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가지 말라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이 SS급 던전을 얼마나 오랫동안 고대했는지 알기에. 기실 가고 싶다는 소망 정도가 아니었다. 집착이라고 부르기에 알맞았다. 죽음과 맞바꾸어서라도 가겠다는 의지. 자신이 무어라 말하며 막아서더라도 그들은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진효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안단테의 심장에 귀를 댔다. 두근두근 소리가 들렸다. 불안하게 뛰는 제 심장과는 달리 그의 심장 소리는 규칙적이지만 빨랐다. 흥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기대되네요.”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서렸다. 진효섭은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아서지도 못하고, 마음을 돌리지도 못하고. 그저 무력하기만 했다.

“……다치지 마십시오.”

“하하, 그건 조금 어려운 이야기네요. 차라리 다 죽이고 돌아오라고 하면 가능한데. 그래도 노력해 볼게요.”

안단테가 진효섭의 이마에 입술 도장을 남겼다.

“내 가이드가 원하는 거니까.”

“…….”

“이 얘기를 하니까 자기가 우울해졌네. 우리, 몸이나 움직이죠. 날씨도 좋은데 피크닉이나 가요.”

“예. 좋습니다.”

진효섭은 애써 불안을 내리누르며 방금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는 것처럼 잊기 위해 노력했다. 안단테 말대로 지금이 던전을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평온한 하루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좀 더 평온하고 알차게 보내야 했다.

이것이 폭풍 전야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효섭은 그렇게 모른 척 하루를 보냈다. 제발 하루라도 더 이 평온이 길게 이어지기를 빌며.

그러나 그의 바람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깨졌다.

* * *

[당분간 연락 못 할 것 같아요.]

피크닉을 다녀온 날 밤 역시 안단테는 진효섭의 집에서 잠을 청하려고 들었다. 능글맞게 굴며 어떻게든 진효섭과 함께 밤을 보내려는 때, 쌍둥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자코 듣던 안단테는 그대로 급한 용무가 생겼다며 집을 나섰다.

그 이후 도착한 문자였다. 진효섭은 한참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답장을 보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러나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차 언제쯤 돌아오냐며 문자를 보냈으나 그것 역시 답장을 받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진효섭은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사무실로 향했다. 노아피 길드원에게 안단테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풍경은 그대로였는데, 사무실에는 그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혹시 던전이 생겨났다는 소식이나 노아피 길드에 대한 정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매일같이 뉴스를 틀어 놓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매일매일 사무실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어떤 소식이나 정보도 접할 수 없었다. 노아피 길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노아피에 있었던 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진효섭의 앞에 남아 있는 건 검은 가방에 담긴 9억과 언제 적어 둔 건지 모를 [효섭이 거♡]라는 우스운 쪽지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웃거나 당황했을 진효섭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한없이 시무룩해졌다.

기다림의 시간은 고작 4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9억이라는 돈이 그 기다림의 기간을 알려 주는 걸지도 모른다.

고작 4일. 진효섭은 홀로 동떨어진 시간에 멈춰 선 기분을 느꼈다.

* * *

[SSS]

널찍한 강당. 트리플 에스가 적힌 화면 주변으로 의자들이 각각 놓였고, 자리마다 제각기의 국기가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길드장이 하나둘 제자리에 착석했다.

처음에는 한둘밖에 없었던 강당이 10분도 채 되지 않아 순식간에 가득 찼다. 모두가 내로라하는 S급들이었다.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유명인들의 모임이었으나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유일하게 빈자리는 한국뿐이었다. 그 광경을 뒤쪽에서 지켜보던 신해창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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