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80화
추궁당할 건 안단테가 더 많았다. 유진이랑 뭘 했냐. 그 사진은 무엇이냐. 신해창이 그걸 어떻게 봤냐. 가서 가이딩을 받은 것이냐.
‘하지만 어제 내가 가이딩을 해 주어서 이 이상 가이딩은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대체 왜. 물음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목구멍이 꽉 막혔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말하려고 보니 집착 같았다. 의심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 앞에만 서면 자꾸 이상한 사람이 된다.
결국 진효섭은 그 어떤 추궁도 못 하고 고개를 떨궜다.
“됐습니다.”
“계속 말해요.”
“됐다고 말했습니다.”
“말하래도.”
진효섭은 대답하지 않고 안단테의 손을 낑낑대며 밀어냈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놓으십시오!”
“갑자기 왜 이러지? 평소랑은 반응이 좀 다른 게 영 이상한데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 한…….”
자꾸만 감정이 울컥울컥 솟아났다. 진효섭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는 데 급급했다.
급기야 진효섭의 눈동자가 흐려지자 안단테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답지 않게 당황한 게 눈에 보였다. 그러나 진효섭은 제 감정을 다스리느라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
진효섭은 여전히 입을 꾹 닫았다. 결국 안단테는 그의 말과 행동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신해창. 정조. 눈물. 오전과 오후의 다른 점. 안단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든 것이 하나를 가리켰다.
“혹시 신해창이 뭘 보여 줬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조금 진정됐던 진효섭의 표정이 급격히 흐려지더니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속눈썹을 한 번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진효섭은 꿋꿋이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꾹 닫은 입술의 끝이 서럽게 내려갔다. 안단테는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봤구나. CCTV.”
뚝. 눈물이 결국 떨어졌다. 진효섭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서럽게 안단테를 쏘아봤다. 침묵을 고집하던 입도 비로소 열렸다.
“예. 봤습니다. 다 봤습니다.”
“…….”
“가이딩도 필요 없으면서…… 전 가이드를 만나러 가는 건, 정조 있는 짓입니까?”
그는 흐느낌 없이 말을 더듬더듬 이어 갔다. 먹먹한 어조였다.
“저, 정조 없는 게 누군데. 왜 나한테…… 그렇게 무섭게…….”
“…….”
“왜, 그렇게 무섭게 굽니까. 나는, 나는 신해창 에스퍼한테……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그쪽이 내 에스퍼라고…… 그렇게 말하고 왔는데.”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렀다. 서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끝내 진효섭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다 큰 남자가 소리 내 엉엉 울어 대는 꼴이 썩 보기 좋지 않으리라는 건 알지만, 눈물이 쉽사리 그치질 않았다.
한편, 안단테는 미세하게 굳었다. 얌전히 울 것 같아서는 아이같이 울음을 터뜨리는 진효섭에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이지.’
또다시 이상한 감각이 치켜들었다. 전부터 진효섭을 보면 들었던 정의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그가 질투하며 우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이상하게 뿌듯했다.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안단테는 가만히 진효섭을 바라봤다. 지금 이 감정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톡,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건드렸다. 눈물이 손끝에 묻어났다.
진효섭은 그 손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 안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사죄했다.
“미안해요.”
“…….”
“미안. 내가 다 잘못했어요.”
안단테가 제 잘못을 시인했다. 사죄하듯 손수건을 빼 들어 진효섭의 눈물을 닦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품에 안아 등허리를 도닥이는 손길은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래서 진효섭은 더 엉엉 울어 댔다. 첫 관계 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는 기억 못 하는 밤에 대해서 사과를 했었지만, 그날도 지금도 그의 사과는 슬픔만을 가져왔다.
사과를 하는 일이 늘어 갈수록 그 말의 진심이 떨어져 보이는 건 왜일까. 그러나 서글픈 마음과는 달리 너른 품은 편안했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미안.”
안단테는 재차 귀에 대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복잡한 목소리였다.
진효섭은 한참을 울다가 머리가 띵하고 아파질 정도가 돼서야 울음을 그쳤다. 킁, 작게 코를 먹는 소리가 났다. 진효섭은 문득 제 모습이 참 못난 것 같아 우울해졌다. 머리카락을 비비는 입술이 어쩐지 조금 웃는 것도 같았다.
“다 울었어요?”
“…….”
“변명해 보자면, 그 CCTV 영상 진효섭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안단테는 진효섭을 안은 채 부드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난 단지 진효섭 씨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러 간 것뿐이에요. 진짜 밀회라도 할 생각이었다면, 그런 CCTV 밑에서 했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
“신해창을 불러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 그놈 본디지 파트너를 위협하는 거예요. 그래서 위협한 것뿐이지, 정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다른 일도 없었고.”
“……정말, 입니까?”
“네.”
정말일까? 알 길은 없지만, 그의 말은 이해가 됐다. 몇 년 동안 C급인 것도 숨기고 산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보처럼 CCTV 하나 생각하지 못하고 거기서 그럴 리 없었다.
진효섭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섭섭하고 슬펐던 마음이 조금 녹았다. 하지만 아까 봤던 장면이 쉽사리 잊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봐도 갈 데까지 간 모습이었으니까.
좋았다가, 슬펐다가, 힘들었다가, 괜찮았다가. 제 것인데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게 이상했다.
진효섭이 여전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자 안단테가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원한다면 증명해 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저 영상대로라면 내가 지금 다른 놈이랑 뒹굴고 왔다는 거잖아요. 벗겨 보면 거짓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을걸.”
“버, 벗겨…….”
진효섭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벗긴다는 건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원하면 얼마든지 해 봐요. 나 가만히 있을 테니까.”
“…….”
안단테는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 안에는 능구렁이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겉모습 때문인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문제였다.
“증명, 필요 없어요?”
“…….”
침묵이 이어졌다. 진효섭이 작은 머리로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다는 게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의 어떤 것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빤히 봤다.
한참 고민하던 진효섭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요. 증명 필요합니다.”
“좋네. 바로 가죠.”
안단테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진효섭의 손을 이끌어 집으로 향했다. 증명을 원한 사람은 진효섭이었는데 어쩐지 안단테가 더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쿵, 안단테가 다소 다급하게 진효섭을 이끌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곤 이번에도 신발을 벗기 전 입술부터 들이밀었다.
그러나 진효섭이 그를 밀어냈다.
“기, 기다려 주십시오.”
“왜요? 증명해 주겠다니까.”
진효섭은 안단테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밀어내고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만큼은 어영부영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건 다른 증명입니다.”
“무슨 증명인데?”
안단테가 가쁜 숨을 숨기지 못하며 진효섭을 벽에 밀어붙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급해 보였다. 그는 연신 입술을 핥으며 진효섭을 내려다봤다.
안달이 난 안단테와는 반대로 진효섭은 한층 차분해졌다.
“가이딩으로 증명받고 싶습니다.”
“가이딩?”
진효섭은 말하는 대신 행동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 주었다. 그대로 안단테의 두 손을 잡고 가이딩을 흘려보냈다. 마주 잡은 안단테의 손등에서부터 푸른 실핏줄이 올라왔다. 역가이딩을 참기 위해 힘을 주는 듯 잡은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안단테의 손을 있는 힘껏 쥐고 진효섭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흘려보냈다.
어제 차고 넘칠 정도로 가이딩을 해 줬는데도 안단테의 몸은 가이딩을 빠르게 흡수했다. 접촉만으로 충분할 정도이긴 했지만, 다른 에스퍼였다면 가이딩을 흘려보낼 틈도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안단테의 몸은 정말 특이했다.
시간이 흐르자 안단테가 서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접촉이라고는 하나 평소 하루걸러 가이딩을 받다 보니 예전처럼 심한 역가이딩 충동 없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가이딩은 처음과 달리 느리고 아주 부드럽게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느긋함이 감돌았다. 진효섭 특유의 서늘한 힘이 심장께까지 흘러 들어가자 안단테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하…….”
기분 좋아 보이는 한숨과 함께 어느새 가이딩은 완벽하게 끝이 났다. 진효섭의 몸은 아슬아슬하게 텅 비었지만, 부작용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제 됐습니다. 확인 끝났습니다.”
“이것만으로 알 수 있어요?”
“예.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은 느낌이 없었습니다.”
만약 S급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면 가이딩이 들어갈 틈은 없었을 것이다. 무려 어제 직접 가이딩해 줬기에 알 수 있었다. 직접 확인하고 나니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 더 풀렸다.
한편 안단테는 가이딩이 끝났음에도 몽롱한 눈으로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열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해가 풀렸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아래로 하는 증명으로 더 확실하게 확인해 보는 건 어때요?”
“……괜찮습니다.”
“아니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한국 속담이 있잖아요. 한 번 더 확인해 보라니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