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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79)화 (7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9화

“넌 내가 괜찮은 걸로 보여?”

“늦어서 미안하다.”

“CCTV 보고 있었잖아! 처음에 안단테가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을 거 아냐! 왜 안 왔어!”

“그놈이 널 어떻게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믿어! 안단테도 에스퍼인데! 날 해코지할지 어떻게 아냐고!”

“정말 해코지할 생각이었다면 대놓고 들어왔을 리가 없다.”

“그래서 네 예상대로 됐어? 아니잖아!”

아니. 결국은 신해창의 예상대로였다. 안단테는 진심으로 유진을 해코지할 생각이 없었고, 그저 미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하면 유진이 또 발광하리라. 오늘따라 그가 아끼던 에스퍼가 모두 없으니 히스테리는 더 심각할 것이다.

결국 신해창은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늦게 나타났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기도 했다.

“미안하다.”

“이……!”

“하지만 이해해 주면 좋겠군. 이 일로 인해서 네가 바라던 대로 안단테를 제대로 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뭐? 그게 정말이야?”

유진은 화내려다 말고 온순해졌다.

“무슨 증거라도 잡아 왔어?”

“증거는 아니지만 비슷한 것을 얻었다.”

신해창은 드물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길드 사무실 구석 CCTV를 바라봤다.

“아마 좋은 변수가 될 거야.”

꽤 기나긴 시간 동안 안단테를 의심해 왔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여기저기를 찔러봐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아서 정말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철저할 뿐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나 철저하던 놈이 이번에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내가 진효섭 가이드를 만났던 것에 생각보다 기분이 상했던 걸까.’

처음으로 생긴 변화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신해창은 그 틈을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눈을 빛낸 신해창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지금 잠깐 뵀으면 합니다.]

어쩐지 이번 일로 안단테를 들쑤시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 * *

진효섭은 갑작스럽게 도착한 신해창의 문자에 한참 동안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그는 더 만날 생각이 없다는 진효섭의 의사에도, 저번 그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남겼다.

벌써 만날 시간에서 한 시간이 지났다. 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까.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쉽지 않았다. 계속 휴대폰을 흘끔거리던 진효섭은 결국 겉옷을 걸쳤다.

“제대로 말해 주는 게 낫겠다.”

오늘 하루 푹 쉬겠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진효섭은 저번에 갔던 카페로 갔다.

신해창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그는 한 시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카페에 있었다. 그는 진효섭이 도착하자마자 귀신같이 고개를 돌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안 온다고 했을 겁니다.”

“그래도 진효섭 가이드라면 나와 줄 것 같았습니다.”

정중하게 일어나 손수 의자를 빼 주는 그의 모습은 흡사 귀빈을 대하듯 조심스러웠다.

“앉으십시오.”

진효섭은 그 자리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앉아서 대화를 나눌 만큼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전 오늘 신해창 에스퍼가 다시는 절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나왔을 뿐입니다.”

“…….”

“앞으로 이렇게 부르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신해창 에스퍼에게 해 줄 말은 더 없을 겁니다.”

“그렇게 결정하신 겁니까.”

“결정할 것도 없습니다. 노아피는…… 평범한 C급 길드일 뿐입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거짓말이 매끄럽게 나왔다. 진효섭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삼켰다. 예상했던 건지 신해창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

“진효섭 가이드는 노아피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번 얘기를 듣고도 왜 안단테의 편을 드는지 궁금합니다.”

“…….”

확실히 그렇게 느껴질 만했다. 그들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수상하다는 점을 말해 줘도 믿는다고 우기고 있으니까. 노아피와 안단테의 편에 서는 게 그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진효섭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유랄 게 있습니까. 저는…… 그저 형을 믿는 것뿐입니다. 제 에스퍼니까요.”

그가 포기할 충분한 대답이 되리란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신해창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에스퍼라고 하는데, 어째서 믿냐고 묻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두 분이 사귀신다고 듣긴 했지만 그게 진짜인지는 몰랐습니다.”

연애 중인 걸 그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뺨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안단테가 말했던 걸까. 그가 직접 신해창에게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사귄다니. 정말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진효섭이 낯선 기분에 싱숭생숭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면, 더욱이 안단테와는 멀어지는 게 좋을 겁니다.”

“예?”

“어느 정도 같이 계셨으니 알겠지만, 안단테는 가벼운 놈입니다. 사귀면 분명 마음 앓이를 하실 겁니다.”

“……그건 신해창 에스퍼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 또 형은 그렇게 가볍지 않은-”

“오늘 제 길드 사무소에서 찍힌 CCTV 영상입니다.”

신해창이 준비해 온 사진을 휴대폰 위에 띄워서 내밀었다. 화면 안에는 안단테와 유진이 누가 봐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듯 몸을 겹치고 있었다. 중요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손이 절로 떨렸다. 진효섭은 신해창이 내민 휴대폰을 받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기만 했다.

“안단테가 찾아와서 유진과 밀회를 나눴습니다. 안타깝게도 CCTV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자리를 옮겨서 이 장면밖에 없습니다.”

“…….”

“그럼 진효섭 가이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뚜벅, 신해창이 진효섭 앞으로 다가왔다. 휴대폰의 사진 또한 더 가까워졌다. 오늘 봤던 안단테의 옷차림이 맞았다. 다른 사람으로 의심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안단테가 그쪽 에스퍼가 맞습니까?”

위태위태했지만 그래도 얼기설기 심장에 쌓아 온 것에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 * *

진효섭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언젠가 안단테와 함께 봤던 저녁노을처럼 하늘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하늘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쩐지 그날만큼 예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터덜터덜 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생각이 복잡해서인지 집까지의 길은 짧았다. 조금만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집에 혼자 있으면 섭섭함에 눈물이 찔끔 날 것만 같았다.

진효섭이 시무룩하게 뒤꿈치를 끌며 걸어 빌라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익숙한 차가 보였다.

“늦었네요. 피곤해서 집에서 쉰다고 하더니.”

“……형.”

“중요한 볼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연락도 아예 안 받고.”

안단테는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더니. 아직 괜찮아지지 않았나 보다. 유진도 그의 기분을 맞춰 주지는 못했나. 순간 든 생각에 심장께가 따끔거렸다.

“……네. 좀 볼일이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고 싶습니다.”

“가려고?”

“예. 내일 뵙겠습니다.”

진효섭은 재빨리 안단테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안단테가 팔을 잡아챈 탓에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왜 갑자기 피해요?”

“피한 적 없습니다.”

“거짓말. 티 나는데.”

안단테가 진효섭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피하고 싶었던 유려한 얼굴이 바로 앞에 보였다. 그가 돌연 허리를 숙이고 목덜미 부근에 코를 가져다 댔다.

“다른 놈 향수 냄새가 나네.”

“…….”

당황스러워 입술을 꾹 닫았다. 신해창과는 잠깐 있었던 게 다였다. 그 향수 냄새가 밸 틈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안단테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저 찔러본 건지, 정말 향이 나는 건지 진효섭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신해창이죠? 같이 있었던 거.”

“…….”

“대답할 생각 없어요?”

안단테가 피식 웃었다. 조금 차가운 미소였다. 순간 진효섭은 오늘 그에게 다가가지 말라던 쌍둥이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배신할 일 없다고 한 게 오늘 아침인데……. 꽤 생각이 빨리 바뀌네요.”

커다란 손이 보다 강하게 팔을 조이자 아픔이 밀려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진효섭이 놓아 달라는 듯 바르작거렸지만 안단테는 결코 손을 떼지 않았다.

“이해해요. 가이드나 에스퍼나 정절이라는 게 없긴 하죠. 능력을 가진 놈들은 하나같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이놈한테 가이딩 받고, 저놈한테 가이딩해 주니까.”

“…….”

“보기에는 그게 동물의 왕국 같아서 좀 우습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현실인데.”

안단테가 빙그레 웃으면서 반대 손으로 진효섭의 목덜미 부근 옷자락을 매만졌다.

“그래서, 우리 진효섭 씨는 하루 만에 신해창으로 마음을 돌린 걸까요? 이렇게 애인이 버젓이 눈 뜨고 있는데. 정조 없이.”

무언가 울컥 북받쳤다. 지금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누군데. 자신이 신해창을 만나 무엇을 말하고 왔는데. 그를 무엇이라 소개했는데. 그러는 안단테야말로 유진이랑 만나 뭘 하고 왔길래. 그렇게 흐트러진 차림으로.

“정조 없는 게 누군데…….”

진효섭이 안단테를 쏘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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