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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76)화 (7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6화

“아……. 또 이러네.”

최근 들어 코피가 자주 터졌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단테와 밤을 보냈던 그날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특별히 어디가 안 좋거나 아픈 건 아니었다. 다만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마치 만성피로가 몸에 달라붙은 것처럼. 아침이 상쾌하지 않았고, 밤에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진효섭은 어두운 표정으로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집어넣었다. 후드득 떨어진 핏자국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역시, 너무 무리한 걸까?’

예전에 안단테가 했던 말이 떠올라 진효섭은 명치를 문질렀다. 여기가 뻥 뚫리게 될 거라고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명치끝이 아렸다. 그가 했던 말과 연관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숨을 삼킨 진효섭은 피가 묻은 화면을 닦았다. 그에게 한번 물어볼까 싶었으나 손끝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단테가 가이딩을 받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만약, 지금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면 그는 분명 제게서 다시는 가이딩을 받지 않으려고 하리라. 그것만큼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결국 진효섭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보냈다. 어차피 잠깐 몸이 피로해서 나타나는 현상이겠지. 몸이 조금 피로할 뿐, 가이딩을 할 때 불편함은 없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 좀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만성피로는 일반적으로 현대인이 가지는 질병이다. 진효섭은 별일 아닐 거라 되뇌며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놨다.

* * *

진효섭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근처 슈퍼에 가서 간단한 식자재를 사 도시락을 만들고 샤워했다. 반듯하게 다린 옷까지 입고 나서니 평소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각이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니 금세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아홉 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진효섭은 시간을 확인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안에는 안단테와 쌍둥이가 있었다.

“딱 맞춰서 도착했네요.”

안단테가 어제와 같이 말끔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예. 좋은 아침입니다.”

진효섭도 격식 있게 인사를 건넸다. 안단테는 어쩐지 딱딱한 제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지만, 진효섭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공적인 장소에까지 연애를 끌어오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게 잘 이뤄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디안 에스퍼, 도리안 에스퍼.”

리디안과 도리안이 각각 보던 휴대폰을 두고 진효섭을 올려다봤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진효섭이 다소 걱정스럽게 쌍둥이를 바라봤다. 그날 그렇게 당한 모습을 보고 처음 만나는 것이다. 가이딩을 따로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어서 걱정스러웠다.

실제로 보니 그들의 광대에 노란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대로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이딩은 받으셨습니까?”

“아뇨. 안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그럼 제가 가이딩해 드리겠습니다.”

진효섭은 어깨에 멘 가방을 옆에 두고 곧장 그들의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뻐하지 못하고 뒤쪽을 흘끔거렸다. 안단테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의아한 마음에 진효섭도 뒤를 돌아보자 안단테가 그들을 빤히 보고 있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은가?’

평소와는 다르게 뚱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좀 더 눈을 휘고 그린 듯한 미소를 짓던 안단테였는데. 가이딩을 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니 몸 상태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걸까.

진효섭은 눈을 끔뻑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그,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셔서…….”

“아닌데? 저 오늘 기분 좋아요.”

안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보니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진효섭은 안단테의 표정을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뒤돌아 다시 쌍둥이를 바라보자 안단테가 다소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

“가이딩해 주려고요?”

“예? 아, 예. 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하. 굳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가서 해 주다니. 천생 가이드네요. 가이드로서의 정신이 아주 투철해.”

“…….”

아무리 들어도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묘하게 비꼬는 거 같은 게,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게 확실했다. 난감함에 진효섭이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고 있자 커다란 손 두 개가 양 손목을 각각 잡아당겼다.

쌍둥이는 입을 가리며 진효섭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단장님, 오늘 기분 안 좋아요.”

“단장님, 건드리면 시비 걸어요.”

“괜히 말 걸지 말아요.”

“괜히 다가가지 말아요.”

그를 생각하듯 건넨 말에 진효섭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이딩해 줄 거예요?”

“해 줄 거예요?”

“예. 해 드리겠습니다.”

쌍둥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들은 냉큼 진효섭의 손을 잡아 들었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동시에 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진효섭 역시 그게 편했기에 거절하지 않고 곧장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쌍둥이는 빠르게 스며드는 힘에 나른하게 숨을 내쉬었다. 시꺼멓게 변해 있던 그들의 눈 밑이 금방 화사해졌다. 처음에는 무표정하기만 했던 쌍둥이들이 이젠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역시 S급 가이드. 고작 접촉으로 이렇게 상쾌해지네.”

“저번에도 느꼈지만, 우리랑 상성이 꽤 좋은 편인 거 같아. 기운이 시원해서 그런가?”

“그럴 수도. 우리는 열이 많은 편이잖아.”

두 사람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은 한숨 역시 계속됐다. 그 반응에 진효섭은 뿌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대를 도와줬다는 생각에 기분 좋았다.

“아, 근데 궁금하긴 하다.”

도리안이 문득 든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

“뭐가?”

“진효섭 가이드랑 깊은 가이딩을 하면 어떤 기분일지.”

“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진효섭을 향했다.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야릇해졌다. 진효섭은 뒤바뀐 분위기에 조금 당황했다. 맞잡은 손에 작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자연스레 눈가에 옅은 열기가 뱄다.

“저번에 플랫도 그랬잖아. 궁금하다고.”

“그 말 백번 이해해. 궁금할 수밖에.”

접촉으로 이렇게까지 상쾌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가이드. 과연 그의 속은 어떠할까. 진효섭이 최대 효율로 가이딩을 해 준다면 어떤 느낌일지 에스퍼라면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노골적인 말에 진효섭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그를 보는 쌍둥이의 눈이 좀 더 짙어졌다.

“저기, 진효섭 가이드.”

리디안이 먼저 진효섭을 부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접촉으로는 동시에 가능했는데, 다른 가이딩도 동시에 가능할지 궁금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점막 가이딩을 양쪽으로 한다든가?”

도리안도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쌍둥이가 동시에 그쪽으로 깊은 가이딩을 한다고 생각해 봐요. 꽤 진귀한 경험일 거 같은데.”

진효섭의 얼굴이 금방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명과 하는 가이딩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는데, 둘이라니. 절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쌍둥이. 상상하는 것만으로 문란하기 그지없었다.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데, 쌍둥이는 그 반대인지 한없이 눈을 반짝이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마치 한번 해보자는 듯한 시선이었다.

잔뜩 기대한 표정에 절대 안 된다고 대답하기 위해 진효섭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다가온 안단테가 멀뚱히 선 채 쌍둥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디안. 도리안.”

쌍둥이가 삐걱삐걱 고개를 들었다.

“……네?”

“……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하자 안단테의 서늘한 목소리가 단두대의 칼날처럼 날카로이 떨어졌다.

“연인이 번듯하게 있는데,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실례 아닌가?”

“어? 하지만 어차피 가이딩이잖아요.”

“연인이 있는 가이드에게 그런 제안을 하진 않지.”

“하지만…….”

쌍둥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는 몰라도, 안단테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애인이 있어도 가이딩은 또 다른 얘기잖아요.”

“맞아. 단장님도 만날-”

“모럴 없는 소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앞으로 그런 제안은 다른 가이드에게나 가서 해. 이제 가이딩 끝났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쌍둥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아직도 쌍둥이와 손을 붙잡고 있는 진효섭을 끌어당겼다. 가이딩이 타인의 의지로 끊겼다. 쌍둥이는 아직 가이딩이 충분하지 않다는 얼굴이었지만 안단테는 가볍게 무시했다.

“자, 우리는 저리로 가요.”

“예? 아, 예.”

진효섭은 대뜸 잡아끄는 안단테의 손길에 속절없이 끌려갔다.

안단테는 진효섭이 가방을 둔 소파에 그를 앉혔다. 본인 역시 그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나란히 앉은 상태로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진효섭은 아까 쌍둥이 사이에 있을 때보다 더 난감한 표정으로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오늘따라 안단테의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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