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75)화 (7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5화

‘나만큼 능력을 갖춘 S급 가이드가 어디 따로 있겠어.’

어디를 가도 대우받는 게 S급 가이드다. 그중에서도 유진은 능력이 더 뛰어났다. 대부분의 에스퍼와 가이딩 효율이 일정 이상 높은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S급 가이드에게만 있다는 부작용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가이딩을 하면 다음 날 부작용으로 힘이 든다는데, 유진은 고작해야 감기 기운을 달고 사는 것뿐이다. 마음먹으면 사흘이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힘이 있는 한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해창도 그걸 알기에 유진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눈감아 주곤 했다. 그가 최고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나보다 뛰어난 가이드? 웃겨.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유진은 안단테의 말을 싸늘하게 비웃었다. 어차피 C급 에스퍼가 하는 말 따위 믿기지도 않았다.

“두고 봐. 후회하게 해 줄 거니까.”

* * *

안단테는 카페를 나서자마자 곧바로 리디안에게 통화를 걸었다.

“무슨 말이야? 신해창이 진효섭이랑 접촉했다니.”

-말 그대로요. 신해창이 진효섭을 기다렸다가 카페로 데려갔어요.

“무슨 말을 했는데?”

-주위에 결계를 쳐서 못 들었어요. 아무래도 작정하고 온 것 같던데요? 결계를 펴는 초능력 물품은 비싸잖아요.

도리안이 맞장구를 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초능력이 담긴 물품은 한국에 몇 개 들어오지 않았는데, 만드는 게 까다롭다 보니 하나에 몇백은 할 거라며 안타까운 한숨이 따라왔다.

“노선을 바꿨나 보네.”

안단테를 찔러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으니 진효섭에게 다가간 것이다.

아마 신해창도 진효섭이 관련 없다는 사실은 대충 눈치채고 있으리라. 그는 노아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신해창은 여러 가지를 물었을 터. 진효섭은 완벽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진실을 가르쳐 줬을 것이다.

“흠, 대충 우리 정체나 등급을 확신했다고는 봐야겠네.”

-그래도 괜찮아요?

“상관없어. 어차피 신해창은 증거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진효섭이 확신을 더해 줬다고 해도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안단테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증거가 없으면 어떤 놈도 제대로 안 믿을 내용이야. 그저 소문으로 그치겠지.”

-하지만 신해창은 믿고 있잖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 아니에요?

“별로. 오히려 신해창이 직접 알아내기를 바란 것도 없잖아 있어서. 왠지 그놈이 우리 일에 도움도 줄 것 같고.”

-뭔지는 몰라도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서 든든하네요. 근데 신해창이 단장님 생각대로 도움이 안 되면 어떡해요? 그놈 우리 잡으려고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던데.

“걱정하지 마. 돕게 만드는 일이 한둘도 아니고.”

모두 생각했던 바.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모든 건 빈틈없이 제 손바닥 위에서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너희는 계속 진효섭 뒤나 잘 감시하고 있어. 신해창 관련한 얘기는 내가 알아서 물어볼 테니까.”

-네.

리디안은 깔끔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단테는 그길로 노아피 길드의 사무실로 향했다.

과연 신해창은 진효섭과 만나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무엇을 원했을까.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다.

대충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 빠르게 좁혀졌다. 타협. 협박. 회유. 강요. 상대의 진실을 이끄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해창의 성격과 진효섭의 성격을 조합하자면 그중 회유가 가장 그럴싸했다.

신해창은 최대한 건실한 척 진효섭에게 접근해 안단테가 수상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을 것이다. 적당히 겁을 주고, 달콤한 말을 지껄였겠지.

그런 달콤함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돈? 명예? 새로운 직장?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지켜 주겠다는 사탕발림?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스운 대가일 테다.

그러나 그것을 들은 진효섭의 반응은 좀 궁금했다.

‘과연 신해창에게 흔들렸을까.’

진효섭은 갈대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겉보기처럼 단단한 성정은 아니었다. 성격을 조금이라도 파악한다면 말로 넘어오게 만드는 건 쉬웠다. 신해창은 여러 가이드를 영입한 전적이 있으니 그런 것에는 이골이 나 있을 터. 그렇다면 흔들렸을 가능성이 꽤 농후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간 안단테는 문득 가던 길을 멈췄다. 발끝부터 무언가가 갉작거리며 올라오는 게, 불쾌했다.

“……뭐지?”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진효섭에게 진실을 말했을 때부터 누군가에게는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신해창이고,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 세울 계획을 생각하며 즐거워야 한다.

사람들을 손안에 넣고, 의지대로 하나하나 움직이게 만들고, 생각대로 움직이는 걸 구경하는 일은 하나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그는 지금 더없이 기분이 좋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쾌했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일까. 말간 진효섭의 웃음이 타인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증이 불쑥 솟아났다. 갑작스러운 기분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는 감각에 안단테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툭. 빈 장바구니가 현관에 떨어졌다. 이것저것 사려고 밖에 나갔는데,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해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아…….”

진효섭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안으로 들어가 대충 바닥에 앉았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인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도 같았다. 그때, 타이밍 좋게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안댕이♡]

대체 언제 바꿨지.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진짜 안 어울려.”

안댕이라니. 그는 어떻게 봐도 강아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겉모습도 그렇고 속내도 그랬다. 진효섭은 안댕이라고 뜬 화면을 보며 계속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에게 온 문자 한 통으로 웃음이 나는 게 어이없었다.

[뭐 하고 있어요?]

진효섭은 뒤늦게 그의 문자를 보고는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그냥 앉아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뭐 하는데요?]

[문자를 하고 있습니다.]

[저런. 집에 TV라도 하나 설치해 주든가 해야겠네요. 집에서 할 것도 없이 앉아서 문자만 하고 있다니.]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딱딱했으려나. 말로 뱉으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데, 어쩐지 텍스트는 느낌이 달랐다. 진효섭은 뒤늦게 이모티콘 하나를 첨가했다.

[^^]

그 뒤로 답장이 없었다. 분명 뭔가를 쓰려는 듯 [……] 물풍선이 생겼었는데, 이모티콘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다시 쓰겠거니 했으나 상대편은 계속 잠잠하기만 했다.

역시 방금 쓴 이모티콘이 기분 나빴던 걸까. 다른 이모티콘을 검색해서 써 볼까, 진효섭이 고민하고 있으려니 뒤늦게 안단테에게서 답장이 왔다.

[아침에 봤는데 또 보고 싶네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부정맥 증상과 아주 유사했다.

진효섭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안단테는 능숙한 모습만을 보이는데 자신은 매번 멍청한 반응만을 해대는 것 같다. 이래서야 상대의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쿡쿡 쑤셨다.

안단테가 아무리 잘해 줘도 모두 진심이 아니다. 그저 이용 가치가 있어서 옆에 두고 있는 거겠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감정 조절이 어려웠다. 자신이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설사 일방통행인 마음이라고 해도 진효섭은 그를 끊어 낼 수 없었다. 멍청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좋아하니까. 고작 이런 문자로 가슴이 뛰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아하니까. 보답받지 못해도 괜찮았다.

“지킬 거야. 반드시.”

자신이 지킬 것이다. 설사 안단테의 죄를 함께 뒤집어쓴다고 해도 신해창 편에 서진 않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그가 곤란해지는 것은 절대로 싫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진효섭은 진심을 문자에 꾹꾹 눌러 담았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신해창이 그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돌아설 일은 없을 거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답장에 다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어쩐지 제 다짐에 답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진효섭은 다시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안녕히 주무십’까지 썼다가 지웠다. 조금 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전화도 좋지만, 문자도 새로웠다. 그와 하는 것은 모두 새로웠기에 기억에 단단히 새기고 싶었다.

무엇을 보내야 더 얘기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때, 화면 위로 붉은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어?”

그것을 시작으로 코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진효섭은 당황해하며 코를 부여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다급하게 휴지를 뽑아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