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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74)화 (74/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4화

“……그놈들, 며칠 전에 무리하게 핵을 뜯어 가려다가 A급 던전에서 죽었어.”

“저런. S급들이 A급 던전에서 죽을 정도면 어지간히 무리했었나 보네. 역시 그놈들이 한국에서 핵을 뜯어 가고 있던 새끼들이 맞았던 거지.”

“하지만 해창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유진이 진지하게 안단테를 올려다봤다.

“다 네가 벌인 짓이라고 말했어. 그놈들이 핵을 뜯어 간 건 어떤 대부호가 핵 하나에 1억이라는 돈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짠 판이라고 하더라. 다른 놈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아하하하.”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진과 달리 안단테는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어댔다. 무척이나 즐거운 웃음이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내가 왜 그딴 등신 같은 짓을 하지? 핵 따위 1억이나 주고 사서 뭐 하려고?”

“나야 그건 모르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해창이가 널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너, 해창이 성격 몰라서 그래?”

“알지. 그 집요한 놈.”

부정적인 말이었으나 정작 안단테의 표정은 별로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내가 S급에서 C급으로 강등됐을 때도 뭔가 이상하다고 재차 말했어. 그때는 기계를 의심했는데.”

언제부터일까.

“어쩌다 그 의심이 나한테로 와 버렸네.”

감 좋은 새끼. 안단테는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해창. 한국에 오자마자 만난 에스퍼가 생각보다 감 좋고 능력 좋은 놈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많았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을 몇 번이고 그가 걸고넘어진 탓이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현상 수배 등 모든 게 신해창 때문에 복잡해졌다.

그러나 안단테는 여전히 신해창이 싫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은 능력 좋고 머리 좋은 놈들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게다가 지금은 신해창 덕분에 지루했던 일이 다소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핵을 뜯어 가다 걸린 현상 수배를 다른 새끼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일도 생각보다 즐거웠고, 그놈들이 알아서 죽어 주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우리 가이드를 건드린 죄로 자신이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어차피 신해창이 얼마나 머리를 굴려 앞을 막아서든,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안단테는 여유로웠다.

“곤란해라.”

조금도 곤란하지 않은 얼굴로 안단테가 실실 웃어대자 유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네가 그러니까 해창이가 의심하지. 솔직히 내가 봐도 너 되게 수상해. 예전부터 계속 수상했었고.”

“내가 그랬나?”

“그래. 그 당시에 등급 재측정을 몇 번이고 권했는데 너는 한결같이 거절했잖아.”

“그건 C급이 확실한데, 굳이 재차 측정하기 싫어서였는데. 귀찮잖아.”

“그래서 해창이가 자꾸 너 C급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거야. 솔직히…… 나도 좀 그렇게 생각해.”

유진이 의심스러움을 담아 안단테를 바라봤다.

“너한테 들어가는 가이딩양은 보통 C급이 받는 분량의 두세 배를 뛰어넘어. 그런데도 몸이 좋아진다는 느낌도 없고……. 너는 특이한 체질이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이상하잖아. 해창이 말로는 세상에 그런 체질이 없다는데. 누구 말이 진짜인지 알 길도 없고.”

“아. 신해창의 확신이 여기서 튀어나왔나 보네.”

안단테가 작게 혀를 차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체질의 사람이 존재하지. 신해창이 모른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그거야 그렇지만…….”

“그리고 내가 뭐 하러 S급인 걸 숨기고 멍청하게 C급 해결사나 하고 있겠어? 말이 되질 않잖아. 너라면 부와 명예를 놔두고 얼굴만 번지르르한 C급 길드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어?”

차마 대놓고 아니란 말을 할 수가 없어 유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

“……뭐가 달라지냐니?”

“내가 힘을 숨긴 S급이라고 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난 범인이 아니니까.”

“…….”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괜한 힘 빼기야.”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리자 유진이 다급히 일어서 그를 붙잡았다.

“그렇다면 더욱더 네가 확신을 줘야지. 내가 도와줄게. 네가 그 범인이 아니라는 거, 내가 해창이한테 차근차근 말하면 믿어 줄 수도 있어.”

“하하, 네 말은 신해창이 믿는다고?”

“당연한 거 아냐? 걔는 내 본디지 파트너인데.”

본래 본디지 파트너는 신뢰가 기본 바탕이라고 덧붙인 유진이 도도하게 턱 끝을 치켜들었다.

“이런. 똑똑한 줄 알았더니 꽤 허술한 구석이 있네, 유진.”

“무슨 말이야?”

“넌 신해창을 너무 몰라. 그놈은 너보다 더 대단한 가이드의 존재를 알게 되면 너 같은 건 쉽게 내칠 놈인데.”

“더 대단한 가이드? 무슨 말이야. 내가 S급인데, 나보다 대단한 가이드가 어딨어.”

“S급이라고 다 같은 S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아무튼,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이제 신해창에게 가서 전하도록 해.”

안단테는 어깨를 으쓱하곤 마치 유진을 따라 하듯 과하게 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해창아, 네 말대로 안단테에게 도와줄 것처럼 굴어 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 역시 남을 속이는 건 나한테 힘든 일인 것 같아.”

유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완벽하게 숨긴 줄 알았는데 오롯이 드러나 꽤 당혹스러워 보였다. 대체 어디서 속셈이 들통난 건지 조금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겠지. 다른 놈이었다면 충분히 넘어갈 정도로 유진의 연기는 완벽했다. 다만 안단테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을 뿐.

“단테야, 나는 그게 아니라-”

“그리고 위로나 받아. 보아하니 넌 모르겠지만, 신해창은 네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보낸 것 같지 않거든. 솔직히 너 그리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잖아?”

삐뚜름히 입꼬리를 올린 안단테가 여전히 붙들린 손을 뿌리쳤다. 그러곤 휴대폰을 꺼내 흘끔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가 봐야겠어. 마침 우리 쌍둥이한테 재밌는 정보를 얻어서.”

“단테, 너……!”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안단테는 유진을 등지고 카페를 나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내가 힘을 숨긴 S급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근데 달라지는 게 하나 있네.”

그러곤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너, 내가 S급이면 날 선택할 거라고 말했었지? 이야. 내가 S급이 아니라서 진짜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너 나한테 버림받았을 거 아냐. 저번에도 그랬듯이 난 널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유진은 수치스러움으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언제나 에스퍼에게 귀하게 받들어진 터라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

“……너 나한테 이렇게 대한 거 후회 안 해?”

“글쎄. 후회는 네 몫이지 않을까. 난 이래 봬도 한정판 인스턴트거든.”

그 말을 끝으로 안단테는 유유히 사라졌다. 유진은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손끝 마디가 하얗게 질렸는데도 힘을 풀지 않았다.

“저게 진짜…….”

눈에서는 살벌함이 풀풀 솟았다. 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유진은 그대로 품에서 거칠게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해창! 내가 이런 일 하기 싫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별로 안 좋게 끝났나 보군.

“당연하잖아! 나는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거 못한다고! 저 뻔뻔한 놈한테서 어떻게 정보를 빼내!”

유진이 이를 벅벅 갈았다.

“저 새끼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자꾸 이런 식으로 내 심기를 거스를 거야?”

-진정해. 이번 일은 꼭 필요했으니까.

“필요한 건 넌데 왜 날 끼어들게 해? 에스퍼 일이면 에스퍼끼리 해결하란 말이야!”

새된 소리가 질러졌다. 유진은 언제나 이미지를 신경 썼지만, 오래 알고 지낸 신해창에게만큼은 제 성격을 다 보이는 편이었다. 같은 길드에 그런 사람 하나 없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평소에는 친절하게 대했으나 이번만큼은 벌어진 상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국가안보국 길드장이라는 놈이 고작 C급 길드 하나 못 털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너 능력 있는 거 맞아? 이 멍청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이번에 안단테를 붙잡아 준 덕분에 원만하게 얘기를 끝냈으니까.

“뭘 걱정 마라는……! 잠깐. 뭐? 안단테를 붙잡아 주다니? 너 나한테 안단테를 도와주듯이 굴어서 정보를 캐 달라고 했잖아.”

-아니. 그를 붙잡고 있을 시간을 벌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

휴대폰을 쥔 유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해창은 네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보낸 것 같지 않거든.’

이것조차도 안단테의 말이 맞았다. 고작, C급 에스퍼 주제에. 얼굴이 번지르르해서 하룻밤이나 보내 주려고 했더니 잘난 듯이 구는 언행이라니. 자꾸만 진 기분이 들어 미칠 것 같았다.

“짜증 나.”

유진은 눈을 시퍼렇게 뜨며 한 자 한 자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해창아. 안단테, 어떻게든 잡아. 걔가 나한테 울면서 부탁하는 걸 꼭 들어야겠어.”

-그건 힘들 텐데.

“하라면 하라고!”

잠깐 침묵이 흘렀으나 곧 낮은 한숨이 울렸다.

-노력하겠다.

“그래. 노력해야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 S급 가이드를 데리고 있는데, 그 정도는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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