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73화
“저, 저는…….”
진효섭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혼란스러움이 잔뜩 드러난 표정에 신해창은 차갑게 진효섭을 판단했다.
‘역시. 이렇게 감정이 드러나는 걸 보면 노아피와 한패는 아니다.’
그렇다면 제 편으로 만들어 놓는 게 최선일 테지. 최근 알아본 바로는 안단테가 유독 진효섭 가이드를 아끼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니는 게 심상치 않았다. 뭐, 그놈도 에스퍼이니 가이드에게 집착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조금 신기하긴 했다.
‘그 대단한 S급 가이드 유진조차도 몇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처럼 말했던 놈이었는데. 뭔가 다른 걸까.’
신해창의 표정에 묘한 궁금증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은 진효섭을 회유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이것만 성공한다면 궁금증은 나중이 돼서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진효섭 가이드가 혼란스러워하는 건 이해합니다. 제가 본 진효섭 가이드는 순하고 착하신 분이니까요.”
신해창이 올곧은 눈빛으로 진효섭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같은 길드원을 고발하는 일은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놈들은 어지간히 악질입니다.”
진효섭의 눈이 흔들리자 신해창은 박차를 가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이용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어둠의 길드는 범죄자 소굴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에는 악마가 들어차 있습니다. 친한 상대의 등에 칼을 꽂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진효섭 가이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죠.”
진효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대답하라는 건 아닙니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신해창이 손목시계를 흘끔 바라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3일. 그 안에 결정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주위 막이 사라졌다. 사람이 없는 것은 같았지만, 소리는 들렸다.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검은 리무진이 카페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부디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신해창은 카페를 나갔다. 테이블에는 식어서 쓰기만 한 카페라테만이 남았다. 한 입도 마시지 못했는데 입을 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진효섭은 장바구니를 옆에 둔 채 멍하니 머그잔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편, 카페 맞은편에서 그들을 빤히 쳐다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들었어?”
“아니. 못 들었어.”
“역시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철저하기 그지없네.”
“맞아.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쓸데없이 철저하네.”
쌍둥이가 앞에 놓인 망고 주스를 쪽 빨아들이며 부루퉁한 눈으로 혼자 남은 진효섭을 바라봤다. 신해창이 떠나고도 진효섭은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단장님한테 말해야겠지?”
“그래야겠지. 말 안 했다가 또 얼마나 지랄하는 걸 감당하려고.”
리디안이 작게 한숨을 쉬며 갈비뼈를 매만졌다.
“난 아직도 여기가 제대로 기능을 안 하는 거 같아.”
도리안이 동감이라는 듯 반대쪽 갈비뼈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길드원들은 알겠지? 그 상처가 죄다 단장님한테 맞아서 생긴 거라는 거.”
“알겠지. 아무리 C.C라고 해도 숨은 방 하나 발견했다고 우리가 그렇게 얻어터질 리가 없잖아. 혼자도 아니고 우리 둘인데.”
“그래도 그때는 좀 위험하긴 했어. 나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니까.”
“그건 그래. 그런데, 단장님 더 강해진 것 같지 않아? 어디 가서 쓸데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능력이 그대로지. 진짜 오줌 지릴 뻔했잖아.”
“유명했던 게 명성뿐만은 아니었다는 거겠지.”
“하긴. 처음에 단장이 나타났을 때, 매스컴에서 난리였긴 했어. 뭐라더라…… 세기의 천재?”
“대단하긴 하지.”
쌍둥이가 새삼스레 안단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아래로 보는 경향이 강한 쌍둥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에스퍼였다.
“아, 진효섭 가이드 움직인다. 우리도 얼른 따라붙자.”
“잠깐만. 단장님한테 문자 좀 넣어 둘게.”
“알았어.”
쌍둥이는 안단테에게 연락을 넣고, 다시 진효섭의 뒤를 따라붙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 * *
“오늘 날씨 되게 좋다. 그렇지? 매일 이렇게 가을이면 좋을 텐데. 꼭 이렇게 좋은 날씨만 짧더라.”
유진이 본인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스륵 넘기자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주위를 맴돌았다.
“그래도 짧아서 더 좋고, 그래서 기다려지는 거라고 생각해. 왜, 그렇잖아. 추억 속에 있는 것들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안단테가 심드렁하게 유진의 말을 끊었다. 유진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시무룩하게 속눈썹을 늘어뜨렸다.
“……나랑 얘기하는 게 싫어?”
“싫은 건 아닌데.”
흐트러진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안단테가 느릿하게 말을 이어 갔다.
“급한 것처럼 불러내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해대는 게 신기해서 그렇지. 넌 이런 스타일 아니었잖아.”
카페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안단테의 옅은 머리 색이 반짝였다. 염색으로 만든 색과는 차원이 달랐다. 속에서부터 밴 미묘한 잿빛이 심드렁한 얼굴조차도 화사하게 만들 만큼 부드러웠다.
눈앞에 놓인 미모에 유진은 잠깐 시선을 뺏겼다 다시 상큼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어떤 스타일인데?”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감이 충만하고, 자신이 최고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지.”
안단테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 건드렸다.
“그 자신감을 뒷받침해 주는 실력과 외모가 있었으니 그 어떤 곳에서도 꿀려 본 적 없었을 거야. 이해해.”
“칭찬이라면 고맙-”
“그래서 절대 날 다시는 보지 않을 줄 알았단 말이지. 그런 수치를 줬잖아.”
말을 자르며 피식 웃은 안단테가 앞에 놓인 물컵에 맺힌 물방울을 건드렸다. 물방울은 안단테의 손가락에 걸려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 성격상 자처해서 날 불렀다는 건 말이 안 되고. 혹시 신해창이 시켰어?”
유진이 몸을 움찔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안단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안단테는 역시 그런 거였다며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이야. 이건 좀 의외네. 신해창이 너까지 이용하려고 들다니.”
“이용이 아니야.”
유진은 표정을 가다듬고 덤덤하게 말했다.
“해창이가 자꾸 널 의심해서 내가 직접 너랑 얘기해 보고 싶었을 뿐이야.”
“뭘 그렇게 의심했는데?”
“알면서 뭘 물어.”
“알아도 직접 듣고 싶은 법이니까.”
유진은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현상 수배범일 거라는 의심이지. 달리 뭐가 있어?”
“뭐야. 아직도 그 의심이야? 너무하네. 내가 직접 범인까지 들이밀어 줬는데. 씹어서 넘겨주기까지 해야 하나.”
안단테는 잠시 멈칫하곤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 별로 좋지 않은 상상을 해 버렸네.”
“넌 진짜…… 못살아.”
유진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진지한지 진지하지 않은 건지. 그와 얘기할 때는 언제나 중간을 잡는 게 어려웠다.
“얼른 해창이랑 화해해. 이렇게 의심하고 서로 물어뜯는 거 안 좋아 보여.”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본디지 파트너에게 말해 봐. 나는 청렴결백한 것 같다고 베갯머리에서 앙앙대며 말해 주면 더 좋고.”
“그렇게 장난스럽게 받아치지 말고. 나 때문에 너희 관계가 안 좋아진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되면 더 신경 쓰인단 말이야.”
“너 때문이라니?”
“그렇잖아. 내가 네 본디지 파트너였다가 바로 해창이 쪽으로 가 버렸으니까.”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기에는 충분했다며 유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두고 두 사람이 싸우는 게 당연하다는 어투에 안단테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하긴. 그렇게 오해할 만했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주위에서 죄다 그런 말을 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건 좀 멍청한 발언인데.”
“멍청? 그거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어. 모든 에스퍼가 네게 가이딩을 받고 나면 널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신감이나 자존감보다는 멍청함으로 느껴져서.”
커피 잔을 쥔 유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린 얼굴에 표독스러움이 돌자 좀 더 봐줄 만해졌다.
“그래. 넌 그게 더 어울려. 쓸데없이 착한 척 본심 숨기는 데 재주 없어 보이거든.”
안단테는 말을 마치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잘 마셨어. 국가안보국 가이드랑 만나니까 커피도 얻어먹고 좋네.”
“안단테.”
“다음에 부를 때는 러브호텔 아니면 안 나갈 테니까 염두에 두길 바라. 아, 아니다. 러브호텔도 너랑은 갈 생각이 없네. 그냥 부르지 마.”
“안단테!”
“왜 자꾸 불러. 틀어막아 버리고 싶게.”
안단테의 능글맞은 대답에 유진이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난 지금 널 도와주기 위해서 나온 거란 말이야.”
“네가 뭘 도와줄 수 있는데?”
“너, 알고 있지? 그놈들 죽은 거.”
“그놈들이 누군데?”
“모르는 척하지 마. 네가 증거랍시고 가져왔던 그 어둠의 길드 소속 에스퍼 두 명. 다 죽었잖아.”
“그랬어? 분명 내가 알아볼 때는 그런 정보 없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봐.”
처음 듣는다는 듯 안단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모른다는 눈치였기에, 유진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