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72화
의외의 인물에 진효섭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 또한 식자재를 사러 가다가 우연히 만난 건 아닐 테고. 신해창 쪽에서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왜? 그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으시면 카페에서 잠시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 그…… 예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신해창은 익숙하게 진효섭을 이끌고 앞장섰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얘기를 나누려는 카페는 탁 트인 곳이었다. 태도나 장소 선정 등에서 배려가 느껴졌다. 정말 신해창과 안단테는 친구인 걸까.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에 신기함부터 느껴졌다.
“이렇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효섭 가이드.”
“아닙니다. 얘기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것치고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부산스러웠지만, 신해창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저…… 무슨 일로 절 기다리셨습니까?”
“음.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어떤 것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해창은 그 많은 사람 앞에서도 유창하게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 난감한 기색을 띠며 잠깐 말을 멈췄다. 그렇게나 어려운 얘기인가. 덩달아 진효섭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이윽고 신해창이 결심한 듯 작은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건……?”
“먼저, 진효섭 가이드가 알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해창은 직접 보라는 뜻으로 하얀 페이지를 켰다. 그 안에는 검은 글자가 잔뜩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어 내리던 진효섭의 표정이 차차 굳었다. 태블릿 화면에 뜬 건 안단테와 노아피 길드에 관한 내용이었다.
“진효섭 가이드는 노아피 길드와 안단테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자신이 신해창은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을 다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럴 겁니다. 그들은 수상한 집단이니까.”
신해창은 태블릿 페이지를 넘기며 노아피 길드원들의 사진과 정보들을 보여 주었다.
“노아피 길드. 길드장인 안단테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아입니다. 그러나 등록된 보육원은 존재하지 않더군요. 전형적인 어둠의 길드 특징입니다.”
“…….”
“그중 안단테는 유일하게 뚜렷한 과거 정보가 있습니다. 한국 출생으로 집안이 꽤 재력가입니다. 외국에서 학교를 나왔고, 그곳에서도 역시 부유하게 살았더군요.”
신해창은 태블릿 중앙에 떠 있는 안단테의 얼굴을 터치했다. 아까까지 함께했던 익숙한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구도는 분명 몰래 찍은 건데, 눈동자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상대를 내려다보는 시선. 여전히 얄밉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털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완벽한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으나 신해창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안단테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부모가 외국으로 나가서 실종됐다더군요. 그런데 안단테는 그 상황에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으로 나가지도 않고,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진효섭은 날카로워진 표정의 신해창과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정체를 들어 안단테나 길드원의 정보가 모두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탓이다.
“그저 본인이 미등록 에스퍼였다며 한국에서 에스퍼 등록을 마쳤고, 곧바로 양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무려 S급으로.”
“예?”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대한 반응하지 않으려 했으나 S급으로 등록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해창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의 오류였던 걸로 판명되고, 안단테는 C급으로 하향됐습니다.”
사실 진효섭이 놀랐던 건 그가 등급을 숨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이야기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하, 하향 말입니까?”
“예. 기계의 오류였다고 했습니다. 간혹 그런 일이 있다고 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나. 진효섭은 복잡한 심정이 됐다. C급으로 하향됐다는 말에 안단테가 벌인 일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에 S급으로 등록했던 거면, 그는 S급이라는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체르니나 플랫은 안단테가 S급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으니까.
“처음에는 저 역시 같은 양성소 출신이었기에 이상하다 생각하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쩍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뭐가 수상했습니까?”
“저는 양성소에서 졸업하자마자 국가안보국 소속이 되었고, 한국에 들어오는 타국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쯤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심은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렇게 이유를 알아보던 와중, 신해창은 그 시기에 안단테가 새로운 길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유진을 통해서 알아차렸다.
“마침, 안단테가 새로 세운 사무소 근처에서 비정식 게이트가 발견되었습니다. 외국의 뒷세계로 연결되는 게이트더군요. 그래서 다시 알아봤더니, 그놈이 길드를 세운 시기와 제가 국가안보국에 들어간 시기가 겹쳤습니다.”
외국에서 온 안단테. 그는 부모님이 실종되었음에도 실실 웃고 다니기만 했다. 그런 그가 세운 사무실 뒤에는 어둠의 길드가 세웠을 게이트가 있었다. 더불어, 그가 길드를 세움과 동시에 한국의 안보가 흔들렸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걸 차근히 설명한 신해창은 탁자에 팔꿈치를 댔다. 그러곤 두 손을 마주 잡고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다.
“안단테는 어둠의 길드 소속이다. 그리고, 뭔가를 꾸미고 있다.”
진효섭이 신해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안단테라면 저번에 그랬듯이 느긋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제게 그건 불가능했다.
신해창은 진효섭의 반응을 빤히 살펴보다가 의외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알고 계셨습니까?”
“아, 아니. 모, 모, 몰랐습니다.”
“…….”
“…….”
대놓고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대답이었다. 낭패감이 몰아닥쳤다. 숨기려고 할수록 자신은 오히려 정답만을 뱉을 터. 결국 진효섭은 입을 꾹 닫았다. 그래 봤자 신해창은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저, 저는 보,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급하게 떠나려는 진효섭의 손목을 신해창이 잡아챘다. 정중하기만 하던 평소와 달리 강압적이다 싶을 만큼 그가 강한 힘으로 진효섭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시선은 아까와 달리 차가워진 채였다.
“어둠의 길드 소속인 것을 알면서도 숨겨 주는 것. 그거 꽤 큰일인 거 알고 계십니까. 진효섭 가이드.”
진효섭이 사정없이 떨리는 눈으로 몸을 움츠렸다. 큰일이라니. 그런 것 따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알았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입을 열면 길드원들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으므로.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곤란합니다.”
“……정말 모릅니다.”
신해창은 입을 꾹 닫은 진효섭을 빤히 보다가 진정시키듯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진정하십시오. 일단, 진효섭 씨에게 죄를 씌울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그 말은 마치 상황이 여의찮으면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고 들렸다.
“어차피 저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아무 짓도 못 한 건, 완벽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증거가 없으면 사람을 잡을 수가 없고 말입니다.”
“…….”
“그래서 진효섭 가이드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신해창이 여전히 잡고 있던 손목을 잡아당겼다. 자연스레 둘 사이가 조금 가까워진 그 순간, 주위에 막이 씌워지듯 모든 소리가 차단됐다.
진효섭은 뒤늦게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새 카페에는 자신과 신해창밖에 없었다. 미리 준비했었던 걸까. 철저함에 어깨가 떨렸다.
신해창은 산만해진 진효섭의 집중을 이끌기 위해 손목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진효섭 씨가 안단테와 한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놈 길드원과는 엄연히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거야 그럴 것이다. 진효섭은 정말 안단테나 노아피 길드의 비밀을 모르고 입단했으니까. 그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신해창 또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같은 길드이니만큼 이것저것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은 것으로 사료 되는바.”
신해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제게 도움을 주십시오.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만약 그렇게 해 준다면 앞으로 벌어질 현상금 사냥에서 진효섭 가이드는 제외해 주겠습니다.”
진효섭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현상금 사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 버린 탓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둠의 길드를 잡는 데 유력한 도움을 준 정보원으로서 충분한 금전적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국가안보국을 걸고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