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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71)화 (7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1화

나름 용기를 낸 건데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꽤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요.”

“…….”

“제가 성자는 아닌지라 그건 어려울 듯하네요.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참아야죠.”

안단테는 팔을 굽혀 머리를 받치며 진효섭을 가만히 바라봤다. 느낌 탓인지 거리가 조금 좁혀든 것 같았다.

“진효섭 씨는 오늘 어땠어요. 좋았어요?”

“예. 물론입니다.”

“정말?”

진효섭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은 없었다. 영화도 재밌었고, 요리해서 먹은 밥은 실패였지만 그가 맛있게 먹어 주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 모두 좋았던 추억으로 남으리라. 그와 있으면 색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았는지라 의외라면 의외였다.

다음에 또 그가 올 것을 대비해 진효섭은 이불을 하나 더 사야겠다 생각했다. 컵도, 식기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씩 더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다.

“좋았습니다. 정말.”

“그래. 그렇다면 됐어요.”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진효섭의 이불을 재차 목 끝까지 올려 주었다.

“이제 가을이라 밤이 추워요. 꼭 덮고 자요.”

“예에. 안녕히 주무십시오.”

“응. 잘 자요.”

진효섭이 이불을 손에 쥐고 눈을 꼭 감았다. 코앞에 안단테가 있어 쉽게 잠들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원래 자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진효섭은 금방 잠이 들었다.

안단테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몇 분 되지 않아 깊은숨을 내뱉는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손끝이 진효섭의 코를 톡 건드렸다. 제 생각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이 든 그가 괘씸해 안단테는 코를 가볍게 쥐었다.

“보통, 편하게 잠들 수가 있나?”

좋아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말이지. 두근거림이라든가, 불끈거리는 게 없다니. 안단테가 조금 불퉁한 표정으로 진효섭을 내려다봤다. 잠이 안 온다면 그걸 구실로 삼아 맨몸 운동을 하면 잠이 잘 온다고 꼬셔 보려고 했더니. 결국 자신만 강제로 정조를 지키는 꼴이 됐다.

“궁금했는데 말이지…….”

안단테는 그날, 진효섭이 어떻게 자신을 감당했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그날에 정신을 놓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딱 하나는 알고 있었다. 절대 타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날이 되면 안단테는 굉장히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힘들다고 해도 봐주지 않았을 테고, 그만해 달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날 진효섭의 몸 상태가 그 증거였다.

그런데 진효섭은 어떻게 자신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을까.

“겁이 없나?”

문득 가이드임에도 바락바락 에스퍼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떠올랐다. 모임에서도 그렇고, 혼자 온천으로 간 것도 그렇고, 영 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혼자 두기가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도 다른 에스퍼의 손을 덥석덥석 잡으려고 들었지.’

아무리 같은 길드 사람이라지만, 신디랑 얼마나 말을 나눠 봤다고 그렇게 쉽게 가이딩을 해 주려고 드는지. 정말 겁이 없구나 싶었다.

게다가 진효섭이라면 다른 길드 에스퍼든 뭐든 아파 보인다는 이유로 가이딩을 퍼 줄 것 같았다. 에스퍼가 죄다 가이딩에 집착하는 놈들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진효섭은 이상한 데서 벽을 치고, 이상한 데서 느슨한 사람이었다.

안단테는 저도 모르게 뚱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래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인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차가우면 좋을 텐데. 아무나 가이딩해 주지 않고, 고슴도치처럼 잔뜩 털을 세워 다가오는 에스퍼마다 의심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제 길드에만, 자신의 우리 안에만 두고 싶었다.

“흐음…….”

도르르 시선을 굴린 안단테가 진효섭의 심장께를 바라봤다. 이불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 흉터가 선명히 떠올랐다. 우습게도 그는 가슴에 각인을 새긴 에스퍼의 마음을 이해해 버렸다.

달콤한 향을 흘려대면서 어중간하게 밀어내는 진효섭. 딱딱해 보이면서 속은 말랑말랑하고, 태도는 맨송맨송하다. 앗 하는 새 다른 놈들에게 홀려 갈 것만 같은 진효섭은 자신이 꼬셔 먹은 것처럼 다른 놈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겠지. 상상만으로 있지도 않은 놈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안단테가 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진효섭이 끙 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입술 밖으로 숨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조금 술렁거렸다.

처음이었다. 가이드를 제 옆에만 두고 싶다는 종류의 집착을 느끼는 건.

‘이런 게 에스퍼들의 마음인가.’

새삼스러운 감각이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가이드에게 집착하는 에스퍼가 참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능력을 쓰기 위해 가이드가 필요한 건 맞지만, 굳이 그 가이드여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세상에 가이드는 많고,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 그런데 왜 집착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상성이 맞으면 맞을수록 서로에게 끌린다고 했었나. 그렇다면 자신이 이렇게나 진효섭에게 끌리는 건 그 말대로 두 사람의 상성이 어마어마하게 맞기 때문이리라.

“상성이라…….”

안단테가 손을 움직여 진효섭의 뺨을 문질렀다. 상성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 자신은 벌써 두 명째였다. 그래도 첫 번째 가이드는 잘 맞을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진효섭은 제게 특별할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마음에 든단 말이지.’

색색거리며 숨을 뱉어내는 입술도. 꼭 감은 두 눈도.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로 인해 취향이 바뀐 것 같았다. 선이 굵은 얼굴인데도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였다. 당장에라도 깨워서 붉은 입안을 핥고 싶었다.

청소년 때도 느낀 적 없는 감각이 다소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과연 눈을 떴는데 내가 거기를 물고 있으면 어떤 반응이려나.’

상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귀여운 자식. 앞으로 품에서 놓지 않아야지. 누구에게도 갈 수 없도록. 그 누구도 이 향을 맡을 수 없도록 단단히 봉인해서 제 옆구리에 끼고 다닐 것이다.

* * *

차가운 물이 머리를 적셨다. 가을에 적합하지 않은 온도였지만 뺨에 오른 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진짜 변태.”

진효섭은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뺨에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응? 어…… 아침이고, 우린 연인이니까?’

진효섭은 이불 속에서 머리를 치켜드는 그를 보고 기겁했다. 아침부터 이 무슨 수치스러운 행동인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왔고,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을 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설마, 아침부터 이불 속에서 그런 짓을…….

“하…….”

진효섭은 씻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변태 같은 짓에 흥분한 제 몸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나저나 일어나자마자 바로 욕실로 달려오는 바람에 지금이 몇 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출근은 아슬아슬하지 않으려나. 진효섭은 최대한 빨리 씻고, 젖은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안단테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나?”

가라고 말하기 전에는 집 밖으로 나서지 않을 것같이 굴었기에 조금 의아했다.

머리를 털며 휴대폰을 확인해 봤다. 시각은 여덟 시. 출근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그때, 안단테의 문자가 도착했다. 진효섭은 알림 팝업을 눌러 문자를 확인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자기는 출근 안 해도 되니까 오늘 쉬어요.]

“……맨날 쉬어래.”

진효섭은 시무룩하게 휴대폰을 내렸다. 바쁜 일이 뭔지는 몰라도, 아침에 얘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탓에 조금 섭섭했다. 게다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아마 오늘은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출근을 하나, 하지 않으나 일상에는 그리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쉬면 좋긴 했지만, 동시에 난감했다. 안단테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유난히 쉬는 날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어제나 오늘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다른 길드원의 불만이 커질까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적어도 노아피에 있을 때만큼은 문제없고 싶은데 말이다.

진효섭은 작게 한숨을 쉬며 내일 출근해 안단테에게 꼭 이 점을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잠시 오늘 그냥 출근할까 생각했지만, 진효섭은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노아피 길드원들은 그가 출근할 때만 귀찮은 얼굴로 나오는 것 같았다. 즉, 오늘 가 봤자 아무도 없을 가능성이 컸다.

“장이나 보러 갈까.”

어제 재료를 탈탈 털어서 볶음밥을 했던 터라 냉장고가 텅 비었다. 역시 한 사람이 먹는 것보다 두 사람이 먹는 게 재료 소진이 빨랐다.

진효섭은 머리를 마저 털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곤 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 곧장 밖으로 나섰다. 가을답게 선선한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마트에 가면 뭘 살까. 안단테가 또 놀러 올 테니 이번에는 식자재를 조금 더 많이 사면 좋지 않을까. 미국에서 살았다고 했으니 치즈 요리는 다 좋아할 것 같은데. 진효섭은 다음에 무슨 요리를 해 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진효섭 가이드.”

그때, 어디선가 제 이름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신해창 에스퍼?”

“오랜만입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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