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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70)화 (7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0화

진효섭의 성격처럼이나 깔끔하고 정갈하게 묶인 리본이 스륵, 소리를 내며 풀렸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안단테의 엄지가 복숭아뼈 밑을 눌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리본을 푸는 손길이 야살스러워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단테는 신발 끈을 완벽히 풀고는 반대쪽 다리도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신발이 바지를 더럽히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손길은 정확하고 빠르게 신발 끈을 풀었다. 단순 매듭만이 아닌, 전부를.

완벽히 분리된 끈이 바닥에 똬리를 틀었고, 신발은 발가벗은 느낌으로 현관에 덩그러니 놓였다. 여차해도 저 신발을 신고 도망치지는 못하겠구나 싶은 모양새였다.

“됐다. 이제 들어가요.”

안단테는 예쁘게 웃으며 진효섭의 손을 이끌었다. 정말 능구렁이가 백 마리쯤 들어찬 것 같은 남자였다.

“이불은 제가 깔까요?”

“……이불을 왜 깝니까.”

아직 밖에 해가 중천이었다.

“그야, 우리 가이딩은 이불 위에서 해야 하잖아요.”

“가이딩이라면 며칠 전에 해서 접촉만으로 됩니다.”

“그럼 가이딩이 아닌 연인 간의 더 깊은 발전을 위해서라면 돼요?”

진효섭이 입을 다물었다.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이지만 귀 끝이 빨갰다. 안단테는 그를 보며 작게 웃다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려 의자에 앉았다. 한 의자 위에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채 앉아 있는, 아주 이상한 자세였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그야 연애 중이죠.”

안단테는 다시 한번 예쁘게 웃으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이런 게 연애 아니겠어요? 어제는 여행 겸 밖에서 놀았으니까 오늘은 집 안에서 뒹굴뒹굴하는 거지.”

진효섭은 뭐라 더 말하지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움칠거리던 손이 그대로 허벅지에 안착했다.

“이불은 안 깔 겁니다. 오늘은 좀…….”

“난 뭐든 좋아요. 지금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거든.”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에 말투도 어딘가 모르게 밝고 통통 튀는 느낌이었다. 그를 가만 들으며 보고 있으려니, 어제 그가 말했던 출생지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진효섭은 미국 동부에 있었다. 그래서 동부와 서부 사람들의 차이를 쉽게 느꼈다. 동부에 있는 사람과는 달리, 서부 사람은 하나같이 저런 느낌이었다. 자유롭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타입. 마른하늘에 내리는 여우비처럼 가끔은 변덕스럽지만, 그만큼 특정 짓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

처음에는 도심이 더 그와 맞아떨어진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바다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특히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시꺼먼 밤바다와 어울렸다.

그 위에 반짝이는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마는 바다. 아름다움에 취해 죽을 것을 알고도 기쁘게 몸을 던지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봐요?”

“……그냥요.”

“그냥? 애매한 대답이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했다. 장난으로 눈을 반짝이던 안단테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효섭의 허리를 더 꽉 안았다. 진효섭의 시선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가 뭔가를 물어보는 건 무서운 일이다. 저도 모르게 마음을 드러낼까 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줄까 봐. 어느 쪽이든 진효섭은 무서웠다.

그래서였을까. 몸이 타이밍 좋게 상황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줬다. 꼬르륵.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배 쪽에서 큰 진동이 일었다. 손이 허리께에 있었으니 그가 가장 먼저 느꼈을 터. 역시 안단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효섭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귀 끝이 붉어서인지 안단테가 진효섭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큭…….”

떨리는 몸과 새어 나오는 웃음이 사람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냥 배고프냐고 물으면 되지. 왜 이렇게 웃고 그러나. 괜스레 투정이 솟아났다.

“우리 일단 뭘 하든, 밥부터 먹고 할까요?”

시켜 먹는 것에 익숙한지 안단테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자고로 집에 있으면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쩐지 돈이 아깝게 느껴져 진효섭은 곰곰이 고민하다 조심스레 제안했다.

“제가 만들까요?”

“만들어 주려고요?”

“예. 볶음밥 정도는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저녁마다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건 아니고, 여러 종류의 볶음밥을 만드는 게 재밌어서였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서 해 먹는다는 게 생각보다 취미에 맞았다. 그걸 타인에게 대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안단테 역시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효섭은 즉시 냉장고로 향했다. 전에 만들고 남은 자투리 채소들이 속속히 나왔다. 그것들을 작은 부엌에 놔두자 안단테가 옆을 서성이며 빤히 바라봤다. 워낙 커다란 덩치여서 그런지 존재감이 숨겨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요리하는 거라 긴장돼 진효섭은 평소와 달리 삐걱거리며 채소를 썰었다. 동동 소리를 내는 칼질이 불안했다. 그를 가만히 보던 안단테가 진효섭 뒤로 다가왔다. 이윽고 두 손이 부드럽게 칼과 채소를 쥐었다.

“그렇게 하면 손 다쳐요.”

그는 손을 둥글게 말아 양파를 쥐곤 부드럽게 칼질을 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능숙했다. 아까도 배달부터 시키려 들고, 늘 밖에서 식사해 요리는 전혀 못 하는 줄 알았더니.

“능숙하시네요.”

“음. 그렇네요. 몇 번 해보진 않았는데, 칼질에는 자신이 있어서요.”

어쩐지 건전하게만 들리지는 않는 말이었다. 진효섭은 반듯하게 잘린 양파와 당근 더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못하시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번에 머리 감겨 주신 것도 그렇고.”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저는 예전부터 뭘 하든 잘했거든요.”

어떻게 들으면 재수 없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그는 진실만을 말하듯 덤덤했다.

“못하는 게 없었어요. 뭘 해도 노력 없이 잘됐거든요. 그래서 생긴 단점이라면, 못하거나 능력 없는 놈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됐다는 정도? 하지만 뭐, 그것도 에스퍼로 험하게 굴러 보니까 이해되더라고요.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멍청한 놈들 역시 있는 거겠죠.”

진효섭은 어쩐지 그 멍청한 놈들에 자신이 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시무룩해졌다. 자신은 뭘 해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열심히 할 뿐이지.

그런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걸까. 안단테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자기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가 진효섭의 얼굴을 만지려다가 양파를 쥐었던 것을 떠올린 건지 손을 거뒀다. 대신 입술이 눈가에 닿았다.

“얼른 만들어 줘요. 오늘따라 이상하게 식욕이 도네.”

“예.”

진효섭은 다시 볶음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채소를 볶고, 김치도 넣고, 밥도 넣었다. 감시자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2인분은 처음이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군데군데 탄 채소가 보였고, 김치에 비해 밥이 너무 많았다.

민망한 마음에 진효섭은 내놓기를 머뭇거렸지만, 안단테는 군말하지 않고 볶음밥을 비웠다. 한 그릇을 뚝딱하다 못해 양 조절을 못 해 만든 남은 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밥까지 다 먹자, 할 일이 없어졌다. 뻘쭘하게 선 진효섭을 이끌어 준 건 또다시 안단테였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품에 안고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영화를 봤다. 저번과 달리 이번에 본 영화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유익했고, 시간은 느긋하게 흘렀다. 제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알찬 시간이었다.

처음 가져 본 자신의 집. 대출로 마련한 전셋집이지만, 그래도 온전한 제 공간이었다. 예전에는 온전한 공간을 가지지 못해 외로웠는데, 막상 혼자 살아 보니 몇 달 만에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공간에 안단테가 있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타인을 향한 감정이 긍정적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죄다 어릴 때 이후 처음 느껴 보는 것들이었다.

부모님이 있을 때는 사랑이라는 걸 받았던 것도 같지만, 혼자 서게 된 이후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는 감정이란 감당하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언어를 배웠고, 차별을 견뎠다. 가이드로 발현 후 각인을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혼자인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겪어 본 관계는 조금 달랐다.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모든 게 어제 본 밤하늘처럼 반짝였다. 그중 가장 반짝이는 건, 안단테였다.

그래서일 거다. 처음 접해 보는 사랑이 너무나도 반짝여서. 그래서 놓지를 못하고 이렇게 붙잡고 있다. 가능하다면 이 시간이 그대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진효섭은 시간을 보냈다.

좋은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느끼기 마련이다. 어느새 밤이 다가왔다. 진효섭은 깔지 않겠다고 미루던 이불을 펼치고 누웠다.

“춥진 않으십니까?”

“괜찮아요.”

진효섭은 이불이 하나밖에 없어 맨바닥에 누운 안단테를 불편하게 바라봤다. 손님에게 이불 정도는 대접하고 싶었기에 제 것을 주려고 했지만, 안단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실랑이에서 지고 이렇게 혼자 이불을 덮고 눕게 됐지만 묘한 죄책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추우시면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해 주게요?”

안단테가 모로 누운 채 진효섭을 바라봤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거리의 불빛이 그의 이목구비를 비췄다. 아침과는 느낌이 다른 안단테의 얼굴이 눈에 담겼다.

“제 이불 드리겠습니다.”

“에이. 난 같이 쓰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마치 아쉽다는 듯한 말에 진효섭은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이불을 들었다.

“……같이 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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