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69화
“가이딩하겠습니다.”
옆에 앉은 안단테의 눈치를 보며 진효섭이 신디의 손을 잡았다. 힘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자 신디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안단테는 그런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얼마나 지독한지, 가이딩과 관계없는 체르니나 플랫 같은 에스퍼까지 안단테를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 진효섭 역시 그 시선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자꾸만 손바닥에 땀이 차 괜스레 손을 잡은 신디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결국 진효섭은 안단테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왜요. 부담스러워요?”
“그, 게…….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도 참아 봐요. 나는 지금 본디지 파트너로서 정당한 일을 하는 중이니까.”
이유 모를 말에 침묵하자 안단테가 설명을 덧붙였다.
“내 가이드가 너무 예뻐서 혹시 신디가 나쁜 맘이라도 먹지 않을까 감시하는 중인 거죠.”
그러나 설명이 덧붙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같았다. 진효섭의 집중이 흐트러지자 자연스레 신디에게 흘러들어 가는 힘 역시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게 쉽사리 되지 않았다.
얼마나 그 상태가 지속됐을까. 돌연 앞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지랄이 풍년이네.”
진효섭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앞을 바라봤다. 거친 말의 주인공은 신디였다. ‘나, 가이딩…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하며 어수룩하게 말하던 사내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어투였다.
“나쁜 마음이라니. 단장 약 먹었어?”
신디가 진효섭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빡치네. 다들 미쳐 돌아서는.”
“신디는 뭐 때문에 갑자기 기분이 상했을까.”
안단테는 갑작스러운 신디의 변화에도 싱글거렸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디가 안단테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언제나 졸린 듯 눈을 뜨고 있던 그 같지 않았다. 번쩍 뜬 눈은 굉장히 차가웠다.
“하나같이 나사 빠진 것처럼 굴어대는 게 너무 열받아서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신디가 옆을 흘끔 바라봤다. 표정 또한 평소와는 딴판이었다. 그가 입꼬리를 비틀며 진효섭을 아래위로 훑었다. 마치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대체 저게 뭐가 예뻐? 어깨도 쩍 벌어져서는.”
“그게 예쁜 거지.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안단테의 말에 체르니가 적극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신디가 콧방귀를 뀌었다.
“지랄. 눈이 다 발바닥에 달렸나.”
“네 취향이 너무 확고한 건 아니고?”
“웃기고 있네. 예전이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새끼인 거 다 알아.”
신디가 사납게 진효섭을 쏘아봤다.
“어차피 일회용인데, 체르니도 단장도 적당히 좀 해. 눈꼴시어 보기 싫으니까.”
“말이 심하다. 신디.”
안단테가 경고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보통은 항복했을 테지만, 신디는 그러지 않았다. 뭐가 기분이 나쁜 건지 그는 잔뜩 꼬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한 건 단장이야. 곧 있으면 던전에 가는데, 가이딩 한 번 받았다고 너무 들뜬 거 아냐?”
“던전에 간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우울해해야지. 우리는 그래야 하잖아.”
날카로운 말에 안단테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경고의 말을 뱉은 건 안단테가 아닌 코다였다.
“그만해. 신디.”
신디가 짜증스럽게 욕을 중얼거렸다. 그는 코다에게만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몰아치는 분노를 참기 힘든지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다 잊고 있는 거지.”
그가 싸늘하게 혼잣말하며 적대적으로 진효섭을 쏘아봤다. 마치 분노의 원흉이 진효섭이라도 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난 저딴 가이드 인정 못 해. 나한테 가이드는 한 명뿐이야.”
동시에 모든 길드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린 게, 무언가 이상했다. 진효섭은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 느꼈다.
“신디.”
그때, 안단테가 나직하게 신디를 불렀다. 아까의 경고는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듯 그의 표정이 더없이 싸늘했다. 전에 없을 긴장감. 자칫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넌 그냥 입 닫고, 꺼지는 게 좋겠다.”
“X발. 안 그래도 꺼질 생각이야. 가이딩도 개같이 받아서 기분도 더럽거든.”
쾅! 신디는 탁자를 발로 차고 사무실을 나섰다. 플랫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저 성질머리.”
“괜히 미친놈이겠어? 저 새끼 이중인격이 한두 번도 아니고.”
길드원들은 저런 신디도 익숙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제야 진효섭은 체르니가 전에 신디를 두고 했던 설명을 떠올렸다. 이중인격이라니.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자기, 안 놀랐어요?”
“예? 아. 예.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신디가 몸이 안 좋아서 예민했나 봐요. 평소에는 조용한 놈인데, 가끔 의미 없이 화를 내곤 하거든요.”
“예에…….”
진효섭은 아직도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저 예민해서 의미 없이 화를 냈다고……. 그렇게 보기에는 그의 말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길드원들의 반응도 하나같이 이상했고. 신경 쓰지 않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보다, 오늘 가이딩도 했으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어요.”
“예? 벌써 말입니까?”
진효섭은 벽에 걸린 아날로그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오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가이딩하면 바로 집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가이딩이 중반에 끊기기도 했고. 또…… 쌍둥이 에스퍼의 가이딩도 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보니까 많이 다친 것 같았는데.”
벌써 며칠이나 지났으니 괴로울 게 뻔했다. 그러나 안단테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신디에 이어서 이번에는 쌍둥이네. 왜 이렇게 신경 써요?”
“예? 그, 그거야 제가 할 일이 그거니까…….”
“됐으니까 신경 쓰지 마요. 그놈들 가이딩은 알아서 하겠지. 그보다 이렇게 에스퍼 생각해 주는 거 보니까 힘이 많이 남아도나 봐.”
“그게 아니라…….”
“그런 거라면 남은 힘은 저한테 가이딩해 줘요.”
“……예?”
“나 해 달라고.”
안단테가 기대로 반짝이는 눈을 한 채 환하게 웃으며 스스로를 콕 짚어 가리켰다. 매번 가이딩을 피했기에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몸이 안 좋으십니까?”
“응. 안 좋아요. 나, 다른 사람들보다 독이 두 배로 빨리 쌓이거든요. 특이체질이라서.”
진효섭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독이 두 배로……. 그랬구나. 확실히 그런 거라면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알겠습니다. 가이딩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얼른 집에 가야겠네.”
손을 내밀려던 진효섭이 얼빠진 표정으로 안단테를 바라봤다.
“여기서 할 순 없잖아요. 당연히 집에 가서 해야지.”
안단테는 환한 웃음으로 답한 후 냅다 진효섭을 안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공주님 안기에 당황한 진효섭이 어깨를 밀어냈지만, 단단한 몸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얼른 가자, 자기야.”
장난기로 포장됐지만, 100% 진심인 말이었다.
* * *
“으읍. 흡.”
숨을 쉴 틈도 없이 밀어붙여졌다.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안단테는 신발을 다 벗기도 전 현관에서부터 입술을 맞춰 왔다. 가이딩을 끌어 올릴 준비가 채 되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어질러졌다.
목 안으로 끙끙 앓으며 진효섭이 안단테의 목을 감싸 안자 그가 뜨거운 한숨을 쉬며 입술을 재차 들이밀었다.
“자, 잠깐. 좀, 신발부터 벗고 들어…… 저기, 진정, 좀.”
“내가 널 두고 어떻게 진정해.”
안단테가 모자라다는 듯 입가에 버드 키스를 연신 남겼다.
“효섭아, 우리 그때 어떻게 했는지 좀 말해 봐 봐.”
쪽, 쪽.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다를 반복하던 그가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물었다.
“응? 어떻게 가이딩했어. 너는 어땠고, 내 반응은 어땠는데? 궁금해.”
다만 그 어떤 것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냥…… 평범했습니다.”
“어떻게 평범했는데?”
안단테가 진효섭을 벽에 밀치고 그의 귀 옆에 양 팔꿈치를 댔다. 그러곤 품 안에 가두듯 바투 붙어 섰다.
“이렇게, 키스로 시작했나?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그랬을 리가 없는데. 분명 다른 걸 먼저 들이댔을 것 같단 말이지.”
진효섭의 얼굴이 화르르 붉어졌다.
“아, 역시.”
즐겁다는 듯 웃어대는 안단테의 모습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눈치만 빨라서는. 기억도 못 하면서.
“들어가시죠. 길드장님.”
딱딱한 호칭에 안단테는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억지로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네, 가이드님.”
장난스럽게 대꾸한 안단테가 돌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들어가자고 했더니 이건 또 무슨 짓인가 싶어 진효섭이 멍하니 그를 내려다봤다. 시선을 느꼈을 텐데, 안단테는 설명 하나 없이 대뜸 진효섭의 발을 잡아서 제 무릎 위에 올렸다.
“혀, 형!”
“쉬이. 내가 해 줄게요.”
당황한 진효섭이 다리에 힘을 줬지만, 이미 잡힌 이상 발을 뺄 수는 없었다. 안단테는 즐거운 얼굴로 진효섭의 신발 끈을 천천히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