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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68)화 (6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68화

“뭐야, 그게. 아무튼 귀엽다니까.”

안단테가 진효섭을 향해 몸을 숙였다. 동시에 그의 손이 진효섭의 차 시트를 잡았다.

갑자기 훅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보자, 눈앞에서 싱글싱글 웃는 안단테의 얼굴이 보였다.

“키스 타이밍이었나요? 기대하게 만들어서 미안한데, 난 그저 편하게 별을 보게 해 주려던 것뿐이에요.”

보란 듯이 안단테가 진효섭의 의자 옆에 붙은 레버를 눌렀다. 지잉 소리와 함께 진효섭의 등받이가 뒤로 젖혀졌다.

착각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네모나게 뚫린 차 천장 위로 보이는 별들에 진효섭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

말 그대로 별이 얼굴 위로 쏟아질 듯 많았고, 중앙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선명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맑고 반짝이는 하늘이었다.

“예쁩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살 때는 많이 봤었다. 살던 곳이 시골이었기에, 밤에 할 수 있는 게 별구경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이 지겹게만 느껴졌는데.

갇혀 살면서 하늘을 못 보고, 한국에 도착해선 시꺼멓게 물든 하늘만 봤더니 이것도 그리웠었나 보다. 지금이라도 눈에 많이 새겨 둬야겠지.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진효섭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빤히 바라봤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들을 이어서 별자리를 추측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다. 문득, 안단테도 같은 광경을 보고 있을까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천장이 아닌 자신을 보고 있었다.

“…….”

“…….”

서로 말없이 응시했다. 주위는 어두워졌고,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안단테의 표정이 묘한 건 분명했다.

“효섭 씨.”

“예.”

“한번 웃어 볼래요?”

“…….”

진효섭은 당혹스러워졌다. 웃으란다고 바로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안단테는 진효섭이 웃기를 기다리듯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결국 진효섭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미간은 찌푸린 채로 어중간하게 눈을 뜨고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리는, 좀 우스운 미소였다. 그 억지 미소에 안단테가 어깨를 떨었다.

“풉…….”

그가 입술을 틀어막으면서 웃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안단테는 한참을 웃다가 뒤늦게서야 다 웃었는지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뭐랄까, 진효섭 씨는…….”

그는 말을 이으려다 말고 생각에 잠겨 한동안 침묵했다. 뒤이을 말을 고민하는 기색이었는데 어쩐지 표정이 이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표정이 아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귀엽네요.”

끝맺어진 말에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고작 이 정도의 말로 설레다니. 자신이 정말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 역시 이렇게 뛰려나. 거기까지 생각한 진효섭의 심장이 차차 느려졌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 진효섭은 착잡해지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다시 천장으로 얼굴을 돌렸다. 안단테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4일로 충분히 알게 됐다. 그가 향에 취해 정신을 잃은 당시, 진효섭은 충동적으로 물었었다.

‘혀, 형은…… 절 좋아하십니까?’

관계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기에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유들유들한 태도로 좋아한다고 말했겠지. 그걸 예상하고 물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좋아해? 내가, 널?’

비웃음과도 닮은 대답이었다. 그는 허리를 뭉근하게 움직이면서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글쎄, 내가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후…… 없어서. 그래도…… 네 몸은 나쁘지 않아. 아니, 좋네. 달콤해. 돌아 버릴 만큼…….’

몸이 굳고 뜨거웠던 머리가 단번에 식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몸은 좋지만 정작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뜻에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왜 사귀자고 말했던 걸까. 왜 좋아하는 척했던 걸까.

‘그, 그럼…… 그럼 왜…… 왜 사귀자고 한 겁니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받을 수 있는 건 지금밖에 없을 테니까. 등에 배어난 땀이 식을 만큼 긴장했다. 물어봐 놓고서도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 귀를 막고 싶어졌다.

향에 취한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고 속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필요하니까.’

그제야 진효섭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필요에 의해 연인 관계를 자처한 것임을.

고작 이용 가치가 있는 가이드. 안단테에게 진효섭은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의 숨은 속내를 알아차리자 눈물이 찔끔 흘렀다. 기분 좋은 열감과는 달리 배신감이 치켜들고,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효섭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

상대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에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처음 가져 본 사랑이라는 감정을 놓지 못하는, 그런 자신은…… 멍청한 게 분명하겠지. 진효섭은 우울하게 별을 올려다봤다. 아까까지는 예쁘게 빛나 보이던 별이 눈물에 비친 반짝임처럼 슬프게 보였다.

* * *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오랜만에 길드원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효섭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들 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코다였다.

“진효섭 가이드.”

“예?”

“가이드 성폭력 신고는 번호 11*. 회사 관련 부당한 대우에 관해서는 번호 21*. 정신 건강에 대한 상담은 15**-110입니다.”

“……예?”

“혹시 모르시나 싶어 말씀드립니다.”

코다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목덜미를 바라봤다. 나름대로 가린다고 긴팔 티와 긴바지를 입었지만 목은 완벽히 숨길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더 쉬었으나 그 며칠 사이에 멍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시퍼렇게 올라와 뚜렷해졌다.

진효섭은 난감해하며 자국이 선명한 목을 쓸었다.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전 괜찮습니다.”

“오해는 무슨.”

체르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이는 것보다 안은 더 심한 것 같구먼.”

아니라고 얘기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알 만하다는 듯 끌끌 혀를 찼다. 플랫이 나직하게 말했다.

“안 죽은 게 다행이지 뭘 바라. 난 송장 치워야 하는 줄 알았어.”

“음. 사실 나도.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강제로 한 것 같은데 그날 제 발로 단장한테 간 거니까, 그것 또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형 취향으로 보기에는 접촉 이상 안 하겠다는 조건을 건 거랑 맞지 않고. 애매하네요.”

체르니는 진실이 뭐냐는 듯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으나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는 입을 닫는 게 반은 갈 것이다.

그때, 그들 사이로 안단테가 끼어들었다.

“다 내 잘못이야.”

안단테는 진효섭의 옆에 앉아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목을 살살 쓸었다.

“그날 제정신이 아니어서.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자기.”

“괜찮습니다.”

“내 자기는 마음도 넓지.”

안단테가 예쁘게 웃으며 진효섭의 어깨를 끌어안자 팀원들이 눈꼴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더 과하게 찐득거렸다.

“후후.”

사무실 내 안단테만이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티 나는 그 표정에 플랫이 의외라는 기색을 띠었다.

“뭐야. 단장 몸 상태 되게 좋아 보이네요. 진효섭 가이드한테 가이딩 잘 받았나 봐요?”

“응. 엄청.”

안단테가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무척이나 상쾌한 몸놀림을 길드원들이 기민하게 눈치챘다. 하나같이 표정이 달라지고 진효섭을 보는 시선이 한층 결을 달리했다. 안단테의 말뜻을 오래된 팀원들은 알아챈 것이다.

“흐음……. 능력이 더 대단한가 보네.”

“얼마나 대단하길래?”

진효섭에게 가이딩을 받아 본 적 있으면서도 눈을 빛냈는 길드원들이었다. 그중 플랫과 체르니가 가장 관심을 보였다. 길드원들의 관심에 안단테는 진효섭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게 가까이 붙였다.

“궁금해하지 마. 알려고 하지도 말고.”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말에는 뼈가 있었다. 플랫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뭔 개소리를 하냐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미묘한 분위기가 이어지려는 찰나, 저 멀리에 있던 신디가 비척비척 걸어왔다.

“나, 가이딩…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아, 맞네. 그러고 보니 신디 너 던전에 같이 갔었지. 흠, 필요하긴 하겠네.”

안단테가 진효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어요?”

“예. 가능합니다.”

어쩐지 탐탁지 않은 말투였으나 진효섭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디는 피곤한 얼굴로 진효섭 앞에 자리 잡았다. 진효섭이 손을 잡으려고 하자, 안단테가 갑자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해 보니 나랑 가이딩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 괜찮습니다.”

진효섭은 몸 상태를 확인해 보고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5일씩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충분합니다.”

“진짜?”

“예. 정말-”

“진짜로 괜찮다고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예……? 아뇨. 저 정말 괜찮습니다.”

“……그렇다면야. 알았어요.”

웃는 낯인데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확실히 보였다. 어째서인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진효섭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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