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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67)화 (67/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67화

“……괜찮습니다.”

눅눅해진 목소리에 안단테는 진효섭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품에 안긴 몸이 힘을 푸는 게 느껴졌다. 곧, 뜨끈한 얼굴이 쉽사리 품에 기대며 뺨을 비벼 왔다.

신기한 변화였다. 분명 살짝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어색해하며 볼을 붉히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진효섭이 자신은 기억도 나지 않는 며칠 사이에 접촉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안단테는 더 부드럽게 그를 토닥였다.

그러나 여전히 다정한 손짓과는 달리,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하룻밤으로 완벽하게 끝낸 가이딩. 뒤에 남지 않는 성적 충동. 역가이딩에도 죽지 않는 가이드. 진효섭을 안고 있는 안단테의 눈이 계산적으로 빛났다.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됐다. 이미 상황 파악은 완료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던 S급 가이드 진효섭. 그 인식이 처음과는 다소 달라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길드를 해체함과 동시에 진효섭 역시 수고비와 함께 헤어질 생각이었으나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더 강하게 안았다. 절대로 놓칠 수 없지.

“효섭아.”

다정한 부름에 진효섭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미안해. 다음에는 내가 더 잘해 줄게.”

진효섭의 표정이 약간 흐릿해졌다.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는 그저 서글프게 웃고 말았다.

“네. 감사합니다.”

“딱딱하게 대답하기는.”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진효섭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다정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그나저나, 첫날밤이 영 허름한 곳이네요. 이렇게 추억을 남기고 갈 순 없죠. 우리, 미국에 온 김에 데이트나 하다 갈까요?”

“예? 데이트 말입니까?”

“네. 데이트.”

상쾌한 얼굴로 환히 웃은 안단테가 진효섭의 두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곤 연신 싱글싱글하며 진효섭의 코끝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뭐든 말해 봐요. 지금 기분으로는 별도 따다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 * *

앞에 놓인 음식을 훑는 시선이 시큰둥했다. 진효섭은 따끈한 빵을 들다 말고 눈치를 봤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안단테는 제 몫의 평범한 핫도그를 들어 보였다.

“먹고 싶다는 게 고작 이런 거니까 그렇죠. 좀 비싼 걸 불러도 된다니까. 평소에 먹어 보지 못한 것들 말이에요.”

랍스터라든가 캐비어 등 귀한 음식들이 찾아보면 여럿 있을 텐데, 진효섭은 그런 선택지를 모두 놔두고 핫도그를 선택했다.

“전 이게 좋습니다.”

진효섭은 노란 머스터드가 뿌려진 핫도그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길거리에서 사 먹는 거지만 방금 만들어서 따듯했다.

“저번에도 느꼈는데, 소시지 좋아하나 봐요.”

“예전에 자주 먹던 겁니다. 핫도그라든가, 프랑크푸르트소시지 같은 것들이요.”

진효섭은 종이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좋아했는데, 상황이 여의찮아서 자주 먹지 못했습니다. 그때 기억 탓인지 자주 생각이 납니다.”

“고작 핫도그를?”

“예.”

진효섭은 다시 한번 핫도그를 크게 베어 물었다. 작은 입이 오물거렸다. 노란 소스가 잔뜩 뿌려져 있는 걸 먹는데도 입에 묻는 게 하나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먹는 게 익숙해 보였다.

그나저나, 고작 핫도그 따위를 먹기에 여의찮은 상황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추측해 봐도 S급 가이드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 물어보면 먹던 것도 내려놓을 터. 안단테는 궁금증을 삼켰다.

“더 말해 봐요.”

“예? 뭘 말입니까?”

“좋아하는 거.”

안단테가 턱을 괸 채 핫도그를 든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다.

“싫어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전부 다 말해 봐요. 뭐든 상관없어요.”

“…….”

진효섭은 들고 있는 핫도그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다 말고 어물쩍 입을 열었다.

“어디 다니기엔, 제가 몸이 좀…….”

“내가 업고 다닐 테니까 그쪽은 그냥 둘러보기만 해요. 피곤하면 자고, 쉬고, 누워서 보고 싶은 거 보고.”

내가 너한테 뭔들 못 해 줄까.

“말했잖아요. 내가 오늘 다 해 주겠다고.”

안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진효섭은 유독 잘해 주는 것에 약했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줘도 간이고 쓸개고 빼 줄 듯이 구는 타입이다. 그렇기에 이번 역시 얼굴을 붉히며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효섭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왜요? 온 김에 이것저것 다 해보면 되지. 돈 걱정은 하지 마요. 내가 있잖아.”

“아뇨, 그게 아니라.”

진효섭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뭇대다 이어 말했다.

“……부담스럽습니다.”

“뭐가? 설마 내가요?”

“아뇨. 저한테 뭐든 해 주려고 하는 것 말입니다. 저는 드릴 게 없지 않습니까. 너무 받기만 하는 게 죄송합니다.”

“왜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게 물건이든, 감정이든 말입니다.”

어느새 먹던 핫도그도 내려놓은 채 진효섭이 말했다. 일방적인 관계는 지치기 마련이라고.

“전 적당히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훨씬 더 받은 게 많은데.”

안단테가 제 몸을 툭툭 건드렸다.

“가이딩. 엄청나게 받았잖아요. 이걸 갚으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이딩은 제가 길드 소속인 이상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월급도 받지 않습니까.”

“고작 월급으로……. 그렇게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으면 접촉 가이딩 이상은 싫다는 조건을 깬 대가라고 생각하든가요.”

“하지만…….”

“내가 주는 거에 깊이 생각하지 마요. 나는 좋아서 주는 거고, 특별히 내가 준 만큼 돌려 달라고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결국은 바라게 돼 있는 거 아닙니까?”

진효섭이 안단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박에 갇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되지 않았을 때 상대가 지치는 걸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안단테가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라지 않아요. 내가 바라는 건 진효섭 가이드거든요.”

이미 그를 얻었으니,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연인 간의 대화로 걸맞은 달콤한 말이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이번에도 연인이 하는 말에 수줍게 웃기는커녕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단테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흠. 그래도 자기가 싫다고 하면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그냥 제안만 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까요?”

그제야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진효섭의 모습에 안단테가 핫도그를 들이밀었다.

“먹어요. 좋아한다면서.”

“예.”

진효섭이 다시 핫도그를 들고 오물거렸다. 맛있는지 미간이 조금 느슨해졌다. 가만 보고 있자니 안단테 역시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아기 새에게 밥을 먹이는 뿌듯한 기분. 몸 상태가 좋아서 그런가 별 게 다 귀여워 보였다.

“진효섭 씨가 부담스럽지 않고, 둘 다 재밌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제 곧 저녁이 될 것 같은데 별이라도 보러 갈까요?”

그거라면 진효섭도 싫어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예상을 빗나간 행동만 보인 진효섭이었지만, 이것만큼은 맞았는지 그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별 보는 거 좋아합니다.”

“다행이네. 그럼 핫도그 다 먹고 출발하죠.”

“예.”

잠시 후, 그들은 차를 타고 곧장 언덕을 지나갔다. 진효섭에게는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게 고역이긴 했지만, 푹신한 시트와 잘 닦인 길 덕분에 그리 괴롭진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검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아직 별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풍경만으로도 감탄하기에는 충분했다.

“예쁘죠? 예전에 미국에서 살 때 자주 왔던 곳이에요. 사람도 없고, 주위에 불빛도 없어서 별이 잘 보이거든요.”

“미국에서 사셨습니까?”

“네. 서부 쪽이요. 체르니도 서부 쪽에서 살다 왔는데…… 아, 맞다. 우리 둘 다 미국 출신이에요. 한국계 미국인.”

“그랬습니까.”

“자기는 출생지가 한국이에요?”

허를 찌르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진효섭은 표정을 굳혔으나 대답을 피하지는 않았다.

“예.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안단테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지자 진효섭이 어물어물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계속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게 처음인지 말을 잇는 게 어색해 보였다.

“어릴 때 한국에서 자랐기도 하고, 한국말도 꾸준히 했었던 터라 어색하진 않지만, 모르는 건 많습니다. 본디지 파트너라든가요.”

“그랬죠. 처음에 본디지 파트너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말했으니까.”

안단테가 운전대에 팔꿈치를 대고 진효섭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지금도 그런가?”

“예. 지금도 그렇습니다.”

“음? 왜지. 아직도 위험성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

“형이 있잖습니까.”

그 말에 안단테가 허를 찔린 듯 눈을 깜빡이던 것도 잠시, 작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짓는 그린 듯한 예쁜 미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게 아닌, 정말 제 감정이 드러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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