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66화
“하아…… 등신 새끼가 따로 없네.”
안단테가 짜증스럽게 마른세수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하필 타이밍이 안 좋았다. 그날에는 가이드가 아닌 놈을 붙잡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방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수면제든 진정제든 한계치까지 삼켜도 소용이 없는 제 몸은 그게 답이었다.
‘그래서 진효섭을 데리고 오지 말라 체르니에게 신신당부했던 건데.’
안단테는 난잡한 흔적이 가득한 진효섭의 등을 빤히 쳐다보다 손을 뻗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이 죽는 건 던전에서 많이 봤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전날 자신과 잤던 흔적이 있는 사람이 죽어 있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진효섭의 심장 바로 뒤쪽을 향하는 손끝이 조금 차가웠다. 어쩐지 다시금 후회가 차올랐다. 절대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안단테는 짜증스럽게 입술을 짓씹으며 진효섭의 심장 바로 뒤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두근두근, 손안에서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을 느끼고 있으려니 심장께에 기이한 두근거림이 퍼져 나갔다. 열기와 함께 퍼지는 감각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때, 손바닥 아래서 미약한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음…….”
진효섭이 몸을 뒤척이며 검은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얼굴이 드러났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는지 진효섭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깜빡이더니, 몇 번 속눈썹을 움직이고는 얼굴을 붉혔다.
“자, 잘 주무셨습니까?”
“…….”
안단테는 진효섭의 터진 입술 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귀밑부터 목덜미까지, 죄다 이빨 자국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목이 졸리기라도 했는지 손자국까지 남았다.
“저…… 몸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지금 몸 상태를 살펴야 할 것은 어딜 봐도 진효섭이었는데, 그는 도리어 안단테를 걱정했다. 그것에 어이없어할 틈도 없이 안단테는 뒤늦게 제 몸을 살폈다.
내려다본 상체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고, 온몸에선 나른함이 감돌았다. 잠에서 깼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 푹 자고 일어나 근육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이 가능한 일이었다니. 머리는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단테는 요 몇 년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지는 탓이었다. 마치 독이 온몸으로 침범해 혈관을 죄다 터뜨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에스퍼로 발현했을 때부터 안단테는 독이 빠르게 쌓이는 편이었다. S급 가이드에게 한계치의 가이딩을 받아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가슴팍에 상처가 생긴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상처를 없애기 위해서 많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았었다. 정체를 숨기고 가이딩 받아야 하는 상황도 복잡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상처는 그 어떤 S급 가이드를 거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이딩은 점점 더 스트레스로 자리 잡았다.
하필 안단테는 가이딩을 받으면 성적인 충동이 치솟는 이상한 체질이었고, 조금만 가이딩을 받아도 그 충동을 참는 게 쉽지 않았다. 충동은 3일 정도 지속됐고, 상처를 없애지 못한 몸은 고작 2-3일 정도만 잠잠하다가 다시 지독해졌다.
결국 가이딩은 고작 10분의 미적지근한 감각만을 주다가 3일을 욕구에 충실한 괴물로 만들고, 다시 지독한 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미칠듯한 성적 충동과 극한의 몸 상태, 그리고 이번에도 불가능했다는 허탈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고 있는 상대가 싸늘한 시체가 되리라는 걸 아는 안단테에게 가이딩은 자제력 테스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이딩을 기피했다. 어차피 상처를 없앨 가이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 생각을 바꿔먹으니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래, 그걸로 정말 충분했는데…….
“어디 안 좋으십니까?”
입을 다문 안단테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진효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허리를 일으키며 작게 움찔거렸지만, 용케 쓰러지지는 않았다. 진효섭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안단테의 이마를 짚었다.
“분명, 다 가이딩한 것 같았는데……. 아직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까?”
“어떻게 가이딩했는데.”
“예?”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을 잡아챘다.
“기억이 안 나. 네가 어떻게 날 가이딩했는지.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진효섭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난감하거나 부끄러운 얘기를 할 때나 보이던 반응이었다.
“그…… 상성이 생각보다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3일 전에 가이딩을 끝냈고, 또…… 지, 지금까지는, 그, 계속, 그걸 했고요.”
붉은 기가 귀를 타고 광대까지 퍼졌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문득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머리와 달리,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한 반응이었다.
안단테는 이 모든 게 현실감 없었다. 절대 가능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가이딩. 몸이 편안해지는 일은 앞으로 없을 거라 생각하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몸이 가볍다 못해 상쾌했다. 이게 꿈이라면 그냥 이대로 벽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엉망인 몸 상태가 지속되면서 고통이라는 감각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에 불과했다. 알몸으로 빙하 위에 서 있으면서 춥지 않다 되뇐다고 정말 춥지 않을 리가 없는데. 오랫동안 심해에 처박혀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주위가 보였다.
“확인해 봐야겠어.”
“예? 뭐, 뭐를 말입니까.”
“진짜인지.”
안단테는 진효섭의 대답을 듣지 않고 강제로 그를 눕혔다.
“자, 잠깐……!”
진효섭이 반항하듯 팔을 저었지만, 간단히 잡아 제압했다. 힘든지 몸을 연신 바르작거리는 상대를 두고 안단테는 제 흔적을 찾는 데 열중했다. 집요한 손끝이 기어이 그 흔적을 찾아냈다.
“하, 진짜네.”
그의 몸에 제 것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자 현실감이 몰아닥쳤다.
“으, 보, 보지 마십시오……!”
“왜 내외해. 이 정도면 우리 적어도 3일 동안 굴러먹었다는 거잖아.”
“그, 그렇지만…….”
“근데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에게서 제 향이 풀풀 풍기는 걸 보니 만리장성을 쌓은 건 확실한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미간이 찌푸려진 반면, 진효섭은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심술이 삐죽 솟아났다.
“제정신으로 한 번 더 해야겠어.”
안단테는 진효섭의 위를 점령해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처럼 복근을 내리눌렀다. 물가에 내놓은 생선처럼 진효섭이 팔딱 뛰었다.
“아, 안 됩니다.”
“왜요? 이미 할 거 다 했는데. 원하는 조건이라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 그, 제가, 저기…….”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가 안단테의 팔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축축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정말 못 하겠습니다. 아, 아프고…… 또, 쓰리고…….”
진효섭이 불쌍한 표정으로 속눈썹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확실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봐도 진효섭의 몸은 너덜너덜했으니까. 10명을 상대로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머리는 강제로라도 해 버리라고 했지만, 손은 정작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 머리가 명령을 내리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걸까. 진효섭이 이상한 요술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아쉽네.”
안단테가 한숨을 쉬며 몸을 물리자 진효섭이 작게 안도했다. 그게 너무 티 나서 괜스레 심술부리고 싶어진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때, 진효섭이 몸을 일으키다 말고 풀썩 쓰러졌다. 안단테는 그를 잡아 침대 헤드에 기대게 한 후 베개를 받쳐 주었다.
“괜찮아요?”
“아, 예에. 괜찮습니다.”
쑥스러운지 진효섭이 목덜미를 쓸었다. 그 손끝에 자리한, 제 것으로 추정되는 손자국이 거슬렸다.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손자국. 자연스레 그의 목을 틀어쥐며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지껄였던 것이 똑바로 기억났다.
“왜…….”
“예?”
안단테는 그 상처를 엄지로 쓸었다. 도저히 진효섭이라는 인간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날 무서워하지 않지.”
보통은 무서워해야 정상 아닌가. 에스퍼가 가이드의 목을 틀어쥐었다. 사직서도 온라인으로 보내고 저 멀리 숨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진효섭은 그런 일 따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자신을 대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제가 끈질기게 굴기도 했고, 그날이 되면 예민하기도 하니까…….”
진효섭이 쑥스러운 듯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같은 체질입니다. 제가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자신이 언젠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지나가듯 한 별생각 없던 말이었는데, 그에게는 달랐던 걸까.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안단테는 내리깔린 속눈썹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그것이 파들파들 떨리는 걸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팠을 텐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안단테는 작게 혀를 찼다. 입가는 벌겋게 다 터져 있고, 목에 자리 잡은 손자국을 비롯해 온 전신이 얼룩덜룩했다. 폭력이라도 입은 것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먼저 걱정하다니. 이 정도면 멍청한 것도 죄가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입술 부분을 살살 쓸어 주며 안단테가 나직하게 사과했다.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