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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65화 (6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65화

“진효섭 씨 취향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죽는 거였는지는 또 몰랐네.”

비틀린 입술은 상처가 될 만한 말만 만들어 냈다.

“나중에 자살 방지 위원회를 소개해 줄 테니까 돌아가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열 줄로 자기 생각을 써 와요.”

“장난치지 마십시오.”

“장난은 그쪽이 치고 있잖아.”

삐뚜름히 입꼬리를 올린 안단테가 진효섭의 명치를 검지로 쿡 찔렀다.

“얌전히 보내 줄 때 가자, 효섭아. 지금 너 신경 써 줄 상태 아니야. 일부러 강하게 뿌리치는데 끈질기게 왜 이래.”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계속 거부하십니까? 전에 한 번 누가 죽은 적이 있어서입니까?”

진효섭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가이딩을 억지로 뽑아낸 가이드의 말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말이다.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진효섭은 그날 밤 그 생각으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과거에 사귀었던 가이드 얘기일까. 실수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 이렇게나 거부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우습게도 무서움보다는 질투심이 들었다. 유진 때도 그렇고, 자신에게 질투가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안단테를 만나고 처음 알았다.

“저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가 다른데. 네가 SS급이라도 돼?”

전에 죽었다는 가이드 얘기가 나오자마자 안단테가 이빨을 드러냈다. 역린이 건드려진 사람처럼 그가 사나워졌다.

“응? SS급이라도 되냐고. 그래서 이렇게 자신만만해?”

“그건 아니지만 상성이-”

“효섭아.”

명치께에 머무른 손이 움직여 진효섭의 뺨을 잡으려다 말고 멈췄다. 그 손은 결국 길을 잃고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아, 더럽게 아슬아슬하네.”

방금 대화로 흥분한 건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변화가 더 심해진 건지 안단테의 주위에서 뿜어지는 향이 보다 짙어졌다.

덩달아 진효섭도 몸을 긴장시켰다. 비슷한 체질을 처음 봐서 그런지 새로웠다. 자신 역시 이럴 때는 향이 짙어지는데, 상대의 향을 맡으니 새삼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안단테의 향에 홀린 것처럼 진효섭의 몸도 점점 이상해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 열이 올랐다.

안단테는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빨리 좀 가요. 그쪽 때문에 아무 새끼나 물고 빨아야 하게 생겼으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너 진짜 안 되겠다.”

순간 안단테의 주위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그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자 그것을 본 길드원이 모두 몸을 움찔거렸다. 하나같이 여차하면 진효섭을 지키기 위해 몸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진효섭을 물어뜯을 것같이 굴던 안단테가 돌연 몸을 휘청거렸다. 가장 놀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안단테였다. 안단테가 눈을 크게 뜬 채 진효섭을 바라봤다. 다소 당혹스러워 보였다.

“이거, 지금…….”

“아무 새끼보다는 제가 나을 겁니다.”

진효섭이 한 발자국 다가서자 안단테가 그만큼 움칠 뒤로 물러났다. S급 던전에 혼자 들어가면서도 물러나지 않던 안단테가 진효섭 같은 가이드를 두고 물러나다니. 처음 보는 모습에 길드원들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달콤한 향이 진효섭에게서 스멀스멀 피어났다. 길드원 중 그 누구도 맡을 수 없는 향이 안단테에게만큼은 코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나 오늘은 그 향이 더 기꺼웠다. 자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하, 이 X발……. 하아…….”

안단테의 눈이 짙은 황금색으로 빛났다. 향을 맡으면 맡을수록 안단테의 향도 덩달아 짙어졌다. 한계가 오는지 그의 목덜미에 굵은 핏줄이 올라왔다.

“너, 후회, 할 거야.”

“안 합니다.”

어느새 바투 붙어 선 진효섭이 처음으로 안단테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따듯한 온기가 안단테의 목을 감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주고 싶었던 일입니다.”

힘들었을 게 분명하니까.

진효섭의 작은 중얼거림이 귓가에서 흩어졌다. 깜빡, 깜빡. 눈이 감겼다 뜨일 때마다 점차 몽롱해지고, 숨은 더 가빠졌다. 안단테는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잡았으나 품에 안긴 사람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하아……. 하아…….”

가쁜 숨소리와 더불어 더운 김이 스칠 때마다 귀 끝이 뜨끈했다. 진효섭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벌써 제 몸은 그의 짙은 향을 맡고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다리가 떨리고, 등줄기에 힘이 들어갔으며, 안쪽 허벅지 살이 떨렸다.

“하아……. 미치, 겠네…….”

날 서 있던 목소리가 느른해져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안단테는 아까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진효섭을 꽉 끌어안았다. 헐떡이는 모습이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도 보였다.

안단테가 진효섭의 옷자락을 헤집었다. 등허리를 다급하게 감싸 쥐는 손길을 미루어 여기가 어딘지 인지하지도 않고 그냥 달려들 것만 같았다. 탁, 진효섭이 그의 손을 잡았다.

“하…… 뭐야.”

안단테가 잔뜩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그만두라고 해도, 못 해.”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읏.”

진효섭은 제 허리를 쥐는 힘에 인상을 찌푸렸다.

“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뒤에서 길드원들이 아직 자신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 표정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굳이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뻔했으므로.

“하아…… 바라는 것도 많네.”

짜증스레 중얼거린 안단테는 진효섭을 안은 채로 벽에 손을 뻗었다. 멀리 있던 벽이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왔다. 분명 자신들이 움직인 거였는데, 벽이 움직였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미동조차 없었다.

안단테가 벽에 손을 짚자 놀랍게도 안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길드원들이 다급하게 부르는 게 들렸으나 안단테를 막을 자는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가 바뀌었다. 그들이 선 곳은 싸구려 모텔이었다. 임시 거처로 썼던 건지, 안단테의 옷이나 신디의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다. 시선은 그런 것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안단테에게서부터 엄청난 향이 쏟아졌다.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한 향이었다.

“아, 으…….”

진효섭이 안단테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 사이가 더 가까이 붙자 안단테는 진효섭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쪽, 쪽, 낯부끄러운 소리를 내며 목덜미를 지분거리다 말고 안단테가 허리를 폈다. 진효섭은 어느새 그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안단테는 그대로 진효섭의 허리를 휘어 감아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싸구려 침대가 삐걱 소리를 냈다. 안단테는 곧장 진효섭 위에 올라타 윗옷을 벗었다.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평소의 그가 아닌 것 같았다. 진효섭을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날의 감각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긴장감에 가슴이 둥둥거렸다. 안단테에게서 짙은 향이 계속 뿜어져 나왔다.

“하아…… 너도 알고 있어? 너한테서 얼마나 야한 향이 나는지…….”

진효섭은 그쪽이야말로 엄청나게 자극적인 향을 뿜고 있다는 말을 삼키고 목을 움츠렸다. 안단테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목덜미에 코를 밀착해 향을 깊이 빨아들였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오고,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효섭아.”

“예, 예.”

“그나마 제정신일 때…… 경고해 주는 거야.”

안단테가 황금빛으로 물든 눈을 깜빡였다. 표정은 이미 풀릴 대로 풀려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제정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반항하지 마.”

그는 재차 말했다. 절대로 반항하지 말라고. 그 말을 끝으로 안단테는 퓨즈가 끊긴 사람처럼 향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그에 동화하듯 진효섭의 몸에서도 향이 풀풀 나왔다.

진효섭은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대를 품에 안았다. 몸 안의 힘이 벌써 그를 향해 새어 나가고 있었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진행되는 가이딩. 역가이딩이 기나긴 밤의 시작을 알렸다.

진효섭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는 모르나 스스로 한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 * *

긴 속눈썹이 느리게 깜빡였다. 몽롱한 갈색 눈동자가 천장을 가볍게 훑었다. 곰팡이가 핀 싸구려 전등과 촌스러운 갈색 몰딩. 익숙하지 않은 것투성이였다.

“뭐야, 여긴.”

안단테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임시 거처로 삼았던 곳에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게 분명…….’

뒤늦게 떠오른 인물에 안단테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옆을 돌아보자 볼록한 이불 사이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 미친.”

안단테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이불을 홱 들췄다. 그러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진효섭이 보였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울긋불긋한 몸이었다. 예상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결국은 충동에 저버렸다니. 저건 가이딩 후라기보다는 겁탈을 당한 후 버려진 모습에 더 가까웠다. 시퍼렇게 새겨진 손자국과 치아로 짓씹은 흔적들. 심지어 이불 아래에서는 미약한 피 냄새까지 맡아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리 전날을 떠올리려고 해도 머리가 하얬다. 어떻게 만졌는지, 어떻게 대했는지. 그가 울었는지, 좋아했는지. 가이딩 끝이 어떠했는지. 그저 머릿속이 새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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