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64화
“으엑, 이건 시체 아니에요?”
“와. 쌍둥이가 걸레짝이 돼서 돌아왔네.”
체르니와 플랫은 쌍둥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하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것도 없어.”
피곤한지 목덜미를 주무르던 안단테가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숨은 방을 발견했고, 겁도 없이 둘이서 들어갔어. 당연히 결과는 이 모양이었지.”
“와, 안 죽고 살아남은 게 다행이네.”
“혹시 모르지. 단장이 구하러 올 거라고 확신하고 기다렸을지도?”
“아, 맞네.”
체르니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단테는 저래 봬도 던전에 간 길드원들을 잘 챙기는 편이었다. 같이 들어갈 때는 조금도 챙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때는 워낙 흥분해서 타인을 둘러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쌍둥이가 깨어나면 꼭 전해.”
안단테가 손에 낀 장갑을 가볍게 벗었다. 철벅, 장갑이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밑으로 피가 튀었다. 안단테는 맨 손등으로 무심하게 뺨을 닦아냈다. 먼지를 닦는다는 게 오히려 피를 묻힌 꼴이 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에는 뒈지든 말든 내가 도우러 갈 일 없을 거라고.”
“와…… 어지간했나 보네요. 단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딱히 대단한 건 아니었는데, 힘을 생각보다 많이 써서 좀 짜증 나네.”
고개를 들어 올린 안단테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에 뜬 달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웠다.
“쓸데없는 데 힘을 쓰면 곤란하잖아.”
“아, 그것도 그렇네요.”
“하긴 단장은 앞으로 가이딩을 더 받을 생각 없을 테니까.”
길드원은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단테가 가이딩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게 익숙해 보였다. 목숨이 간당간당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누구 하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체르니. 내가 문자로 루트 지정해 줄 테니까 신디까지 다 데리고 몰래 한국으로 들어가.”
“단장님은요?”
“난 일주일 정도 잠수.”
안단테가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필 던전 안에서 몸에 변화가 있었거든. 타이밍이 좀 더럽게 됐어.”
“몸에 변화?”
무언가를 떠올린 건지 체르니가 귀 옆에 검지를 가져가 빙글빙글 원을 그려 보였다.
“아, 설마 그거예요? 단장님 약간 미친 것 같을 때.”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두가 대충 알아들었다. 기실 길드원들은 안단테와 오랫동안 함께했기에, 그가 1년에 두 번 정도 상태가 이상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체르니와 플랫은 직접 보기까지 했다.
체르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최근에 플랫이랑 그 얘기 하긴 했었는데……. 어휴, 좀 살벌하긴 했죠. 난 같은 에스퍼인데도 덮쳐질까 봐 두려웠어요.”
“걱정 마. 넌 내 취향 아니야.”
“그건 무엇보다 다행이네요.”
양손을 가슴에 얹고 휴, 한숨 쉰 체르니가 이어 말했다.
“단장은 가늘고 낭창한 스타일 좋아했죠? 딱 국가안보국 가이드 같은 스타일. 난 그런 스타일 말고 좀 튼튼한 게 좋더라. 효섭 형처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 계속 있다가는 진짜 너라도 덮쳐 버릴 것 같으니까.”
그 말이 거짓은 아닌지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다. 기계처럼 무표정으로 말만 이어 가고 있었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간간이 봤었지만, 이렇게나 표정 변화가 없는 건 처음이었다.
“히엑.”
체르니가 기겁을 하며 진효섭의 팔에 달라붙었다.
“얼른 가야지. 자, 형도 같이 가요.”
“아뇨.”
“예?”
“전 여기 있을 겁니다.”
단호한 대답에 안단테가 진효섭을 바라봤다. 이곳에 도착해 처음으로 준 눈길이었다.
나흘. 무려 나흘 만이었다. 매일같이 보던 사이라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지나가듯이 인사라도 할 법한 시간. 그런데 그는 진효섭을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서야 시선을 줬다.
안단테의 날카로운 시선에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은은히 풍긴다 생각했던 살기를 오롯이 받게 되자 10초도 되지 않아서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진효섭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갈 거였으면, 처음부터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던전 가시기 전에 했던 말, 기억합니까?”
“…….”
“상성이 맞을 거라던 거. 그냥 해 본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서늘한 눈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진효섭은 눈을 내리깐 채 말했다. 최대한 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
“처음 가이딩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두 번째 했을 때 확신했습니다.”
“…….”
“잘 맞을 겁니다. 분명히.”
“근거는?”
처음으로 안단테가 말을 걸어왔다.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진효섭은 긍정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정확한 근거를 든다면 그의 마음을 돌리기 충분할 테지. 그러나 진효섭에게는 상대를 설득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
“……느낌입니다.”
몇몇 사람과 가이딩을 하면서 알게 된 자신의 추측과 감이었다.
안단테는 천천히 진효섭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앞에 선 그가 돌연 진효섭의 목을 틀어쥐었다.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었다.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안단테의 손목에 손톱을 세울 정도로 억센 손아귀였다.
“윽…….”
“단장!”
“단장님!”
주위에서 놀란 길드원들이 안단테를 부르는 게 들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릴 수 없던 것 같았다. 안단테의 눈동자가 미친 사람처럼 희번덕거렸다.
“네가 날 감당할 수 있다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쏟아졌다.
“그럼 처음 가이딩 때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그, 때…… 는, 윽…….”
“가능성이나 느낌 같은 개소리로 사람 흔들지 마.”
안단테가 으르렁거리듯 낮게 말했다.
“어중간한 희망은 없는 것만 못 해. 사람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하면 포기가 빠른데,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어.”
“으, 하, 지만…….”
“잘 포기하고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자꾸 흔들지 말라고.”
안단테는 차마 말을 뱉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진효섭을 내려다보다가 손힘을 풀었다.
“컥, 허억…… 헉…….”
“오늘 내가 정상이 아니라서요. 웬만하면 그냥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얘기라면 다음에 들어줄 테니까.”
진효섭은 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욱신거리는 게, 나중에 보면 필히 시퍼렇게 손자국이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효섭은 포기하지 않았다.
“확신, 필요한, 거면…… 해 드리겠, 습니다.”
숨 때문에 드문드문 말이 끊겼지만 의사 전달에는 충분했다.
“할 수, 있어요. 편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절 믿어 주십시오.”
안단테의 눈에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목이 틀어 쥐였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돕겠다고 나서는 진효섭을 이상하게 보는 것도 같았다.
“이해할 수 없네.”
그의 시선이 진효섭의 목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빤히 바라봤다. 진효섭은 몸을 움찔거렸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를 마주 봤다. 안단테의 속눈썹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잖아요.”
“죽지 않습니다.”
“죽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 있다고 해도, 그쪽은 죽어. 특히 오늘이라면 그 확률이 더 올라가겠지.”
안단테의 주위에서 짙은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원래도 무거운 스모크향이었는데, 오늘따라 그 무거움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까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저조한 몸 상태에 전과는 다른 짙은 향. 게다가 전부터 조만간 그날이 찾아올 거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게 오늘인 것이다.
진효섭은 그 모든 걸 다 알고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새끼처럼 왜 이러지? 그쪽도 접촉 가이딩 이상이 싫다고 했잖아요.”
확실히 그랬다. 접촉 가이딩 이상이 싫어서 노아피에 들어왔고, 에스퍼와 깊어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다시는 위험 속에 서 있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예. 그랬는데.”
진효섭이 확고한 눈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을 편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것보다 더 커졌습니다.”
흔들림 없는 눈과 달리 목소리가 떨렸다. 그로서는 지금까지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최대한 용기 낸 거였다.
“좋아, 하니까…….”
상황은 그리 로맨틱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껏 봐 왔었다. 괴로워하는 그들과 울렁거릴 정도로 깊은 독성. 그것을 없애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러나 안단테는 그렇게 말하는 진효섭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좋아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냉정한 시선은 언젠가 다른 사람과의 키스 가이딩을 종용할 때와 흡사했다. 마치 제 마음이 일방통행인 것 같았다. 분명 사귀고 있는데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