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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63화 (6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63화

보통 에스퍼는 딱 한 가지의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안단테의 능력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디버프 계열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의미다. 그리고 디버프 계열은 C급으로 분류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진효섭은 뒤늦게 안단테가 S급이 아니라 진짜 C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다면 S급 던전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걸까. 신디랑 같이 가긴 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그는 가이딩을 받지 않은 지 오래됐는데…….

걱정이 걱정을 물고 왔다. 머리가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체르니나 플랫이 정확히 말해 주지 않아서 불안할 뿐이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 안단테의 능력이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그는 저번 S급 던전에 혼자 들어가고서도 살아남았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이 개성적인 S급 에스퍼들이 그에게만큼은 한 수 접고 들어간다. 확실하게 상하 관계가 드러나는 사이. 자존심이 높은 S급 에스퍼가 타 에스퍼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안단테는 대단한 사람이고, 길드원들이 이렇게 걱정 없이 던전에 보낼 정도로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다.

“……예.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진효섭이 불안을 다스리며 애써 덤덤하게 대답한 후 자리에 앉았다. 하나 예상치 못한 그들의 던전행에 마음은 여전히 편치 못했다.

문득, 그는 지금 자신이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던전에 간 에스퍼를 기다리며 불안으로 덜덜 떠는 것 말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한국에 왔는데,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결국은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은 그때와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진효섭은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내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안단테는 그 사람이 아니다. 상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에스퍼이며, 애인이다. 그 역시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계속 되뇌는데도 심장은 그를 비웃듯 쿵쿵 뛰었다. 다독이는 게 영 쉽지 않았다.

‘멍청하긴. 그놈이 진짜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심장에 박힌 말은 순식간에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 남자의 말은 저주처럼 이따금씩 자신을 휘어 감았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이유는 역시 심장에 새겨진 문양 탓일까.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흔적 때문일까.

진효섭은 심장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평생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 * *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A급 던전에 갔을 때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3일이 지나도 안단테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그 덕분에 진효섭은 그들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사무실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물건을 챙겨 오기 위해 집에 갈 때는 소식이 있으면 바로 전해 달라고 체르니에게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혹시 집에 들른 사이 그들이 돌아올까 봐 무서웠다.

잘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작은 소식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안단테가 향한 곳은 통신이 불가능하기에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괴로웠다. 혹시 모를 일을 위해 틈틈이 자 두며 몸 상태를 관리하고 있었지만,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3일째 밤이 지나가고, 4일째 아침. 코다와 체르니, 플랫까지 모두 사무실에 모였을 때, 드디어 두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어? 단장님, 나왔나 봐. 문자 왔어.”

“통화도 아니고 웬 문자?”

체르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지. 아무튼 우리한테 마중 오라는데?”

“마중?”

플랫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싫다거나 귀찮다는 대답 없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다도 따라나설 생각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진효섭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던전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안도함과 동시에, 이제 자신이 도와줘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체르니가 가방을 메는 진효섭을 막았다.

“형은 여기서 쉬고 있어도 돼요.”

“예? 하지만 가이딩이 필요할 겁니다.”

“으음, 그렇긴 한데. 단장님 명령이에요.”

진효섭은 멍해진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명령이라니. 설마 자신은 오지 말라고 굳이 덧붙였다는 말인가.

“……어째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진효섭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왜 저만 콕 집어서……?”

진효섭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체르니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뭐, 뻔하지 않을까요? 효섭 형 보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겠죠.”

그러곤 그 또한 플랫과 코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일이 하나 줄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가이딩은 나중에 해도 되는 거니까. 아무튼 저희 갔다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응? 왜요?”

“저도 데려가십시오.”

“네? 하지만, 단장님이 데려오지 말라고 했는데요.”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위험하면 바로 가이딩할 수 있으면 훨씬 좋을 겁니다.”

체르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뒷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결국은 가이딩하는 것도, 위험한 것도 제 쪽이지 않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명령이라서요.”

“체르니.”

덥석, 진효섭이 체르니의 옷자락을 잡았다. 간절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체르니가 움찔거렸다. 그의 눈썹이 곤란한 듯 중앙으로 모였다.

“어……. 아무리 그렇게 봐도…… 말이죠.”

진효섭은 체르니의 옷자락을 좀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강아지처럼 순한 눈매가 보다 간절해졌다. 눈꼬리가 잔뜩 내려가고, 눈망울이 촉촉했다. 유난히 큰 검은 동자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체르니…….”

“난 진짜 몰라요. 단장님한테 혼날 거예요, 효섭 형.”

체르니가 안단테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며 재차 경고했으나 진효섭은 단호했다.

“데려가 주십시오.”

덧붙인 말에 체르니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 레드카드 받겠네. 안 그래도 명령 어긴 게 많아서 아슬아슬하던 차였는데.”

이동하는 도중에도 체르니가 몇 번이고 계속 되물었지만, 진효섭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노아피 길드는 순간이동 포탈을 타고 그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저번에도 탔던 게이트였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속이 울렁거렸다. 저번처럼 제대로 된 루트가 아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게이트를 이용해서 그런 것 같았다.

진효섭은 울렁거리는 속을 꾹 누른 채 그들을 따라 걸었다. S급 던전 입구인 게이트로 향할 줄 알았던 그들은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안단테와 함께 들렀던 뒷세계와 비슷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와 벽에 마구잡이로 칠해진 래커. 그 안에 새겨진 저주의 말과 선정적인 그림은 과거에 있던 곳을 떠올리게 했다.

진효섭은 애써 그런 것들에서 시선을 떼고 눈앞의 에스퍼들만 따라갔다. 이윽고, 그들은 누구도 들르지 않을 것 같은 골목에서 멈춰 섰다.

“단장님이 찍은 위치는 여긴데. 아무도 없네.”

“주위에 있겠지. 연락이나 넣어 봐.”

“잠시만.”

체르니가 안단테에게 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더 안쪽 골목에서 기본 벨 소리가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촌스러운 벨 소리가 골목 분위기와 합쳐지니 으스스했다.

“아, 저기다.”

소리를 따라 체르니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다른 길드원과 진효섭이 따랐다. 코너를 돌자 보이는 골목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밤이라고 하나 유난히 어두웠다.

문득 비릿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안에 무언가가 있다, 그렇게 느껴졌다. 동시에 안쪽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짐승의 목울대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어둠 사이에서 샛노란 눈동자가 번뜩였다.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변온동물 같은 눈이었다.

“진효섭 씨는 데려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익히 알던 남자의 목소리였으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안단테는 평소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너, 요즘 명령을 쉽게 어기네.”

“아니 그게 말이죠, 단장님. 저는 효섭 형도 필요할 것 같아서-”

“체르니.”

안단테의 싸늘한 부름에 체르니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안단테에게선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유독 하얗던 피부는 새파랗게 보일 정도였다. 안단테의 모습을 한 인형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지간히 풀어 줬나 봐. 그렇지?”

안단테가 손끝을 움찔거렸다. 당장에라도 목을 잡아챌 듯이 손등 위로 징그럽게 핏줄이 섰다. 체르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코다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저 또한 진효섭 가이드가 따라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길드원이지 않습니까.”

“…….”

안단테는 미간을 찌푸렸다. 코다까지 합세하자 그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무언가 더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주제로 더 말을 잇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됐으니까, 일단 이 새끼들부터 챙겨.”

그가 안쪽에 널브러져 있는 쌍둥이의 목덜미를 잡고 플랫과 체르니의 앞에 각각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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