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62화
역시 안 되는 걸까. 진효섭이 시무룩해진 그때, 안단테가 다소 복잡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진효섭 씨.”
그답지 않게 할 말을 망설이는 모습에 진효섭에게 새로운 희망이 피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그-”
물을 붓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 찰나, 타이밍 나쁘게도 벨 소리가 분위기를 깨고 울렸다. 안단테는 욕실 문을 흘끔 봤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소리가 두 번째로 울리자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 연락일 아까와는 달리 경보음이 울렸기 때문이다.
안단테가 작게 한숨을 쉬며 샤워기를 진효섭에게 쥐여 줬다.
“씻고 나와요.”
“……예.”
끝맺지 못한 이야기에 손에는 아쉬움만이 남았다.
* * *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가니 진지한 표정으로 통화 중인 안단테가 보였다. 그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진효섭은 안단테가 통화를 끊자마자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네, 뭐……. 쌍둥이가 일을 친 것 같아서요. 일단 바로 사무실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진효섭 씨도 같이 갈래요?”
“예. 가겠습니다.”
왠지 급해 보이는 느낌에 진효섭은 허둥지둥 준비를 끝냈다. 안단테가 이미 갈아입을 옷을 욕실 앞에 뒀었던 터라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에 올라탄 안단테는 사무실로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아까의 대화 탓인지 아니면 쌍둥이와 관련된 문제가 크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아, 왔네.”
플랫이 제일 먼저 아는 체했다.
“단장, 큰일 났어요. 쌍둥이 새끼들 결국 일 쳤다니까.”
“자세히 말해 봐.”
“어제 신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이 너무 늦는 것 같다면서 알아봐야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젯밤, 가위바위보에서 진 제가 갔다 오게 됐는데, 미친, 그 새끼들 아직도 던전 안에 있어요.”
안단테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지금 2주일 되지 않았나?”
“넘었죠. 미친놈들.”
플랫이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잘못된 게 확실해요. 맘대로 하라고 하자마자 바로 사고 치는 것 봐. 그 새끼들, 인간 덜됐다니까.”
“연락은 넣어 봤어?”
“네. 연락 안 받아요.”
던전 안에 있으면 연락을 못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2주 넘게 던전 안에서 나오지 않는 거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 10일 미만이야 하고 싶은 대로 쏘다니면 그럴 수 있지만, 2주일이 넘게 던전 안에 있는 거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리라. 심지어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신디. 그놈들이 들어갔던 던전, S급이랬나?”
“응……. 닫히지… 않은… 미궁의 S급…….”
“이름 한번 촌스럽네.”
안단테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며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그러곤 셔츠를 벗어 늘 앉던 자리로 가 전투복 같은 것을 걸쳤다.
“내가 갔다 올게.”
“하지만 단장. 지금 신해창이 우릴 주시하고 있을 텐데 괜찮아요?”
“뭐, 안 좋은 상황이긴 하지. 그래도 문제는 없을 거야. 이미 다른 S급 뒷세계 놈들 찾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까.”
안단테는 가만히 있는 코다를 흘끔 보며 간단하게 지시했다.
“혹시 모르니까 저번에 그 두 놈 이용해서 좀 더 신해창 곤란하게 만들어 봐. 방법은 알아서. 가능하지?”
코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잠자코 있던 체르니는 손을 번쩍 들었다.
“단장님! 그럼 따라가는 건 내가 할까요?”
“안 돼. 너 어제 제약 풀었잖아. 갔다가 소문의 중심이 될라.”
“힝. 오랜만에 날뛰고 싶었는데. 그럼 누구랑 갈 거예요? 플랫은 상성이 너무 안 맞고…… 신디?”
“그게 가장 좋겠네.”
안단테가 신디를 흘끔 보자, 그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내가 갈게……. 단장이랑은 오랜만…….”
느릿느릿, 잠도 덜 깬 얼굴로 준비하는 모습이 던전에 들어가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건 안단테도 마찬가지였다. 전투복을 입긴 했지만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나 갔다 올게요.”
“……예.”
솔직히 가이딩 얘기가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조금 전에도 계속 끈질기게 굴었던 터라 더 말하지 않았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래요.”
쪽. 안단테는 진효섭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갔다 올 테니까, 너희라도 얌전히 있어.”
탁. 문이 닫히고 신디와 안단테가 사라지자, 진효섭은 체르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미궁의 S급 던전이 뭡니까?”
“외국에 있는 S급 던전 이름이에요. 영어로는 ‘CLOUDING CAVE(C.C)’. 해석 그대로 들고 오면 되지, 저런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서 안타깝다니까요.”
영어로 불린 던전 이름에 진효섭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C.C? 설마 미국 동부에 있는 그 던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 뭐야. 잘 알고 있네요?”
체르니가 이채를 띠었다.
“미국에서 살았어요? 그거 본토 사람 아니면 알기 어려운데.”
“그건, 조금 관심이 있어서……. 그것보다 체르니 에스퍼. 설마 리디안, 도리안 에스퍼가 그곳에서 연락이 두절됐다는 뜻입니까?”
“네. 던전 안은 원래 밖과 소통이 안 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것 같아요.”
체르니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왜, 본 적 있잖아요. 저번에 신디가 엉망이 돼서 돌아왔던 거. 그거 거기 갔다 와서 그런 거예요. 쌍둥이는 신디 도우러 갔는데, 주위 정리한다는 이유로 욕심이나 채웠던 거고.”
“욕심이라면 어떤…….”
“보석이라든가 괴물 사냥, 아니면…… 총기 테스트? 전부터 새로 들인 총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실수로 사람을 쐈을 수도 있고.”
그는 소름 돋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랬는데 생각보다 돌아오는 게 늦어져서요. 무슨 일이 있는 거겠죠. 아무리 날고 기는 S급이라고 해도 C.C는 어렵잖아요.”
“……그걸 형과 신디 에스퍼가 도와주러 간 겁니까?”
“형?”
뜻밖의 단어에 체르니가 눈을 끔뻑이자 진효섭은 뺨을 긁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 길드장님 말하는 겁니다.”
“와. 애정이 넘치네, 정말.”
체르니는 별로 기쁘지 않은지 입술을 삐죽였다.
“나도 좀 친근하게 불러 주면 얼마나 좋아. 체르니~ 이렇게요.”
“원하시면 그렇게 불러 드리겠습니다.”
“와! 정말요? 그럼 지금 불러 줘요.”
“체르니.”
“아니, 체르니이~ 하고 좀 다정하게 뒤를 끌어 줘요!”
“……체르니이.”
체르니는 좋다고 웃으며 진효섭의 머리에 뺨을 비비적거렸다. 안단테가 있었을 때는 못 하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음에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보다 체르니. C.C면 위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두 사람만 가도 괜찮은 거 맞습니까?”
보통 던전에는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던전이 소리 소문 없이 열렸다 닫히기도 하고, 특별히 이름을 붙여 봤자 결국은 지나가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그 던전에는 이름이 붙었다. 장기 던전이라는 특수성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던전이 매우 위험해서다.
“에이, 이제 우리가 C급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걱정하네. C.C가 어려운 곳이긴 한데, 그래도 문제는 없어요.”
“그렇습니까.”
진효섭은 그렇게 애써 불안을 내려놨다. 문제없겠지. 어차피 쌍둥이를 데리러 가는 것뿐이고, 신디 에스퍼도 함께였으니까.
“예. 두 분 다 S급이니까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응? S급?”
체르니가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예요. S급이라니. 형, 우리 단장 등급 몰라요?”
“예? 뭐가 다릅니까?”
진효섭이 정말 몰라 멀뚱히 쳐다보자 체르니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말했나 싶은 기색도 느껴졌다.
“아, 아니……. 뭐. 음……. 아니에요.”
“제대로 말해 주십시오. 설마, 길드장님만 S급이 아닙니까?”
“어, 그게. 음.”
“체르니 에스퍼.”
이것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진효섭이 간절히 체르니를 잡자 그가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으음, 그게 말이죠.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해야 하나.”
체르니가 맞은편에 있는 플랫에게 도움을 청하듯 흘끗거렸다. 그 시선을 따라 진효섭은 체르니를 두고 플랫에게 물었다.
“플랫 에스퍼. 형, 아니, 길드장님은 정말 S급이 아닙니까?”
“음. 아까 체르니가 말했듯이, 이 부분은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플랫 역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만 알아 둬요.”
“맞아, 맞아. 걱정 마요, 형.”
“…….”
두 사람의 이어지는 말에도 진효섭은 표정을 펼 수 없었다. 애써 무시했던 불안이 자꾸만 머리를 치켜들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