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58화 (5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58화

“나랑 비교하지 마. 나는 끝까지 가이딩 받을 생각 없지만, 넌 끝까지 받아야 제약이 풀리는 거잖아.”

“그래도요. 씨이…….”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지 체르니가 풀이 죽었다. 그런 체르니를 보니 진효섭은 측은함이 들었다. 오랫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어쩔 수 없다지만 힘들 게 분명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대로 오늘 가이딩하자. 결의를 다진 진효섭이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정말요?!”

“진심이에요?”

“네.”

물론 단순히 체르니가 측은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3일 동안 쉰 덕에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적이 과거에 한두 번도 아니었다 보니 진효섭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와! 고마워요, 형.”

“아닙니다.”

감사 인사에 진효섭이 가볍게 웃자 체르니의 표정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물론 번쩍이는 황금색 눈동자 덕분에 조금 살벌해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진효섭이 가이딩을 위해 체르니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안단테가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그럼 차라리 피부 접촉 말고 다른 걸로 해요.”

“예?”

“……단장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접촉 가이딩으로는 무리잖아.”

놀란 기색이 역력한 진효섭과 체르니를 눈앞에 두고도 안단테는 평온한 어조로 아주 단조롭게 말했다.

“자기. 저번에 가이딩 수위가 키스까지라고 말했었죠?”

“아…… 예. 그랬, 습니다.”

누가 목을 조른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진효섭은 제 표정이 어떤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언제나 덤덤함을 유지하려던 몸은 통제에서 벗어났다. 설마,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며 진효섭은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맞지 않길 바랐던 예상은 정답이었다.

“그럼 키스 가이딩으로 해요. 그게 효율이 훨씬 좋을 테니까.”

* * *

몽롱히 천장을 보던 체르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플랫.”

“왜?”

“네가 말했던 심장께가 서늘하다는 말. 이제야 알겠어. 찔끔찔끔 받을 때는 몰랐는데, 확실하게 받으니까 느껴지더라.”

체르니가 입술을 매만졌다.

“역시 키스해 둘 걸 그랬나. 그럼 더 굉장했겠지?”

“뭐, 그렇겠지만…… 나는 오히려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응? 왜?”

“그때 단장 표정이 좀 이상했거든.”

플랫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그때의 안단테를 떠올렸다. 분명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색이었다. 정확히 왜 그런지는 콕 집어낼 수 없었지만.

하지만 체르니는 플랫의 추측에 콧방귀를 뀌며 확고히 말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키스 가이딩을 제안한 건 오히려 단장님이야. 그걸 형이 접촉으로 한다고 우긴 거고. 만약 이상할 게 있다면, 접촉으로 한다고 우긴 형이지.”

“그건 그런데, 아까 단장 표정이 이상하더라고. 자기가 말하고도 좀…… 아, 몰라. 나도 확신은 아니야.”

플랫은 보다 만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이어 말했다.

“오랫동안 단장을 봐 왔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원.”

“나도 동감. 좀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지. 근데 아까는 확실히 네가 잘못 본 거야.”

체르니는 오랜만에 상쾌한 몸에 기분 좋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위험한 금색을 띠고 있던 눈이 원래의 고동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단장님은 효섭 형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왜, 너한테도 저번에 그랬잖아. ‘진효섭이 좋으면 내 본디지 파트너 자리라도 넘겨줄까?’ 하면서. 감정이 없으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지.”

“아, 맞다. 그랬지. 그럼 내 착각인가 보네.”

플랫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응. 효섭 형은 단장님 취향 아니야. 내 취향이지.”

체르니가 양손으로 꽃받침을 하며 꿈꾸는 양 몽롱한 표정을 했다.

“아, 언젠가 꼭 내 밑에서 우는 꼴을 봐야겠어. 이번 일이 끝나면 단장한테 말해서 내가 가져야지.”

“쯧쯧. 진효섭이 불쌍하다, 불쌍해.”

“흥. 자기는 아닌 척하네. 준다고 하면 거절 안 할 거잖아?”

“S급이 준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냐?”

“있잖아. 방금 형 데리고 나가신 분.”

“……단장은 독특한 거고. 너도 전에 나랑 같이 봤었잖아. 단장이 가이드랑 하룻밤 보냈었던 거.”

“아, 그 가이딩 생중계?”

성에 개방적인 체르니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그건, 아주 예전 일이었다. 체르니는 아침에 플랫과 같이 사무실에 들어갔었다. 안에서부터 뭔가 묘한 기척이 들려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문을 열어젖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과 안단테가 뒹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끌끌 웃으며 그를 놀리고 말았을 텐데. 문 너머 펼쳐진 광경은 차마 웃고 넘기기가 어려웠다.

‘아, 벌써 아침이야?’

그날의 안단테는 마치 폭주한 에스퍼와도 같았다. 눈은 황금빛으로 물들어서는 미친 사람처럼 밝은 햇빛을 맞으면서도 시간을 인지하지 못했다. 짐승이 입질한듯 상대를 물어뜯은 흔적은 별별 꼴을 다 본 그들도 질릴 정도였다.

체르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나처럼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게 낫지. 그건 좀 그렇더라. 난 그렇게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는 만들지 않아.”

“글쎄. 난 네 개방적인 성향도 썩 이해 가진 않는다만. 어쨌든 단장이 좀 그렇다는 건 찬성이야.”

“그렇게 가이딩을 받으면 참는 게 힘든가?”

“그렇지 않을까? 단장은 참을성 없는 편도 아니잖아. 팔이 찢어져도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는 인간인데.”

“으음. 그런 거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참기 힘든가 보네.”

플랫이 진효섭과 안단테가 나간 문을 흘끔 바라봤다.

“그렇겠지. 오죽하면 제 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도 가이딩을 기피하고 있겠냐.”

같은 길드원 중 이유를 아는 건 코다가 유일했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이유가 뭔지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쯧,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안단테가 아직도 뜨거운 진효섭의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진효섭은 열이 올라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일 때마다 골이 울리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예……. 괜찮습니다.”

“이렇게 헐떡이면서 괜찮긴.”

작게 혀를 찬 안단테가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그는 수건을 찾아 물에 적셨다. 아무리 작은 원룸이라지만 한 번 와서 본 게 다일 텐데 참 물건을 쉽게 찾았다.

툭, 이마에 찬 물수건이 올려졌다.

“이불은 덮지 말고 있어요. 열을 빼야지.”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좀 죄송해야 해. 그러게 왜 무리를 하고 그래요?”

안단테는 가만히 누워 있는 진효섭의 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키스 가이딩으로 했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

진효섭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안단테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의 말이 옳았다. 제약이라는 게 생각보다 몸을 나쁘게 하고 있었는지, 체르니에겐 훨씬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심지어 완벽하게 가이딩해야 제약이 풀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도중에 멈출 수도 없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래도……. 진효섭은 입술을 달싹였다.

“형, 은…….”

축 처진 눈이 시무룩해졌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진효섭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왜요. 말을 해야 알지.”

안단테가 진효섭의 머리카락을 사르륵 넘겼다. 그 손길이 무척이나 다정했다. 아까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 연인, 맞습니까?”

“뭐야. 나 혼자 진효섭 씨랑 사귀고 있었던 거예요?”

“아뇨. 그게 아니라…….”

진효섭은 연신 우물쭈물했다. 열이 올라서인지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이 비교적 쉽게 나왔다.

“제가, 다른 사람이랑…… 키스해도 괜찮, 습니까?”

“아, 우리 자기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안단테는 진효섭의 한마디에 다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진효섭의 뺨을 꼬집었다.

“바보 같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진효섭 씨는 내 애인이지만, 일단 우리 길드의 가이드니까.”

“…….”

“어차피 가이딩이잖아요. 좋아서 하는 키스가 아니라 효율 좋은 가이딩. 그게 다 아닌가요?”

“그렇, 죠.”

진효섭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안단테의 말이 맞다. 그러나 받아들이고자 하는 머리와는 달리 마음은 그리 개운치 못했다. 아무리 일이라고는 하나 딱딱 구분을 짓는 게 쉽지 않았다. 모든 가이드가 겪는 일일까. 평범의 잣대를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마음이 없는 접촉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것 같긴 했다. 진효섭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 합니다. 제가…… 갑자기 잠이 너무 와서…….”

“푹 자요. 잘 때까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예에……. 감사합니다…….”

진효섭은 금방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을 빤히 내려다보다 손끝으로 볼을 쿡 찔렀다. 무슨 짓을 해도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게, 잠들었다기보다 기절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