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57화 (57/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57화

“스물네 시간 아니야. 전부터 짐작 가는 범인이었으니까.”

“짐작 가는 범인?”

“그 칩 안에 들어 있을 건데, 이름이 뭐였더라. 리영원? 리원영? 기억이 안 나네, 중국계 이름이라.”

안단테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네가 현상금을 걸었을 때부터 의심하고 있는 놈들이었어. 어제 그곳에 갔던 것도 그놈들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간 거였고.”

진효섭은 고개를 돌려 안단테를 바라봤다. 그는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진실같이 들릴 정도였다.

“그 와중에 너희가 쫓는 놈이 내가 의심하고 있는 놈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그럼 뭐, 확신할 수밖에 없잖아?”

“언제부터 의심하기 시작했지?”

“해안가에서 던전이 열렸을 때.”

신해창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때 너희가 갔던 바다에서 열렸던 던전 말인가?”

“응. 네가 그 던전을 의심스럽게 보는 것 같아서 알아봤었거든. 그런데 마침 우리랑 똑같은 리조트를 예약한 길드가 있더라고. 확인해 보니까 루트가 비정상적이었어.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어둠의 길드 놈들이었지 뭐야.”

“…….”

“심지어 그 안에서도 별의별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던데? 던전을 쏘다니면서 핵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어.”

안단테가 신해창이 손에 쥔 칩을 가리켰다.

“내가 알아본 정보가 칩에 들어 있을 테니까 네가 다시 알아보든가.”

“네 생각은 이놈들이 확실하다는 건가.”

“응.”

신해창은 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확인하고 연락주지.”

안단테는 대인배처럼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심히 가고, 100억은 미리 준비해 줘. 너한테도 꽤 큰돈이잖아?”

“…….”

신해창은 말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그 뒤를 따르는 에스퍼는 탐탁지 않은 표정인데 반면, 유진은 연신 안단테를 흘끔거렸다. 무언가 말을 걸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찮다는 걸 파악한 것처럼.

안단테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상당히 기분 좋아 보였다.

탁, 문이 닫히자 플랫이 혀를 내둘렀다.

“와. 저걸 언제 준비해 놨어요? 가끔 단장은 일을 대충하는 것 같은데도 철저해서 무섭다니까.”

“뭐, 이게 다 우리 자기 덕분이지.”

진효섭을 보며 안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말랑한 귓불을 건드리는 손길이 장난스러웠다. 얼추 상황이 해결된 것 같아 진효섭은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설마 어제 거기 갔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응?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갔던 건 사무실 구경을 위해서였잖아요.”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진효섭의 이마에 쪽 소리 나게 키스했다.

“너무 순수해서 걱정이라니까.”

덧붙은 중얼거림에 진효섭은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럼 진짜 사무실 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는 뜻입니까?”

“네.”

정말 우연이었던가. 그렇다면 안단테는 그 우연을 이용했다는 의미다. 가짜 증거를 만들어서 다른 어둠의 길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식으로. 길드원들은 나쁘지 않은 우연이라고 여겼으나 진효섭은 표정을 풀 수 없었다. 그 우연이 좋게만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가짜 정보를 그렇게 넘겨도 되는 겁니까?”

만약 가짜 정보라는 사실이 들키면 신해창의 의심은 확신이 될 것이다. 그럼 일은 더 복잡하게 돌아갈 게 뻔했다. 안단테 역시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닐 테지만 걱정스러웠다.

“음? 가짜 정보?”

“아까 신해창 에스퍼에게 준 칩에 있던 증거, 가짜이지 않습니까.”

진짜를 줬다면 칩 안에는 노아피 길드원들의 프로필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가짜 증거일 터. 그러나 안단테는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국가안보국이 등신 집단도 아니고, 괜히 거짓 정보를 들이밀었다가 들키면 더 일이 커진다는 걸 생각 못 할 리 없잖아요. 그런 수상한 짓을 할 수는 없죠.”

“그럼 칩에 있던 건 뭡니까?”

“진짜 증거요.”

“예……?”

진효섭이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자, 안단테가 나긋나긋하게 설명했다.

“그때, 온천에서 봤던 어둠의 길드라는 에스퍼 둘. 기억하죠?”

“예. 기억합니다.”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그들 때문에 진효섭은 처음으로 본디지 파트너의 필요성을 자각했으니까.

“그 일이 있고, 그놈들을 좀 알아봤어요. 진짜 어둠의 길드 소속인 데다 A급과 S급이라 능력도 괜찮더라고요. 게다가 최근에는 여기저기 던전에 들어가서 핵을 몰래 빼 가고 있고.”

“예? 핵을 말입니까?”

어째서 그들도 핵을 빼내어 간 걸까. ……설마.

“설마 그 사람들도 노아피 길드처럼 던전을…….”

“그건 아니고. 제 생각에는 아마 돈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아하하하.”

안단테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 한참을 웃어댔다. 핵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빼내어 갔다니. 진효섭은 이유를 들었음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돈이 필요한데 왜 보석이 아닌 핵을 빼내어 갑니까?”

“누가 핵을 비싸게 사들인다고 했거든요. 개당 1억.”

겨우 웃음을 그친 안단테가 눈꼬리를 잔뜩 휘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마침 진짜 증거를 가진 놈들이 나타나 줬잖아요. 우리는 현상금을 얻고, 국가안보국은 한국에 밀입국해서 예쁜 가이드나 넘보는 핵 탈환자를 처단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며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운이 좋았네요.”

“…….”

진효섭은 묘한 느낌에 침묵했다. 이것을 그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안단테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을 만든 게 그라는 것을 정황상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미 모든 걸 준비해 놨다는 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뜻이니까.

약간의 우연도 있었겠지만, 거의 모든 것이 안단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증거로 플랫이나 체르니가 ‘운이 좋다’는 그의 말에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진효섭은 처음으로 안단테의 치밀함이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뭐든 대충대충 할 것 같은 말투나 행동과는 달리 뒤로는 완벽하게 틀을 짜 둔다. 거기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능력까지. 같은 편이라면 든든하겠지만, 상대편이 된다면 분명 무서울 것이다.

“그보다 단장님.”

그때, 체르니가 갑자기 안단테와 진효섭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일도 잘 돌아가는데, 나 제약 좀 풀면 안 돼요? 슬슬 제약 풀고 가이딩 받고 싶은데.”

“응? 아, 맞다.”

“설마 까먹고 있었던 건 아니죠?”

“아니. 까먹고 있었어.”

체르니가 눈을 치켜뜨자 안단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 미안. 음……. 그런데 오늘은 내 자기가 가이딩을 이미 한 상태라서. 네 가이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에이. S급 가이드잖아요. 그 정도야 별거 아니죠.”

“별거 아니긴.”

안단테가 먼저 진효섭에게 의사를 물었다.

“몸 상태는 어때요? 한 명 더 가이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체르니의 제약을 푸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 텐데.”

“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약이 뭡니까?”

앞에 있던 체르니가 안단테의 대답을 가로챘다. 그는 배시시 웃으며 진효섭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제 몸의 능력을 억제하는 물건을 말하는 거예요, 형. 전 다른 길드원이랑은 다르게 C급이라고 숨길 수 없는 능력이거든요.”

다른 길드원들은 능력을 몸 안에 지니고 있기에 등급을 속이는 게 비교적 쉬웠다. 능력을 조금만 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체르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제 능력은, 쓰면 몸 자체가 변해 버려요. 조금만 조절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그것 때문에 다소 힘들었는지 체르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저만 따로 능력에 제약을 거는 물건을 착용했는데, 조건이 가이딩을 완벽하게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

진효섭은 문득 안단테가 체르니의 가이딩을 막았던 것을 떠올렸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요즘은 체르니가 가이딩을 받았기에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체르니는 항상 가이딩을 5분도 채 받지 않고 끝맺었다. 매번 그 정도로도 괜찮다 말하고 넘어갔지만, 이상하다 여기긴 했었다.

“그랬습니까.”

“네. 근데 이제 다른 길드랑 같이 던전에 들어갈 필요도 없으니 슬슬 제약을 없애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예. 가이딩해 드리겠습니다. 제약은 어떻게 풉니까?”

“가이딩을 완벽하게 받으면 알아서 풀려요!”

진효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를 덥석 잡아 들려고 체르니가 손을 뻗을 때였다. 안단테가 체르니의 손을 막고서 다시 한번 물었다.

“체르니는 거의 2년 동안 가이딩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예요. 몸이 상당히 엉망일 텐데, 정말 괜찮아요?”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순간 주춤거렸다. 어차피 해야 할 가이딩이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 날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피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위험성을 재차 경고받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제 그들이 C급이 아닌, S급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차마 쉬이 긍정하지 못하자 체르니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내가 단장님보다는 덜할 건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