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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55화 (5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55화

만약 아직도 사무실이 그런 곳에 있었다면 자신은 분명 매일같이 덜덜 떨면서 출근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출근 중 납치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을지도.

그래서인지 진효섭은 지금의 노아피 사무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느끼는 중이었다.

“형.”

그때 체르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효섭을 불렀다. 아까부터 계속 은근하게 쳐다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예.”

“솔직하게 말해요.”

“뭘 말입니까?”

“어제 사무실 안 오고 단장님이랑 같이 있었죠?”

어떻게 알았지. 혹시 같이 있는 걸 보기라도 한 걸까. 진효섭은 상사와 연애를 시작하며 일을 땡땡이치게 된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안단테와 예전 사무실을 갔다 왔다 말하며 사과라도 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그게…….”

“맞네. 같이 있었네.”

그러나 체르니가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진짜 잤구나?”

“……예?”

“둘이 같이 사무실 안 온 거면 뻔하잖아요. 치.”

뭐가 그렇게 불만스러운지 체르니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진효섭이 쉬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안단테와 단둘이 놀았다는 사실에 심술이 돋은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목적어가 없는 물음이었지만, 뭘 뜻하는지 그의 시선이 훑는 곳을 보면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목덜미나 허리, 엉덩이를 빤히 보던 체르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엄청 익숙해요? 아니면 단장이 봐줬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안 잤습니다.”

“에이, 거짓말. 단장님이 성자도 아니고, 단둘이 있는데 가만 놔뒀을 리가 있어요?”

체르니는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이미 확신하는 그의 태도에 진효섭은 난감해졌다. 이런 질문을 막아 줄 상대는 코다 아니면 안단테였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 다 부재중이었다. 신디는 언제나 그랬듯 잠을 청하고 있었고, 플랫은 보이질 않았다.

“형, 아니면 혹시-”

“체르니.”

그때, 누군가가 체르니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왜 또 그딴 주제로 내 자기를 괴롭히고 그래.”

“길드장님!”

진효섭이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안단테를 맞이했다. 지금 상황이 다소 난감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응이었다.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진효섭에게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저 예의 없고 경우 없는 체르니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네요. 내가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나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뒤에서 체르니의 투덜거림이 들려왔으나 안단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진효섭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아무것도 안 하긴. 이렇게 반갑게 반기는 것 보니까 어지간히 난감했나 본데.”

“아니라니까요? 아직 묻고 싶은 건 꺼내지도 않았어요. 어디에 뭐를, 어떻게 같은 것들은 안 물어봤잖아요.”

“쯧.”

안단테가 드물게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제나 저런 발언에는 즐거워하며 거들었던 편이었는데. 그가 조금 달라졌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은 10초도 가지 않았다.

“물어볼 사람이 잘못됐잖아. 진효섭 씨는 관람객이었을 뿐인데.”

관람객? 진효섭은 그 뜻을 알지 못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체르니는 바로 알아차렸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요?”

“관람객이었다고. 배우는 다른 사람이었고.”

체르니의 표정이 충격으로 굳은 것도 잠시, 눈썹이 점차 사납게 치켜졌다.

“그거, 지금 세 명이었다는 뜻이에요? 한 자리에 세 명?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고요!”

“응. 그거 맞아.”

안단테의 느긋한 미소에 체르니가 억울한 듯 이를 박박 갈았다.

“대체 나머지 한 명이 누구예요? 아니, 나를 부르지 왜 다른 새끼를-”

“아, 마침 저기 들어오네. 혈흔까지 보일 정도로 열혈이었던 배우.”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안단테의 시선을 따라갔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플랫이었다. 그는 쏟아지는 시선에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다들 그렇게 쳐다봐? 나 늦었다고 꼽주는 거야?”

“말도 안 돼. 플랫, 네가 단장이랑 했어? 진짜로?”

“단장이라 하다니, 뭘?”

“아니, 방금 단장님이 네가 혈흔까지 보일 정도로 열혈이었다고……. 잠깐, 그럼 네가 아래……?”

“그게 대체 뭔 개소리야. 미쳤냐?”

플랫은 방금 들어온 탓에 하나도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뭔 소리인지는 몰라도 오늘은 시비 걸지 마라. 몸 상태 안 좋아서 기분도 별로니까.”

유난히 짜증스러운 표정의 그가 진효섭 앞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이글거리는 눈으로 안단테를 째려보며 말했다.

“가이드 씨, 가이딩 좀 해 줘요. 누구 때문에 다리를 뚫려서 아침까지 피를 철철 흘렸거든요.”

“하하. 많이 아파?”

“그럼 안 아프겠어요? 뒷세계에서도 악독한 새끼들이 쓰는 고문용 단도가 살에 박혔는데.”

“저런. 많이 아팠겠네.”

“공감 능력도 별로 없으면서 공감하는 척은.”

플랫이 짜증스럽게 칫, 하고 혀를 찼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체르니는 흥미 잃은 표정으로 반대편 소파에 몸을 늘어뜨렸다.

“뭐야. 뚫려서 피 흘린 게 네 허벅지였어? 완전 잘못 짚었네. 단장님은 왜 이렇게 말을 의미심장하게 해요? 사람 헷갈리게.”

사무실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아, 지방 라디오 좀 꺼 봐. 나 이번에 3일 연속으로 밤바다에서 굴렀는데 가이딩도 못 받고, 칼침까지 맞았다고.”

플랫이 툴툴대며 진효섭에게 손을 뻗었다.

“저 그렇게 안 보여도 가이딩 급하거든요. 부탁할게요.”

“아, 예. 알겠습니다.”

진효섭은 잽싸게 플랫의 손을 잡았다. 그의 말대로 상태는 심각했다. 최근 매일매일 가이딩한 덕에 괜찮아질락 말락 하던 몸이 고작 3일 만에 완전 엉망이 되었다.

역시 어제 봤던 그 복면. 플랫이었구나. 진효섭은 아까 대화로 보나, 지금 몸 상태로 보나 그가 복면의 사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실루엣이 조금 익숙하다 싶었는데. 아마 길드장님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던 거겠지.’

그러니까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도 놀라지 않고 즐겁게 웃었던 것이다. 물론, 서로 칼침을 나눴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플랫 에스퍼께서는 어제 왜 그곳에 계셨습니까?”

“나요? 나야 뭐…….”

플랫은 진효섭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지 놀라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100억을 노리는 현상금 사냥꾼들이 짜증 나서 말이죠. 캐고 다니는 놈들한테 가짜 정보로 혼란도 주고, 겁도 줄 겸 갔어요.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는 거죠.”

“그렇습니까.”

밤마다 뭘 하고 다니나 했더니, 아무래도 뒷세계에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는 가이드 씨는?”

플랫이 진효섭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그날 왜 뒷세계에 있었어요?”

“길드장님께서 예전 사무실을 구경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들렀었습니다.”

“아. 예전 사무실. 그 근방이긴 하네. 거기까지 갔다 왔다는 건, 우리가 어둠의 길드 소속이라는 걸 들었다는 소리겠네요?”

“……예.”

“내가 무섭진 않아요?”

안단테와 똑같은 것을 물어봐 진효섭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물어보십니까?”

“보통 어둠 소속이라고 하면 꺼리는 게 당연하니까요. 무슨 짓을 하고 그곳으로 숨어들었을지 진효섭 씨는 모를 거 아니에요.”

플랫은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가이딩이 점차 효과를 보고 있는지 아까보다 한층 더 나른해진 표정이었다.

“우리가 그쪽은 생각도 못 할 만큼 더러운 일을 했었을 수도 있는데.”

그 더러운 일에는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협박, 갈취, 절도, 살인, 횡령 등 크고 작은 범죄들이. 물론 저 중 한 가지만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진효섭은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아피의 목적은 SS급 던전이지 않습니까. 그런 범죄는 하지 않는다고 길드장님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예?”

“거짓말일 수도 있는데. 뭘 보고 그 말을 믿냐고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진효섭은 그날 안단테의 말과 행동이 무척이나 진지해서 올곧게 그를 믿었다.

머뭇거리는 기색에 플랫은 가이딩을 하기 위해 잡은 손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진효섭 가이드. 다시 한번 물어볼게.”

“…….”

“넌 우리가 어둠 소속이라는데, 무섭지 않아?”

그 순간, 모든 길드원이 진효섭을 바라봤다. 안단테도, 체르니도, 저 멀리에서 자고 있던 신디 역시 눈을 뜨고 진효섭을 보았다. 그들은 진효섭의 대답이 궁금한 듯 보였다. 왜 이런 것을 묻는지, 그의 대답이 왜 궁금한 건지 진효섭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은 하나뿐이므로.

“무섭지 않습니다.”

“왜요?”

물음은 의외로 다른 쪽에서 튀어나왔다. 가만 지켜보던 안단테였다.

“분명 저번에 어둠 소속이라 밝힌 놈들은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그거랑은 다릅니다.”

“같은 어둠 소속인데?”

“같지 않습니다. 노아피는…… 제가 소속한 길드이지 않습니까.”

진효섭은 눈을 내리깔며 언제나 그렇듯 더듬대지만 확실하게 말했다.

“노아피 길드는 제 기준에서 이상하고, 또 수상한 것도 맞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간 봐 왔던 시간이 있으니까, 저는 그 시간을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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