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54화
“뭐, 그렇다고 너무 굳지는 말고요.”
그때,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을 고쳐 잡았다. 두 손가락이 사이사이에 얽혀서 접촉이 보다 깊어졌다. 동시에 진효섭의 몸속 기운이 일렁거렸다.
“더 물을 생각 없어요. 말했다시피, 나는 타인의 비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러니 진효섭 씨가 무슨 비밀을 가져도 상관없어요. 원래부터 우린 서로한테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쪽. 깍지를 낀 진효섭의 손등에 안단테가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맞는 말이었다. 안단테는 S급임에도 C급 길드에 들어온 진효섭이 처음부터 수상했을 테고, 진효섭은 안단테가 수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줬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둘 다 대충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길드장님.”
“형.”
“……형.”
“응, 자기야.”
안단테가 잡은 손을 당겨 키스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다음에 나올 말은 사랑해, 였으면 좋겠는데.”
“…….”
아무튼 입을 막는 데 재주가 있는 남자였다. 진효섭이 입술을 달싹이고만 있자, 안단테는 그가 본디 하고자 한 말을 빠르게 알아챘다.
“아, 맞다. 이걸 왜 말해 주냐고 물었었죠?”
별로 어려운 대답은 아니었는지 안단테가 선뜻 대답했다.
“이유야 많아요. 이제 연인이니까 과거를 말해 주고 싶었다, 우리를 돕기로 한 가이드니까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등등.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우리를 찾으려고 뒷세계를 헤집는 에스퍼가 많아져서예요.”
이어 지금 상황에 대한 가벼운 설명이 덧붙었다.
“국가안보국에서 던전 핵을 빼내 간 에스퍼를 찾고 있거든요. 네댓 명쯤의 S급 에스퍼, 그리고 뒷세계 소속이라는 것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어요.”
“아.”
국가안보국에서 던전 핵을 빼내 간 에스퍼를 찾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던지라 진효섭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가 여기 오면 곤란한 거 아닙니까?”
“곤란할 거 없어요. 오히려 우리도 그 현상금 사냥에 참여해 볼까 하던 차였으니까.”
“예?”
안단테가 묘하게 웃으며 무언가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들 앞에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기척도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탁- 가벼운 발소리로 착지한 남자는 곧장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스치듯 시선이 안단테와 진효섭을 향한 순간, 발을 헛디디며 휘청거렸다. 날쌘 몸놀림으로 나타난 것과는 대조적으로 어수룩한 행동이었다.
서로를 마주한 채 적막이 흘렀다.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눈밖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황스러워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아하?”
때아닌 감탄사를 뱉은 안단테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끅끅 웃어대는 그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즐거워 보였다. 잠깐 위쪽을 향했던 그의 시선이 복면의 남자를 향했다.
“와, 이렇게 수상한 놈을 발견하다니. 행운이네.”
“…….”
“마침 내가 100억짜리 현상금 사냥을 하는 중이었거든. 아무도 못 찾고 허탕을 치나 했는데, 이렇게 수상한 놈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안단테는 양팔을 크게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대 위에 선 뮤지컬 배우라도 되는 듯 과장된 행동이었다.
“뭔진 몰라도 일단 잡아야겠지?”
“큭…….”
남자가 돌연 허벅지를 쥐며 신음을 뱉었다. 부여잡은 손 틈으로 단검의 손잡이 부분이 보였다. 남자는 안단테를 향해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마치 그 상처가 안단테 때문이라는 듯.
짧은 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진효섭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두고 복면의 남자가 허벅지에 박힌 단도를 뽑아 들었다. 그것은 곧장 안단테에게 날아들었다. 푹-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안단테의 어깻죽지에 단도가 박혔다.
“기, 길드장님!”
진효섭이 놀라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손잡이 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는데, 안단테는 아프지도 않은지 킥킥 웃어댔다. 그사이 복면의 남자는 모습을 감췄다.
안단테는 남자를 놓쳤음에도 단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거 상황이 정말 재밌게 돌아가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러곤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단도를 뽑아 들었다. 피가 튀는데도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해댔다.
단도가 이상한 곳을 건드려서 미치기라도 한 걸까. 항상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유난히 미친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건 많았으나 상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우선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였다.
“일단 상처부터-”
그러나 진효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손님이 나타났다. 첫 번째와 달리 복면을 쓰지 않은 그는 안단테와 아는 사이로 보였다.
“……노아피 길드장?”
“오, 안녕.”
안단테 역시 그를 아는 눈치였다. 남자는 안단테를 보고 주춤했던 몸을 뒤늦게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복면의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보곤 작게 혀를 찼다.
“젠장. 놓쳤네.”
복면의 사내를 쫓고 있었는지 남자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그는 몸을 바로 하고 다시 안단테와 진효섭을 훑었다. 수상한 사람을 바라보듯 의심이 가득한 시선이었다.
“노아피 길드장인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건 나부터 묻고 싶은데. 그 대단한 국가안보국 소속 에스퍼가 왜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시나.”
“나는 단장님 명령 이행 중이다.”
“아, 혹시 현상금 사냥? 공교롭게도 나랑 똑같은 이유네. 나도 마찬가지거든. 현상금이 100억이라기에 정보라도 얻어 보려고 왔는데…… 웬 수상한 놈이 눈앞에 나타났지 뭐야.”
안단테가 어깻죽지에 꽂혔던 단도를 손끝에 놓고 가볍게 돌렸다. 피가 옷을 적셨는데,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설마…… 교전했나?”
“응. 그런데?”
남자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칼이 꽂혔던 안단테의 어깨와 피가 튄 뺨을 번갈아 보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돈이 될 것 같아서 잡으려고 했는데, 내 어깨에 칼을 꽂고 간 게 다지. 그리고 네가 나타났어.”
남자의 눈에 실망이 서렸다.
“……역시.”
“왜, 그놈이 현상 수배범이기라도 해?”
“…….”
“오. 진짜 그런가 보네? 이야, 아쉽다. 잡았으면 100억인데.”
가볍기 그지없는 말에 국가안보국 에스퍼는 미간을 찌푸렸다.
“웃기고 있네. 그놈은 어떻게 봐도 S급이었어. 오히려 어깨에 상처 입은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만약 제대로 교전했더라면, 넌 여기서 죽었을 테니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안단테는 짐짓 놀란 척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그렇다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근데 걔도 어지간히 급했나 봐. 이런 것도 흘리고 가고.”
그러곤 검은 천을 흔들었다. 같이 있던 진효섭도 언제 뜯은 건지 짐작하기 어려운 천 쪼가리였다. 남자는 심드렁한 눈으로 넘어가려다 말고 갑자기 몸을 홱 돌려 안단테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그거 설마 복면?”
“어. 교전하다가 실수로 떼어냈는데?”
남자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어, 얼굴을 봤다고?”
“응. 봤지.”
진효섭이 안단테를 흘끔 바라봤다. 같이 있던 그는 복면 사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거짓부렁이가 분명했는데, 안단테는 진실만을 말한다는 듯 청렴하기 그지없었다.
“아는 얼굴이었나? 아니, 모르는 얼굴이어도 상관없지. 그냥 지금 같이 가서 몽타주를 따는 게 좋겠어. 따라와.”
남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나 안단테는 쉽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악동 같은 미소가 서렸다.
“맨입으로?”
“……뭐?”
“아까 그놈, 수배범이라며. 말하기 전에 미리 셈해 놔야지.”
손끝에 걸린 검은 복면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99% 어때?”
“9, 99%라고?”
“응. 내가 얼굴 봤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너희는 얼굴만 알면 상대를 잡는 게 간단하잖아.”
“이 미친 새끼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일개 길드원이 이런 협상을 하기는 힘들겠네. 지금 가서 신해창한테 전해. 노아피 길드장이 수배범 얼굴을 봤다고. 그놈 정보를 말해 주는 대신 99%를 받길 원한다고.”
안단테가 말간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이야, 이거 받으면 2년은 놀고먹겠지? 역시 난 운이 좋아.”
“너, 이 지악한 새끼…….”
“이건 선물. 신해창한테 같이 넘겨. 그놈이 놔두고 간 거니까.”
이를 벅벅 가는 국가안보국 에스퍼가 보이지 않는지 안단테는 얄미운 미소와 함께 건들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진효섭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면서도 그는 연신 웃었다.
“아하하, 즐거워라. 천하의 국가안보국이 완전 닭 쫓던 개 신세네.”
“…….”
“자, 우리는 이제 갈까요? 마침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커피만 마시고 얼른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정말 즐거워 보였다.
* * *
다음 날. 진효섭은 노아피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안락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어제 다녀온 사무실의 여파가 생각보다 큰 듯했다.
특히 집에 가기 전에 마신 커피가 가관이었다. 눈알 하나 있는 아저씨는 커피 원두가 아니라 다른 걸 갈게 생길 정도로 무섭게 생겼었고, 카페의 풍경은 으스스하기 그지없었다. 진효섭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침묵 속에 커피를 들이켜다 집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