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53화
어떤 굉장한 풍경이 나올지, 진효섭은 내심 긴장하며 안을 살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안은 평범했다. 현재 사무실과 같은 적당한 크기와 아늑한 내부. 단지 사람들이 오랫동안 드나들지 않아 매캐한 먼지내와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날 뿐이었다.
“사양 말고 들어와요. 내줄 건 없겠지만.”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효섭은 내부를 살피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바다는 대체 어디 있습니까?”
분명 그들의 사무실은 바다 앞이라고 했는데.
“여기요.”
촤악- 쳐져 있던 바랜 커튼이 열리자 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진효섭은 멍하니 창밖에 있는 바다를 바라봤다. 분명 바다 냄새는커녕 그 느낌조차 받지 못했는데, 밤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건…….”
“이것도 S급 던전에서 나온 물건의 영향이에요. 바닷물이 이쪽 도시 중심에 터를 잡고 흐르고 있거든요. 고여 있는 것 같아도 바다랑 이어져 있어요.”
안단테는 창문 너머, 검은 입구의 게이트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부터 물이 흘러오는 것 같았다. 확실히 보기에는 호수 같았는데 귀를 기울이니 파도가 치고 있었다. 진효섭은 밀려오다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게이트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찬 도시.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 검은 물을 둘러싼 죽은 도시. 여러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하나를 가리켰다. 웬만해선 들어가지 않고, 입구를 알고 있는 사람도 꺼리는 장소.
“설마, 여기 뒷세계입니까?”
사실 스산한 거리에 들어섰을 때, 혹시 하는 의문은 있었다. 그러나 안단테가 사무실로 향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뒷세계에 사무실이 있다는 건 결국…….
“맞아요.”
안단테가 빙그레 웃으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칙칙한 내부 탓인지 그의 머리카락이 거멓게 보였다.
“여긴 뒷세계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고.”
진효섭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그건 노아피가, 어둠의 길드 소속이라는 뜻입니까?”
“음. 그런 쪽팔리는 말로 불리고 싶지는 않은데. 그냥 뒷세계 소속이라고 하죠. 그 이름보단 나을 것 같네요.”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콧잔등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에 진효섭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둠의 길드든 뒷세계든 이름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둠의 길드 일원이라는 게 중요했다. 각종 범죄 집단. 한번 발을 들이면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곳이 아닌가.
진효섭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자 안단테가 픽, 웃었다.
“예상 못 했어요?”
“당연, 하지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S급인 걸 숨기고 C급 길드 생활하는 게 평범한 방법으론 불가능하잖아요.”
안단테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문서 위를 가볍게 쓸며 이어 말했다.
“신분 세탁도 필요하고, 새로운 이름도 필요하고. 진짜 C급처럼 살면 원하는 핵은 또 어떻게 얻어요. 뒤에서 움직일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한 법이죠. 그리고 이곳은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고.”
“…….”
“원래 사람들 눈을 피해서 뭔가를 하려면, 합법적인 루트보단 비합법적인 루트가 좋은 법이니까. 안 그래요?”
어둠의 길드 소속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살짝 웃는 안단테에게서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진효섭은 다소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둠의 길드는 범죄자, 아니면 세상에 이름이나 자취를 남기지 않고 지운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즉, 그들은 합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분 세탁이나 새로운 이름도 그것을 의미할 터였다. 그렇다면…….
“노아피는 죄다 범죄자입니까?”
“음. 플랫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일단은 반범죄자라고 해두죠. 어쨌든 합법적인 일을 하지 않는 건 맞으니까.”
“…….”
진효섭의 표정이 조금 딱딱하게 굳자 안단테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넌지시 물었다.
“무섭나요?”
무섭냐라……. 자신은 무서운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진효섭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숨은 비밀에 어쩐지, 하고 납득하게 됐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기분 좋은지 소리 내 웃은 안단테가 진효섭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우리가 뒷세계 소속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진효섭 씨가 싫어할 만한 일은 하고 있지 않거든요. 저희 목표는 오로지 SS급 던전이니까요.”
이윽고 그는 창문 너머 검은 바다를 바라봤다. 항상 옅었던 눈동자에 검은 바다가 일렁였다. 언젠가 그가 보여 줬던 던전의 핵과 비슷한 일렁임이었다.
“놔두고 온 게 있다고 하셨죠.”
“그랬죠.”
“그 말씀은…… 전에 한 번 갔다 왔다는 걸로 알아들어도 되는 겁니까?”
안단테가 묘하게 웃었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가늠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발 물러날 준비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진효섭 씨는 SS급 던전에 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
“남들 아는 것만큼 알고 있습니다.”
현재 나온 던전 중 가장 높은 등급의 던전. 한 번도 해결해 본 적 없고, 정보도 없는 던전. SS급 던전이 나타난 해, 세상이 입은 피해는 10년 동안 입은 피해와 맞먹었다. 진효섭은 누구나 알 법한 정보들을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깔끔하게 알고 있네요. 그럼 그 안에 들어갔던 에스퍼 중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SS급 던전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살아남은 에스퍼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극악의 난도라 불리기 합당했다.
“그럼, 답이 나왔네요.”
“들어가 본 적 없다는 뜻입니까?”
“아까 진효섭 씨 입으로 그 안에 들어갔던 에스퍼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면서요?”
“그렇지만 놔두고 온 게 있다고 한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하, 그건 그렇네요. 정답이에요.”
“어느 쪽이 정답입니까?”
“양쪽 모두요.”
놔두고 온 게 있다고 한 것도 정답.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에스퍼가 없다는 것도 정답. 공존할 수 없는 정답이었음에도, 안단테는 모호한 태도로 긍정했다. 여기까지 밝혀 놓고 아직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답을 피하진 않지만, 굳이 알아듣기 어렵게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아직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진효섭은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밝히는 것 이상으로 물을 용기가 없었다. 자신은 여전히 겁쟁이였다.
“진효섭 씨랑 오니까 좋네요. 길드원들은 저 바다를 싫어했는데, 나는 마음에 들거든요. 밑에 검은 돌이 깔려 있어서 아침에도 밤바다같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습니까.”
“네. 이제 사무실도 구경했겠다, 이 근처에서 커피라도 마실까요?”
“여기에 그런 곳이 있습니까?”
“당연하죠. 이래 봬도 나름 장사하는 곳 많아요. 다들 몰라서 그렇지.”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진효섭을 이끌었다.
“근처에 눈알이 하나뿐인 아저씨가 하는 커피집이 있어요. 사람을 도축할 것같이 생겼는데, 커피만큼은 기깔나게 내리지 뭐예요.”
안 그래도 입안이 까끌까끌했던 터라, 덧붙은 설명에 기대감과 함께 입맛이 없어졌다. 그래도 진효섭은 얌전히 그를 따라갔다. 뒷세계라는 것을 알고 나니 거리가 아까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곳을 제집처럼 오가는 안단테가 있어 무섭지는 않았다.
진효섭은 살짝 앞장서 걷는 안단테를 멍하니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물었다. 더 깊이 파고들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것만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걸 저한테 말해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연인이니까?”
“거짓말. 그래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답지 않은 단호한 중얼거림에 안단테는 걸음을 멈추고 진효섭을 돌아봤다.
“그럼 무슨 이유 같은데요?”
“……질문은 제가 했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면, 차라리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진효섭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안단테를 단호한 시선으로 마주했다. 아까부터 안단테는 유난히 자신을 떠보았다. 무엇을 알고 싶은 건지, 무엇을 얻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자꾸 떠보듯이 말하는 거…… 불편합니다.”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행동을 지적했는데도, 기분 좋아하다니.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란 바로 안단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해요. 진효섭 씨 생각이 좀 듣고 싶었거든요.”
안단테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도 궁금한 게 많아서.”
“…….”
진효섭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괜히 말했나. 아니, 괜히 물었나. 어느 쪽이든 실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안단테는 딱 봐도 입을 다문 상대에게서 정답을 끌어내는 데 뛰어나 보였다. 어떤 물음인지는 몰라도 그가 이어 무언가를 물어본다면 넉살 좋게 넘어갈 수 없을 터. 추궁당하면 진실을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면 입을 다무는 대로 수상하기 그지없어 보이리라.
제 비밀이 안단테가 말한 것보다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쉬이 말할 수도 없었기에 진효섭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