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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51화 (5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51화

“호칭…… 말입니까?”

진효섭은 노란 호박죽을 오물거리며 되물었다. 달콤함에 감탄도 해야 하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대답도 해야 하니 입술이 바빴다. 안단테는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호칭. 이제 우리 사귀는 사이인데 계속 길드장님, 진효섭 씨 하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아…… 그렇습니까.”

사귄다면 호칭 정리가 필요한 거였나. 진효섭은 어수룩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아, 단장님이라고 부를까요.”

“그게 뭐예요. 그냥 길드원이랑 길드장 사이 같잖아요. 좀 더 친근한 호칭으로 해 줘요.”

안단테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진효섭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럼……’ 하고 말을 꺼냈다.

“혀, 형이라고…… 부를까요?”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좀 더 많다는 것은 등급표를 보고 알게 됐다. 그러니 이 호칭이 가장 맞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안단테는 형이라는 지칭이 썩 마음에 들어 보였다. 그러나 바라는 게 있는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말고, 좀 더 친한 걸로 하죠. 제가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한번 골라 봐요.”

안단테는 크고 긴 손가락을 눈앞에서 하나하나 접으며 예시를 들었다.

“첫째는 자기야. 둘째는 여보야. 셋째는 아기야. 넷째는 뽀뽀야. 다섯째는 효댕이, 안댕이. 자, 어떤 게 좋아요?”

“…….”

그 무엇 하나 제정신으로 부를 자신이 없어 진효섭은 입을 닫았다. 안단테는 즐거운 표정으로 제일 마지막에 접었던 새끼손가락을 치켜 까딱였다.

“나는 다섯째가 좋아요. 효댕이, 귀엽지 않나요?”

“……그건 무슨 뜻입니까?”

“효섭이 댕댕이요. 나는 안단테 댕댕이.”

“…….”

그런 호칭으로 불렀다가 나중에 길드원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끄러웠다.

“저는 그냥 평범한 게 좋습니다.”

“이거 전부 평범한 건데?”

“……좀 더 평범한 것들이 좋습니다.”

안단테가 재차 입술을 삐죽이며 이번엔 첫 번째로 접었던 엄지를 치켜 까딱였다.

“그럼, 자기야로 할까요? 진효섭 씨가 말하는 평범에 가장 근접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진효섭은 그것조차도 다소 허들이 높게 느껴졌다. 안단테를 자기야, 라고 부르다니. 그런 말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형은 안 됩니까?”

“그럼 세 번째로 할까요? 내가 애기야, 라고 부르고 그쪽은 형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안단테가 중지의 마디로 진효섭의 입술을 은근하게 쓸었다. 언제 묻었는지 노란 호박죽이 묻어났다. 안단테는 자신 몫의 호박죽이 있었음에도 굳이 진효섭의 입술에 묻었던 것을 핥아 먹었다.

“음, 맛있네.”

중지를 발긋한 혀가 쓰는 모습에 진효섭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닦았다. 내리깐 속눈썹은 이런 행동에 아무리 노출돼도 익숙해지지 못할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 근데 애기야는 내가 어렵겠네요. 세상에 이렇게 야한 애기가 어딨어.”

“…….”

“시간은 많으니까 다른 것도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진효섭 씨는 어려워 보이니까 익숙해질 때까지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진효섭은 안단테가 말을 바꿀세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 좋게 다음 코스 요리가 줄줄이 나왔다. 진효섭은 식어 버린 노란 호박죽을 조금 아쉽게 바라봤다. 그 이후로 안단테는 특별히 말을 걸지 않았다. 음식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역시 젓가락만 놀렸다. 간혹 먹어 보라고 음식을 밀어 주며 권하는 것이 다였다.

진효섭은 보기만큼이나 고급스럽고 맛있는 음식들에 감탄하며 하나하나 맛을 봤다. 그와 함께면 언제나 맛있는 것들을 먹었지만, 이번이 제일이었다. 진효섭은 거의 한 시간을 오롯이 먹는 데에만 사용했다.

그렇게 마지막에 나오는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비우고 고개를 드니, 자신과는 달리 먹은 흔적 하나 없이 깔끔한 안단테가 보였다.

“안 드셨습니까……?”

안단테는 커피를 한입 마시다 말고 피식 웃었다.

“먹었어요.”

“그런데, 꼭 손대지 않은 것 같으셔서…….”

“요즘 식욕이 조금 없어서요.”

거짓말은 아닌지, 그는 커피 말고 특별히 다른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 에스퍼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진효섭은 사무실에서 식사할 당시 안단테가 꽤 많이 먹었던 것을 기억했다. 본래 양이 적은 건 아니란 말이다.

“혹시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으십니까?”

“글쎄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안단테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제 생각에는 아마 그날이 오는 것 같아요.”

“그날?”

“진효섭 씨도 있지 않나요? 유난히 몸이 무겁고 정신이 예민해지는 날. 그때는 유독 향도 짙어지던데.”

향이 짙어지는 날. 진효섭이 ‘아’ 하며 아는 척을 해 보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에게도 1년에 두 번, 난감한 시기가 있었으니까. 진효섭은 차마 그 시기를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해 아름아름 둘러서 표현했다.

“몸에 열이 오르는 날 말씀입니까.”

“맞아요. 역시 진효섭 씨도 알고 있었나 보네.”

안단테가 다소 짓궂게 웃었다.

“아래쪽에 열이 많이 오르죠. 사람이 살면서 그렇게까지 성욕이 오를 수가 있나 싶은 현상이에요. 뭔 약을 먹어도 쉽게 잠재워지지 않아서 고역이었는데, 진효섭 씨도 그래요?”

진효섭은 조금 부끄러운 주제에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좀…….”

“아하. 역시 체질인가 보네.”

피식 웃은 안단테가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좀 우습지 않나요? 성욕이 평소보다 몇 배가 오르는 날이라니. 하하, 무슨 발정기 온 개X끼도 아니고.”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표정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약간의 짜증, 혹은 지긋지긋한 것 같기도 했다. 진효섭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성욕은 그저 난감할 뿐이므로. 가라앉지 않는다면 더욱이 그럴 터였다.

“저…… 한 가지 도움을 드리자면, 저는 그럴 때 둔감화 약을 먹습니다.”

“둔감화? 아, 예민한 가이드들이 주로 먹는다는 약 말인가요?”

“예. 그게 완벽히 도움을 주진 않지만, 어느 정도 생활은 되게 만들어 줘서…….”

“진효섭 씨한테는 다행이네. 하지만 나한테는 별 효과 없을 거예요. 에스퍼니까.”

“……그렇군요.”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에스퍼는 일반 사람들과 같은 신체를 가진 가이드와는 전혀 다르니까. 오죽하면 A급 이상 에스퍼는 시중에 나도는 그 어떤 약이나 독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까.

“저…… 그 시기가 대략 언제쯤입니까?”

“그건 왜요. 진효섭 씨가 나랑 같이 있어 주려고?”

진효섭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뒤늦게 자신이 연인이라는 사실과 그런 일이 있을 때 해결해 줄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탓이다. 거기다 뒤이어 알아챈 또 한 가지 사실에 사고가 정지하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안단테의 말에 진효섭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걱정 마요. 나 그런 거 안 바라니까.”

안단테는 진효섭이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수증을 손에 쥔 그가 가벼운 태도로 빙그레 웃었다.

“진효섭 씨가 처음 바랐던 거, 접촉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거 끝까지 지켜 줄게요.”

“그 말씀은…….”

“플라토닉 러브. 그거 해보자고요. 우리는 원하는 것도 서로 비슷해서 딱 맞네. 안 그래요?”

찡긋, 안단테가 진효섭에게 잔망스레 윙크했다.

* * *

커다란 화면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도 머릿속 한편엔 다른 생각이 가득했다. 화려한 영상물이 분명 신기하게 다가왔으나 영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아마 영화관에 오기 전, 안단테가 했던 말 때문일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 그 말이 왜인지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솔직히 그와 연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들떴던 건 사실이다. 정말 내가 연인을 만들어도 되는 건가. 나 같은 게 다른 사람과 사귀어도 되나. 그런 고민이 주를 이뤘지, 사귄 이후의 일은 생각 밖이었다.

그러다 오늘, 안단테가 언급하고 나서야 ‘아, 사귀면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아무리 안단테가 그의 체질을 안다고 해도 막상 몸을 보면 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미루어 보면, 안단테의 제안은 진효섭에게 꽤 괜찮았다.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빼꼼 들어 진효섭은 다시 집중력을 잃었다.

‘그럼, 곧 있을 그 날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약도 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효섭은 그날이 오면 항상 약을 먹었던지라, 약을 먹지 않고 보내는 날이 어떤지 이제는 기억도 나질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건 아니다.

이성이라는 게 사라지는 날. 지나가는 모든 것에 흥분하며, 상대가 몇 명이든 가리지 않게 되고, 누구인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그저 욕구를 풀어야만 한다는 생각뿐. 그런데 그 욕구를 아무리 풀어내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고역이다.

안단테는 그런 날, 약도 없이 혼자 집에서 보낼 생각인 걸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어지간히 괴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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