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50화
“저기…….”
그때, 잠자코 있던 신디가 꾸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척도 없는 움직임이었는데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한번 자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신디가 몸을 일으켰으니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왜. 쌍둥이한테 연락 왔어?”
“아니…….”
신디가 손목에 찬 디지털시계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화면은 여전히 시꺼멓기만 했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이상해? 뭐가.”
“왜…… 쌍둥이가… 돌아오지…… 않아……?”
아직 잠에서 다 깨지 않은 목소리가 우울한 말투로 느릿하게 덧붙였다.
“지금쯤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조차 느렸다. 신디는 머리를 가로로 기울인 채로 안단테를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는 투였지만 표정은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다녀온 던전이 다소 어려웠을지언정 쌍둥이가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아마 내가 내건 조건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조건……?”
안단테가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쌍둥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하든 입 대지 않기로 했거든.”
“아…….”
“아마 지금쯤이면, 던전에서 얻고 싶은 걸 죄다 캐내고 있지 않을까? 힘이 간당간당할 정도가 돼서야 기어 나올 것 같은데.”
신디는 느린 숨을 깊게 뱉어냈다. 졸음을 가득 담은 채 뜨였던 눈이 결국 도로 감겼다. 의문을 가질 가치도 없었다는 듯이 그가 다시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으며 가늘게 뜬 눈으로 안단테를 바라봤다.
“그럼…… 준비… 는…?”
“준비가 뭐가 필요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안단테는 으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부터 계속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에는 진효섭의 답장이 와 있었다.
[예. 내일 뵙겠습니다.]
사무적인 어조가 데이트 수락보다는 거래 안건과 비슷했지만, 안단테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이제 남은 건 현상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을 몰래 쳐내고 가만히 숨어 있는 것뿐이야. 너희들도 각자 컨디션 조절하면서 얼마 안 남은 평화나 만끽하도록 해.”
안단테는 옷을 챙기며 문으로 향했다. 손을 흔드는 모습은 얼핏 가벼워 보였지만, 무겁고 짙은 감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조만간 지옥으로 기어들어 가야 할 테니까.”
듣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긴장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흥분에 서린 얼굴을 할 뿐이었다.
* * *
“좋은 아침.”
안단테는 멀끔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를 데리러 집까지 찾아왔던 적은 저번에도 있었는데, 진효섭은 그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넬 수가 없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진효섭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뻣뻣할 만큼 잔뜩 긴장한 채 안단테를 향해 걸었다. 폐기 직전의 고장 난 로봇 같은 제 모습이 얼마나 어수룩해 보일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차마 고칠 수가 없었다. 그가 오늘 휴일인 자신을 불러낸 이유가 평소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고작 데이트 정도로.”
안단테는 작게 웃으며 진효섭의 머리를 가볍게 만졌다. 그러고는 크게 촉,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에 뽀뽀했다.
“몸에 힘 좀 빼요.”
“……예.”
“밥은 아직 안 먹었죠?”
진효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단테는 직접 차 문까지 열어 주었다. 상대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잠시 후 도착하게 된 곳은 그리 멋들어지지는 않아도 조용하니 한적한 식당이었다.
“한식이 주된 메뉴고, 제일 좋은 코스로 예약해 뒀어요. 사람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개인실로 했는데 괜찮죠?”
“예. 저는 뭐든…….”
“다행이네.”
안단테는 진효섭을 의자에 앉히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검은 돌과 어우러진 푸른 바다였다.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해서 여기 데려온 걸까.’
생각해 보니까 한식을 선택한 것도, 자신이 주로 배달시켰던 음식이 한식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남에게 관심 없어 보이는 안단테가 자신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기억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어쩌다 자신을 좋아하게 된 건지. 자신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건지.
반대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말 좋아한다는 건지도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고마운 사람에게 느끼는 호감 같은 건 아닌지. 이런 어중간한 생각으로 사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도 됐던 건지. 모든 게 복잡하기만 했다.
물론 고작해야 사귀는 것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효섭도 연인이라는 관계가 각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고 가볍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해서 그런지 너무 어려웠다.
엊저녁, 귀가 후 열이 날 때까지 생각했었다. 안단테를 볼 때면 느껴지는 이 이상하고 묘한 감정이 ‘좋아한다’가 맞는지를 말이다.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오늘 보고 나니 자꾸만 안단테에게 이끌린다는 건 확실했다.
그에게선 자신처럼 미약한 향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코끝에 향이 스치는 것 같고, 그래서 시선이 갔다. 시선이 가니 이상하게 마음도 가는 듯했다. 처음으로 만난 체질이 비슷한 사람. 그에 대한 동질감은 자신의 이상한 몸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뒤집어씌웠다.
그래, 안단테라는 인간은 어쩐지 제게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안단테가 팔꿈치를 식탁에 올리며 몸을 더 가까이했다. 아침에 봐도 바램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였다.
“아뇨. 아무것도…….”
“나를 좋아하는 게 맞나, 그런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그는 유난히 제 마음을 잘 읽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독심술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안단테는 작게 웃으며 미리 준비된 음식들을 밀어 주었다.
“진효섭 씨는 가만 보고 있으면, 은근 표정이 다양하다니까.”
“그런 말 처음 듣습니다.”
일평생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편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무표정에 눈만 크게 뜬다든가, 난감함만 살짝 보인다든가. 그가 알기로는 그게 표정의 다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타입은 아니라는 말까지도 들어 봤다.
“진짠데. 다들 진효섭 씨를 자세히 못 봤나 보네.”
“절 자세히 볼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볼 일이야 많죠. 가이딩할 때라든가. 하지만 굳이 볼 일이 없어도 눈이 가는 타입이에요.”
또 공감할 수 없는 말. 진효섭은 자신이 아는 본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만 말하는 안단테에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없었다.
“……저는 오히려 길드장님이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예.”
안단테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봐요.”
“그…… 길드장님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봅니다. 잘생기시고 분위기도 화려해서 그런지, 시선을 끄는 듯합니다. 표정 변화가 풍부한 것도 역시 길드장님 얘기 같습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잘생기고, 화려하고, 표정 변화가 풍부하고?”
상대에 대해서 생각한 바를 말한다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워 진효섭은 괜스레 앞에 놓인 수저 끝을 만지작거렸다.
“예.”
“그건 또 몰랐네. 그럼 좋아하는 이유는 첫 번째일까요? 잘생겨서?”
안단테가 싱글싱글 웃으며 제 얼굴을 가리켰다. 표정이 풍부하다 못해 얄밉게까지 보였다. 진효섭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그사이 음식이 차차 나왔고, 진효섭은 ‘자, 잘 먹겠습니다’ 하는 말로 대답을 피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으나 안단테는 피식 웃고 말았다. 좋아하냐고 물을 때는 집요하게 굴더니. 일관성이 없었다.
“맛있게 먹어요.”
“길드장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진효섭은 제 앞에 놓인 노란 호박죽을 보며 숟가락을 들었다. 달콤해 보이는 것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부드러운 죽을 휘젓던 것도 잠시, 푹 떠 입으로 넣으려고 했을 때였다.
“그 호칭만 바꾸면 딱 좋겠는데.”
“예?”
투두둑, 호박죽이 식탁에 떨어졌다. 안단테는 작게 혀를 차며 ‘칠칠찮긴’ 하고 중얼거린 후 휴지를 뽑아 손수 닦아 주었다.
“안 그럴 것 같아서는 왜 이렇게 덤벙대요? 저번에도 그래서 화상 입을 뻔해 놓고.”
“죄송-”
“사과는 말고요.”
“……예에.”
진효섭은 아직 한 입도 먹어 보지 못한 호박죽을 잠깐 쳐다보다가 숟가락을 조심스레 내렸다.
“그런데, 아까 하신 말씀은 뭐였습니까?”
“먹으면서 말해요. 먹으면서.”
안단테의 재촉에 진효섭은 다시 호박죽을 한입 떴다. 이번에는 입안에 호박죽이 들어가고 나서야 안단테가 말을 뱉었다.
“이제 호칭 좀 정리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