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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49화 (4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49화

안단테는 여전히 실실 웃어대며 눈웃음치기 바빴다. 심장이 진정할 때까지 잠깐 그의 입을 막아 놓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진효섭에겐 쉽지 않았다.

“으, 앗.”

손 틈새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에 진효섭이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안단테는 멀끔한 표정으로 혀를 야살스럽게 움직였다. 진효섭은 물기 젖은 손을 뒤로 숨겼다.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싶었으나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지 표정에서 다 드러났다.

“역시 귀여워.”

벌써 열 번은 연속으로 듣는 귀엽다는 소리였지만 진효섭은 이번에도 역시 얼굴을 붉혔다. 그들을 보던 길드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진효섭 가이드 좀 그만 놀려요, 단장.”

“맞아. 효섭 형처럼 순수한 사람을 놀리는 게 재밌다는 건 저도 공감하지만, 단장님은 유난스럽다니까.”

플랫과 체르니는 안단테가 진효섭을 놀리고 있다 확신했다.

“뭘 놀려. 진짜 사귀는 건데.”

“그런데 왜 효섭 형은 몰라요?”

“나야말로 그게 의문이야.”

안단테가 도리어 진효섭을 추궁하듯 물었다. 애처로운 눈빛은 덤이었다.

“진효섭 씨,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예……? 어, 언제부터…… 말입니까?”

이쯤 되니, 정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좀 전의 일이라 그럴 리는 절대 없는데도 말이다.

“진효섭 씨가 나 좋아한다고 했을 때부터.”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말만 안 했지, 행동은 좋아한다는 것 좀 알아채 달라는 거였잖아요. 유진이 내게 관심을 보이니까 날 보는 눈매가 이렇게 내려가서는 애달프게 쳐다보고. 화장실에서는 흥분한 얼굴로-”

“길드장님, 제발, 그 입 좀…….”

그 입 좀 다물라는 말이 한숨과 함께 나왔다. 말을 절대로 듣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쩐 일인지 안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내 가이드가 다물라면 다물어야지. 벌리라면 벌리고.”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이 뒤에 붙었지만, 이제 그런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 지경이 됐다.

“나는 내 애인이 하는 말 잘 들어요. 우리 진효섭 씨는 복 받았네.”

“……길드장님. 저는 길드장님이 뭘 말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우리 진효섭 씨가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줄게요.”

안단테가 계속 질질 끌었던 말을 가볍게 압축했다.

“진효섭 씨, 나 좋아하죠?”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 왜 그걸 확신하냐, 여기서 그 얘기가 왜 자꾸 나오냐 등등. 딴지를 걸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지만 지금 그런 것들을 묻다가는 또 이야기가 산으로 가 결국 진실을 놓칠 것 같았다. 진효섭은 목덜미를 손등으로 쓸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만일 그렇다면, 뭡니까.”

조건처럼 붙은 만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안단테는 굳이 말을 돌리지 않았다. 목덜미를 벌겋게 물들이고 하는 만약 따위.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만일이란 가정을 믿지 않을 것이다.

“진효섭 씨는 나 좋아하고. 나도 진효섭 씨를 좋아하고. 서로 마음이 통했는데, 당연히 사귀게 되는 거 아닌가요?”

“당연히 사귄다니…… 아니, 쌍방…… 예?”

진효섭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안단테는 썩 보기 좋지 않은 진효섭의 모습을 눈앞에 두고도 다정하게 웃었다.

“내가 말한 적 없었나? 진효섭 씨 좋아한다고.”

“그, 그런 말…… 한 적…….”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들었다면 잊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라고 해도 귀에 달라붙어 몇 날 며칠을 되새겼을 테니까.

“아, 내가 말 안 했어요? 그럼 지금 말하지 뭐.”

안단테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길드원이 있는 데서 당당하게 고백했다.

“나 진효섭 씨 좋아해요.”

그가 진효섭을 사랑스럽게 보며 양손을 꽉 잡아 들었다. 움켜쥔 손으로 따스한 온기가 넘어왔다.

이미 심장은 쿵쿵 뛰다 못해 갈 길을 잃고 온몸에서 둥둥 널뛰기를 해댔다. 고백받았다는 사실을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이라도 하고 싶은 듯. 소심해서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게 만드는 머리와는 다소 달랐다.

“그러니까…….”

긴 눈매를 사르르 접으며 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나랑 사귀어 줘요.”

* * *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는 것 말이다.

여태껏 진효섭의 인생에서 사람이란 크게 ‘에스퍼’와 ‘일반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 에스퍼들도 ‘각인 상대’와 ‘가이딩해야 하는 에스퍼’, 그리고 ‘그냥 에스퍼’로 나뉘었다. 그 외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단조로운 인간관계에서 안단테는 ‘본디지 파트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딱 하나뿐인 범주였건만, 오늘부로 이름을 달리했다.

‘좋아하는데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여요.’

고장 난 몸은 복잡한 머리가 이것저것 생각하고 따질 틈을 주지 않았다. 진효섭은 천년 묵은 여우에게 홀린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잘했다는 듯 안단테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다.’

상대와 좀 더 깊은 관계가 되는 건 간단했다. 가이드나 에스퍼다 보니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아주 달랐다. 하지만 간단한 고갯짓으로 시작한 것처럼 끝날 때 역시 간단하리라. 각인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 * *

한편, 그 시각 노아피 사무실에서 안단테는 마치 심문이라도 당하듯 체르니와 플랫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취조받는 사람의 태도라기에는 너무 당당했지만, 플랫은 굴하지 않고 양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단장. 진짜 그 가이드랑 사귀어요?”

“그럼 가짜로 사귀어?”

안단테는 성실하지 못한 태도로 손목을 까딱거렸다.

“단장이라면 가짜로 사귈 수도 있죠. 예를 들면 길드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사귀는 거라든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나쁜 놈인 것 같잖아. 나 그렇게까지 개자식은 아닌데.”

어깨를 으쓱하며 부정하는 안단테의 반응에도 체르니와 플랫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실을 얻기 위해 압박하는 게 영락없는 심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여보. 집에 조심히 들어갔어요?]

10분 전에 보냈건만 읽고도 아직 답이 없었다. 문자를 받고 어떻게 답을 보내야 할지 모르고 있을 진효섭이 눈에 선했다. 안단테가 미미한 미소를 띠자 플랫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뭐야, 진짜 좋아하는 거예요?”

안단테는 핸드폰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너희도 참 어렵게 사네.”

그러다 삐뚜름하게 턱을 괴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진효섭 씨가 날 좋아한다잖아. 마침 우리 길드에 딱 붙잡고 싶은 인재기도 하고. 사귀지 않을 이유가 어딨어?”

신중을 기하듯 침묵하는 둘에 안단테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다시 매만졌다.

[우리 내일 데이트나 할까요?]

문자를 전송한 안단테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을 한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나른한 것이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제 길드에 애인도 뒀겠다, 나간다고 말할 리는 없겠지.”

“……아무리 들어도 못 나가게 하려고 사귀는 것 같은 발언이네요.”

“계속 그렇게만 들리는 건 네 머리의 문제일 거야.”

“아니야. 내가 아는 단장님은 그렇게 쉽게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고요. 맨날 귀찮다고 그랬잖아요. 고작 몇 달도 안 본 진효섭한테 마음이 생겼을 리가 없지.”

플랫이 제 추측이 확실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길드원 역시 똑같이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 누구도 안단테가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안단테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그가 진효섭과 사귀는 이유는 SS급 던전이 생기기 전까지 데리고 있기 위함이 80%였다. 남은 20% 또한 그리 진지한 감정은 아니었다. 가끔 보이는 귀여운 행동과 달콤한 향에 호감이 솟아난 게 다였다.

‘확실히 귀엽긴 하단 말이지.’

사람을 사귀는 건 귀찮고, 취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안단테는 진효섭은 괜찮을 것 같다 생각했다. 만약 이번 일이 없었다고 해도, 옆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정도로.

‘뭐, 그래 봤자 일회용이었겠지만.’

안단테는 금방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는 원체 빨리 질려 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편이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감시하듯이 굴고, 알짱거리면 귀찮기만 할 터. 진효섭 역시 다를 바는 없으리라. 지금은 필요에 의해 잘해 주겠지만, 이 일이 끝나면 그것도 끝이었다.

‘그때가 되면 진효섭은 눈물을 흘리려나.’

그가 자신을 많이 좋아한다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울겠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글픈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안함은 생겨나지 않는다. 등에 칼을 꽂은 것도 아니고, 발목을 부숴 버린 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마음고생 좀 하고, 눈물 흘리는 것뿐이지 않나.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에도 부합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미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긴 하네.’

그를 그리워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우는 얼굴은 꽤 볼만할 것이다. 안단테는 조금 짙어진 눈으로 입술을 핥았다. 갑자기 목이 말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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