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48화
결국 진효섭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
“그, 그만…….”
“뭘 그만 해요?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흥분한 몸과는 달리 능청스럽게 그지없는 태도였다.
“진효섭 씨.”
“으…….”
“대답해요. 진효섭 씨.”
“예, 예에……. 길드장, 님…….”
“나 좋아해요?”
“모, 모르…… 겠습니다.”
“몰라요? 진효섭 씨는 모르는 게 너무 많네. 내가 하나하나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안단테가 다소 불퉁한 표정으로 진효섭의 여기저기를 지분거렸다. 불순한 의도가 넘실거리는 손길이었다. 진효섭은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싫지 않은 표정을 하고서는, 매번 밀어내고.”
“그, 건…….”
“그러고선 가이딩은 하고 싶어 죽겠다고 달려들잖아.”
급기야 안단테가 진효섭의 허리를 잡고 상체를 내렸다. 자연스레 허리가 뒤로 젖혀지자 진효섭은 매달리듯 안단테의 옷을 잡았다.
“아무튼 수상해.”
대체 누가 할 말을. 진효섭은 조금 억울한 마음에 붉어진 얼굴로 그를 흘겼다. 그러자 안단테에게서 미약하게 향이 배어 나왔다.
“지금, 나 꼬시는 거예요?”
“예, 예? 그, 그런 거 아닌-”
“우리 진효섭 씨가 단단히 흥분했나 보네. 이런 화장실에서도 못 참는 걸 보니까.”
안단테는 환하게 웃으며 진효섭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세면대 위에 올려 앉히곤 진효섭의 복근에 턱을 대며 눈웃음을 쳤다.
“기념으로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까요? 나한테 흥분한 거니까, 내가 해결해 줘야지.”
뒤로 빼지 못하게 안단테는 진효섭의 손을 가져가 제 머리를 잡게 했다.
“응?”
여러모로 너무 야했다. 그 어떤 선정적인 영상도 이것보다는 덜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진효섭은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대로 그의 유혹에 넘어갈 것만 같았다. 수치스러운 제 몸을 가리는 것도 잊고, 그에게 응하고 싶었다.
진효섭은 손안에 감겨든 안단테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만져 봤다. 부드러웠다. 멍하니 그 부드러움을 느끼며 두피를 슬쩍 문지르자 여유롭기만 하던 안단테가 순간 멈칫거렸다. 그의 표정에 조금 놀란 기색이 서렸다. 이렇게 반응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안단테가 황금빛 눈을 일렁이며 뭐라 말하려고 할 때였다.
“거기서 대체 뭣들 하는 거예요?”
유진이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더니, 이럴 줄 알았어.”
날카로운 시선은 안단테가 아닌 진효섭을 향해 있었다. 진효섭이 안단테를 꼬드겼다는 태도였다.
“아, 죄, 송합니다.”
진효섭은 왜 사과하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바닥에 내려섰다. 그 앞에 딱 붙어 있던 안단테가 거리를 벌리며 작게 혀를 찼다.
“사과도 습관이라니까.”
그는 진효섭의 옷매무새를 부드럽게 다듬어 주며 ‘꼭 고쳐 줘야겠네’ 하고 웃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진효섭은 머쓱하게 손등으로 코끝을 쓸었다. 두 사람은 잠깐 사이에 한층 더 가까워져 있었다.
그 묘한 기류에 유진의 청순한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선량하게만 보이던 눈에 묘한 싸늘함이 서렸다.
“……단테야.”
“왜?”
안단테가 진효섭에게서 시선을 떼고 싶지 않다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대답하자 유진은 표정을 더 싸늘하게 굳혔다.
“너 나한테 부탁할 거 있다며.”
“아, 그랬지. 잊고 있었네.”
너는 뒷전이었다는 뜻이 담긴 말에 유진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너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난 네가 부탁할 게 있다고 해서 이렇게 나와 준 거잖아.”
유진은 도도하게 턱 끝을 치켜들었다. 그 어떤 곳에서도 무시 받아 본 적 없는 S급 가이드. 모든 에스퍼가 그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실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할 부탁이라는 게 뭔지 유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렇게 날 방치하면, 내가 어떻게 네 부탁을 들어줘? 아무리 내가 널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날 좋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밑이 허전한 거겠지.”
단호하게 끊고 들어오는 안단테의 말이 꽤나 노골적이었다.
“뭐, 뭐라고?”
“신해창이 확실히 너무 건강한 맛이기는 해. 보기는 반듯하고 좋아도 맨날 먹으면 질리지. 자극적인 게 없잖아.”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려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유진이 생각하는 것 정도는 다 꿰고 있다는 듯한 냉철한 눈빛이었다.
“그러니 인스턴트가 끌릴 수밖에.”
“안단테.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너도 알겠지만, 에스퍼가 가이드를 따로 불러서 할 부탁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잖아?”
유진이 멈칫 굳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처럼, 안단테 역시 유진이 다 알면서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뭐, 우리는 어느 정도 똑같은 걸 바라고 나왔다는 거지.”
순식간에 우위가 안단테에게로 넘어갔다. 유진은 가장하던 착함과 순수함을 그만두고 안단테를 차갑게 바라봤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다르지 않아? 도와줄 사람이 천지인 나와는 달리, 너는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 아니었어? S급 아니면 너 감당하기 힘들잖아. 그 이상한 체질인가 뭔가 때문에.”
“응. 뭐, 처음에는 그랬는데.”
원래라면 유진이 가장 편리했다. S급이라서 짧게 가이딩해도 되고, 독이 빨리 쌓이는 체질이라 진즉 거짓말해 놔서 쓸데없이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굳이 새로운 사람을 찾느니 그를 이용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생각에 양성소에 있을 때도 유진만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예전 일이다.
“이제 필요 없어졌어.”
안단테가 옆에 있는 진효섭을 끌어당겼다. 품에 가득 차는 탄탄한 몸은 탄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 가이드가 도와주기로 했거든.”
그렇게 말하는 눈빛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반박하려던 유진이 더는 말하지 못하고 움찔할 정도로. 안단테는 지금 제 눈빛이 사납다는 걸 잘 알았기에 진효섭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뒷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물릴 수 없게 됐네.”
자그맣게 속삭이는 마지막 말이 누구를 향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 *
쿡, 안단테의 손끝이 진효섭의 뺨을 찔렀다. 진효섭이 몸을 움찔거리자 안단테가 작게 웃으며 뺨을 가볍게 매만졌다. 동시에 진효섭의 뺨이 붉어졌다.
“아, 귀여워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느끼한 어투였다. 부끄러움에 진효섭이 고개를 푹 수그리자 안단테가 다시 진효섭의 뺨을 쿡 찔렀다. 진효섭은 반사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역시 너무 귀엽단 말이야.”
안단테가 다시 한번 부끄러운 말을 내뱉었다. 심장이 뛰어서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듣고 있기 힘들어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 제발 그만 좀 해요. 약 안 먹었어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플랫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짜증 냈다. 안 그래도 대충 묶은 머리가 산발이 됐다.
“진짜 닭살 돋아서 못 들어 주겠네.”
“왜. 귀여운 거 맞잖아.”
안단테는 보란 듯이 진효섭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플랫이 어이없어하며 안단테와 진효섭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 옆에 앉은 코다와 체르니를 향해 외쳤다.
“야, 단장 왜 저래. 누가 설명 좀 해 봐.”
“글쎄…….”
“나도 몰라. 내가 왔을 때부터 저 상태야.”
체르니는 평소 그가 앉던 자리를 빼앗은 안단테를 짜증스레 흘겨봤다.
“난 오늘 효섭 형한테 다가가려고 했다가 한 대 맞기까지 했어.”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체르니의 광대가 묘하게 빨갰다. 체르니가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으려니 플랫이 혀를 끌끌 찼다.
“뭐야.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겠네.”
“아, 역시 그렇게 보여?”
안단테는 배시시 웃으며 진효섭의 머리에 입술을 묻었다. 그 행동이나 말투가 평소와는 묘하게 달랐다. 순간 사무실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제껏 대답 말고는 이야기에 잘 참여하지 않던 코다가 질문을 던졌다.
“……두 분 연애하십니까?”
모두가 궁금했던 부분인지라 두 사람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동시에 두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응. 맞아.”
“아, 아닙니다.”
대답은 전혀 달랐다. 플랫이 어이없어하며 안단테와 진효섭을 바라봤다. 그러나 가장 놀란 건, 진효섭이었다.
“……예?”
진효섭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안단테를 돌아봤다. 사귀다니.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진 가이드는 화가 난 건지 씩씩대며 사무실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놓였다. 분명 유진과 관련해 묘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표는 철회됐고 그는 계속 노아피 길드를 돕기로 했다.
그 과정 중 언제, 어떻게, 안단테와 사귀게 된 건지 아무리 돌이켜 봐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섭섭함을 드러내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뭐야. 날 가지고 논 거예요?”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 무릎 꿇려 놓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시켜 두고서 사귀지 않는다니. 가지고 논 거잖아요.”
그 말에 진효섭이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뭐, 뭐라는…… 제,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랬잖아요. 이렇게 내 머리를 잡고-”
“다, 다들 오해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진효섭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단테의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