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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47화 (47/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47화

“아무리 본디지 파트너인 척을 하고 있다지만, 나는 일단 그쪽이 내 가이드라고 생각하고 지켜 주고 있었거든요.”

“…….”

진효섭의 귀에 머무르던 붉은 기가 목 밑까지 번져 나갔다. 안단테는 마른 표정으로 그를 가만 바라봤다. 손끝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붉어진 피부 언저리를 덧그리며.

묘한 침묵도 잠시, 안단테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까 다급하게 절 부른 이유가 뭐예요?”

“아, 그게…….”

진효섭은 두 손을 꿈지럭거렸다. 손에 컵을 쥔 것도 깜빡하고 벌떡 일어나서 하려던 말.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 충동이야말로 꾹꾹 숨기기만 하던 진심이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진효섭이 어렵게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안단테의 손길이 진효섭의 흐트러진 품으로 향했다. 얇은 재킷 안에서 하얀 종이가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건…….”

안단테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겉면에 쓰인 ‘사직서’라는 글자 탓이었다. 진효섭이 놀라 속옷을 가리던 손으로 사직서를 빼앗았다. 손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며 종이가 구겨졌다.

“이, 이건, 아닙니다. 그-”

“역시 그렇게 마음먹었나 보네요.”

안단테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붙잡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죠.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진효섭 씨는 위험한 게 싫다고 처음부터 말했고, 우리를 선택했던 이유도 안전해서였으니까.”

그가 몸을 일으키자 자연스레 허벅지에 대고 있던 손수건도 함께 떼어졌다. 안단테는 손수건을 다시 차가운 물로 적셨다. 다만 이번에는 붉어진 상처에 대지 않고 진효섭의 손에 쥐여 줬다.

“미안해요. 그래도 진효섭 씨한테만큼은 계속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한 거였어요.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줘요.”

“기,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길드장님, 저는…….”

“진효섭 씨는 정말 착하다니까.”

씁쓸하게 웃은 안단테가 진효섭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말았다.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손길과 그의 씁쓸함에 애가 타는 건, 진효섭의 몫이었다.

“사직서는 접수해 둘게요. 우리 때문에 그만두게 된 거니까 이번 달분 월급이랑 보너스도 넉넉하게 넣어 줄 거예요. 1년은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생활고 걱정은 말고.”

진효섭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 나가는 안단테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대로 그가 나가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에 가슴이 또 울렁거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안단테를 따라 움직였다.

“길드장- 으악!”

안단테를 붙든 채 바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효섭은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안단테가 넘어지지 않아서 바닥에 널브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행동만 이어 하는 걸까.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괜찮아요?”

“예, 예에…….”

진효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올려다보자 안단테가 다정하게 끌어 올려 줬다. 무게가 보통은 아닐 텐데 아이를 다루듯 쉽게 끌어 올렸다. 에스퍼라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 사소한 것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졌다.

이윽고 그는 바지도 끌어 올려 버클을 여며 줬다. 흐트러졌던 옷매무새가 금방 단정해졌다.

“조심해야죠.”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마지막인데 이 정도밖에 못 해 줘서 내가 미안할 뿐이에요.”

안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마지막을 뱉는 그에게는 약간의 섭섭함이 있을 뿐이었다.

화장실을 나서면 안단테는 곧장 유진에게 길드를 도와 달라 청할 터. 지금 진효섭이 해야 하는 건, 다른 가이드가 도와줘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 이상 위험은 없고, 신경 쓸 것도 없다. 깊어질 가이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원만할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효섭은 안단테를 잡았다.

이유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안단테를 다른 가이드에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서 ‘나는 진효섭 씨 거’라는 말을 들어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진효섭은 지금 당장 그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길드장님.”

문을 향해 나가려던 안단테가 뒤를 돌아봤다. 진효섭은 그를 마주 보지 않고 화장실 타일만 내려다보며 말했다. 결심한 것과는 달리 소심한 행동이었다.

“……사직서, 물러 주십시오.”

안단테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우리 길드에 계속 있어 주려고요?”

“예.”

“위험할 걸 알면서도?”

“……예.”

진효섭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안단테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모호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어요? 진효섭 씨, 위험한 거 싫어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는 위험한 게 싫었다. 피 튀기는 전장에 다녀온 에스퍼들을 덜덜 떨며 가이딩하는 짓 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모르겠습니다.”

진효섭이 머뭇머뭇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을 하나하나 훑었다. 무뚝뚝한 표정에서 배어나는 당혹스러움. 순박하게 굴리는 눈동자. 예쁜 모양으로 뻗은 눈썹. 날카로운 턱선과 달리 둥그스름한 입술. 그 모든 것에서 진효섭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묻어났다.

그때, 진효섭이 흘끔 안단테를 바라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 밑이 선정적이었다. 동시에 그 주위에서 돌아 버릴 만큼 좋은 향이 나왔다. 얼마나 짙은지 그들이 있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향을 맡으니 순박하게만 보였던 표정이 조금 달라 보였다.

안단테의 시선이 다소 짙어지자 진효섭은 눈동자를 잘게 떨었다. 입술이 마르는지 그는 연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의도하지 않은 유혹이라면, 타고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섹시했다.

‘아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신음 같은 건 뱉을 줄도 모르게 생겨서는. 야해 빠졌다니까.’

“진효섭 씨.”

“예에…….”

“다 좋은데. 일단 그 향 좀 줄여 줄래요?”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어리숙한 표정이 에스퍼의 성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써먹는 건지 안단테로선 알 수 없었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핥듯이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까부터 향이 너무 진하게 나오더라고요. 여기가 화장실인지, 홍등가인지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라서. 지금도 간신히 참는 중이니까 줄여 줘요.”

그러곤 느리게 입술을 핥아 올렸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금방 눈치챌 수 있어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안단테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하. 내가 간신히 참는 중이라는데, 대놓고 침을 삼키네. 그거 혹시 날 잡아먹고 싶다는 뜻인가요?”

안단테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효섭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니면 지금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나 인내심 테스트라도 해요?”

그런 거라면 정말 어려운 테스트라며 안단테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진효섭은 그 말에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이건, 제 의지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서…….”

향을 숨기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말이 기어들어 가듯 작아졌다.

“의지랑은 상관없이 나와요?”

입술을 오물거리던 진효섭이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안단테의 눈동자 안에서 황금빛이 번뜩였다. 드디어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듯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그 변화가 소름 끼쳤던 터라 진효섭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물론 안단테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진효섭 씨?”

“예? 무, 무슨…… 뜻입니까?”

“날 보고 흥분한다는 뜻.”

안단테의 한쪽 눈이 황금빛으로 완벽히 물들었다. 그는 위험해 보이는 눈과는 달리 청초하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이상하지. 진효섭 씨가 왜 날 보고 흥분할까.”

진효섭이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당황해서 변명을 입에 올렸다.

“아, 아시잖습니까. 제가, 그, 길드장님 향을 맡을 수 있어서-”

“그렇다기엔 내가 오늘 향을 한 번도 내뿜은 적이 없거든요.”

“…….”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진효섭이 입을 닫자 안단테는 즐거운 기색으로 손뼉을 마주쳤다. 유레카라도 외칠 것처럼 기뻐 보였다.

“알겠다.”

안단테의 나머지 눈동자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진효섭 씨, 나 좋아하는구나?”

좋아해? 진효섭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시차를 두고 점차 붉게 달아올랐다. 어찌나 새빨개지는지 안단테는 그의 머리 위에서 김이 날 것 같다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했다.

“아, 아……. 아…… 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잔뜩 당황해하는 반응이었다.

안단테는 아랑곳 않고 한 걸음 더 다가가 진효섭의 다리 사이에 제 발을 쑥 집어넣었다. 진효섭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지만, 엉덩이에 닿는 세면대 탓에 피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이었다.

“아, 기, 길드장님…….”

“좋아하는 거 맞죠?”

진효섭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이미 대답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는데도 안단테는 집요하게 물었다.

“응? 맞죠?”

그는 연신 몸을 밀어붙였다. 다리 사이를 파고든 허벅지가 진효섭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그를 막느라 허벅지를 조였으나 그럴수록 안단테는 더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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