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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46화 (4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46화

“와, 되게 안락하다. 작아서 그런지 편안한 느낌이야.”

유진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했다.

“난 이런 거 좋더라. 매일같이 마주칠 거 아니야.”

“마주치면 뭐 해. 얼굴이나 붉히지.”

“에이, 그래도 그만큼 친해지잖아. 솔직히 우리는 각자 사무실이 따로 있어서 마주칠 일이 많지 않거든. 그래서 그런지 이런 것도 조금 부러워.”

아련한 표정을 지은 유진이 탁자를 쓸었다.

“우리 예전에 같은 양성소 있었을 때도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랬던가?”

“응. 작은 사무실 같은 거 있어서, 거기서 자주 얘기했었잖아. 그때의 너는 지금보다 날 선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매력이었단 말이지.”

옛날이야기에 진효섭은 절로 귀가 쫑긋했다.

“괜히 신경이 쓰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절로 가이딩해 주고 싶은 느낌이 있었어. 물론 넌 가이딩을 거부했지만.”

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날이 서 있었나. 게다가 가이딩도 여전히 거부했고. 단편적인 정보뿐이었지만 어쩐지 옛날의 안단테가 그려지는 듯했다.

“진짜 이상한 에스퍼라니까. 가이드의 가이딩을 거부하다니.”

“힘쓸 일도 없는데 뭣 하러 가이딩을 받아.”

“그런 것치고 나한테는 가끔 받았잖아.”

순간 유진의 표정에 묘한 우월감이 서렸다. 그 누구에게도 가이딩을 받지 않던 안단테. 그가 S급이라고 알려졌을 때는 누구나 유진을 부러워했다. 나중에 안단테가 C급으로 밝혀졌을 때는 또 달랐지만.

그래도 안단테는 여전히 인기가 많았었다. 빼어난 외모에 훤칠한 키. 바라만 보던 S급이 C급이 되니 찔러보고자 한 가이드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여전히 유진에게만 가이딩을 받았다. 그게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서 유진은 못내 기분이 좋았었다.

“알다시피 난 독특하잖아. C급인데도 독이 많이 쌓이는 편이고, 그걸 감당할 게 너밖에 없었으니까.”

“치. 네가 그렇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말로 바꿔 말해 주면 좀 좋아?”

“어떻게 말해 주길 원하는데?”

“음. 내가 좋아서 나한테만 가이딩을 받으려고 했다던가?”

“그건 너무 거짓말인데.”

“와. 안단테 말하는 것 좀 봐.”

유진이 밉지 않게 눈을 흘기자 안단테가 피식 웃었다. 두 사람 사이가 무척이나 가깝게 보였다.

“아, 오랜만에 너랑 있으니까 되게 좋네.”

“그래?”

“응. 엄청 좋아. 계속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유진은 촉촉이 젖은 눈꼬리로 묘한 시선을 보냈다. 그에 응하듯 안단테가 유진에게 가까이 다가가 탁자를 짚었다. 순식간에 덮치는 듯한 자세가 됐다.

“같이 있고 싶어?”

“응.”

“그럼, 노아피에 들어올래?”

나른한 분위기가 순간 경직됐다. 유진이 새하얀 뺨을 움찔 떨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주는 반응이었다. 유진이 아무 말도 못 하자 부드럽게 올라갔던 안단테의 입꼬리가 묘한 비대칭으로 휘었다.

“같이 있고 싶긴 한데, 일회용이다?”

“……단테야.”

“놀라긴. 장난이야.”

안단테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표정은 다시 처음처럼 자상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떠올랐던 찰나의 비틀린 미소는 어떻게 봐도 진심이었다.

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며 안단테를 잡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가 어렵사리 말했다.

“국가안보국은 소속되는 기간을 정하고 들어가.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그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길드에 들어갈 수 없어. 너도 알잖아.”

안단테는 계속해 보라는 듯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유진은 그리움이 범벅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대답은 못 해도 내 마음은 달라. 알고…… 있지?”

그 시선과 말이 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했다. 진효섭은 같은 공간에 없는 것처럼, 둘밖에 없는 것처럼 굴었다.

“네가 S급이었다면…… 난 무조건 널 선택했을 거야.”

침묵을 깬 유진의 말에 심장이 쿵 떨어진 건 안단테도 아니고, 유진도 아닌, 진효섭이었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 같은 말에 왜 제 심장이 반응하는지. 진효섭은 입술을 깨물며 탁자에 놔둔 컵을 손에 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둘 사이를 찢어 둘 것만 같았다.

“원래부터 내 에스퍼는 너였어. 안단테.”

“그래?”

안단테가 유진의 뺨을 쓸었다. 금방이라도 키스를 할 듯했지만, 안단테는 가볍게 손을 떼었다.

“그런데 어쩌지. 내 가이드는 이제 네가 아닌데.”

“뭐?”

“나 진효섭 씨 거야. 본디지 파트너거든. 뭐, 그래도 네가 그렇게 생각했던 건 조금 의외네.”

어깨를 으쓱이며 유들유들 받아치는 안단테의 말에 유진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사나운 기색이 눈을 스쳤으나 빠르게 사라졌다. 유진은 처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본디지 파트너는 길드 소속이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선택권이 너보다는 가이드에게 있는 거니까.”

맞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묘한 어투였다. 마치 안단테가 어쩔 수 없이 진효섭의 에스퍼가 됐다는 듯이. 그 숨은 뉘앙스를 눈치챈 안단테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건 그렇네.”

“그보다, 부탁할 거는 뭐야? 너 오늘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있다고 불렀잖아.”

“아, 그거.”

안단테가 잠깐 침묵하다가 진효섭을 흘끔 봤다. 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이 느껴졌다. 이윽고 결론을 내렸는지 안단테가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에 우리 가이드가-”

“길드장님!”

그 순간,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역시- 읏!”

허벅다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에 진효섭이 화들짝 놀라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 뜨…….”

컵에 담긴 녹차가 진효섭의 바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조금 식었다고는 하나 포트로 팔팔 끓였던 물인지라 놀랄 만큼 뜨거웠다. 안단테가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다쳤어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그는 드물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이 묻었던 부분에 망설임 없이 손을 대었다. 그러자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나더니 물이 기화했다. 축축했던 바지가 금방 건조된 것이다.

“바지 좀 벗어 봐요.”

“예, 예?”

“아니다. 바로 차가운 물에 씻죠.”

안단테가 의사는 묻지도 않고 진효섭을 번쩍 들어 올려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뜨거운 물은 사라진 데다 살은 조금 따끔한 정도였는데, 안단테는 그가 큰 상처라도 입은 듯이 굴었다.

“길드장님, 저 정말 괜찮습니다.”

“그건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할게요.”

화장실에 도착하자 안단테는 진효섭을 내려 주곤 자리에 꿇어앉았다.

“벗어 봐요.”

진효섭은 엉거주춤 선 채 저도 모르게 바지를 움켜쥐었다. 화상을 입었을 때는 재빨리 찬물로 식혀 주어야 하니 그의 조치는 옳았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게 어쩐지 쉽지 않았다.

“진효섭 씨, 빨리 벗어요.”

안단테가 답답한지 인상을 썼다. 그는 그저 걱정에 하는 말인데, 주춤거리고만 있으니 그럴 만했다. 결국 진효섭은 재촉하듯 올려다보는 안단테의 시선에 주춤주춤 손을 움직였다.

허벅다리에서 느껴지는 따끔함보다 안단테의 시선이 더 따끔했다.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찰칵. 찰카닥. 몇 번이고 버클을 풀지 못해 헛손질하자 안단테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당혹스러움에 진효섭이 손등으로 코끝을 훔쳤다. 그 순간, 안단테의 눈 위로 황금빛이 스쳤다. 어쩐지 동그란 버클을 보던 그의 눈 밑 그늘이 조금 짙어진 듯했다.

“내가 도와줄게요.”

보다 못한 안단테가 손을 뻗었다. 진효섭은 몇 번이고 실패했던 것을 안단테는 손쉽게 해냈다. 바지가 화장실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상처는 허벅지에 있건만, 안단테의 시선은 여전히 허리께에 머물러 있었다. 진득한 시선에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속옷을 조심스레 가렸다. 그의 귀는 벌써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을 말없이 흘끔거리다가 시선을 내려 상처 부근을 살폈다.

“조금 빨개졌네요. 심한 화상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당분간 불편하겠어요.”

“……안 아픕니다.”

“지금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열 오르고 그럴 수도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안단테는 바지 주머니에서 짙은 베이지색 손수건을 꺼내 찬물에 적셔 진효섭의 다리 위에 얹었다.

“괜찮아요?”

“……예. 감사합니다.”

“심하면 호스로 냅다 뿌리려고 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그는 피식 웃으며 손수건으로 상처를 빈틈없이 꽉 둘렀다. 서늘한 손수건 너머로 느껴지는 손길에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을 줬다.

안단테가 다시금 상처에서 시선을 떼고 진효섭을 올려다봤다. 그 얼굴을 마주하자, 본인은 진효섭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가 떠올랐다. 얼굴에 절로 열이 올랐다. 저렇게나 예쁘고 잘생긴 안단테가 허벅다리를 잡은 채 올려다보고 있다니. 열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진효섭은 애써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바, 밖에 유진 가이드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

자신이 내뱉었지만 멍청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바보 같으니. 생각나는 말이 저것밖에 없었나. 뒤늦게 자신을 비난해 봤지만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내 가이드가 지금 아픈데.”

“내, 내 가이드요?”

“네.”

안단테가 손수건을 잡지 않은 반대 손으로 진효섭의 발갛게 변한 귀 근처 머리카락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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