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44화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이유로 댈 것은 수없이 많았지만, 진효섭은 가장 문제가 되는 얘기를 꺼내 들었다.
“두 번째 SS급 던전이 나타난 이후, 수많은 나라가 세 번째 SS급 던전이 나타난다면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선언한 나라 중에는 한국도 있습니다.”
“막상 눈앞에 닥치면 다를 거예요.”
안단테는 SS급 던전이 생기면 세계정부가 말을 달리할 거라 말했다.
“S급 던전이 가져오는 순이익은 어마어마해요. 나라 하나를 사고도 남을 돈이죠. 그런데 과연 SS급 던전을 가만둘까요? 그냥 사라지도록?”
“두 번이나 실패했고, 이익은커녕 피해만 컸습니다. 이번이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심지어 저번에는 SS급 에스퍼가 있었는데도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S급밖에 없는 지금이라면 당연히 봉쇄할 겁니다.”
“단정은 좋지 않아요. 원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거든. 남 머리 위에 있는 놈들이라면 더하고, 자존감이 높은 에스퍼라면 말할 것도 없을 테죠.”
진효섭이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만약…… 들어가는 길드가 있다고 치더라도 다음 SS급 게이트가 언제 열릴지 모릅니다. 70년 전과 10년 전이었으니, 60년이라는 틈이 있지 않습니까.”
“고작 한 번으로 수치를 논할 순 없죠. 누가 알아요, SS급 게이트가 이번에는 10년 만에 나타날지?”
그렇게 말하는 안단테의 눈이 스산했다. 어떻게든 SS급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어 몸이 달아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곧 열린다는 생각에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설마, 확신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묻자 안단테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우리가 뭐 때문에 C급이라고 속이고,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요?”
쪽, 안단테는 신디가 가져온 던전의 핵에 입을 맞췄다. 돌 안의 검은 일렁임을 따라 안단테의 눈도 위험하게 반짝였다.
“이 핵을 다른 새끼들 몰래 얻기 위해서 우리 신분을 숨기는 게 필요했어요.”
“그게 뭐길래…….”
“이걸 모으면 달라진다는 걸 알아냈거든요.”
“예?”
“던전 안에는 석판이라는 게 있어요. 다음에 열릴 게이트에 대해 알려 주는 정보가 적혀 있죠. 그런데 거기에는 의미가 있는 말이 적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보통은 의미가 있는 것에만 주목하는데…… 나는 없는데 주목해 봤어요.”
그는 옆에 있던 태블릿을 꺼내 들어 보여 줬다.
“봐요.”
여러 석판에 적힌 내용이 한데 모여 있었다. 제각각일 땐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조합해 두니 꽤 그럴싸했다.
[도깨비가 불이여. 시간도 아니 할 사.
여섯 이 저문 날에. 날 일곱은 무슨 일이고.
도향으로 돌아갈 제. 서풍이 사기 하여.
조석이 시름겨워 하리오.]
하지만 진효섭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는 그저 말도 안 되는 말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얼떨떨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안단테가 태블릿을 놓고 빙그레 웃었다.
“어렵게 적혀 있지만, 해석하면 간단해요. 도깨비불을 여섯 모으면, 도향의 시간이 당겨지고 일곱째가 생긴다.”
“도향…….”
“네. SS급 던전을 의미해요.”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안단테가 쥔 원석을 바라봤다. 돌 안에 있던 일렁임이 듣고 나니 도깨비불 같아 보였다.
“오랫동안 도깨비불이 뜻하는 걸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A급 던전 이상에 간헐적으로 이런 검은 불꽃이 든 핵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죠. 그렇게 핵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고, 드디어 여섯 개를 얻었어요.”
안단테의 눈동자는 어느새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전 확신이 들어요. 조만간 일곱 번째가 나타날 거예요. 아마 SS급 던전과 함께.”
“……SS급 던전이 열린단 말입니까?”
“네. 이제 우리는 던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태연히 웃는 안단테의 모습에 진효섭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SS급 던전이 열리는 데 힘을 보탠 겁니까?”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그 대규모의 지옥을 열기 위해 노아피 길드가 움직였다는 의미였다. S급임을 숨기면서까지. 진효섭의 손이 잘게 떨렸다.
“어, 어떻게 그런……! 그 일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화내지 마요. 시간을 당긴다고 적혀 있었잖아요. 어차피 열릴 걸 좀 빠르게 당겼다는 뜻이에요.”
“다, 당겼다니요.”
“말 그대로. 원래라면 40년이나 50년 뒤에 열릴 예정이었던 SS급 던전을 좀 더 일찍 열리도록 손본 거라고요.”
아무리 대단한 에스퍼라고 해도, S급이나 SS급 던전의 게이트를 제힘으로 만들어 열 수는 없다. 덧붙어진 말에 흥분했던 진효섭이 조금 차분해졌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아까 말했잖아요.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서라니까. 40년이나 50년 뒤는 너무 늦거든요.”
안단테는 지금이라도 당장 들어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길드원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심한 상처를 입었던 신디나 멀리에 서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코다까지. 드물게 흥분한 기색이 선연했다. 마치 이곳이 던전 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보통 에스퍼는 마흔 살이 넘으면 능력이 퇴화해요. 들어간다면 지금이죠. 물론 늦어도 들어갈 생각이지만…… 기왕이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시기가 낫지 않겠어요?”
“어째서 SS급 던전입니까?”
막힘없이 답을 이어 가던 안단테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가 침묵한 것만으로 공기가 무거워졌다.
“어째서라……. 어렵네.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한참 손안에 든 원석을 문지르던 안단테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인지라 창문을 통해 들어온 짙은 주황빛이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안단테는 반이 새까맣게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거기 두고 온 게 있어서라고 해 두죠.”
* * *
그들이 내민 진실은 구멍이 뚫린 치즈 같았다. 진실은 분명한데, 묘하게 빠진 것이 많아 보였다. 그 빠진 것들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리라.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안단테의 중얼거림에 진효섭은 여러 가지 물음을 그대로 삼켰다.
‘그런데, 유난히 10년 전 일에 해박하네요?’
동시에, 알아차렸다. 비밀이 많다는 건 타인의 비밀 역시 캐낼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묻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역시 드러내야 했다. 결국 진효섭은 방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크고 작은 궁금증은 묻어 둬야만 했다.
“하아…….”
진효섭은 한숨을 깊게 쉬었다. 노아피 길드원들이 S급이었다니. 힘이 약해진 건가 의심했던 과거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조금도 숨기려는 기색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쩐지 뭔가가 이상하다 싶었다. 아니, 사실은 계속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종이 쪼가리에 적힌 등급을 신뢰하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선 노아피가 제일이었으니까.
그 선택이 그르지 않았기를 무의식중에 바랐다. 그랬기에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평범하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의 삶만은 평범하기를 바랐다. 모른 척하면 그렇게 될 거라고 여겼다니. 멍청한 생각이었다.
“……길드를 나갈까.”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진효섭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두 다리를 몸 가까이에 붙여 등을 웅크렸다. 평소와는 달리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는 위험한 가이딩과 던전에 들어가서 상처 입고 나오는 에스퍼를 보는 것이 싫었다. 가이딩에 매달리며 집착해 오는 그들이 싫었다. S급이 싫고, 무서웠다. 그래서 C급을 골랐다. 그것도 제일 바닥이라는 곳. 던전은커녕 매일같이 놀고먹는다는 길드, 노아피를 선택했다.
몸을 보이기 싫다거나 체질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위험에 뛰어드는 S급들을 보는 게 싫다는 이유가 더 컸다. 그런데 피해서 골라 온 곳이 S급의 소굴이었다니. 심지어 SS급 던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았으리라.
자조하고 있던 그때,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고개를 돌리니 안단테가 보낸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무서워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그가 묻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네.”
진효섭은 닿지도 않을 대답을 중얼거렸다. 안단테는 마치 대답을 들은 양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그만두고 싶어요?]
발을 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듯한 문자였다. 기실 진효섭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안단테가 왜 숨기지 않고 진실을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싫다고 답을 보내고 발을 빼야만 한다고.
‘하지만…….’
진효섭은 어두운 얼굴로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손은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