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43화
힘을 더 끌어내자 신디가 눈을 꼬옥 감고 진효섭에게 몸을 기댔다. 유일하게 길드에서 비슷한 키를 가진 에스퍼였기에 부축하기 어렵지 않았다.
문득 상처 입은 신디의 팔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보통 상처는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보통이라면 S급 가이드인 그의 접촉으로 충분했을 텐데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끈적이는 보랏빛 액체가 묻은 걸 보니 그냥 상처가 아닌 것 같았다.
진효섭은 상처를 심각하게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손잡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신디가 기대고 있던 얼굴을 돌렸다. 흘끔 올려다보는 눈이 무슨 의미냐고 묻고 있었다.
“키스가 좋을 듯합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는지 신디의 눈이 흥미로 물들었다.
“정…… 말……?”
“예.”
“나야, 뭐…… 좋긴… 한데…….”
신디가 뒤쪽을 흘끔거렸다. 동시에 뒤에서 안단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나를 봐?”
“……해도, 돼?”
“내가 안 된다고 말할 이유가 어디 있어. 허락은 진효섭 씨한테만 받으면 돼.”
안단테는 우스운 말을 한다며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단장…… 진효섭 가이드를 건드리면…… 눈알을… 뽑아 버릴 거라고… 그랬…… 잖아…….”
“내가 그랬나?”
“으응. 그랬어……. 처음에…….”
“하하. 체르니나 쌍둥이한테 경고차 말했던 거였나 본데, 키스 정도까지는 허락받을 필요 없어. 어차피 내 앞이기도 하고.”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 굳이 안락한 사무실을 놔두고 여기서 이러면 풍기문란죄로 잡혀 들어가거든.”
장난스러운 말투에 신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움직이자 진효섭도 자연스레 손에 이끌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에 스치는 귓가가 뜨끈했다. 눈알을 뽑아 버리겠다는 잔인한 말에 심장이 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 상태를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 건 신디였다. 그가 뜨끈해진 진효섭을 흘끔 바라봤다. 음울함이 가득한 눈에 이채가 띠었다. 진효섭은 그런 신디를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아무도… 없네……?”
“응. 두 놈은 사이좋게 놀러 나갔어. 곧 들어올 거야.”
“아…….”
신디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사무실에 멍하니 서서 진효섭을 돌아봤다. 진효섭은 기다렸다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가이딩 시작할까요.”
“응…. 그게… 좋을 것 같긴 한데……. 그쪽은… 정말… 그래도, 괜찮아…?”
무엇을 묻는 건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한결같이 가라앉아 있어 생각을 읽을 수도 없었다.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 그와 손을 잡고 서 있는 사무실이 늪지대로 느껴졌다. 질척이는 목소리가 진창으로 끌고 내려가는 듯했다.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인지 진효섭도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신디가 진효섭의 옷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그를 밀 뻔했다. 우울한 눈이 옭아매는 것처럼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얼굴을 살짝 기울인 신디가 가까워질수록 꽉 쥔 손안에서 땀이 배어났다. 어떻게 키스를 먼저 제안했나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치밀었다. 게다가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가이딩을 해야 하는 신디가 아닌, 그를 바라보고 있을 인물에게로.
“…….”
그를 눈치챈 신디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입술을 향하려던 경로는 변경되었다. 신디의 입술이 진효섭의 뺨을 가볍게 스쳤다. 그리고 이마가 진효섭의 어깨에 안착했다.
“됐어…. 이걸로… 충분…… 해….”
진효섭은 더 권하지 못하고 침묵한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뽑아냈다.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힘을 뽑아낸 적이 없어서 가늠할 수 없었는데, 키스하지 않는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탓인지 상처는 빠르게 괜찮아졌다.
“이제…… 끝…….”
어느새 상처가 아물고, 신디는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물러났다. 진효섭은 가이딩이 끝나자마자 뒤를 돌아봤다. 안단테가 어떤 얼굴로 보고 있을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진효섭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진효섭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휴대폰만을 보고 있었다. 진효섭의 시선을 느끼고서야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벌써 가이딩 끝났어요?”
안단테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소파 위를 두드렸다. 이리로 오라는 듯해 진효섭은 섭섭함을 애써 감추곤 주춤대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건 뭡니까?”
“아, 이거.”
안단테는 탁자 위에 올려 둔 원석을 들었다. 손안에서 굴리자 돌 안의 검은 일렁임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핵이요.”
“……핵?”
핵이라면 던전 가장 중심에 있다는 원석 아닌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보니 들었던 것과 비슷한 외관이었다. 그 핵을 왜 신디 에스퍼가 가져와서 안단테에게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효섭의 머릿속이 다소 복잡해졌다. 저번에 신해창 에스퍼가 다녀가며 핵을 가져갔니 뭐니 했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까 모임에서도 핵을 가져간 에스퍼에 관해 모두가 숙덕거렸다.
“……길드장님.”
“네, 진효섭 씨.”
“설마…… 신해창 에스퍼가 찾던, 그 핵을 가져갔다는 게…….”
설마. 아니겠지. 어떻게 C급 에스퍼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나. 하지만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들의 이상한 점에 그런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 갔다.
“응. 진효섭 씨가 생각하는 거 전부 맞아요.”
“…….”
“이제 본격적으로 일도 돌아가겠다, 진효섭 씨한테도 슬슬 말해 주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안단테는 원래부터 숨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듯 쉽게 비밀을 입에 올렸다.
“그 핵, 우리가 가져왔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C급 에스퍼 따위가 아니고.”
진효섭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입니까?”
“네. 솔직히 가이딩해 보면 바로 알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눈치가 늦어서 제가 더 놀랐어요. 어디 갇혀서 한 등급의 에스퍼만 가이딩한 줄 알았지 뭐예요.”
“…….”
“뭐, 어찌 됐든 이제 우리 길드 소속이 됐으니까 설명해 줄게요, 차근차근.”
안단테는 지금을 기다려 왔다는 듯 부연하여 설명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짧은 듯하면서도 길었고,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밝힌 진실은 노아피 길드의 에스퍼 전원이 S급이라는 부분부터 시작했다. 예상했음에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A급일 거라 추측했는데, 멍청했었다. 전원 S급이라니. 이 정도면 국가안보국이 부럽지 않은 길드지 않나.
그런데도 그들은 작은 사무실에 처박혀 매일같이 빈둥거렸다. 모든 부와 명예를 양손에 쥐고 돈 위에 올라앉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서도 말이다.
물론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진효섭 역시 그런 것들보다는 평범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힘을 숨기고 잠자코 있었던 건, 평범함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SS급 던전에 들어가는 거예요.”
SS급 던전. 간헐적으로 열린다는 대규모 던전이다. 이제껏 열린 적은 단 두 번. 70년 전과 10년 전이었다.
당시에 열렸던 게이트는 감히 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SS급 던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그 어떤 기록도 남지 않았다. 다들 쉬쉬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갔던 에스퍼 중 누구도 살아 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70년 전, 처음 SS급 던전의 게이트가 열리고 내로라하는 전 세계 S급 길드와 A급 길드가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 그 말로가 죽음이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60년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SS급 던전 게이트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드들이 나섰다. 과거에 참여했던 이들의 말로가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 당시 세계 1위 길드가 함께했기 때문에. 그 길드장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SS급 에스퍼라는 사실에 모두가 믿고 따랐다.
결과는, 다소 달랐다. 좋은 방향이 아닌 나쁜 방향으로.
들어갔던 길드의 절반만이 살아 나왔다. 온전치 못한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살아 나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비록 그 어떤 보물이나 물건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경험만 공유된다면 다음 SS급 던전은 인간이 승리를 가져갈 테니까.
그리된다면 세상은 엄청난 발전을 이룰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건 안온한 생각이었다. 에스퍼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던전에서의 일을 말하지 못했다. 기억 자체를 못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똑같은 건 하나같이 고통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던전에서 나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에스퍼들이 가이딩을 받았음에도 차례로 폭주했다. 문제는 가이딩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두 죽어 버려서 알 수 없었다. 다만 여러 에스퍼가 폭주하며 남긴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SS급 던전의 진실은 묻혔다. 세상을 호령했던 엄청난 인재라 불리던 SS급 에스퍼와 1위 길드도 함께.
그런데, 안단테는 그 SS급 던전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효섭에게는 죽으러 가겠다는 것과 그리 다를 바 없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