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39화
“오?”
“우와.”
“…….”
“캑.”
안단테, 체르니, 코다, 플랫 순으로 각자 다른 반응이 나왔다.
짧고 까만 쫄티, 그리고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바지. 운동을 하는 듯 딱 보기 좋게 갈라진 복근이 훤히 드러났다. 심지어 목에는 초커 같은 것을 하고, 가슴께에는 타원형으로 자그마하게 구멍이 나 있었다. 변태라고 오해받기 딱 좋은 복장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플랫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한숨을 쉬며 체르니를 흘겨봤다.
“야. 이딴 걸 지금 옷이라고 주문해 왔냐?”
“저게 뭐가 어때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한데.”
체르니는 눈을 빛내며 한 손에 휴대폰을 들었다. 당장에라도 저 멋진 피사체를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욕구가 뿜어졌다.
“야, 코다. 네가 뭐라 좀 말해 봐. 저건 아니잖아.”
“새로 예약하겠습니다.”
다시 옷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코다가 드물게 그의 의사를 표현한 덕분에, 옷에 대한 찬반은 1:2가 되었다.
“다들 왜 그래. 보기 좋은데.”
하지만 안단테가 찬성에 한 표 던지며 2:2가 되었다.
“단장도 진짜 변태 같다니까.”
플랫이 혀를 끌끌 찼다. 이제 남은 건 한 명뿐이었다. 옷을 입을 사람인 진효섭이 손을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옷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찢어질 것 같다고 말을 잇는 순간, 손을 들어 올린 쪽 옆구리 밑에서 부북, 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졌다. 스판덱스라는 재질이 무색했다.
“역시 너무 작았나?”
안단테와 체르니가 아쉽다는 시선을 보냈다.
“어쩔 수 없지.”
“저건 안 되겠네요.”
조금 큰 치수로 주문해야겠다며 한동안 실랑이를 벌일 것 같았는데,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포기했다. 찜찜한 기분이 들어 진효섭은 조금 떨떠름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효섭 씨, 이제 이걸로 갈아입어 봐요.”
“…….”
진효섭은 받아 든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누가 봐도 편해 보이는 검은 폴라티에 검은색의 카고바지, 그리고 팔에 두르는 띠까지. 어떻게 봐도 전보다는 이번 옷이 가이드나 에스퍼가 입는 정복 같았다.
한마디로, 아까 옷은 안단테와 체르니가 진효섭을 놀린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였다.
코를 찡그린 진효섭이 그들에게 한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안단테의 휴대폰에서 경보가 울렸다. 안단테는 ‘음?’ 하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심드렁하던 표정이 점차 흥미롭게 바뀌어 갔다. 입꼬리는 호선으로 완벽한 대칭을 그리며 올라갔다.
“오. 아무래도 쌍둥이가 열심히 해 주고 있나 본데.”
그 말에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묘한 시선으로 안단테를 쳐다봤다. 안단테는 휴대폰 화면을 그들에게 보여 주며 말갛게 웃었다.
“국가안보국에서 긴급 모임을 또 내렸어.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뒤야.”
촉박한 시간이 긴급의 정도를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긴장감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긴급이라는데 당연히 참여해 줘야겠지?”
오히려 누가 봐도 위험한 느낌에, 노아피 길드원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중에서 가장 즐거워 보이는 건 안단테였다.
* * *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해창은 날이 선 눈으로 모인 길드장들을 바라봤다. 지금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듯 분위기가 심각했다.
“최근에 긴급 모집을 열었던 터라 웬만하면 올해 안에 두 번은 없을 거라 예상했습니다만…… 일이 큰 만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디귿 자로 앉은 이들을 훑은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얘기하겠습니다.”
신해창이 가볍게 손짓하자 그들 중간에 3D 영상이 떠올랐다.
“최근 미국에서 우선권을 가져갔던 S급 던전과 우리가 맡았던 A급 던전 하나, 그리고 그 외에 던전 두 개. 보시면 아시겠지만, 누군가가 핵을 빼 간 흔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던전 안, 가장 깊은 곳에 강제로 핵을 뜯어 간 흔적이 있었다.
“예전부터 꾸준히 이어진 소행에, 우리 국가안보국에서는 작년부터 계속 그 범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언뜻 저 멀리에 앉은 안단테를 흘긴 듯했다.
“……하지만 워낙 철저한 놈들이라 그림자를 밟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보 하나를 얻게 됐습니다. 보시죠.”
던전이었던 3D 화면이 검은색 기다란 총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맡은 S급 던전에서 발견한 물건입니다. 출처는 뒷세계. 움직이는 이들은 어둠 소속으로 보입니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뒷세계. 어둠 소속. 모두 어둠의 길드 소속을 지칭했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파급력은 컸다. 그놈들은 찾기 어려운 데다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상식이라는 게 없는 범죄자 집단이었으므로. 아마 세간에 떠도는 어둠의 길드에 대한 인식은 실제와는 비견도 안 될 것이다.
“어둠 소속들은 신분을 세탁하거나 아예 생존 신고 자체가 안 되어 있는 놈들투성이라 특정 인물을 추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알아본 바로, 그들은 소규모 단체입니다. 대략 네다섯 명 정도.”
중앙에 비치던 3D 화면이 꺼지자 길드장들의 시선이 다시 신해창에게로 향했다.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하나같이 A급 또는 S급이며, 능력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놈들이 지금 한국에 숨어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서 벌어진 던전들에 쉽게 드나들 수 없었으리라고 덧붙였다. 그때, 잠자코 듣던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한마디로, 지금 어둠의 길드 소속 놈들이 한국에 숨어들어서 던전의 핵을 빼 가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길드장들이 복잡한 심정에 숨을 흘렸다. 핵은 던전의 가장 깊은 곳에 보물과 함께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핵을 가져갔다는 건 결국 그 보물들도 함께 가져갔다는 의미다.
“빼앗긴 보물들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들은 오롯이 핵만 가져갔습니다.”
“……예?”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렸다.
“보물을 놔두고 핵만 가져갔다는 말입니까? 그럼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핵은 큰돈이 되지 못한다. 그 핵보다는 주위에 함께 있는 보물들의 가치가 더 높다. 그런데 그 보물들을 모두 놔두고 핵만 가져갔다니. 심지어 핵은 딱히 쓸데가 없는 터라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해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곤 드물게 사나운 표정으로 이를 드러냈다.
“문제없지 않습니다. 그 범죄자 놈들이 감히 우리 한국에 들어와서 물을 흐려 놓고 있습니다. 지금은 핵이지만 나중에는 어떤 것을 가져갈지 모릅니다. 손 놓고 있다가 일이 커지면 그 감당은 누가 하게 됩니까?”
남자가 주춤거리며 신해창의 시선을 피해 눈을 밑으로 깔았다. 자신의 발언이 너무 짧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핵이 하나하나 사라질 때마다 게이트 파인더(*게이트가 열리는 시기나 장소를 측정하는 기기) 상태가 이상합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신해창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보통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그놈들이 핵을 모으는 게 수상한바, 한국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한다고 여겨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
눈을 차갑게 빛낸 그가 좌중을 훑었다.
“현상금 100억.”
나지막하게 뱉어진 말은 별 관심 없던 길드장의 시선까지 죄다 모았다. 하나같이 입을 닫고 머리를 굴렸다. 100억. 아무리 상대가 어둠 소속에 S급이라고 추정된다 한들 탐나는 돈이었다.
흥분의 빛을 띤 침묵이 깔린 그 순간, 안단테가 웃는 낯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100억이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작다고?”
신해창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평생 봉급을 받아도 모으기 힘든 돈일 텐데.”
“네다섯 명의 S급 에스퍼. 심지어 어둠 소속.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떤 비밀을 가졌는지도 모를 놈들의 뒤를 캐다가 100억은 보지도 못하고 단숨에 슥삭 당하면 어떡해? 목숨값으로 100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닌데.”
착수금 하나 없는 데다 정체 모를 놈들의 뒤를 캐다 죽으면 0원이니 위험부담이 크다는 말이었다. 그럴싸한 주장이었지만 신해창은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위험이 없다면 현상금이 100억이 아니라 1억이 됐겠지.”
“그래도 네댓 명의 S급 에스퍼잖아? 0 하나는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
묘하게 돈을 더 불리려는 행동에 신해창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사람들은 흥미로운지 그들을 가만 보고만 있었다. 안단테는 뭘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하긴. 너 같은 놈은 모르겠군.”
“뭘?”
“든든한 집안의 자금만을 믿고 평생 해결사나 하면서 놀고먹는 너는 제힘으로 1억을 번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는 의미다.”
신해창이 냉담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100억이라는 돈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작지 않아. 수지에 맞지 않다 생각한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물정 모르는 부잣집 철부지 취급에 주위 사람들이 안단테를 향해 혀를 끌끌 찼다.